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들 – 6

<양키들아! 당신들은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큐바와 같은 혁명국가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는지 도대체 알지를 못한다.

당신들은 그러한 사태에 대해서 그러한 미치광이같은 공갈 협박 수단 이외에는 손을 쓸 줄 모른다. 당신네 정부 태도는 사실상 미치광이로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이제는 당신들도 알겠지만 그 따위 방법을 가지고서는 아무 일도 성취하지 못하는 법이다.>

yankee2미국 사회학자 Charles Wright Mills가 큐바의 공산혁명 후에 큐바를 방문하여 카스트로를 비롯한 혁명 주체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발표했던 그의 책 “들어라, 양키들아(LISTEN, YANKEE)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이 책이 발표된 것이 1960년도이니 55년 전의 일입니다. 1959년 공산혁명 이후 미국에 밉보였던 큐바가 소련에 손을 내밀고, 이어져 1962년에 핵미사일 기지 건설로 제3차대전 직전으로까지 나아가기 전에 발표된 책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1962년 3월, 이런 미소간의 줄다리기와 큐바에 대한 미국의 본격적인 봉쇄를 보지 못하고 Charles Wright Mills는 48살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뜹니다.

그리고 어제 2014년 12월 17일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특별성명을 발표합니다.

“미국은 대(對) 쿠바 관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며 “수십 년간 미국의 국익을 증진해나가는 데 실패해온 낡은 접근방식을 끝내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해나갈 것”이라는 53년간 적대관계에 있던 큐바와의 국교정상화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큐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역시 특별 성명을 내놓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다”며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체제의 자주성과 국가 주권에 대한 편견이 없는 기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미국 의회의 다수당인 공화당이 대뜸  “잔인한 독재자에게 어리석은 양보를 해 준 또 하나의 사례”라며 반발을 하고 나서고 있어 양국간의 관계개선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터진 물꼬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뉴스를 해석하는 시각들이란 늘 그렇듯 매우 다양하지만 중남미와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 눈에 뜨인답니다.

이쯤 한반도의 북쪽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남쪽 “남한, 대한민국”과 해외동포들 사이에 있다고 이야기들 하는 이른바 “북을 그리워 쫓아가지 못해 안달하는” 이른바 종북세력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하는 이야기로 넘어가야겠습니다.

큐바와 북한(조선)은 역사적으로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찍히고, 도와주기로 한 소련이 맥없이 주저앉는 모습(1962년 큐바 핵미사일 기지 건설이 미국 케네디의 강공전략에 수포로 돌아간 일)의 큐바를 보면서 한반도 북쪽의 김일성은 소련바라기를 거두게 됩니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까지 북의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를 적당히 왔다갔다 하면서 실익을 챙기면서 당시 유엔의 동일한 한표 행사의 권리를 만끽하던 이른바 제3세계의 모델이 됩니다. 실제 북의 김일성(이게 3대까지 내려올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남한에 2대째 박씨 역시 그 때는 꿈에라도 누구의 머리 속에 있지 않았겠지만)이 본격적으로 신격화 되기 이전인 1974년을 깃점으로 하여 그 이전 몇해동안 북한(조선)의 인민들은 정말 “지상낙원”에 가까워 온 줄로 착각하고 살만큼 좋은 시절을 누렸던 듯 합니다.

사족 – “지상낙원같은 좋은 시절”이라는 말을 착각하지 마시길. 평등 또는 공평이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며 삶의 질(質)이라는 평가는 제외한 것임.

바로 그 무렵부터 북은 쪽박을 차는 길로 들어섭니다. 훗날 소련 붕괴를 시작으로 한때 제2세계로 군림하던 공산국가들의 몰락이라는 외부적인 요인과 인간들이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자연재해 등의 요인 보다 먼저 스스로 국가적 몰락과 고난의 길을 자초한 까닭이 있답니다.

바로 주체사상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에는 늘 역설이라는 썰이 그럴듯하게 통합니다. 바로 북이 쪽박 수순으로 들어가면서 남쪽에서는 그것에 환장하는 이들이 나타난답니다. 이렇게 등장하는 “그 분들”은  오늘도 “그 놈들”이 아무 눈치 볼 일도 없이 종북장사로 배불리는 호객행위에 밑밥이 된답니다.

아무튼 2014년 큐바나 북한(조선)이나 사는 형편으로 보자면 밑에서 세어야 빠른 편에 속하거니와 공산주의와는 먼 나라들이 되었지요.

중국은 이미 공산주의가 아닌 공산당 일당 독재 자본주의 국가로 변했고, 베트남이나 라오스도 마찬가지고…

지구상에 공산주의 국가는 없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럼 빨갱이란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아, 물론 미국에도 있고, 일본에서는 며칠 전 선거에서 공산당 의원이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당선되기도 했고요. 유럽이야 정당들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고요. 그러나 맑스 레닌이 이야기하고 꿈꾸웠던 그런 공산당은 지구상에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는 말일겝니다.

