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야(前夜) – 중간사 7

(당신의 천국 – 일흔 두번 째 이야기) 

그 주변 이방인들은 유다인들이 제단을 다시 쌓고 성소를 복구하여 전과 같이 만들어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자기네들과 함께 살고 있던 야곱의 후손들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유다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유다는 이스라엘을 괴롭혀 오던 에사오의 자손들을 에돔의 아크라바테네에서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고 굴복시킨 다음 많은 전리품을 빼앗았다. – 마카베오상 5 : 1 – 3, 공동번역에서 

유다 마카베오와 그를 따르던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난 뒤 이들이 벌여 온 전투의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이제껏 벌인 전투들은  광야로 도망가서 살기 위해 벌인 게릴라전이었는데, 이제는 유다의 전통과 신앙을 되찾고 원래 옛날 누리던 영토를 되찾는 정복전쟁으로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들이 탄탄대로를 걷듯 순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다 마카베오가 이끄는 세력이 커갈즈음 셀류커스왕조의 대군이 밀려와 예루살렘성에 가두고 포위하여 전멸의 위기에 놓입니다. 

마사다

바람 앞에 놓인 등불, 왈 풍전등화격이었던 마카베오군대를 살린 것은 셀류커스왕조의 왕위 다툼이었습니다. 마카베오 혁명을 유발시켰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죽자 셀류커스왕조은 극심한 후계 쟁탈전에 휩싸입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셀류커스왕조의 군대들은 평화협상을 제의합니다. 

협상안은 “앞으로 내정 간섭 않겠다. 유대교의식을 억압하는 법령들은 철폐하겠다.대 제사장은 온건한 헬라주의자인  엘리아킴(헬라어로는 알키무스)으로 세운다. 유다 마카비우스와 그  추종자들을 처벌하지 않겠다.”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마카베오는 이 협상안을 거절하지만 종교적 전통을 지키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었던 하시딤 일파의 주장에 따라 이 협상안을 받아드리게 됩니다. 

양쪽 모두 위기를 넘긴듯 했지만 칼자루를 쥔 쪽은 셀류커스왕조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앞잡이였던 엘리아킴(알키무스)대제사장은 마카베오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하시딤일파를 처형해 버립니다. 

그제서야 마카베오가 옳았다는 생각으로 다시 뭉친 유다 독립군들의 재항거 운동이 벌여지는데,  재진압에 나선 셀류커스왕조의 의해 유다 마카베오가 전사를 하게 됩니다. 그를 이어 동생인 요나단이 독립군 대장이 됩니다. 

요나단 역시 형과 아버지의 용맹을 이어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새롭게 독립군의 세를 불리고 있을 즈음 , 셀류커스 왕조는 내분에 다시 휩싸이게 됩니다. 더더구나나 신흥 제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로마가 셀류커스왕조를 위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제국들이 다투고 내분에 쌓인 틈을 타서 요나단은 유다의 정치와 종교의 모든 권한을 쥐고자 유다의 대제사장직에 오르게 되는데, 이 일이 유다의 종파 분열이 일어나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유다의 전통적 율법으로 보자면 레위지파의 아론계론이 대제사장직을 이어가야 하는데(비록 돈을 주고 사고 파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혁명의 주체였던 유다 마케베오나 그의 동생 요나단은 유다지파였답니다. 

게다가 왕권 다툼에 빠진 셀류커스 왕조는 여러 세력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 각기 다른 세력 어디에 선을 대고  완장을 차느냐에 따라 유대 종파가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선 “이꼴 저꼴 다 보기싫다, 우린 야훼 하나님 신앙만으로 뭉쳐서 우리끼리 살겠다.”며 동굴을 파고 들어가 자신들만의 규율대로 살게되는 집단이 있습니다. 이들이 사해문서 또는 쿰란문서를 남긴 에세네파입니다.  약 250여년 동안 이 집단의 전통이 유지되며 이어진답니다. 

두번 째는 비록 대제사장의 승계권은 잃었을지라도 전통인 종교 귀족 계급들이 뭉쳐 하나의 집단을 이루게 됩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로 부터 내려온, 또한 바벨론 포로 후기부터 세를 불려온 사독계열의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바로 사두개파입니다. 

세번 째는  하시딤(경건한 사람들)의 후예인 바리새파입니다. 

