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는 까닭

일주일에 한번씩 온라인 화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앓고 있는 아픔이 이어지는 한, 우리라도 그들을 잊지말고 그 아픔의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으면 나누어 보자고 만나는 친구들입니다.

모일 때마다 작은 주제를 정해놓고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곤 합니다. 지난 주에는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왜 이민와 살면서 떠나온 모국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이도 다르고 미국에 온 햇수도 다르고 이제껏 살아온 경험들도 서로 다르거니와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도 있고,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가정주부로 자녀교육에 열심인 친구도 있으니 저마다 다른 생각들이 있었답니다.

그날 모임은 일테면 그렇게 서로 다른 우리들이 왜 모여 함께 이야기하고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전파할 수 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늘 그렇듯 모임이 끝나면 저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새롭게 눈뜨는 것들로해서 이 나이에 과한 즐거움을 얻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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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주말과 주초에 제가 경험한 일 때문에 이 글을 써보는 것입니다.

이른바 SNS라는 신종 대화 도구들이 있습니다.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카톡, 텔레그램 등등이 그것들이지요. 저는 제 또래 남못지않게  이런 신종 도구들을 먼저 사용해보는 왈 얼리어답터에 속하는 편입니다. 모든지 처음 나왔다하면 찝적거려보기는 하는 편이랍니다. 그런데 즐기는 쪽으로 접어들면 완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쪽이랍니다.

일테면 저는 제 소유의 셀폰(핸드폰, 스마트폰 무어라고 부르던간에)이 없습니다. 그저 PC와tablet을 가지고 놀 뿐입니다. 전혀 불편함을 모르고 삽니다. 폰을 손이나 핸드백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사는 아내를 보면 이따금  “왜 저럴까?”하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저더러 “촌스럼의 극치로 산다”고 말한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랍니다. 트위터에서 누군가를 팔로잉한다든가 페북에서 친구맺기를 신청한다든가, 댓글을 단다든가 하는 일에는 거의 쑥맥에 가까운 촌스러움이 있답니다. 그저 수줍게 제 이야기를 올리고 그것으로 족한 편이지요. 당연히 팔로윙이니 팔로워니, 친구숫자니 하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는 편이랍니다.

그러니 말이 사회관계망서비스 이용을 할 뿐이지 골방에서 제 이야기를 혼자 떠드는 수준에 불과한 진짜 촌스러움의 극치랍니다.

그런 제게 지난 주말과 주초에 댓글로 충고들을 남긴 이들이 있답니다. 한 친구는 지금이라도 만나면 “야~ 쨔샤!”하며 반길 중고등학교 동창이고, 또 다른 이는 전혀 모르는 어찌 하다보니 페북에서 만난 분입니다.

제 어릴 적 친구는 현재 한국에 살고, 페북에서 만난 분은 미국에 사시는 이입니다.

먼저 헤어져 만나지 거의 40년이 넘는 제 어릴적 친구의 충고는 “떠났으면 지금 사는 곳의 삶에 충실하길 바란다. 여긴 사는 우리들이 꾸려나갈 것이므로…”하는 것이였는데, 그 충고를 남긴 시간과 그 친구가 누리고 있었던 형편으로 미루어 오랜 옛 벗인 저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와 그리 멀리 않은 곳에서 사는 페북에서 알게된 이의 충고는 “차라리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게 좋겠다”는 것이었는데 사뭇 성난 투의 말이었답니다.

두 사람 다 제가 페북에 올린 한국관련 이야기들에 대한 반응들이었지요.

그래 저를 다시 돌아보는 것이랍니다.

먼저 최근에 제가 받은 이메일 몇 개를 소개해 드리는 것으로 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You’re welcome.  I’m glad you are here, and doing what you do, too. Very interesting article — research which reinforced my observations / perceptions in a few of the listed occupations. >

<Mr. Kim,

Thanks for your note. It reminded me of the African-American slaves, when the children and spouses were sold and they knew, chances were, they would not see each other again.  My Dad told me of stories where slaves who were able to escape to the north, who spent the rest of their days trying to find out where their kin lived and to reconnect.  Some stories ended right and others ended very sad.  To this day I cannot trace my family back to the slavery days.  However, my wife Mae can trace her descendants back to Nova Scotia, Canada and the slave ship that brought the family to Halifax from Jamestown, VA.

I always enjoy your notes: they make us think!>

<Mr. Kim,

I really like your note. I hope you are right about the move to the “HANGRY” Generation .  I see the “me first” in our national politics. Maybe that will change as the younger generation influences.>

<Dear Young Kim,

Thank you for another delightful letter from My Cleaners.  I agree the world is full of very diverse people with lots of differing attitudes and beliefs.  Your reminder to be open to others comes at a perfect time.  Well, any day would be the perfect time, wouldn’t it?

What transpires at your counter, everyday, is a wonderful example of openness and willingness to come into relationship.  One of my teachers would say that we move through a progression in knowing people.  We start as Strangers, move to Acquaintances, then to Rapport and finally into Relationship.

Strangers — we know nothing about each other

Acquaintances — we know some facts (name, address, phone number) about each other.

Rapport — we share similar feelings, are harmonious, we can get along

Relationship — we share and understand what to expect from each other, we share mutual expectations.

In my business (dental practice) we used to say, “Never treat a stranger.”

Of course, always started out as Strangers.  We easily became Acquaintances with a written intake form which shared the needed data.

Coming into Rapport was more time consuming, requiring some questions and answers, sharing of information, thoughts, feelings, opinions, experiences.

Relationship required a more complete discussion of what we each expected from each other.

Although not everyone wants to be in Relationship with every other person, or even with their healthcare providers, (or cleaners).  We all can easily move toward Rapport, starting with just a SMILE.  A welcoming, open attitude begins there and moves ahead with words and gestures.

Your “Letter From Your Cleaner” constantly reminds us what we can expect from you.  This is an open door for relationship building.  What you can expect from me, is to be paid for your service.  I also may provide a pleasant attitude, timely retrieval of my clothes, a sincere referral of a friend to your business.  Thus, we move into Relationship as we each fulfill our mutual expectations.  This is the basis of a trusting, respectful Relationship.

My wardrobe is improved by your cleaning service, and my life is improved by your letter and my spirit is lifted by our relationship.

Yours for a better world,>

제가 이 이민의 땅에서 이곳 사람들에게 받은 이런 종류의 메일은 책으로 엮는다면 족히 몇권 분량은 된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제가 이 미국에서 이민자로 사는 삶의 모습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비춰진 일면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저는 “괜찮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알려지고 싶은 욕망도 있거니와 저로 인해 한국과 한국인들의 좋은 점들이 드러나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민의 삶을 이제껏 가꾸어 나왔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런데 제게 늘 자랑스러워야 할  대한민국이 손가락질 받고 우스개 노릇으로 전락하는 모습은 정말 아니랍니다. 그래 한국과 한반도에 대해 제가 관심을 끊지 못하거니와 적극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런 제가 종북이니 반국가적(반정부라는  말은 그래도 들을만 하답니다.)이니 하는 말을 듣게되면 솔직히 분노가 치민답니다.

사르트르는 <유대인>이라는 책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반유대주의란 유대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유대인”을 “혐오집단”으로 지목해 그들에 대한 증오없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반유대주의자들의 문제>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이어갑니다 <만약 유럽의 부르조아들은 그런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대인이라는 민족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사르트르가 이런 말을 남겼던 때로부터 70년이 흘렀습니다.

중동에서는 유대인들이 옛날 유럽인 행세를 하고 있듯이, 같은 한인들끼리 한반도 안에서 그리고 이곳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혐오집단”과 “증오의 대상”을 찾는 못된 관습은 사라져야 마땅한 일입니다.

