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국 7 – 백년

백년이라는 세월이 참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온 집안 식구가 모였던 자리였습니다. 오는 구월이면 유치원(kindergarten)에 들어가는 조카손주아이의 재롱을 즐기고 계신 왕할머니와 왕할아버지(조카손주 아이들이 제 부모님을 부르는 호칭들입니다.)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를 왕할아버지와 왕할머니로 부른답니다.

아이들의 왕할아버지와 왕할머니는 이제 구순을 바라보시고, 백세시대로 접어드는 때에 조카손주들이 백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거의 이백년의 세월이 한 순간에 만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입니다. 그리 생각해보니 백년이라는 세월이 참 별거 아니구나하는 데까지 이르던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사람살이가 이즈음 우리들이 사는 모습으로 얼추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끽해야 삼백년이 채 안된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사람살이의 변화 또는 인류역사의 변화란  어찌보면 짧은 한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가히 망상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살이의 변화를 역사발전이라고 말하던, 신의 섭리라고 말하던 돌이켜보면 인류는 똑같지는 않지만 어떤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살아 온 듯합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그 삶의 맥을 이어왔더라도 말입니다.

일테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문화라는 문화의 발전과정이나 비단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발전 과정을 보노라면 지구상 어떤 민족이나 종족들의 살아온 과정들은 거의 엇비슷한 보폭으로 여기까지 온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살이의 변화를 역사발전 또는 신의 섭리라고 말했을 때 이미 그 말 안에는 그 변화가 나아지는 쪽으로 이른바 진보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생각을 사람들이갖게 된 것이 고작 삼백 년이 채 안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잡설이 이렇게 길게 되었답니다.

한 삼백년 이전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은 사람살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로, 아주 먼 옛날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답니다. 기독교 영향 아래에서 생각의 틀이 짜여져 내려온 서구에서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살이가 나아가는 것으로 여겼고, 중국적 생각의 틀을 가쳐 살았던 동양에서는 요순(堯舜)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살이 궁극의 목표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의 틀이 깨어진 것이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18세기와 19세기를 넘어오던 그 때에 일입니다.

자본주의를 일으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영국이 식민지 아메리카를 잃고, 공산주의를 잉태하게 된 때가 그 무렵이고,  신생 미국이 독립한 것 때가 바로 그 때였으며, 서구 유럽을 바닥부터 뒤엎고 새로운 질서의 근간을 세운 프랑스 대혁명이 그즈음에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심심치않게 입에 오르내리곤 하는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하는 말들이 생긴 때이기도 합니다.

서구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이내 동양으로 건너와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나아가는 원인이 되었고, 중국 청나라의 급격한 몰락의 시발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그 무렵 한반도는 조선의 마지막 유교적 제왕이라는 모습과 실패한 개혁적 이미지를 동시에 갖추었던 이산(李祘) 정조(正祖) 임금의 시대를 지나 몰락의 길에 들어서던 시기였습니다.

1800년을 기점으로 전후 약 50년 사이의 백년은 인류사는 물론이거니와 동서양  많은 주요국가들이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되는 신시대로 접어 들던 때였습니다.

renan“예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했던 르낭이 교수직을 박탈당한 때가 프랑스 2월혁명 후인 1862년의 일이었으니, 오랜 중세적 종교 사고가 바뀌던 때도 바로 그 무렵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시기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냐에 따라 오늘 우리들의 시대를 판가름하는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른바 문창극류의 역사적 사고가 단지 한 개인 것만이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한인들에게 깊히 각인되어 드러나지만 않을 뿐인 생각으로 굳어진 까닭은 바로 이 시대를 옳게 곱씹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한반도에서는 정조 이후로, 세계사로는 프랑스혁명전후로 부터 대충 한번 훑어 보고자 합니다.

조선민국 6 – 출발

“사람이 소송사건에 있어서 불실한 증언을 하려고 출정하여 그가 한 말을 확증하지 못하면, 그 소송이 생명에 관한 소송일 경우 그를 죽인다.” OLYMPUS DIGITAL CAMERA

지금은 세계 최고(最古)의 자리를 빼앗겼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여도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법전으로 알려졌던 함무라비 법전 제3조의 내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800여년 전에 바벨론의 왕 함무라비가 반포했다는 바로 그 법전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십계명에는 “하지 말라”는 계명이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인, 남에 것에 대한 욕심 등입니다.