아무튼 55년 전에 “들어라, 양키들아”하고 소리쳤던 Charles Wright Mills처럼 미국을 향해 제 목소리를 내는 소리들이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에서 들리던 때가 있었답니다.

바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그 놈들 2

no 2오늘(2014년 12월 4일)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날이라는 기사가 경제 전문 온라인 신문인 MarketWatch에 실렸습니다.

이제 미국은 공식적으로 세계 제 1위의 자리를 오늘로 중국에게 넘겨준 날이라는 기사입니다. 2000년도에 중국의 3배 규모였던 미국경제 규모가 2014년 12월 4일자로 중국보다 적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세계경제 지표를 발표하는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상품과 서비스 생산규모에 있어 올해 17.6조 달러를 기록한 중국이 17.4조 달러를 기록한 미국을 앞섰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 경제 점유율로 따지면 중국이 16.5%로 16.3%인 미국을 앞선 결과라고 합니다.

세월앞에 장사없다는 말이 딱히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제대로 적응못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 기사였답니다.

그리고 어제 한국의 ‘일등 인터넷 뉴스’라고 자처하는 조선닷컴에 한때 탑뉴스로 떠있던 기사의 제목입니다. <탈북여성 5人 “신은미·황선 끝장토론하자”> 그리고 그 아래 붙어있던 소제목들입니다. “재미 교포 관광객 오면 한달간 수업 중단하고 연습”, “’평양 원정 출산’ 황선씨는 최상류층 이용 평양산원… 난 보일러실서 몸 풀었다”

기사의 내용인즉은 최근 남한에서 통일토크 콘서트를 하는 연사들인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 황선씨는 탈북여성 5인의 시각으로 보니 영락없는 종북주의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북에서 살다가 남으로 온 자신들(탈북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겨우 북한에 여행이나 다녀온 주제에 북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우습다는 것이고, 그들(신은미, 황선)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 탈북여성 다섯 명은 2002~2007년 사이에 탈북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황선씨는 2005 10월 북한에 방문했고 당시 평양에서 출산을 해 화제가 됐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은미씨는  2011년 10월 첫 방문을 시작으로 2013년 9월까지 여섯번 북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그런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라본 북한에 대한 느낌을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콘서트를 진행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들이 영락없이 종북주의자로 낙인이 찍힌 듯 합니다. 아무렴 그들이 틀림없이 종북주의자들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이미 꽤나 많을 것입니다. 일등 신문인 조선일보가 발벗고 나섰는데 그 정도야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이런 상황을 맞게 된 당사자인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기자회견 현장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있었던 신은미씨가 말한 한 대목입니다.

“종편에서 저를 난도질하고, 이렇게 빨갱이, 종북이 곧 빨갱이더라고요. 빨갱이로 몰아부쳐서 친정, 시댁, 친구, 친지 다 관계가 단절됐습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 민족을 위해서 노력하는 언론이십니까… 이렇게 (제가) 그대로 가면 ‘(종편 등 보수언론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간다’고 박수하겠죠.”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이 일상적인 관계에서 단절당한 왕따가 되어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가 보도하고 있는 각기 다른 두개의 뉴스야말로 “종북주의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나 한인 동포 사회나 일단 “종북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왕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어떤 사람이 종북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 종북적 사고를 지니고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단지 “종북주의자”라는 낙인은 어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왕따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누군가 또는 특정한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를 종북주의자 또는 종북단체로 만들기는 아주 쉽습니다. 왕따를 시켜버리면 그만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가 내세운 다섯명의 탈북여성처럼 일단 왕따로 찍힌 사람이나 단체에게 화살을 날려줄 전위대들은 차고 넘칩니다. 일부 탈북자들을 위시해 어버이연합 등 실체가 빤한 실로 딱한 이들로 부터, 김영환, 하태경, 김지하류의 자기상실 환자들, 국회의원 김진태 부류의 완장들은 차고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완장들을 부리는 그 놈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오늘자 MarketWatch 보도에 따르면 당장 내일, 내년 또는 수년래에 큰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난 200년 동안 지구상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옛날 영화를 누렸던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덧붙입니다.

중국보다 세 배나 앞서있던 미국이 중국에게 추월을 허용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4년입니다.

남한보다 세 배나 앞서 달리던 북한이 남한에 비해 40분의 1 수준으로 몰락하는데 걸린 시간은 50년입니다.

도대체 있지도 않는 종북주의자들을 양산해 내어 왕따군(群)들을 키우는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겝니다.,

“오늘 왕따로 사는 사람들은 복이 있을진저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므로”라는 믿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 놈들 – 1

비록 라디오가 뒷전으로 물러앉은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FM방송이나 최근 유행하는 팟캐스트같은 신종 라디오의 위세는 여전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제 어린 시절의 진공관 라디오가 누렸던 위세에 비하면 많이 퇴락한 셈입니다.