제가 이 땅에서 더욱더 미국인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한반도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를 끊을 수 없는 까닭이랍니다.

뜬구름 – 그 놈들 8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난 이튿날인 지난 20일 청와대 홍보수석 윤두현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는 말입니다.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낸 일대 사건이라는 게 그녀의 평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선고문 가운데 피청구인 곧 통합진보당의 목적을 적시하는 항목에서 이런 판단을 내립니다.

“(통합진보당의)주도세력은 우리 사회가 특권적 지배계급이 주권을 행사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는 인식 아래 대중투쟁이 전민항쟁으로 발전하고 저항권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무력행사 등 폭력을 행사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헌법제정에 의한 새로운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여 집권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입장은 이석기 등의 내란 관련 사건으로 현실로 확인되었다.”

이어서 헌재가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을 정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은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 대신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것을 판단해보니 결국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것입니다.

박근혜의 평과 헌재의 선고문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식 사회주의”가 서로 상충하는 적 개념인데 남쪽에 살면서 북이 추구하는 목적에 맞는 일들을 한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의 해산은 마땅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진보적 민주주의” 또는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과연 실재하느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장 총강 제 1조의 제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제 1장 제 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제 4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공히 정치체제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거니와 남쪽은 자유민주주의, 북쪽은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경제체제로는 남쪽은 자본주의를 북쪽은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 보면 적어도 2014년 현재 공산주의를 내세우는 공산주의자들은 한반도 안에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른바 빨갱이란 한반도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 과연 남쪽의 “자유민주주의” 북쪽의 “사회민주주의”란 실재하는 것이냐? 실재한다면 그게 어떤 모습이냐?하는 것을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2014년 한반도엔 “자유민주주의”도 “사회민주주의”도 실제하지 않는다는데에 있습니다.

남의 자유민주주의란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남쪽의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들(적어도 우리들이 민주정부라고 생각했던 몇 년 동안을 감안하더라도 줄기차게)이 그들의 이익과 권력을 이어가기 위한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북의 사회민주주의란 그들의 헌법에서 주장하듯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입니다. 말은 인민을 내세우고 있으되 그들이 말하는 주체의 정점에는 일인 숭배 나아가 집권자 세력들을 위한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이 공허한 까닭입니다.

“빨갱이”라는 말이 허구이듯이 “종북” 역시 뜬구름일 뿐입니다.

도대체 그 뜬구름은 누가 만든 것이고, 지금도 한반도와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에게 그 뜬구름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있는 것일까요?

“너 골로 갈래” – 그 놈들 7

보도연맹

박근혜정권이 들어선 이후 박근혜를 향해 날선 글들을 날리는 언론인들 가운데 한겨레 신문 곽병찬 대기자가 있습니다. 그는 22일자 신문에 실린 87번 째 날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제목을 “21세기판 보도연맹사건을 꿈꾸는가”라고 달았습니다.

“보도연맹사건”에 대해 위키백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도연맹 학살사건(保導聯盟虐殺事件)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 극우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과, 10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추정되는 대학살 사건이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에는 미군도 민간인 집단 학살 현장에 개입했다.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철저히 은폐했고 금기시해 보도연맹이라는 존재가 잊혀져 왔지만, 1990년대 말에 전국 각지에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시체가 발굴되면서 보도연맹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임이 확인됐다.

2009년 11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정부는 국가기관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에도 사건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보도연맹의 정식명칭은 “국민보호선도연맹”인데, 1945년 해방 후에 남한 내에 있었던 공산주의 세력 약화를 위해 그 이전에 좌익에 몸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정부가 개입되어 하는 일들이란 성과위주로 평가를 하기 마련이라는데에 있었습니다. 정부주도로 만든 “좌익에 몸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키려다 보니 그 수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고, 으쟁이 뜨쟁이에 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이 단체에 반강제적으로 마구 가입을 시켰답니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가입된 유명한 사람들로는 양주동, 황순원 ,정지용 등등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즈음 젊은 친구들이 이 이름들을 기억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러다 전쟁이 일어났답니다.

이즈음 일부 얼빠진 놈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해야한다는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일찌감치 부산으로 도망을 쳤는데요, 거기서 “보도연맹이라는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과거에 빨갱이(좌익)였기 때문에 다시 저 북쪽 놈들이 되기 십상입니다.”라는 보고를 받게 된답니다.

그래 “쓸어버려!”라는 명을 내린답니다. 물론 아직 북의 빨갱이들이 점령하지 않은 지역의 모든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 명령의 실행자는 일본 헌병 오장(伍長) 출신인 김창룡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의 빨갱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보도연맹”에 가입한 놈들이란 배신자들이었습니다. 전에는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좌익(빨갱이)이었다가 전향한 사람들이 시작한 단체였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이들은 죽을 목숨일 수 밖에 없었던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이 단체의 가입자들은 그 이전에 좌익(빨갱이)이였던 사람들 보다 반강제적 또는 눈앞에 보이는 쌀한줌을 얻으려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몰살시킨 사건이 바로 보도연맹사건이랍니다.

혹시 “너 그러다 골(谷)로 간다”라는 말을 쓰거나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바로 이 말이 생긴 유래라고도 합니다.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산골로 데려가 집단 학살을 했다는 것에서 연유되었다는 것입니다.

올 2014년에 이 보도연맹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한 사람은 이번 통진당 해산의 빌미를 제공한 이석기입니다. 그는 내란음모죄로 뉴스의 중심이 되었던 지난 8월 31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는 전쟁을 맞받아치자”고 했습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민족의 공멸을 맞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평화를 실현하자는 뜻입니다. 이 말이 과연 어느 한 편에 서서 전쟁을 함께 치르겠다는 말로 들리십니까.

강연에 모인 사람들은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진보당 열성 당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보도연맹 사건을 보십시오. 무려 20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의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입니다.”

바로 한반도 전쟁(Korean War) 때에 있었던 보도연맹 사건처럼 긴급재난이 일어났을 때 자신들이 살기 위한 정당방위로써의 행위를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직 대한민국 법정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판결은 다 그 놈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라고 치거나, 옳고 그르고를 논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까닭은 바로 곽병찬이라는 이까지 이런 글을 써 갈기는데 있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글입니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날, 어떤 이는 1972년 유신 전야, 어떤 이는 이승만 정권 하에서 조봉암 선생 사형과 진보당 말소 등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6.25 전쟁 초기 벌어진 ‘보도연맹사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처참했던 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말입니다.

물론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저지른 과오를 두둔하는 건 아닙니다.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보인 당 운영의 반민주성과 폭력성, 패권주의는 과거 독재 정권 담당자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이 친북 패권주의와 폭력성과 결별하지 못한 것도 이들에 대한 기대를 접게 했습니다. ‘당명’에 삽입한 ‘진보’란 말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은 결코 약자의 편도 아니었고, 정의롭지도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런 정당이라도 심판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는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헌재 결정은 우리 헌법이 지키려는 정치적 결사의 자유와 정당 정치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헌재에 정당 해산 여부를 심판하는 권능을 부여한 것은 행정권의 부당한 압력과 침해로부터 정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정당의 존립을 재단하라는 건 아니었습니다. 재판관들의 편견과 예단이 그대로 반영되고, 정권의 주문이 그대로 수용된 심판 과정은 민주 사회가 가장 경계하는 ‘인민 재판’의 본보기였습니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 전혀 쓸모없고 문제의 본질과는 상충되는 한 문단이 있답니다.

물론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저지른 과오를 두둔하는 건 아닙니다.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보인 당 운영의 반민주성과 폭력성, 패권주의는 과거 독재 정권 담당자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이 친북 패권주의와 폭력성과 결별하지 못한 것도 이들에 대한 기대를 접게 했습니다. ‘당명’에 삽입한 ‘진보’란 말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은 결코 약자의 편도 아니었고, 정의롭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물론 그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별개의 사안을 하나로 묶어 “나는 아닌데…”라는 빨뺌의 전제로 사용한다면 이른바 “종북문제”는 늘 그것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무기가 되리라는 점입니다.