또한 팔조지교(八條之敎), 팔조법금(八條法禁) 등으로 알려진 한반도 최고(最古)의 법전인 고조선의 여덟가지 법률에는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살인, 도둑질, 간음 및 강간, 각종 상해에서부터 거짓 증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범죄행위들은 인류 역사와 함께 사람사는 세상이면 어디에건 끊임없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 어느 사회건 이런 범죄행위들은 공동체를 위해 다스려져야하고 그에 대응하는 벌칙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외없는 법칙이 없다는 말처럼 이 경우에도 예외는 늘 있어왔습니다. 누가 범죄를 저지르는냐에 제재 대상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영웅적 행위로 간주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저지른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이라도 말입니다.

인류사의 발전이란 바로 이런 예외의 적용율이 낮추어지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잣대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역사의 발전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즈음 제재받는 않는 국제적 무법자 행세를 하는 이스라엘의 행태나 집단 생수장(生水葬) 사건인 세월호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을 보노라면 이러한 역사 발전의 거대한 반동이 일어나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길게 놓고 따져보면 그 또한 발전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문창극류의 신의 은총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와 정신사가 그렇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및 이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바로 대한민국, 한반도 나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모든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종의 오늘날 솔직한 자기 모습입니다.

함무라비법전과 십계명과 고조선 팔조법금 아래 사는 모습입니다.

특히 사건 이후 정홍원총리 책임 사임에서 도로 정홍원에 이르는 사이에 등장했던 여러 인물들, 일테면 안대희, 문창극, 김명수, 정성근 등등의 이름들과 뉴스들을 보면서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소위 이 시대 한인사회 엘리트들의 모습들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비단 그들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참으로 저렴한 가치관이 사회 엘리트 행세를 하는데 필수 요소가 된 현실을 벌거벗겨 드러내 놓은 격입니다.

삼백년 전 박지원이 쓴 양반전에는 비슷한 가치관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삼백년 전에 양반행세를 하던 이들이 오늘날의 신양반계급으로 변하는 과정을 돌아보는 일은 바로 역사를 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세계사의 흐름에서 삼백년 전인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오는 싯점은 바로 모든 민족과 국가들이 거의 동일한 선상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던 싯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창극류의 저렴한 사관(史觀)으로는 볼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랍니다.

조선민국 5- 인두겁

덴마크 사람 Allan Sørensen 이라는 이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 한장과 짧은 트윗 글이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올린 트윗글입니다. 

“(여기는)Sderot 극장. 가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황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인들이 Sderot 언덕에 의자를 깔고 앉아있습니다. (이들은) 폭음이 들리면 박수를 칩니다.”(Sderot cinema. Israelis bringing chairs 2 hilltop in sderot 2 watch latest from Gaza. Clapping when blasts are heard.) 

사진속에는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이스라엘 여성의 얼굴이 눈에 띕니다. 

Allan Sorenson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벌써 이백명이 웃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 이들 중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들 –  목숨을 잃었습니다. 

역사, 종교, 인종, 문화, 영토 등등 팔레스타인의 모든 문제들을 다 접어 놓고 “사람 – 곧 신 앞에 선 피조물”이라는 눈높이로만 따져보자면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이 짐승들에게 미안할 정도입니다. 

인두겁을 쓰고는 차마 하지 못할 짓들을 Sderot 언덕에서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인두겁을 쓰고 사람행세하는 년놈들이 팔레스타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生水葬) 사건이 일어난지 어느새 석달이 꽉 찼습니다. 지난 석달 동안 바로 인두겁을 쓰고 사람 행세하는 년놈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단 한국(남한 또는 대한민국)에 국한되는 일이 아닙니다. 남북한을 비롯한 한글을 사용하는 모든 한인사회에 이미 차고 넘치는 현상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두겁을 쓰고 사람행세하는 년놈들의 으뜸되는 뚜렷한 특징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염치지심(廉恥之心)을 상실한데 있습니다. 

지난 석달동안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린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말과 행태를 일일이 곱씹을 필요도 없이 모든 분야에서  – 정치, 행정, 문화, 언론, 종교, 학문 등등 –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두겁을 쓴 자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제반 분야에서 누리고 사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정말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저와같은 이름도 없이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너무도 흔히 부딪혀 만날 수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약 삼백년 전 박지원이 양반전을 쓸 때만 하여도 조선반도에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그래도 넘쳐났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제 세월호 백일을 앞두고 다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조선민국 –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그리며.