유대인들 사이에 그들 나름대로의 노선과 신앙을 중심으로 뭉친 이런 종파들이 생기고  뭉쳐서 후대까지 기록과 이야기들을 남기게 되지만, 그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답니다. 예수시대에 바리새파의 인원이 대략 6,000여명, 에세네파는 약 4,000여명 정도로 추정되는 바, 귀족계급인 사두개파는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다수 수많은 유대인들과 모계나 부계로 유대의 혈통을 이어온 사람들,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거나  외국에 나가 살던 이들은 어디에 속해 있을까요? 하루 하루 일용할 양식에 매어 살던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무리가 크게 존재하고 있었겠지요. 새로운 시대는 바로 이들과 함께 열리게 된다는 점 기억하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이렇게 유다 마카베오의 형제들이 권위를 이어가며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정치 종교적 독립을 이루며 왕국을 세우게 되는데 이를 일컬어 하스몬왕조라고 부른답니다. 

하스몬왕조는 시리아 헬레니즘 왕국인 셀류커스왕조가 저물고 로마왕조가 새롭게 들어서는 때에 복잡한 정세와 맞물려 위태위태한 독립왕국을 이어갑니다. 그 끝무렵에 헤롯대왕의 이름이 나오게 된답니다. 

이제 예수를 맞이하는 신약시대를 코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 중간사 옛날 이야기는 마치고, 그 무렵 바벨론포로 해방기에서 마카베오 독립운동이 일어나던 사이에 이루어진 성경책에 대해 간략히 짚고 넘어 가려고 합니다. 

먼저 시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임계점(臨界點) – 중간사 5

(당신의 천국 – 일흔 번 째 이야기) 

몹씨 추운 겨울날입니다. “춥다”의 반대말은 “덥다”입니다. 사물이나 현상 또는 일에는 반대되는 말이나 개념들이 있습니다. 크다와 작다, 잘한다와 못한다, 참이다와 거짓이다 등등 말입니다. 

그럼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은 무엇일까요? 전제주의나 독재주의가 되겠지요. 그런데 종종 그 반대 개념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고  말하거나 글을 쓰는 분들을 만날 수가 있답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반대 개념은 자본주의겠지요. 

오늘날 한반도 남북이 겪고 있는 가장 큰 혼란과 슬픔은 바로 이런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일겝니다. 전혀 엉뚱하게 제 멋대로 자신과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위해 이런 개념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북쪽은 아무리 자신들의 이름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넣고 외쳐 불러보아도 그들이 민주주의 공화국인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 이외에는 거의 드물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하는 한, 남쪽 사람들 99.99999…%는 북은 민주주의 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북은 그저 전제주의 독재국가일 뿐입니다.(남쪽 법으로는 국가라고 인정을 안하지만 국제법으로는 분명 국가임으로) 

남쪽 역시 아무리 민주주의 체제라고 말하여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랍니다. 도대체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른 생각과 사상들을 서로 인정하고 토론하고, 그 과정을 통해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도 하고, 잘못되면 다시 그 잘못을 인정하고 토론하고 다시 묻고 하는 과정을 용인하는 것 아닐까요? 나와 다르면 무조건 종북인 나라는 결코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지요. 

아이고 제 이야기가 왜 이쪽으로 흘렀을까요? 

복지 이야기 하려다 이렇게 되었답니다. 구약성서 전체를 일관하는 야훼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평등한 복지”라는 신앙이 있답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빈부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부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반드시 돌보아야만 한다는 “복지”에 대한 야훼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이 신앙고백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에 반드시 오고 가는 것은 “돈”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나누는 일입니다.  이 문제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갈리는 것이지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국가권력이 이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하는 잣대에 따라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로 갈리면서 그 성패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경험해 온 결과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한 것이고요, 자본주의 역시 아직은 시험중이고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합된 형태의 국가들이 새로운 문제 해결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인 것 같지요. 

성서의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길에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물으시는지요? 

바로 성서가 던지는 이 질문 앞에 우리들이 서 있기 때문이랍니다. 

팔레스타인과 유다의 새 주인이 된 셀류커스왕조는 이전 왕조였던 프톨레마이오스왕조를 부정하는 뜻으로 조세 감면 정책을 폈답니다. 