왜냐고요?

그 놈들 – 번외

세상사 하루라도 깜작 놀랄만한 뉴스가 없는 날은 없지만,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깜작놀랄만한 뉴스들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상을 이어갑니다.

한국시간 어제 있었던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 해산 뉴스는 2014년 12월 19일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깜작 놀랄만한 뉴스이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만한 뉴스랍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뉴스와는 아무 관계없이 무덤덤한 일상을 이어 갈 것입니다. “그 놈들”은 이런 흐름을 다 예상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글 안 읽기로는 앞선 순위에 속하는 민족이지만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읽어보자는 뜻으로 어제 있었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선고문 전문(全文)을 이 곳에 올립니다.

저는 오늘 낮에 틈을 내어 이 결정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엊그제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좀 뜬금없는 기사가 탑에 올라와 있었답니다. 이슬람국가 IS에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capture-20141219-191453<미국 정책 연구 기관 브루킹스 연구소의 부속 기관인 브루킹스 도하 센터의 방문 연구원 찰스 리스터는 지난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아부 사이프(Abu Seif)’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국인(Korean) IS 전사”라는 제목과 함께 한 동양인 남성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 찍힌 인물은 20대로 보이며,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검은색 두건을 쓰고, AK-47 소총을 든 채 말에 올라탄 모습이다. 아랍어로 ‘아부’는 아버지, ‘사이프’는 칼이라는 뜻이다.> – 그 기사의 일부입니다.

Charles Lister가 이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것은 지난 13일이었고, 조선일보는 그로부터 5일 후에 온라인판 탑기사로 올렸다 내립니다.

잘 알다시피 IS는 국가를 참칭하고 있는 전세계의 적입니다. 거의 미치광이 신앙집단입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라고 특정 지울 수 없는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 집단의 이름으로 총을 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올 한해 일어나 오늘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기사를 올린 조선일보의 의도는 나중에 다시 따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선고문을 읽으면서 이 기사를 떠올렸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얼핏 지나친 비교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그리 과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일테면 이런 것입니다.

Charles Lister가 올린 사진 속의 젊은 친구가 한국인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추정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국제기구가 이런 판단을 내린 것과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과 무엇이 다를까하는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Charles Lister가 올린 사진 속의 젊은 친구는 한국인이다. IS는 반 인류적인 범죄 집단이다. 그 한국인을 보니 예전에 알카에다 헤즈볼라 등에도 속했던 인물인 것 같다. 그러므로 이 한국인은 반 인류적인 범죄자다. 문제는 이 범죄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속한 국가 한국은 반 인류적 범죄 집단일 수도 있다. 고로 한국이라는 국가는 해체되어야 한다.>

도대체 이런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를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놈들>이라는 연재 글로 이야기를 이어가겠지만 이젠 “더불어 함께 사랑하며 살자”라는 이야기만 해도 종북주의자가 되는 세상으로 접어 든 것 같습니다.

아무튼 헌법재판소의 선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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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선고문(全文)

선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재판관 8(인용) : 1(기각)의 의견으로,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그 소속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피청구인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고, 이러한 피청구인의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외에 다른 대안이 없으며,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은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고, 위헌정당의 해산을 명하는 비상상황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으므로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위헌정당해산 제도의 본질로부터 인정되는 기본적 효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정당해산의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하고 적용하여야 하는데, 피청구인에게 은폐된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가 없고, 피청구인의 강령 등에 나타난 진보적 민주주의 등 피청구인의 목적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으며, 경기도당 주최 행사에서 나타난 내란 관련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만 그 활동을 피청구인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고 그 밖의 피청구인의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재판관 김이수의 반대의견이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이 신청한 정당활동정지가처분신청은 기각하였다.

  1. 12. 19.

사건의 개요 및 심판의 대상

사건의 개요

– 청구인은 2013. 11. 5. 피청구인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서 피청구인의 해산 및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구하는 이 사건 심판을 청구하였다.

심판의 대상

– 피청구인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

–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을 선고할 것인지 여부와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선고할 것인지 여부

※ 피청구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의 목적과 활동은 피청구인의 목적이나 활동과의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판단의 자료로 삼을 수 있으나, 민주노동당의 목적이나 활동 자체가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정이유의 요지

청구의 적법성 – 적법

– 대통령이 직무상 해외 순방 중인 경우에는 국무총리가 그 직무를 대행할 수 있으므로,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 사건 정당해산심판 청구서 제출안이 의결되었다고 하여 그 의결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 국무회의에 제출되는 의안은 긴급한 의안이 아닌 한 차관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나, 의안의 긴급성에 관한 판단은 정부의 재량이므로,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 등이 관련된 내란 관련 사건이 발생한 상황에서 제출된 이 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에 대한 의안이 긴급한 의안에 해당한다고 본 정부의 판단에 재량의 일탈이나 남용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의의와 정당해산심판의 사유

○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의의

정당해산심판제도는 정당 존립의 특권 특히 정부의 비판자로서 야당의 존립과 활동을 특별히 보장하고자 하는 헌법제정자의 규범적 의지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제도로 인해서 정당 활동의 자유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한계 역시 설정되어 있다.

○ 정당해산심판의 사유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 중 어느 하나라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어야 한다.

헌법 제8조 제4항의 ‘민주적 기본질서’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모든 폭력적ㆍ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와 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를 말한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지 않는 한 정당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념적 지향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란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나 저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강제적 정당해산은 핵심적인 정치적 기본권인 정당 활동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 제한이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비례의 원칙을 준수해야만 한다.

피청구인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 – 위배

○ 피청구인의 목적

정당의 강령은 그 자체로 다의적이고 추상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피청구인이 지도적 이념으로 내세우는 진보적 민주주의 역시 그 자체로 특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른바 자주파에 의해 피청구인 강령에 도입되었다.

자주파는 이른바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 NL) 계열로 우리 사회를 미 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 반(半)봉건사회 또는 반(半)자본주의사회로 이해하고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로 파악하고 계급적 지배 체제의 극복을 중시했던 민중민주(People‘s Democracy, PD) 계열 또는 평등파와 구별된다.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을 추구하는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연합의 주요 구성원 및 이들과 이념적 지향점을 같이하는 당원 등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자주파에 속하고 그들의 방침대로 당직자 결정 등 주요 사안을 결정하며 당을 주도하여 왔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과거 민혁당 및 영남위원회, 실천연대, 일심회, 한청 등에서 자주ㆍ민주ㆍ통일 노선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과 연계되어 활동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였다. 이들은 북한 관련 문제에서는 맹목적으로 북한을 지지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무리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이석기가 주도한 내란 관련 사건에도 다수 참석하였고 이 사건 관련자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우리나라를 미국과 외세에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또는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로 인식하고 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본가 계급의 정권으로서 자본가 내지 특권적 지배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민중을 착취 수탈하고 민중의 주권을 실질적으로 강탈한 구조적 불평등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민중이 주권을 가지는 민중민주주의 사회로 전환하여야 하는데 민족해방문제가 선결과제이므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로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 정부로서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설정하였다. 한편,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데,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이후 추진할 통일국가의 모습은 과도기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거친 사회주의 체제이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우리 사회가 특권적 지배계급이 주권을 행사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는 인식 아래 대중투쟁이 전민항쟁으로 발전하고 저항권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무력행사 등 폭력을 행사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헌법제정에 의한 새로운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여 집권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입장은 이석기 등의 내란 관련 사건으로 현실로 확인되었다.

