델라웨어 한인축제

사람 사는 세상은 결국 하나님 나라로 가까이 가고 있음을 믿는다. 그게 내 믿음이다. 델라웨어, 이 곳에 산지도 제법 되었다. 잠깐인 듯 한데 그 세월 의 흐름 속에서 어느새 저물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이 동네 한인사회 종 노릇 흉내를 내던 때가 벌써 십 칠팔 년 전 일이다. 그 무렵만 하여도 “Korea”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거의 모든 모임들은 한인들 만의 잔치였다.

오늘, Delaware Art Museum에서 열린 추석맞이 제3회 연례 한인 문화 축제(The 3rd Annual Korean Cultural Festival)는 분명 변해가는 이 땅 한인 이민자들의 새로운 축제였다. 이젠  Korean Festival이 더는 한인들 만의 축제가 아니다. 이 땅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이웃들과 더불어 한국을 알리는 축제의 장이다. 500명을 웃도는 참석자들 중 2/3는 한국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비한국계 였음이 그를 잘 그려준다.

이 행사를 잘 꾸려가는 이들을 통해 한인 이민자들의 새로운 모델을 본다. 교회도 아니고, 한인회도 아니고, 어떤 이익 단체도 아닌 새로운 모델이다.

이 행사를 잘 꾸며낸 이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Jin Twilley, Soojin Suh, Eunhwa Choi, Hyesun Kwak, Jinwoo Tak, Tim Kim, Youngmae Roca, Jinhee Yu – 참 고마운 이름들이다.

이 행사를 통해 뒤늦게 어설프지만 멋진 춤사위를 펼친 내 아내에게도 속 깊은 박수를 보낸다. 아내에게 춤을 가르쳐준 강은주 선생님과 한마디 부탁에 흔쾌히 장구채를 잡아주신 내 좋은 친구의 아내인 조성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이렇게 이 땅에서 먹고 살 수 있게 도와 주는 내 가게 손님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드린다. 우리에 대한 이해를 위해.

capture-20170930-185134남, 북이라는 수식어가 붙건 안 붙건 Korea라는 나라 이름이 미국인들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 왔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Korea에 대한 뉴스들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제 기억과 나름의 지식이 맞다면, 잊어진 전쟁으로 알려진 한국전쟁(1950-1953) 이후 미국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이처럼 깊게 각인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인입니다.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한국에 대한 뉴스들을 보고 생각하는 제 자신에 대한 신분 규정입니다. 그러므로 똑 같은 한국에 대한 뉴스들을 보면서 남한에서 사는 사람들, 북한에서 사는 사람들과 제 생각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대다수 미국인들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상황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옳다 그르다고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느낌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국과 전쟁에 대한 지식입니다. 남북을 합친 한반도 전체 크기는 유타주와 엇비슷합니다. 그 작은 나라에서 역사 이래 기록에 남겨진 전쟁 회수가 천 번이 넘습니다. 한반도에 있었던 작은 나라들 끼리의 전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큰 전쟁들은 이웃 중국, 일본, 몽고 등과의 싸움들이었습니다. 19세기 이후에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 미국과의 전쟁도 있었습니다. 모두 한반도 안에서 일어났던 싸움들입니다.

한국전쟁 때 그 한반도에서 싸우다 피 흘려 죽은 사람들의 국적은 정말 다양하답니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중국, 캐나다, 콜럼비아,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남아공화국, 에티오피아, 영국,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베르그, 네덜란드, 터키 등입니다. 물론 그 전쟁에서 가장 많이 죽은 사람들은 남, 북 이라는 수식어 떼어낸 한국인들입니다.

이 주에 한국인들은 아주 큰 명절을 맞습니다. 추석이라고 부르는 한국인들의 추수감사절입니다. 북한, 남한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여러 나라에 이민자 또는 여행자로 사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아주 큰 명절입니다.

작게는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감사에서부터 과거의 조상들에 대한 감사, 현재를 사는 오늘의 모습에 대한 감사, 미래를 이어갈 다음 세대들에 대한 감사를 되새기는 큰 명절입니다. 모든 명절들에 사람들은 첫 뜻은 잊고 형식만 기억하고 살게 마련이지만, 올해 추석만은 너나없이 감사의 조건들을 꼽아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비단 한반도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전쟁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옛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간도 감사가 넘쳐나는 시간들이 이어지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첨부 : 어제 Delaware Art Museum에서 한국의 명절 추석을 기리는 행사인 Delaware Korean Festival이 있었답니다. 주 상원의원인 Tom Carper를 비롯한 약 500명이 참석했답니다. 이 행사에서 제 아내인 Chong이 한국 전통 춤의 하나인 진도북춤을 추었답니다. 이 춤은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하루 하루의 기쁨과 감사를 그대로 들어내는 춤이랍니다. 아내가 춘 이 춤을 당신과 함께 합니다.