세금을 거두어 드리지 않는 정책으로 과연 식민지를 지배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저 식민지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는 거짓이었을 뿐이었답니다. 일시적으로 시행했던 이 정책으로 셀류커스왕조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더더군다나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세력이었던 로마의 도전 앞에 봉착한 셀류커스왕조는 급격한 정책의 변화를 꾀하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식민지의 재산을 강탈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에피파네스라고 불리우는 안티쿠오스 4세가 등극하면서 이러한 정책이 강력하게 진행됩니다. 

이 지점에서 당시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종교 지도자들과 셀류큐스 왕조의 에피파네스왕 세력이 배포가 맞는 일이 벌어집니다. “돈이 최고다.”, “우리끼리 잘 살아 보자”라는 정신에서 서로 배포가 맞은 것입니다. 

이들이 첫번째로 벌인 일이 그리스 올림푸스산의 제우스신과 예루살렘의 야훼 하나님은 하나라는 신앙을 유대인들에게 강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직을 돈을 주고 사고 파는 일이었습니다. 기원전 174년에 야손이라는 사람이 돈을 주고 대제사장직을 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세력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유대인들의 신앙과 제사의식을 무너뜨려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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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의 일을 성서 외경인 마카베오(마카비)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 안티오쿠스왕은 온 왕국에 영을 내려 모든 사람은 자기 관습을 버리고 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방인들은 모두 왕의 명령에 순종했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왕의 종교를 받아 들여 안식일을 더럽히고 우상에게 제물을 바쳤다.  

왕은 또 사신들을 예루살렘과 유다의 여러 도시에 보내어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렸다. 유다인들은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를 것.  성소 안에서 본제를 드리거나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술을 봉헌하는 따위의 예식을 하지 말 것. 안식일과 기타 축제일을 지키지 말 것.  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울 것.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희생제물로 잡아 바칠 것.  사내아이들에게 할례를 주지 말 것. 온갖 종류의 음란과 모독의 행위로 스스로를 더럽힐 것. 이렇게 하여 율법을 저버리고 모든 규칙을 바꿀 것.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안티오쿠스왕은 그의 온 왕국에 이와 같은 명령을 내리고 국민을 감시할 감독관들을 임명하고 유다의 여러 도시에 명령을 내려서 각 도시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게 했다.   많은 유다인들이 율법을 버리고 그들에게 가담하여 방방곡곡에서 나쁜 짓이 마구 저질러졌다.  그 밖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아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 마카베오상 1 : 41 – 53, 공동번역에서 

철저한 자기부정의 길을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견디어낼 수 있는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사백년 가까운 식민지배를 벗어나 종교적 신앙 전통을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독립을 부르짖고 싸우는 행동으로 나아가는 일의 계기였답니다. 

이제 새로운 유대왕국이 그 땅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라는 예수시대의 파당들이 만들어진 때도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권력 – 중간사 4

(당신의 천국 – 예순 아홉 번 째 이야기)

권력 특히 정치권력의 여러 속성 가운데 하나로 먼저 있었던 권력에 대한 거부나  완전 부정이라는 면을 들 수 있습니다.  일테면 미국의 부시 전대통령의 Anything But Clinton이라는 말은 그런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지요. 이명박  전대통령의 Anything But Roh,  곧 모든 일은 노무현 전대통령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일이 있었지요. 비단 이명박 전대통령만의 일은 아니였지요.  그의 도가 넘는 반노(反盧)정책을 전적으로 이명박이라는 개인 탓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랍니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랍니다. 

아무튼 정권이 바뀌면 일단 전임 정권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습니다. 전임 정권에서 쌓여 온 악화된 민심(民心)들을 푸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새 정권의 힘(동력動力)을 얻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지요. 박정희는 제껴놓고, 이후 권력승계가 선거에 따라 이어져 온 역사만 본다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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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는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냈고요, 김영삼은 전과 노 두 사람을 감옥으로 보냈고요, 김대중은 워낙 다들 적이였거니와 전임이었던 김영삼은 이미 정리하지 않아도, 아니면 그걸 다 밟으면 제 목 날아갈까보아 두리뭉실, 노무현도 김대중을 정리했지요. 남북관계의 돈문제라는 것으로 말입니다. 