○ 피청구인의 활동

이석기를 비롯한 내란 관련 회합 참가자들은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당시 정세를 전쟁 국면으로 인식하고 이석기의 주도 아래 전쟁 발발 시 북한에 동조하여 대한민국 내 국가기간시설의 파괴, 무기 제조 및 탈취, 통신 교란 등 폭력 수단을 실행하고자 회합을 개최하였다.

내란 관련 회합의 개최 경위, 참석자들의 피청구인 당내 지위 및 역할, 이 회합이 피청구인의 핵심 주도세력에 의하여 개최된 점, 회합을 주도한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의 수장으로서의 지위 및 이 사건에 대한 피청구인의 전당적 옹호 및 비호 태도 등을 종합하면, 이 회합은 피청구인의 활동으로 귀속된다.

그 밖에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및 관악을 지역구 여론 조작 사건 등은 피청구인 당원들이 토론과 표결에 기반하지 않고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으로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관철시키려고 한 것으로서 선거제도를 형해화하여 민주주의 원리를 훼손하는 것이다.

○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기초로 통일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북한을 추종하고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거의 모든 점에서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민중민주주의 변혁론에 따라 혁명을 추구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애국가를 부정하거나 태극기도 게양하지 않는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석기 등 내란 관련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사정과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피청구인을 장악하고 있음에 비추어 그들의 목적과 활동은 피청구인의 목적과 활동으로 귀속되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은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 피청구인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는 조선노동당이 제시하는 정치 노선을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고 그 정당의 특정한 계급노선과 결부된 인민민주주의 독재방식과 수령론에 기초한 1인 독재를 통치의 본질로 추구하는 점에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피청구인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민항쟁이나 저항권 등 폭력을 행사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모든 폭력적ㆍ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저촉된다.

내란 관련 사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및 관악을 지역구 여론 조작 사건 등 피청구인의 활동들은 내용적 측면에서는 국가의 존립, 의회제도, 법치주의 및 선거제도 등을 부정하는 것이고, 수단이나 성격의 측면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폭력ㆍ위계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것이다.

피청구인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고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이나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등 활동을 하여 왔는데 이러한 활동은 유사상황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북한 추종성에 비추어 피청구인의 여러 활동들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란 관련 사건에서 피청구인 구성원들이 북한에 동조하여 대한민국의 존립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은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구체적 위험성을 배가한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의 위와 같은 진정한 목적이나 그에 기초한 활동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였다고 판단되므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

○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

피청구인은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여 그 근간을 훼손하고 이를 폐지하고자 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초래되는 위험성을 시급히 제거하기 위해 정당해산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와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하여야 한다.

위법행위가 확인된 개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정당 자체의 위헌성이 제거되지는 않으며,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언제든 그들의 위헌적 목적을 정당의 정책으로 내걸어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 따라서 합법정당을 가장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상당한 액수의 정당보조금을 받아 활동하면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피청구인의 고유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정당해산결정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법익은 정당해산결정으로 초래되는 피청구인의 정당활동 자유의 근본적 제약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일부 제한이라는 불이익에 비하여 월등히 크고 중요하다.

결국,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가해지는 위험성을 실효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부득이한 해법으로서 헌법 제8조 제4항에 따라 정당화되므로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 – 상실

○ 국회의원의 국민대표성과 정당 기속성

국회의원은 국민 전체의 대표자로서 활동하는 한편, 소속 정당의 이념을 대변하는 정당의 대표자로서도 활동한다.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하여 소속 정당의 해산 등 이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하는 경우 퇴직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의 의미는 정당이 자진 해산하는 경우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퇴직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국회의원의 국민대표성과 정당기속성 사이의 긴장관계를 적절히 조화시켜 규율하고 있다.

○ 정당해산심판제도의 본질적 효력과 의원직 상실 여부

엄격한 요건 아래 위헌정당으로 판단하여 정당 해산을 명하는 것은 헌법을 수호한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러한 비상상황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은 부득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해산되는 위헌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한다면 위헌적인 정치이념을 정치적 의사 형성과정에서 대변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활동을 허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그 정당이 계속 존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오므로, 해산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을 상실시키지 않는 것은 결국 정당해산제도가 가지는 헌법 수호 기능이나 방어적 민주주의 이념과 원리에 어긋나고 정당해산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헌법재판소의 해산결정으로 해산되는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위헌정당해산 제도의 본질로부터 인정되는 기본적 효력이다.

재판관 김이수의 반대의견의 요지

※ 이 사건 심판청구의 적법성, 그리고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의의와 정당해산심판의 사유에 대하여는 법정의견과 의견을 같이함.

○ 정당해산요건의 엄격한 해석, 적용의 요구

정당해산요건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그 문언적 의미를 제한적으로 이해하여야 하고,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의 내용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 내지 근거를 선별함에 있어서는 당해 정당과의 관련성을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의 판단자료는 대부분 표현행위이므로 그 의미는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해석 방법론에 의하여 확정되어야 한다. 또 정당해산의 요건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는 어떤 논리적 오류나 비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 피청구인에게 ‘은폐된 목적’이 있다는 점 자체가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청구인의 논증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피청구인은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 당원의 수만 3만 여명에 이르는 정당인데, 그 대다수 구성원의 정치적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 논증하는 과정에서 구성원 중 극히 일부의 지향을 피청구인 전체의 정견으로 간주하여서는 안 된다. 피청구인의 일부 구성원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머지 구성원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는 가정은 부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을 전체에 부당하게 적용하는 것으로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자주파가 주축이 된 피청구인의 목적이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는 법정의견의 판단이 정당해산심판 사유를 엄격하게 해석, 적용한 결과인지 의문이다.

○ 피청구인의 목적 –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음

피청구인의 강령이나 이를 구체화하는 문헌들을 종합해 볼 때,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중이 정치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피청구인의 선언은, 일하는 사람, 민중에 해당하는 계급과 계층의 이익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극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피청구인의 강령상 ‘진보적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른바 진보적 정치세력들에 의하여 수십 년에 걸쳐 주장되고 형성된 여러 논리들과 정책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조합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광의의 사회주의 이념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또 법정의견이 보는 것처럼 피청구인이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하였다고 볼 수 있는 증거도 없다.

한편 자주파의 대북정책이나 입장이 우리 사회의 다수 인식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고 자주파가 친북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자주파 전체가 북한을 무조건 추종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 민주노동당에서 피청구인에 이르는 분당과 창당 및 재분당 과정을 통하여 피청구인은 민주노동당보다 인적으로 축소된 상태이고 자주파나 이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비중이 커졌다고 볼 수 있으나, 민주노동당 구성원 가운데 종북 성향을 가진 사람만이 피청구인에 남았다고 볼 수도 없다.

청구인은 민혁당 잔존세력이 피청구인을 장악하였다고 주장하나, 피청구인 구성원 가운데 민혁당 조직원이나 하부 조직원 또는 관계자였던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직접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판결에서 조직원으로 언급된 단지 몇 명에 불과하고, 경기동부연합이 과거 민혁당 또는 민혁당 조직원 등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좌우되는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나,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경남연합이 어떤 이념을 공유하거나 지지하여, 통일적으로, 단결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

피청구인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구조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구조적이고 급진적인 변혁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확립된 질서에 도전한다는 것만으로는 민주 국가에서 금지되는 행위가 되지 않는다. 피청구인이 표방하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사회’나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자주적 정부’는 오래된 정치철학적 전통 속에 있는 주장으로 각국의 다양한 진보정당들이 같은 취지의 주장을 개진하고 있으며 피청구인이 독창적으로 구성하여 제기한 것이 아니다. 피청구인이 현존하는 정치ㆍ경제 질서에 부정적 의사를 표시하고, 선거를 통한 집권 이외에 예외적으로 헌법질서가 중대하게 침해받는 경우에는 저항권에 의한 집권이 가능하다고 언급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폭력적 수단이나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수단으로 변혁을 추구하거나 민주적 기본질서의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