 

Whether with the prefix of South or North, the country name of Korea has drawn increasing attention by Americans. That’s because news about Korea has flooded the media for the last some months. If my memory and knowledge are correct, it may be the first time since the Korean War (1950-1953), aka the Forgotten War, when the name Korea was inscribed so deeply in Americans minds.

I am an American. Specifically, I am a Korean American. It is a definition of my nationality status, when I watch and think about the news about Korea. So, my thoughts about the news may not be the same as those of the people in South and North Korea. Of course, they may be different from the thoughts which most Americans may have regarding the news.

I’m not trying to judge which thoughts are right or wrong, but to say that people may have the same or different thoughts about the same situation.

It is what I know about Korea and the wars which Korea has experienced in history. The total area of the South and North Korea combined is similar to that of Utah. Though Korea is such a small country, it suffered more than a thousand wars which were recorded in history. There were many wars among the kingdoms within the Korean Peninsula. But most of the major wars were against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China, Japan, Mongolia, and so on. In the 19th century, there were wars with Russia, France, Germany and even America, before it fell to Japanese rule and became a colony. All of them happened with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Korean War, people from various countries lost their lives. They were soldiers from China, Canada, Columbia, Australia, New Zealand, the Philippines, Thailand, South Africa, Ethiopia, the United Kingdom, Belgium, France, Greece, Luxemburg, the Netherlands and Turkey, as well as America. Of course, a large majority of the war victims were Korean people of South and North.

I think that Korean people have suffered too much from far more than enough wars historically. I wish that war won’t break out in the Korean Peninsula ever again, no matter what. I wish that war will become an old story which we can hear or see only in museums, anywhere in the world.

Koreans will encounter one of the biggest folk holidays this week. It is Chuseok, which is equivalent to the Thanksgiving Day in America. Not just people in South and North Korea, but also most Koreans who are staying in other countries as immigrants or travelers will celebrate it.

On Chuseok, Koreans celebrate with gratitude for many things from the harvest of the year and their ancestors’ grace, to the present state of their lives and the next generation who will lead the future. So often, we’re likely to keep only the formality, without thinking about the original meaning of the traditional holidays. I hope that this year, every one of us will think about all the things for which we should be grateful.

I wish that you’ll have happy things to celebrate continuously this week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PS: Yesterday, the Delaware Korean Festival, an event to celebrate Chuseok, was held at the Delaware Art Museum. About 500 people, including Senator Tom Carper, joined in the event. There, my wife Chong performed “Jindo Bukchum (drum dance),” one of the Korean traditional dances. This dance reflects gratitude and joys in everyday life. I would like to share the video with you.

아내의 춤 – 그 점 하나.

토요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 행사 녹화 영상을 보며 세월을 뒤돌아 보았다. 그 때 그 수많은 인파 속에 나도 점 하나로 서 있었다. 그 무더위를 뒤로 하고 그 땅을 떠났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이민 30년. 참 많이 변했다. 내가 느끼는 그 세월의 모든 변화들을 감사로 받아 드리고 싶다.

환갑 나이가 된 아내가 느닷없이 ‘진도 북춤’을 배워야겠다고 선언한 것은 올 초의 일이었다. 난 ‘저러다 말겠거니’했다. 아침에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며 무릎이 시큰거린다는 아내가 그 일을 저지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30년 전 아내는 한풀이 춤도 탈춤도 추곤했다. 그러나 그건 30년 전의 일일 뿐.

그러다 오늘 나는 왕복 300마일 ‘진도 북춤’을 배우러 가는 아내의 운전기사였다.

두 시간 춤을 배우고 난 뒤 아내가 물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 동안 너나없이 모두가 그 물음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30년 전 한풀이 춤을 추었던 아내는 이제 어느 날엔가 진도 북춤을 출 것이다.

그랬다. 30년이란 그저 시간의 흐름 가운데 하나의 점일 뿐.

그 점 하나에 대한 감사가 이어지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