김일, 장영철 등이 나오는 프로레슬링을 보노라고 동네 유일하게 흑백 텔레비가 있었던 쌍둥이네 집으로 몰려갔던 제 또래 아이들과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서울 신촌이었답니다.

진공관 라디오그 무렵 대세는 라디오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알지도 못하고 들었던 라디오 연속극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주인공 아로운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있답니다. 한명숙, 현미, 이금희, 위키리, 최희준에 이어 배호까지 다 이 라디오를 통해 섭렵하였습니다. 장소팔, 고춘자에 이어 구봉서, 곽규석,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떳어도…’의 서영춘 까지도 아무렴 라디오였답니다. 아직 트랜지스터가 나오기 전, 진공관 라디오였답니다.

그 무렵부터 제가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갔다오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까지 라디오를 지킨 프로그램이 하나 있답니다.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5분 드라마랍니다.

제 또래치고 이 라디오 프로그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듯합니다. 제 머리가 굵어지고 트랜지스터 라디오 시대가 된 이후로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지만, 1960년대만 하여도 ‘두만강 푸른 물에…’에 함께 아주 귀에 익은 방송이었답니다.

내용은 거의 엇비슷해서 지옥같은 북한 인민들의 삶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리면서 천리마운동이라는 노동에 혹사 당하고 공산당 압제에 신음하는 북의 인민들의 모습을 김삿갓이라는 인물이 고발하고 풍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마도 제 또래나 이즈음 한국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어버이연합에 속한 분들과 같은 세대 사람의 기억속에는 이 방송이 심어준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깊이 남아 있을겝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서서 그 때를 돌아봅니다. 1960년대 일인당 GNP가 북한은 325달러, 남한은 94달러였답니다. 거의 3.5배가 차이가 났답니다. 바로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드라마가 시작하던 무렵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무렵만해도 북은 지금과 달리 어느 정도 분배에 있어서 평등이 이루어졌던 시절이었고, 남한은 부(富)의 쏠림 현상이 오늘과 못지 않았으므로 보통의 북의 인민과 남의 국민을 대비해 본다면 당시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방송내용은 명백한 허위였습니다.

거짓이거나 말거나 남에서 살았던 저와 같은 사람들은 북은 사람살 곳이 못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답니다.

제가 “때려잡자 김일성”을 외치며 군생활을 할 때인 1970년대 중반까지도 북이 남쪽보다 경제력에서 앞서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 무렵 전방부대 중대장이나 대대장의 월북소식이 쉬쉬하며 장병들 사이에 떠돌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남북의 경제적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 입니다.

그리고 2014년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남한은 1인당 소득 28,739달러, 경제 규모는 1조 4,400억 달러인 반면에 북한은 1인당 소득 506달러, 경제 규모는 2012년 기준 123억 달러랍니다. 도저히 서로를 비교할 수 없는 차이의 수치입니다.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2011년 한 해 북한 전체 예산은 2020억원이었는데, 2014년 남한의 종로구 한해 예산은 2980억원이었답니다. 정말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랍니다.

진공관 라디오 시대였던 1960년대에 3.5배 앞서있던 북한이 2014년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남한의 1/40의 수준이 된 것입니다.

지나간 50년의 과정이 이랬니? 저랬니?하며 따져 볼 이유도 없이 2014년 오늘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남에 사는 국민들 가운데 북의 인민을 부러워 하거나 북의 지배체제를 받들거나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그건 정말 정신나간 사람들이 아닐까요?

일테면 나보다 3.5배나 잘 살던 사람이었는데 50년이 흐른 후 보니 내가 그 사람보다 40배나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 사람의 지금의 삶을 부러워한다? 도대체 말이 됩니까?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아무리 상식을 뛰어넘어 생각을 해보아도 남한 국민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종북(從北)주의자’들은 차고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남한에서도, 이곳 이민자들의 동포사회에서도 말입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뿌리내리고자 이민 온 미국 동포 중에 신은미라는 분도 종북주의자라고 하는 뉴스를 보았답니다. 그 이가 북을 다녀온 모양이고, 거기에서 사람사는 모습들을 ‘오마이 뉴스’라는 남한 정부가 허락한 매체에 기고를 했고, 그 글을 즐겨 읽은 이들이 제법되었고, 그래 책도 내고  토크 컨서트라는 행사도 한 모양입니다.

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그이의 글을 읽어보니 2014년을 스마트폰 전성시대로 사는 그이는 당연히 스마트폰으로 찍은 북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들었다고 생각한 남한의 정부 당국과 1960대로 살아가려는 일부 세력들은 신은미씨가 진공관 라디오시대의 <김삿갓 북한 방랑기>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종북주의자라고 한답니다.

2014년 이 문명의 시대, 선진조국 대한민국에서 진공관 라디오 시대로 살고자 하는 놈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