피청구인이 사회주의적 요소를 내포하는 강령을 내세우고 있고, 북한도 적어도 대외적ㆍ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피청구인의 주장이 북한의 주장과 일정 부분 유사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피청구인이 북한을 추종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유사성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 정부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정신과 시각이 북한과의 연계나 북한에 대한 동조라는 막연한 혐의로 좌절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점만으로 북한 추종성이 곧바로 증명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 피청구인의 활동 –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음

피청구인의 지역조직인 경기도당이 주최한 2013. 5. 10. 및 5. 12. 모임에서 이루어진 이석기 등의 발언은, 전쟁이 벌어졌을 때 남의 자주세력과 북의 자주세력이 힘을 합쳐서 적인 미국과 싸운다거나 대한민국의 국가기간시설을 공격한다는 발상을 담고 있어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 어긋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임을 되풀이하거나 구체적 실행으로 나아갈 개연성 등을 고려하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 그러나 피청구인의 지역조직인 경기도당 행사에서 이루어진 위와 같은 활동은 비핵평화체제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피청구인 전체의 기본노선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피청구인이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그로부터 기본노선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므로 이를 피청구인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 즉, 이석기 등의 그와 같은 발언은 피청구인의 기본노선과 현저하게 다르고, 이 사건 모임 참석자들이 피청구인 전체를 장악하였다고 할 수 없으며, 나아가 피청구인이 이 사건 모임 또는 모임에서의 발언을 승인하였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모임이나 그 모임에서 이루어진 구체적 활동으로 인한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의 문제를 피청구인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는 없다.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이나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야권단일화 여론조작 사건과 같은 피청구인 일부 구성원의 개별 활동이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거나, 민주적 의사결정원리를 존중하지 않았거나,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피청구인 전체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을 위하여 조직적, 계획적, 적극적, 지속적으로 위와 같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활동들을 제외하면 피청구인은 다른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정당활동을 영위하여 온 점, 그간 우리 사회가 산발적인 선거부정 행위나 정당 관계자의 범죄에 대하여는 행위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당해 정당의 정치적 책임의 문제로 해결하여 온 점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활동들이 피청구인의 정치적 기본노선에 입각한 것이거나 거꾸로 피청구인의 기본노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또한 피청구인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의 추구를 위하여 적극적, 의도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를 기용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결국 피청구인의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 비례원칙 충족 여부 – 해산의 필요성 인정되지 않음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은 그것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통상적인 관념에 비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 반면 피청구인의 해산결정으로 인해 초래될 사회적 불이익은 민주 사회의 순기능에 장애를 줄 만큼 크다. 강제적 정당해산은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당의 자유 및 정치적 결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을 초래한다.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특히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나아가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통합과 안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피청구인이 한국 사회에 제시했던 여러 진보적 정책들이 우리 사회를 변화하게 만든 부분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고, 이는 피청구인에 소속된 대다수 당원들이 이 당의 당원이 되고자 결심하도록 만든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석기 등 일부의 당원들이 보여준 일탈 행위를 이유로 피청구인을 해산해 버린다면, 이 노선과 활동을 지지해 온 대다수 일반 당원들(피청구인 전체 당원 수는 10만여 명에 이른다)의 정치적 뜻을 왜곡하고 그들을 위헌적인 정당의 당원으로 만듦으로써 그들에게 사회적 낙인 효과를 가하게 될 것이다. 이는 피청구인 자체를 반국가단체로, 그리고 당원 전체를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피청구인을 지지한 국민을 반국가단체 지지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과거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심판이 청구되고 해산 결정이 이루어진 후 다시 독일공산당이 재건되기까지, 12만 5천여 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 중 6천~7천 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 결정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피청구인 소속 당원들(이석기 등 내란 관련 사건의 관련자들) 중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동조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형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을 통해 그 세력을 피청구인의 정책결정과정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그 세력 중 일부가 국회의원이고 그 지위를 활용하여 국가질서에 대한 공격적인 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다면, 국회는 이를 스스로 밝혀내어 자율적인 절차를 통해 그들을 제명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헌법 제64조 제3항).

정당해산제도는 비록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최후적이고 보충적인 용도로 활용되어야 하므로 정당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공론(선거 등)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며, 2014. 6. 4. 치러진 제6회 지방선거 결과(광역 비례대표 정당득표율 4.3%)와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 영역에서 피청구인에 대한 실효적인 비판과 논박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은 정당해산의 정당화사유로서의 비례원칙 준수라는 헌법상 요청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 이는 피청구인의 문제점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피청구인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고, 또한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대한 의연한 신뢰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며, 헌법정신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 놈들 – 6

<양키들아! 당신들은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큐바와 같은 혁명국가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는지 도대체 알지를 못한다.

당신들은 그러한 사태에 대해서 그러한 미치광이같은 공갈 협박 수단 이외에는 손을 쓸 줄 모른다. 당신네 정부 태도는 사실상 미치광이로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이제는 당신들도 알겠지만 그 따위 방법을 가지고서는 아무 일도 성취하지 못하는 법이다.>

yankee2미국 사회학자 Charles Wright Mills가 큐바의 공산혁명 후에 큐바를 방문하여 카스트로를 비롯한 혁명 주체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발표했던 그의 책 “들어라, 양키들아(LISTEN, YANKEE)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이 책이 발표된 것이 1960년도이니 55년 전의 일입니다. 1959년 공산혁명 이후 미국에 밉보였던 큐바가 소련에 손을 내밀고, 이어져 1962년에 핵미사일 기지 건설로 제3차대전 직전으로까지 나아가기 전에 발표된 책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1962년 3월, 이런 미소간의 줄다리기와 큐바에 대한 미국의 본격적인 봉쇄를 보지 못하고 Charles Wright Mills는 48살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뜹니다.

그리고 어제 2014년 12월 17일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특별성명을 발표합니다.

“미국은 대(對) 쿠바 관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며 “수십 년간 미국의 국익을 증진해나가는 데 실패해온 낡은 접근방식을 끝내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해나갈 것”이라는 53년간 적대관계에 있던 큐바와의 국교정상화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큐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역시 특별 성명을 내놓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다”며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체제의 자주성과 국가 주권에 대한 편견이 없는 기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미국 의회의 다수당인 공화당이 대뜸  “잔인한 독재자에게 어리석은 양보를 해 준 또 하나의 사례”라며 반발을 하고 나서고 있어 양국간의 관계개선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터진 물꼬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뉴스를 해석하는 시각들이란 늘 그렇듯 매우 다양하지만 중남미와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 눈에 뜨인답니다.

이쯤 한반도의 북쪽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남쪽 “남한, 대한민국”과 해외동포들 사이에 있다고 이야기들 하는 이른바 “북을 그리워 쫓아가지 못해 안달하는” 이른바 종북세력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하는 이야기로 넘어가야겠습니다.

큐바와 북한(조선)은 역사적으로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찍히고, 도와주기로 한 소련이 맥없이 주저앉는 모습(1962년 큐바 핵미사일 기지 건설이 미국 케네디의 강공전략에 수포로 돌아간 일)의 큐바를 보면서 한반도 북쪽의 김일성은 소련바라기를 거두게 됩니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까지 북의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를 적당히 왔다갔다 하면서 실익을 챙기면서 당시 유엔의 동일한 한표 행사의 권리를 만끽하던 이른바 제3세계의 모델이 됩니다. 실제 북의 김일성(이게 3대까지 내려올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남한에 2대째 박씨 역시 그 때는 꿈에라도 누구의 머리 속에 있지 않았겠지만)이 본격적으로 신격화 되기 이전인 1974년을 깃점으로 하여 그 이전 몇해동안 북한(조선)의 인민들은 정말 “지상낙원”에 가까워 온 줄로 착각하고 살만큼 좋은 시절을 누렸던 듯 합니다.

