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새해 들어 첫 주문한 책들을 받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받았다. 손 글씨 엽서들이 동봉된 정경심 시인의 책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를 먼저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시 <고난의 지금을 견딘다>로부터 마지막 시 <나를 울린 영치금>까지 터질 듯 터질 듯 울컥이는 맘 꾹꾹 눌러가며 책을 덮을 즈음, <당신들의 조건 없는 위로와 격려를 생각하며 반드시 살아야겠다고 아니 살아 내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라는 글쓴이의 말에 기어이 눈물, 콧물.

이리 쉽게 책장을 넘기고 책을 덮을 일은 아니다. 가까이 두고 조국, 정경심 두 분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그들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 소식 들을 때 마다 한 편 한 편 곱씹어 읽어야겠다.

그녀의 시 한 편.


<결국, 사람이다>

죽음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사람 때문이다

결국 그 길을 가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던

그가 버티고 있었고

나를 그 길로 보내 버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집요하게 내 죽음의 멱살을 붙잡고 싸워 주었다

자신도 버티기 힘든 각자의 무게 위에 서로의 무게까지

우리는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

무게를 떠안고 분산 시켰다

그리고 그곳에 이름 모를 수많은 분들이 어깨를

들이밀고 우리의 어깨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 주었다

우리를 지탱시킨 것은 우리를 살린 것은

결국, 사람이다.

정의에

일요일 하루 집에서 푹 쉬는 축복을 누렸다. 연휴로 내일도 쉴 수 있다는 여유에서 온 생각이리라. 창문들을 여니 상큼한 바람이 집안에 가득하다. 새들도 오늘은 노는 날인가 보다. 마냥 즐거운 새소리도 바람과 함께 집안을 들락인다.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어 보다 집어 든 책,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샌델이 이 책에서 말했던 미국 교육 제도 특히 미국 대학의 입학제도에 나타난 정의 문제를 찾아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샌델은 이 책 제 7장에서 미국 대학들이 취하고 있는 소수 집단 우대 정책 논쟁을 다룬다. 이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논쟁 중인 미국 사회의 한 과제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미 다 커 버려 내 문제가 아닌 듯 하지만, 여전히 내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내 후대들이 겪어 내야 할 이 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책을 다시 꺼내든 까닭은 한국 뉴스 탓이었다. 이른바 ‘조국현상’ 때문이랄까.

나는 이명박시대에 교육부 수장이었던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가 펼쳤던 교육 정책 기반의 지식을 쌓은 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미국 교육에 대한 신봉자였다.

조국 교수의 딸이 전형을 치루었던 당시의 대학 입시 제도는 그렇게 철저히 미국 대학 입시 제도를 본뜨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조국 현상이 일기 전 까지 그 제도에 대한 논쟁이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심지어 ‘기여 입학제’ 도입 운운하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었다.

그러다 터진 문제인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국 교수 딸의 입장에 서서 보자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샌델은 제 7장에서 미국 입시 제도를 다루기 전에 그 앞 장인 제6장에서 미국 정치 철학자 존 롤스가 말한 평등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상술하고 있다.

그는 제 6장의 글을 마무리하면서 존 롤스의 말을 인용한다.

<자연의 배분 방식은 정당하지도 부당하지도 않다.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위치를 갖고 태어나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자연적인 사실일 뿐이다. 정의냐 부정의냐는 제도가 그러한 사실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샌델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롤스는 우리가 그런 사실들을 다룰 떄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각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 , 사회적 여건을 (공동체를 위해)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롤스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이론은 미국 정치 철학이 지금까지 내놓은,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고.

나는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뭐라 딱히 표현할 수 없지만,  한 세기 넘는 세월 동안 그 땅을 지배해 온 친일, 친미 등의 주장으로 제 배 불려 온 세력과 싸우며 평등한 사회를 위해 고뇌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맥주 몇 캔에 거나해 책을 덮다.

저녁 나절 호박 썰어 새우젓 넣어 볶고, 가지를 무치다.

하루 잘 쉬었다.

십구 년 구월 초하루에

 

비겁함에

오늘 낮에 내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탁 재료 판매상인 Mr. 강이 내게 뜬금없는 인사를 건넸다. ‘형님은 유튜브 안보시나 봐요?’내가 스스럼없이 말 놓는 한인 몇 사람 가운데 하나인 그는 필라델피아 인근 한인 세탁소들을 두로 돌아다닌다. 나와의 거래는 거의 삼십 년이 되어 간다.

내 대답 – ‘그건 왜?’  이어진 그의 말. =  ‘장사가 안되는지 가는 곳마다 사장님들이 유뷰트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나는 다시 물었다. ‘유튜브로 주로 뭐를 보던?’ 막 바로 받은 그의 응답이었다. ‘요즘 핫한 거 있잖아요! 조국 뉴스… 거기에 빠져들 계시더라고.’

‘쯔쯔쯔… 일터에서 뭐라고 한국 뉴스에 뺘져 있노…’ 혼잣 말 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그래 그거 보는 사람들 의견들은 대충 어떻디?’ 그의 의견이었다. ‘한 8대 2쯤이요. 조국 No! 에 8, 청문회 보고 나서 판단하자는 쪽 2정도요.’