신기한 게 박근혜랍니다. 통상 오년 임기 중 첫 일년 안에 이런 전임에 대한 거부 또는 부정의 정책들이 쏟아지는 게 정상인데, 제가 보기에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권 변화사의 새로운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그녀의 인물 됨됨이가 아주 크거나 아니면 이제껏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민족들이 보아 온 정권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는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을 이해 못하는…그게 되어야 민주주의인데…)

다만 제 생각을 덧붙인다면 지금 권력의 중추인 김기춘이라는 이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을 때 한 말이었다지요. “그럼 우리는?” – 이 질문을 던진 이가 권력에 중추에 있다는 말은 자기 식으로 정리해 보겠다는 뜻? 그 정도는 읽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북의 장성택과 김정은 뉴스는 이번 주 미국 뉴스 가운데도 손꼽히는 메뉴 가운데 하나였지요. 마치 미개 문명 세상 소식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남이나 북이나 아직 멀었지만, 긴 역사의 흐름으로 보자면 여기까지 온 것도 예사로운 일만은 아니랍니다.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하나님 나라를 한 곳에서 만남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나라를 먼저 찾아갈 일이기에 이만 접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200여년 전 팔레스타인 유다 땅의 모습도 똑 같았답니다.  Anything But Ptolemaios 였답니다. 왕조가 바꾸자 전임 왕조의 반대로만 하면 다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던 것입니다. 

새롭게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시아 일대의 권력을 장악한 시리아계 헬레니즘 왕국인 세류커스왕조는 전임 권력이었던 이집트계 헬레니즘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왕조를 부정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우선 당근을 던집니다. 전임 왕조는 세금을 많이 매겼지만 우리는 아니다라는 정책을 폅니다. 셀류커스 왕조의 주인인 안티쿠오스 3세는 예루살렘의 전 주민의 세금을 3년간 면제하고 성전과 성전관리를 하는 사제들의 세금은 영구 면제한다는 칙령을 발표한답니다. 

유다 및 예루살렘이 쌍수를 들어 새로운 식민 지배자인 안티오쿠스 3세의 셀리큐스왕조를 반겼답니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내 돈 더 안내도 된다는데 말입니다. 

이게 사단의 빌미가 된답니다. 당연히 얻게 되리라는 당근 대신 채찍을 유대인들이 맞게 되는 것이지요. 

뭐 그 때나 지금이나…. 

또 쌓인 눈을 치우고나니… 내일 잇지요.

만남 – 중간사 2

(당신의 천국  -예순 일곱번 째 이야기)

성서의 외경 또는 제2경전으로 부르는 책들을 빼놓고, 현재 대부분의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받아 드리고 있는 구약의 마지막책 말라기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시대까지를 일컬어 신구약 중간시대라는 말을 합니다. 연대로 따져보면 대략 기원전 430년경부터 예수 탄생시기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시대의 변화를 바로 보려면 바벨론 포로 귀환기(기원전 538년)부터 예수 탄생까지의 시기를 보아야합니다. 

유다의 역사로 보자면 이 시기를 크게 세 시대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식민지시대(페르시아, 그리스)와 유다왕국시대, 그리고 로마의 식민지 시대로 말입니다. 

인류사 또는 세계사로 본다면 이 시기 곧 기원전 2,500년에서 예수 탄생 시기 까지 약 오백년은 그 이후로 부터 오늘날까지 약 이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을 지배해 온 큰 생각들 곧 사상과 종교가 탄생한 시기입니다. 

유대교가 오늘날의 유대교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 이 때부터이고,  싯다르타 고타마 또는 고타마 붓다라고  불리우던 석가모니(釋迦牟尼)가 불교를 탄생시킨 것도 이 무렵(기원전 500년- 600년 경)이거니와 유교의 시조(始祖)인 공자(孔子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가 살았던 때도 바로 이무렵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찾아가는 하나님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헬레니즘의 대명사이기도 한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 경 – 기원전 399년)가 놀던 때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먼저 용어 설명을 드립니다. 희랍, 헬라 , 그리스는 다 똑같은 이름입니다. 희랍(希臘)은 중국인들이 그리스의 발음을 제 나라식으로 적은 것이고요.  영어권에서 South Korea로 부르는 나라 대한민국의 정식 명칭은 Republic of Korea이고, North Korea로 부르는 나라의 정식 명칭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듯이 그리스(Greece)라고 불리우는 나라의 정식 명칭은Hellenic Republic이랍니다. 그리스어인Hellas라는 말은 반도라는 뜻이랍니다. 한반도처럼 반도(半島)라는 말입니다. 한자어’희랍(希臘)’은 바로 Hellas를 중국어로 발음한 것이랍니다. 