사족 – “지상낙원같은 좋은 시절”이라는 말을 착각하지 마시길. 평등 또는 공평이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며 삶의 질(質)이라는 평가는 제외한 것임.

바로 그 무렵부터 북은 쪽박을 차는 길로 들어섭니다. 훗날 소련 붕괴를 시작으로 한때 제2세계로 군림하던 공산국가들의 몰락이라는 외부적인 요인과 인간들이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자연재해 등의 요인 보다 먼저 스스로 국가적 몰락과 고난의 길을 자초한 까닭이 있답니다.

바로 주체사상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에는 늘 역설이라는 썰이 그럴듯하게 통합니다. 바로 북이 쪽박 수순으로 들어가면서 남쪽에서는 그것에 환장하는 이들이 나타난답니다. 이렇게 등장하는 “그 분들”은  오늘도 “그 놈들”이 아무 눈치 볼 일도 없이 종북장사로 배불리는 호객행위에 밑밥이 된답니다.

아무튼 2014년 큐바나 북한(조선)이나 사는 형편으로 보자면 밑에서 세어야 빠른 편에 속하거니와 공산주의와는 먼 나라들이 되었지요.

중국은 이미 공산주의가 아닌 공산당 일당 독재 자본주의 국가로 변했고, 베트남이나 라오스도 마찬가지고…

지구상에 공산주의 국가는 없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럼 빨갱이란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아, 물론 미국에도 있고, 일본에서는 며칠 전 선거에서 공산당 의원이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당선되기도 했고요. 유럽이야 정당들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고요. 그러나 맑스 레닌이 이야기하고 꿈꾸웠던 그런 공산당은 지구상에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는 말일겝니다.

아무튼 55년 전에 “들어라, 양키들아”하고 소리쳤던 Charles Wright Mills처럼 미국을 향해 제 목소리를 내는 소리들이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에서 들리던 때가 있었답니다.

바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그 놈들 – 5

<1940년대의 남부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천,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그리고 차경석의 보천교나 전해룡의 백백교도 혹은 거기에 편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1948년 ‘문장’지에 실린 채만식의 소설 <도야지>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 대목은 작자 채만식이 멀지 않은 장래에 사어사전(死語辭典)으로 갈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 이런 주석이 달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1948년에 작가 채만식이 느꼈던 “빨갱이”에 대한 모습입니다. 그런고 <불원한 장래(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이 “빨갱이”라는 말은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문태석은 스스로를 “빨갱이”라고 부르기를 즐깁니다. 그 까닭은 <인격이 고상한 애국자요, 지방의 덕망가요, 실업계의 중진이요, 그리고 독실한 신자인 동시에 교회의 최대한 보호자>인 그의 아버지 문영환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과 주변 인물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 문태석이 본 그의 아버지와 가족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실제 모습은 고매함과는 거리가 전혀 닿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부친 문영환, 이런 모친 최씨부인, 이런 누이 명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드나드는 온갖 종류의 인물들, 그 누구 한 사람에서도 구역이 나도록 불쾌한 반감을 느끼지 아니하는 인물이 없었다. 항차 그들이 그들답게 빚어내는 분위기란 정히 견디기 어려울 만큼 탁하고 추하고 불순스럽고 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도야지> 곧 오직 자기 뱃속 채우려는 탐욕만 가득한 돼지새끼들이었을 뿐입니다.

1948년으로부터 자그마치 66년이 흐른 2014년 오늘날 대한민국과 한인사회에서 쓰이는 “종북”이라는 말을 채만식의 사어사전(死語辭典)속에 있는 “빨갱이”에 대입해보면 그저 딱 들어 맞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빨갱이란 공산당을 일컫는 비속어입니다. 공산당이란 공산주의를 실현코자 하는 강령을 내건 정당을 말합니다. 이론상 공산주의가 사람들이 만들 수 있는 거의 최상의 체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실제 그런 체제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망한 것임은 이미 밝혀진 일입니다.

사실 공산주의란 종교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익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마르크스 – 레닌주의(ML)를 주창했던 레닌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종교성을 빼놓고는 이룰 수 없는 세상입니다. 레닌은 <사회주의는 ‘각자로부터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도 능력에 따라’ 분배하는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라고 일 뿐이고 진짜 공산주의는 ‘각자로부터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라고 합니다.

레닌이 말한 사회주의는 얼핏 실현 가능한 사람들의 세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세상 곧 그런 공산주의 사회란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결코 오지 못할 세상입니다.

“필요”라고 하는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직접 개입하는 세상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허망한 그야말로 이론일 뿐입니다.

이즈음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북유럽 국가 모델들은 이런 인간의 한계를 인식한 결과물들일 것입니다.

이쯤, 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은 이 광야에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그러자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먹을 것을 내려줄 터이니, 백성들은 날마다 나가서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리라. 여섯째 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차려보면 다른 날 거두어들인 것의 곱절이 되리라.> – 출애굽기 16 : 2-5, 공동번역성서에서

잘 알려진 ‘만나’ 이야기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히브리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음식입니다. 물론 신이 내려 준 은총이라고 고백하는 히브리족들의 신앙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공평함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 공동체 안에 있는 누구나가 남녀노소, 빈부, 지식이나 경륜, 높고 낮은 지위 등 어떤 차별도 없이 똑같은 질의 음식을 자신의 양에 맞게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신이 <실험해 보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실험이란 바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필요라고 하는 욕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의 실험에 인간은 아주 쉽게 걸려듭니다. 필요의 양을 자신의 욕망에 맞춘 것이지요. 내일이라는 염려를 없애려는 욕망, 남보다 더 가지려는 욕망을 막바로 들어냅니다. 그러자 신은 이런 인간들을 향해 그 욕망을 원천봉쇄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튿날이면 만나를 없애고, 욕심으로 쌓아 둔 것은 썩어 못 먹게하는 일이었습니다. 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공평한 세상에 대한 경험입니다.

신약시대를 연 초대교회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라는 신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 – 사도행전 4 : 34 -35, 공동번역성서에서

“쓸 만큼” – 필요의 크기 곧 욕망의 크기를 신의 개입으로 제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세상이었습니다.

소련의 멸망과 함께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는 말들도 하지만, 실제 사전적 의미로써 공산주의란 인류 유사이래 극히 제한된 신앙 공동체 이외에는 이루어져 본 적이 없는 결코 국가라는 이름으로는 이룰 수 없는 그저 허망한 이론일 뿐입니다.

더더우기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북은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곳입니다. 사회주의헌법(社會主義憲法)으로 부르는 그들의 헌법에서 조차 ‘공산주의’라는 말을 완전히 삭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해방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변해 온 모습을 돌아보면 그래도 그나마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고 우위에 있었던 때는 북이 공산주의라는 명분을 버리지 않았을 때입니다.

북한이 남한보다 뒤쳐지기 시작한 무렵은 바로 그들이 공산주의라는 명분을 버리고 주체사상이라는 사이비 종교로 갈아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남쪽의 박정희가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움켜쥐는 긴급조치 1호가 공포됐던 1974년에 북의 김일성은 마치 성서의 십계명처럼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라는 것을 공포합니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기 위하여 몸바쳐투쟁하여야 한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모셔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하여야 한다.

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의지적 통일과 혁명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따라배워 공산주의 풍모와 혁명적 사업방법, 인민적 사업작풍을 소유하여야 한다.

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안겨주신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며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높은 정치적 자각과 기술로써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9.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유일적 령도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규률을 세워야 한다.

1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 나가야 한다.