그가 내게 물었다. ‘형님 의견은 어때요?’ 그리고 이어진 내 대답이었다. ‘나는 8대 2 속에 들지 않는구나.’

솔직히 나는 일터에서 유튜브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social networking 을 보거나 하지 않는다. 한국뉴스를 보거나 검색하는 일도 거의 없다. 내 일 곧 세탁업과 관련된 일이거나 내 손님들과 소통하는 일 이외에는 인터넷이나 cell phone 사용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일들은 거의 대부분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한다. 하여 한국뉴스들을 섭렵하는 시간은 저녁 시간이거나 휴일이다. 그래 이따금 바뀐 세상을 뒤늦게 접하곤 한다. 그러나 관심있는 뉴스에 이르면 여러 매체들(뭐 다 엇비슷하지만)을 두루 돌아 다니거나 뉴스를 소비하는 커뮤니티들을 순례하기도 한다.

내가 이즈음 핫하다는 법무장관 후보자 조국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든 생각은 ‘비겁함’이다. 조국 후보자가 비겁하다는 뜻이 아니다. 조국 후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비겁함이다. 그런데 그 비겁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좀 답답한 이즈음이었다.

그러다 엊그제 받은 호주에서 보내온 홍길복목사님의 인문학 강의록을 찬찬히 읽다가 그 비겁함의 본질을 만났다. 그의 강의록 일부이다.

<니체는 지난 날 유럽을 지배해 온 온갖 전통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습니다. 철학과 종교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예술, 관습 등 모든 ‘전통적인 것들’에 대하여  그는 ‘아니다!(Nein)’이라고 부르짖으면서 그것들을 뒤집어 엎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부정과 파괴가 가장 강한 긍정이라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무너뜨리지 않으면 결코 새로운 것을 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유럽의 정신사에서 가장 강력한 이단자였고 반항아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기독교적 도덕이란 근본적으로 약자들이 강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규정 하면서 이를 ‘비겁한 도덕’이라고 불렀습니다.

“비겁한 자들의 비겁한 도덕율은 인간을 결코 더 좋은 방향으로 전진 시키지 못하게 한다. 거기에는 선하려는 의지, 나아지는 의지, 즉 권력에의 의지가 없다. 인간은 그 누구든지 본질적으로 자아를 실현해내고 환경과 사회를 변혁 시키고 보다 더 나은 상태로 나가려는 힘의 의지를 지닌 존재인데 노예의 도덕, 기독교의 도덕은 그런 의지를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런 의지를 꺽어버린다”는 것이 니체의 주장입니다. >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자유, 평등, 정의, 민주의 이름으로 누군가 하나를 제물 삼아 해소하려는 집단 의식을 전하는 뉴스 속엔 분명 비겁함이 도사리고 있다.

건강한 사회의 시민으로 나아가는 일은 바로 그 비겁함을 떨치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의 대상은 어느 한 공동체를 지배하는 권력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 곧 여론 또는 국민 정서라는 정체 불명의 권력일 수도 있는 법이다.

강남 좌파

한국뉴스를 보다가 문득 떠오른 누이 생각.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사촌 누이는 이십 대에 유학 길에 올랐다.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누이에 대한 기억은 거의 그 이전 세월 뿐이다. 물론 서로 간에 소식은 듣고 살았다. 오랜 유학 끝에 누이가 한국에 돌아 가 정착했을 때는 나는 이민을 온지 이미 오래 된 후이기에 그저 소식만 듣고 살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누이를 만났었다. 이명박 시절이었을게다. 서울 강남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었다. 이 자리에서 나보다 몇 살 위인 사촌 매제와도  인사를 나누었었다.

이런저런 살아 온 이야기들과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누이가 제 남편인 사촌 매제를 일컬어 ‘강남 좌파’라 했었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강남 좌파’하는 지칭을 들어 본 첫 자리였다. 그 지칭을 들었던 사촌 매제는 당시 강남에 사는 독일 법학박사 학위를 지닌 대학교수였다.

‘강남 좌파’의 얼굴 격처럼 알려진 조국 장관 후보자에 대한 기사들을 보다가 떠오른 내 누이에 대한 기억이다. ‘강남 좌파’ 내 사촌 매제가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었다는 이야기들도 그 기억 속에 함께 한다.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강남’과 ‘좌파’이다. 뉴스들은 그 사이를 파고들며 마구 그 간격을 벌리고 있다. 그 놀음에 ‘강남’과 ‘좌파’는 물론 ‘강북’과 ‘우파’ 아니 그도 저도 아닌 이들 모두 달려 들어 정신들이 나간 형국이다.

그 날 이후 누이와 ‘강남 좌파’인 사촌 매제를 본 적은 없다. 예전처럼 그저 소식만 전해 들을 뿐. 나는 한번도 ‘강남 좌파’인 누이 내외가 자랑스럽다고 말한 적이 없다만, 여전히 그렇게 불리우며 살아가기를 빈다.

더하여 ‘강남’과 ‘좌파’사이를 헤집는 난도질에 휘청거리는 조국이라는 사내가 지금의 형국을 잘 이겨 내기를 바란다.

아직은 ‘강남 좌파’가 절실히 필요한 그 쪽 상황인 듯 보여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