헬라, 희랍, 그리스 다 똑같은 말이라는 것이고요. 그리스 정신과 문화를 일컬어 헬레니즘Hellenism이라고 하고요,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다인들의 정신과 문화를 히브리즘 또는 헤브라이즘 hebraism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서양의 생각과 사상, 철학, 종교를 따져보면 이 두가지 기둥이 서로 엉기거나 분리되어 이루어진 것이라고들 하지요. 

그 두 개의 정신이 만나는 때가 바로 이 신구약 중간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변화와 성문서(시편, 잠언 등)들이 이루어진 배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의 시대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아주 간략한 당시의 유다역사를 정리하고 넘어가야만 하겠습니다. 

페르시아시대의 유다는 페르시아가 내세운 유다인 총독이 정치, 군사적 권력을 관할하고, 유다인 대제사장 및 제사장 그리고 레위 그룹들이 제사 권한 곧 종교적 권력을 쥔 체제를 유지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체제가 왕정시대(다윗, 솔로몬과 남왕국 유다시대)를 이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체제에서 그랬다는 말입니다.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전체제 관리자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 군사적 체제에 순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터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이미 유다인 디아스포라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디아스포라란 민들레 씨앗처럼 마구 퍼트려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요. 자의든 타의든 자기가 살던 고향땅을 떠나 살게 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집트를 비롯한 이웃 외국 땅으로 떠나가서 정착한 유다인촌들이 생겨난 시대라는 것입니다. 

유다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뭉친 유다인들과 디아스포라가 되어 외국에서 정착촌을 이룬 유다인들 사이에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이 만들어진 시대입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 야훼 하나님 신앙으로 뭉친 예루살렘 중심 정신과 “그 날이 오면”이라는 종말론적 정신입니다. 

이런 유다 정신 곧 헤브라이즘 또는 히브리즘을 상승시키면서 대립하는 헬레니즘이 서로 만나게 된답니다. 

기원전 333년에 시리아 북쪽에 위치한 잇소스라는 곳에서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오 3세와 그리스의 떠오른 별 알렉산더가 제국의 패권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렸습니다. 알렉산더의 완승으로 끝난 이 싸움으로 이른바 헬레니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히, 정말 간단히 먼저 히브리즘과 헬레니즘의 차이를 말씀드리면 히브리즘은 이제껏 우리들이 유다인들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확인한  “오직 하나님만(Mono-Yahwism)”이라는 정신과 신앙아래 생긴 것이랍니다. 신은 오직 하나이고, 신이 선택한 민족도 하나이고, 세계의 중심은 바로 그 신에게 있고하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헬레니즘은 세계의 모든 것은 다 품는다는 정신이 우선한 것이지요. 더 쉽게 말씀드리면 좋은 게 다 좋은 것이랍니다. 제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말이지요. 

또한 히브리즘은 신 중심 그것도 오직 하나 뿐인 신 중심적인 세상과 감성과 영적인 세상을 이야기하지만 헬레니즘은 인간중심, 사람중심, 이성과 지성 중심의 세상을 말하고 있답니다. 

이 두 개의 큰 생각이 만나게 되는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는 한국말을 하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생각을 선과 악으로 판단하고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하고들 있거니와 그렇게 가르치는 교계 지도자들이나 목사 또는 지도층 평신도들이 있답니다. 이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거니와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에 훼방을 놓는 일이랍니다. 

신구약 중간시대에 서로 만나는 히브리즘과 헬레니즘의 만남은 야훼 하나님의 일터를 보다 넓게 바라보는 지혜를 얻는 계기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세상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이 시대 빠른 역사 이야기 한번 더 해야 마쳐질 것 같고요. 

이쯤 한번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답니다. “예수, 예수”하는 사람들, “교회, 교회”하는 사람들 정말 많지요. 