남쪽에서 박정희 신화를 만들어가던 무렵 북은 이미 김일성이 신의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이미 공산주의와는 전혀 관계없는 김씨왕조가 싹트면서 북은 남쪽보다 뒤쳐지면서 그 간격이 점점 벌어지게됩니다.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이 발표한 2012년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남한은 20위, 북한은 167위 입니다. 조사대상국은 167개국입니다. 북한이 전세계 조사 대상국에서 꼴찌인 셈입니다. 물론 이 조사의 객관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지상천국”이라고 믿는 신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index

이제 “그 놈들”을 알아보기 전에 “그 신자들”에 대해 먼저 알아보기로 합니다.

오늘 글을 맺기 전 느끼는 안타까움 하나는 저 조사 결과보다 2014년 남한 역시 훨씬 후퇴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놈들 – 4

저물어가는 2014년과 함께 역사에 기록될 이름을 꼽으라면 아마 이슬람국가(IS) 또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등으로 불리우는 반문화적, 반인륜적 미치광이 집단이 첫순위에 오르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류의 역사를 무려 1400여년 전으로 돌리고자 하는, 가히 정신나간 사람들이 종교와 신앙의 이름으로 올 한해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겨 죽인 집단입니다.

헤즈볼라나 알 카에다 같은 기존의 테러집단들과는 궤를 달리하며 국가를 참칭하고 있지만 지구상 어느나라도 그들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형국입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적은 그들 이외의 전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ISIL이 전 세계를 하나되게 하였다”라는 말이 다 나왔겠습니까.

중동 지방을 근거로 하는 테러집단들이 최우선의 적으로 삼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러시아,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터키, 이란,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 쿠르드족, 기독교인에 나아가 공산주의자 심지어 헤즈볼라, 알 카에다까지 몽땅 그들의 적들이랍니다.

분명 제 정신이 아닌 집단이거니와 전 세계를 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집단이기에, 전세계가 힘을 모으면 금방이라도 이들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릴 수 있겠건만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아 보입니다.

미국정부만 하더라도 이들과의 싸움이 최소 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을 한다는데 아마 지난 경험치로 본다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전 세계는 이들과의 싸움으로 시간을 보낼 듯 합니다.

그런데 알수없는 일은 이 미치광이 집단과 함께 하려는 젊은이들이 미국, 유럽, 아시아, 중동 등 가히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지금도 꾸준히 현재진형형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일본, 중국은 물론 한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그런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다 나올 정도이니 말입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들 젊은이들로 하여금 희대의 미치광이 집단의 품으로 자신들의 삶을 내던지게 할까요?

도대체 왜? 멀쩡하게 잘 자라서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때인 젊은이들이 이런 반인륜적, 반문화적인 집단으로 스스로 발길을 재촉하여 함께 할까요?

여러 다양한 설명들과 해석들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저는 두가지로 생각해 본답니다. 첫째는 ISIL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보고 자란 환경이고 두번째는 잘못된 믿음 곧 종교입니다.

첫번 째, 젊은이들이 보고 자란 환경이란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신의 모습이나 자기 가족들의 모습이 주류가 아니라는 소외감 탓이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자신들이 현재 속해 있는 사회에서는 결코 그 소외감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만난 잘못된 종교가 두번 째 이유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멀쩡한 자신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막장으로 스스로 밀어넣는 젊은이들의 뒤에는 바로 미치광이 집단을 이끌어가는 바로 “그 놈들”이 있습니다.

오늘자 한국 뉴스를 보면서 미치광이 집단 ISIL과 그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한반도 남쪽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연합<‘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전북 익산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었으나 한 관객이 인화물질에 불을 붙인 뒤 투척하는 바람에 관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오늘자 연합뉴스가 전한 기사 한 대목입니다.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이 남한 전국을 돌며 벌이는 토크 콘서트의 주제는 “평화와 통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연합뉴스를 비롯한 뉴스매체들은 <‘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 토크 콘서트로 의도적인 믿음을 독자들에게 심어줍니다.

그리고 이제 조만간 <‘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에서 <…을 빚고 있는>이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고, <논란>이라는 말도 사라질 것입니다. 늘 그래왔듯 말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종북>이라는 말만 남기게 이들의 교묘함은 작동할 것입니다.

이렇게 거의 일상화된 습관에 이어 마침내 18살 젊은 아이가 폭발물을 투척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ISIL이 인류의 역사를 1400여년 전으로 돌리고자고자 하는 것과 ISIL 다음으로 전 인류적, 전 세계적 왕따가 된 북한을 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종북(從北)이라는 딱지가 과연 2014년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이나 전세계 한인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주술일까요?

그 18살짜리 고등학생에게 “인화물질에 불을 붙인 뒤 투척하”도록 사이비 믿음을 심어준 “그 놈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 하나는 바로 박정희의 공로입니다. 저는 이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이바지한 큰 공로를 높히 기린답니다. 다름아닌 철저한 총기류 규제입니다.

총을 들고 쿠테타에 성공했던 박정희는 총기류 규제만큼은 정말 철저했습니다. 자유당 시절만해도 심심치 않게 있었던 총기사고가 박정희 통치기간 이래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안전한 나라가 된 까닭은 모두 박정희의 공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18살 아이가 총기류 대신에 “인화물질에 불을 붙인 뒤 투척”할 수 밖에 없었던 일도 저는 순전히 박정희의 공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박정희 부부 모두 총기류 사고로 세상을 뜬 일은 안타까운 아이러니지만…

그 놈들 – 3

제3세계 발전 수단으로서의 사회주의 실패는 보다 산업화된 국가들의 발전만큼이나 서구 맑시즘에 일대 타격이 되었다. 맑시즘이 사라진 뒤 중국은 자본주의적 경제기업 형태를 도입하게 되었고 급속한 경제발전 시기에 돌입했다. 아프리카와 그 밖의 사회주의 사회는 무너졌고, 나중에는 쿠바의 사회개혁이 아무리 성공했을지라도 그것이 소련의 대규모 경제원조에 의한 것임이 분명해졌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극동 지역 ‘호랑이들’의 급속한 발전이 제3세계 국가들도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만 그리고 자본주의적 준거틀 내에서만 급격한 성공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일게다. – 앤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Beyond Left And Right)에서

제 가게에서 바느질 일을 20년 넘게 도와주고 있는 Lou 아주머니는 제 또래의 라오스 출신 이민자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배관공으로 일하다가 몇 해 전에 은퇴를 했고 저와 친하게 지낸답니다. 제 가게나 집 배관 시설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친구랍니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해서 Lou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고 사는 사내랍니다.

이들 부부의 집에는 커다란 사진 하나가 거실에서 손님을 맞는답니다. Lou 아주머니의 시아버지 곧 전직 배관공인 Ban의 아버지입니다. 사진속 인물은 마치 일본식 정장을 했던 고종임금 모습같답니다. 어깨에 술이 달린 제복에 가슴에는 각종 훈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랍니다.

Lou 아주머니의 시아버지는 1975년 라오스에 오늘날의 “라오 인민 민주공화국”이라는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라오스왕정 시대에 총리급 고관이었다고 합니다. 라오스가 공산화된 후, 망명하듯 전 가족이 미국 이민을 왔다고 합니다.

그런 Lou 아주머니는 격년에 한번씩 고국 라오스를 방문한답니다. 그녀의 고국방문이 가까와지면 저희 부부가 하는 일이 하나 있답니다. 바로 제 가게 손님들이 맡기고 찾아가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는 일이랍니다. 상태가 어떻든 입을만한 것이면 어떤 종류의 옷이든 이민백으로 하나 가득 Lou 아주머니의 여행 짐이 된답니다. 라오스에 있는 친지들에게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즈음 한국에 사는 이들은 Lou 아주머니가 가지고 가는 옷들을 보면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옷들일 겝니다.