조선민국(朝鮮民國) 3 – 양반(兩班)

개인의 삶이나 집단 또는 민족이나 국가의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아이고, 그 때 왜 그랬을까?’라거나 “만일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시점이나 순간들을 돌아보는 관점과 생각들은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집단, 민족, 국가 구성원들 그리고 그 전체의 의사결정 방법이나 문화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많은 경우에 그런 지나간 순간들을 어떻게 뒤돌아보느냐에 따라 또한 지나간 그 사건이나 상황들을 오늘 여기에서 어떻게 곱씹고 해석하며 오늘의 선택을 결정하는데 참고하느냐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 민족, 국가의 미래가 결정지어지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민족이 북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남으로는 대한민국으로 나누어져 있고 약 700만명에 다다르는 숫자가 중화인민공화국, 미합중국, 일본국 등을 비롯한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은 나라이름에 걸맞지 않게 민주주의도 아니거니와 인민이 주인인 나라는 더더우기 아닙니다. 남 역시 나라이름에 걸맞지 않게 크지도 않거니와 민(民) 곧 시민이나 국민이 주인은 아닌 듯합니다. 유엔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단, 일본은 표면상 북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실제적으로는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관계이지만)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로 인정하지만 남과 북만은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두 나라는 서로 정식국호의 영문표기로 Republic of Korea(남),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북) 라고 남들이 불러 주기를 원하지만 세계인들은 그저 South Korea(남한), North Korea(북한)으로 부를 뿐입니다. 

남한인구가 약 오천만, 북한인구가 약 이천 오백만이라고 하고 재외동포수가 칠백만을 넘으니 약 1/10의 인구가 세계 다른 나라에 나가사는 셈입니다. 

중국에는 조선족, 일본에는 재일동포, 러시아에는 고려인, 미국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등으로 살고 있거니와 최근들어 호주 캐나다를 비롯한 남미나 유럽 등지 아프리카 오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약 팔천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지난 사월 대한민국(남한)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 소식을 뉴스 보도를 통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남북을 비롯한 보도 통제나 왜곡보도가 심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정보 통신이 두절된 지역에 살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정상적인 사건 보도와 처리 과정을 접한 한국인들이라면 2014년 4월 현재의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에 던져진 곧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이 물음,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은 어느 민족 어느 국가나 늘 고민하고 씨름해 온 물음입니다. 그 물음으로 각 나라와 민족들의 역사가 발전해 왔거니와 인류사가 바르고 건강한 쪽으로 발전해 온 것이고, 그렇게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2014년 5월 현재, “한반도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진짜 나라일까?”라는 물음은 아주 건강하고 바람직한 질문인 동시에 같은 물음은 똑같이 북쪽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유효한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위해 저는 약 250년 전의 일부터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250년전 결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양팔 주욱 뻐으면 손 끝에 닿을 저쪽 이야기일 뿐입니다.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절일 뿐입니다. 

“아이고 그 때 왜 그랬을까?”라는 물음을 시작해보는 첫 시점입니다. 약 250여년 전만 해도 다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중국(청나라), 일본(에도 막부), 미국(나라가 막 시작할 때), 유럽으로 따지면 문맹자가 80-90% 였던 때이고, 러시아는 나폴레옹에게 시달리던 때였으니 세계의 이른바 문명국들이 다 고만고만 했을 무렵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때 조선왕국에 이산(李祘)이라는 이가 임금으로 있었답니다. 바로 정조(正祖)입니다. 

조선임금 27명 가운데 임금같은 임금 둘로 세종과 정조를 꼽지만 정조는 “아쉬움”이 많은 인물이랍니다. 바로 그 시절이 오늘날 세월호 참사의 한과 아쉬움의 시작이라 하여도 물의 근원을 그리 멀리 잡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 시절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구가 둥굴게 생겼고, 지구가 돈다는 주장을 한 첫번 째 한국인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조선인들은 땅은 평평한 것으로 믿고 있었으니 시대의 돌아이였던 셈입니다. 

그가 쓴 소설들 가운데 양반전(兩班傳)이 있습니다. 그 양반전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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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백성을 낳으실 때에,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셨다. 이 네 갈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이 선비를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그들은 농사 짓지도 않고, 장사하지도 않는다.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르는데, 크게 되면 문과(文科)요, 작게 이르더라도 진사(進士)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온갖 물건이 이것으로 갖추어지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진사는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蔭官)이 될 수 있다. 

훌륭한 남인(南人)에게 잘 보인다면, 수령 노릇을 하느라고 귓바퀴는 일산(日傘) 바람에 해쓱해지고, 배는 동헌(東軒) 사령(使令)들의 ‘예이’하는 소리에 살찌게 되는 법니다. 방안에서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뜰 앞에 곡식을 쌓아 학을 기른다. 

(비록 그렇지 못해서)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내 밭을 김 매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네 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