크게 무리를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지금 지구 어느 땅에 살더라도 나이에 상관없이 한국말을 제일 언어로 사용하면서 한국말로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드러내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예수를 믿는다거나, 교회를 다니는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답니다. 바로 크게 한무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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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엄청나게 다른 것 같을 때가 있답니다. 개신교, 카톨릭에서 부터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등에서 또 그 안에서의 계파로 나뉘이고, 나아가 보수니 진보니, 자유주의니 다원주의니 정통이니 운운들 하지만 크게보면 다 똑같은 한 무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히브리즘, 헬레니즘, 불교, 유교, 선교 등 오늘 우리들이 선택한 믿음과 조상대대로 이어 온 알 수없는 종교적 인자들이 하나가 된 똑 같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믿습니다”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가 오늘의 나에게 참된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 골 아프지만 역사 이야기를 짚고 넘어 가야한다는 말씀이랍니다.

 

내일 잇겠습니다.

경전 – 중간사 1

(당신의 천국 – 예순 여섯 번 째 이야기) 

경전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그 자체상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해도, 경전을 경전으로 확정하고 경전을 그렇게 표시하며 제한하는 일은 교회의 행위요, 교회신앙의 행위이며, 교회적 인식과 교회적 고백의 행위이다. – 칼 바르트(Karl Barth)의 ‘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s)’에서 

유대인들은 나면서부터 이 책들을 신성한 교리들이 담긴 책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항상 거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이 책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바칠 자세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 요세푸스의 ‘아피온 반박문’ 제1권 8장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인 1954년 6월 1일Wall Street Journal에 이런 광고가 하나 실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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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사본 두루마리 4개 : 기원전 200여년 경의 성서 필사본 팝니다.  (The Four Dead Sea Scrolls: Biblical manuscripts dating back to at least 200 BC are for sale. ) 

1947년 팔레스타인 사해 서쪽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 또는 쿰란문서라고 불리우는 두루마리 성서 사본이 어찌어찌 돌고 돌아 미국 신문에 판매 광고로 등장한 것입니다. 자그마치 이천년이 넘는 고고학적 자료이자, 성서에 대한 수많은 궁금증을 풀어주게되는 이 사본들은 당시 미화 25만 불에 팔립니다. 

실제 구매자는 이스라엘 정부였고, 판매액의 대부분은 미국정부에 귀속되었습니다. 광고를 냈던 사무엘이라는 시리아 정교회 소속 감독은 손에 쥔게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200년 경과 그 이후 약 300년 사이에 쓰여진 히브리 성서 필사본과 그리스어 필사본들이 서기 1947년에 발견된 일은 성서 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읽고 보고 있는 성서의 원본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원 전 200여년 즈음에  헬라(그리스어)어로 번역된 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된 성서의 원본은 없다는 것입니다. 쿰란문서가 발견되기 전에는 히브리로 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기원후 약 700년 경에 펴낸 마소라 사본이라는 책이 있답니다.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  히브리어 성서의 원본에 가까운 시대를 약 900년 앞으로 당겨 놓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제 알아보려는 시대는 바로 이렇게 중요한 시기입니다. 바로 기원전 450여년 무렵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 등이 활동하던 구약성서의 마지막 기록 시대)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까지입니다. 

특히 말라기 이후부터 유대왕국인 하스몬왕조가 들어서기까지 약 300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성서의 틀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서가 형성되고 헬라어 성서 번역이 이루어진 시기입니다. 

또한 인류 역사에 있어 신기원을 형성하는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이 만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나누어지는 토대가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에수 그리스도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시기의 변화와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예습은 필수적인 전제입니다. 

이 시대는 성서의 완성시기이기도 하거니와  성서(구약)를 읽는 시각의 차이로 인해 그리스도교 곧 기독교가 탄생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례요한과 예수와 바울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답니다. 

제2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되었지만 그곳은 여전히 식민지였습니다.  왕이 없는 식민지에서 사는 유대인들과 인근 각지로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절실하게 찾아 헤매던 자기 정체성을 묻는  물음에 대한  결실이 바로 구약성서입니다. 

그리고 그  성서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유대교와 기독교로 나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롤과 동방박사와 헤롯왕과 빌라도총독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세리와 열혈당원과 십자가 그리고 바울을 준비하는 시대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이제 그 시대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성문서들이 완성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 제 아버님께서 작은 책을 하나 엮어 내시는데,  오늘 최종 인쇄 승인을 해서 보내는 날입니다. 그거 좀 꼼꼼히 들여다 보느랴 시간을 내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그저 신구약 중간사로 들어가는 글로 오늘의 글을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