벌써 지지난 해던가,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 온 Lou 아주머니가 저희 부부에게 물었던 말이 있답니다. “아니 김씨 부부는 왜 그 잘 사는 한국을 떠나서 여기서 살아요?”하는 물음이었답니다.

그녀의 귀국 길에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중간 기착을 했던 모양입니다. 공항 바깥에 나가지도 않았지만 한국은 엄청 잘 사는 나라라는 그녀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김씨 부부는 왜 그렇게 잘 사는 한국을 떠나서 여기서 살아요?”라는 Lou 아주머니의 질문은 그녀의 입장에서 던질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겝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녀의 입장이라면 던질 수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양키 고 홈”하면 빨갱이가 되는 세상에서 자랐습니다. 아니 그런 말조차 몰랐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깁 미 껌”, “깁 미 쬬꼬렛”이라는 말이 친근했던 세대입니다. 미국에서 건너 온 옥수수로 만든 옥수수 빵과 딱딱하게 돌덩이같은 우유 덩어리를 배급받아 먹으며 학교를 다녔던 세대입니다.

미국하면 천국 다음으로 좋은 나라쯤으로 알던 세대입니다.

제가 십수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친구 하나가 일찌감치 회사를 그만 두고 서울 인근 외곽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답니다. 자신이 스스로 무공해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당시 유행이었던 주말농장을 분양해서 나누는 그런 농장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연좌제그 농장을 방문했을 때 제 친구의 아버님께서 밭을 일구고 계셨답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자 반가히 맞아 주시던 친구 아버님께서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려, 미국 시민 되었지! 높아졌네 높아졌어 미국 시민 높은 것이여, 아무렴!”

친구 아버님은 6.25 한국전쟁 부역자로 낙인 찍혀 평생을 사시다 이젠 돌아가신 분이랍니다. 장남이자 제 친구의 형님이신 이는 참 사람 좋고 자상하신 분이었는데(그 이도 이젠 칠순이겠다는 생각을 하니 참 세월 빠릅니다.) 사범대학을 나와 학교 발령을 기다리다가 연좌제에 걸려 꿈을 접고 사셨답니다.

Lou 아주머니의 종한(從韓), 제 친구 아버님의 종미(從美)적 발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의 경험과 ‘좀 더 잘 사는 곳’에 대한 동경(憧憬)은 지극히 사람다운 자연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이 거꾸로 되었을 때, 일테면 라오스와 미국의 형편이 뒤바꿨을 때나, 한국과 미국의 형편이 뒤바꿨을 때도 이것이 자연스런 일이 될까요?

그렇게 뒤바뀐 환경에서도 종한(從韓) 또는 종미(從美)적 발언이나 사고가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한 일입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대세는 가능 이전에 미친 짓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상일 겝니다.

이른바 종북(從北)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답니다.

  • 계속 이어집니다.

 

그 놈들 – 1

비록 라디오가 뒷전으로 물러앉은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FM방송이나 최근 유행하는 팟캐스트같은 신종 라디오의 위세는 여전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제 어린 시절의 진공관 라디오가 누렸던 위세에 비하면 많이 퇴락한 셈입니다.

김일, 장영철 등이 나오는 프로레슬링을 보노라고 동네 유일하게 흑백 텔레비가 있었던 쌍둥이네 집으로 몰려갔던 제 또래 아이들과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서울 신촌이었답니다.

진공관 라디오그 무렵 대세는 라디오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알지도 못하고 들었던 라디오 연속극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주인공 아로운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있답니다. 한명숙, 현미, 이금희, 위키리, 최희준에 이어 배호까지 다 이 라디오를 통해 섭렵하였습니다. 장소팔, 고춘자에 이어 구봉서, 곽규석,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떳어도…’의 서영춘 까지도 아무렴 라디오였답니다. 아직 트랜지스터가 나오기 전, 진공관 라디오였답니다.

그 무렵부터 제가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갔다오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까지 라디오를 지킨 프로그램이 하나 있답니다.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5분 드라마랍니다.

제 또래치고 이 라디오 프로그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듯합니다. 제 머리가 굵어지고 트랜지스터 라디오 시대가 된 이후로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지만, 1960년대만 하여도 ‘두만강 푸른 물에…’에 함께 아주 귀에 익은 방송이었답니다.

내용은 거의 엇비슷해서 지옥같은 북한 인민들의 삶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리면서 천리마운동이라는 노동에 혹사 당하고 공산당 압제에 신음하는 북의 인민들의 모습을 김삿갓이라는 인물이 고발하고 풍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마도 제 또래나 이즈음 한국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어버이연합에 속한 분들과 같은 세대 사람의 기억속에는 이 방송이 심어준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깊이 남아 있을겝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서서 그 때를 돌아봅니다. 1960년대 일인당 GNP가 북한은 325달러, 남한은 94달러였답니다. 거의 3.5배가 차이가 났답니다. 바로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드라마가 시작하던 무렵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무렵만해도 북은 지금과 달리 어느 정도 분배에 있어서 평등이 이루어졌던 시절이었고, 남한은 부(富)의 쏠림 현상이 오늘과 못지 않았으므로 보통의 북의 인민과 남의 국민을 대비해 본다면 당시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방송내용은 명백한 허위였습니다.

거짓이거나 말거나 남에서 살았던 저와 같은 사람들은 북은 사람살 곳이 못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답니다.

제가 “때려잡자 김일성”을 외치며 군생활을 할 때인 1970년대 중반까지도 북이 남쪽보다 경제력에서 앞서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 무렵 전방부대 중대장이나 대대장의 월북소식이 쉬쉬하며 장병들 사이에 떠돌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남북의 경제적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 입니다.

그리고 2014년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남한은 1인당 소득 28,739달러, 경제 규모는 1조 4,400억 달러인 반면에 북한은 1인당 소득 506달러, 경제 규모는 2012년 기준 123억 달러랍니다. 도저히 서로를 비교할 수 없는 차이의 수치입니다.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2011년 한 해 북한 전체 예산은 2020억원이었는데, 2014년 남한의 종로구 한해 예산은 2980억원이었답니다. 정말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랍니다.

진공관 라디오 시대였던 1960년대에 3.5배 앞서있던 북한이 2014년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남한의 1/40의 수준이 된 것입니다.

지나간 50년의 과정이 이랬니? 저랬니?하며 따져 볼 이유도 없이 2014년 오늘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남에 사는 국민들 가운데 북의 인민을 부러워 하거나 북의 지배체제를 받들거나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그건 정말 정신나간 사람들이 아닐까요?

일테면 나보다 3.5배나 잘 살던 사람이었는데 50년이 흐른 후 보니 내가 그 사람보다 40배나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 사람의 지금의 삶을 부러워한다? 도대체 말이 됩니까?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아무리 상식을 뛰어넘어 생각을 해보아도 남한 국민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종북(從北)주의자’들은 차고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남한에서도, 이곳 이민자들의 동포사회에서도 말입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뿌리내리고자 이민 온 미국 동포 중에 신은미라는 분도 종북주의자라고 하는 뉴스를 보았답니다. 그 이가 북을 다녀온 모양이고, 거기에서 사람사는 모습들을 ‘오마이 뉴스’라는 남한 정부가 허락한 매체에 기고를 했고, 그 글을 즐겨 읽은 이들이 제법되었고, 그래 책도 내고  토크 컨서트라는 행사도 한 모양입니다.

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그이의 글을 읽어보니 2014년을 스마트폰 전성시대로 사는 그이는 당연히 스마트폰으로 찍은 북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들었다고 생각한 남한의 정부 당국과 1960대로 살아가려는 일부 세력들은 신은미씨가 진공관 라디오시대의 <김삿갓 북한 방랑기>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종북주의자라고 한답니다.

2014년 이 문명의 시대, 선진조국 대한민국에서 진공관 라디오 시대로 살고자 하는 놈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