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일요일 하루 집에서 푹 쉬는 축복을 누렸다. 연휴로 내일도 쉴 수 있다는 여유에서 온 생각이리라. 창문들을 여니 상큼한 바람이 집안에 가득하다. 새들도 오늘은 노는 날인가 보다. 마냥 즐거운 새소리도 바람과 함께 집안을 들락인다.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어 보다 집어 든 책,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샌델이 이 책에서 말했던 미국 교육 제도 특히 미국 대학의 입학제도에 나타난 정의 문제를 찾아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샌델은 이 책 제 7장에서 미국 대학들이 취하고 있는 소수 집단 우대 정책 논쟁을 다룬다. 이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논쟁 중인 미국 사회의 한 과제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미 다 커 버려 내 문제가 아닌 듯 하지만, 여전히 내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내 후대들이 겪어 내야 할 이 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책을 다시 꺼내든 까닭은 한국 뉴스 탓이었다. 이른바 ‘조국현상’ 때문이랄까.

나는 이명박시대에 교육부 수장이었던 사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가 펼쳤던 교육 정책 기반의 지식을 쌓은 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미국 교육에 대한 신봉자였다.

조국 교수의 딸이 전형을 치루었던 당시의 대학 입시 제도는 그렇게 철저히 미국 대학 입시 제도를 본뜨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조국 현상이 일기 전 까지 그 제도에 대한 논쟁이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심지어 ‘기여 입학제’ 도입 운운하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었다.

그러다 터진 문제인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국 교수 딸의 입장에 서서 보자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샌델은 제 7장에서 미국 입시 제도를 다루기 전에 그 앞 장인 제6장에서 미국 정치 철학자 존 롤스가 말한 평등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상술하고 있다.

그는 제 6장의 글을 마무리하면서 존 롤스의 말을 인용한다.

<자연의 배분 방식은 정당하지도 부당하지도 않다.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위치를 갖고 태어나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자연적인 사실일 뿐이다. 정의냐 부정의냐는 제도가 그러한 사실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샌델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롤스는 우리가 그런 사실들을 다룰 떄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각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 , 사회적 여건을 (공동체를 위해)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롤스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이론은 미국 정치 철학이 지금까지 내놓은,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고.

나는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뭐라 딱히 표현할 수 없지만,  한 세기 넘는 세월 동안 그 땅을 지배해 온 친일, 친미 등의 주장으로 제 배 불려 온 세력과 싸우며 평등한 사회를 위해 고뇌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맥주 몇 캔에 거나해 책을 덮다.

저녁 나절 호박 썰어 새우젓 넣어 볶고, 가지를 무치다.

하루 잘 쉬었다.

십구 년 구월 초하루에

 

우리가 맞을 아침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첫번째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와 윤보선이 경쟁했던 1963년의 일이다. 아버지의 인쇄소가 놀이터였던 까닭에 또래들 보다 일찍 한자를 깨우친 나는 당시 동아일보의 냄새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박정희와 윤보선이 두번째로 맞붙었던 때에도 나는 여전히 미성년자였다.

박정희와 김대중이 나섰던 1971년 대통령 선거 때에 나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에 빠졌었다.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을 주도해 만든 박현채선생님께 일년 동안 경제학 강의를 들었던 때는 1979년이었고, 내 삶 속에 누린 축복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튼 1971년에도 나는 여전히 투표권이 없는 십대였다.

내가 선거권을 가질 무렵 이후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고, 다시 직선제로 바뀐 1987년에는 나는 이미 대한민국을 떠났으므로 당연히 대통령 선거를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첫번째로 대통령선거에 참여했던 것은 부시(George Walker Bush)와 고어(Albert Arnold “Al” Gore Jr)가 맞붙었던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이 때에 나는 ’80-20 Initiative’라는 아시안 정치 참여 단체에 속해 고어를 위한 선거운동을 했었고, 그 결과를 아파하며 통음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되어버린 한국 대통령 선거가 다시 가깝게 느껴지게 된 것은 인터넷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당선은 마치 내가 투표한 것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그날 밤 우리 집에서는 몇몇 뜻이 엇비슷한 사람들과 믿기지 어려울 만큼 변한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며 만취했었다. 그들 중 몇은 당시 새 행정부에서 요직을 맡기도 하였다.

이후 설마했던 이명박, 박근혜의 당선은 지난해 트럼프(Donald John Trump)의 당선만큼이나 내겐 참 낯선 결과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코앞에 다가온 한국대통령 선거에 대한 뉴스들을 훑어보며 스치는 몇 가지 생각들이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선택하든 “사회계약은 어느 한 사람의 추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의 다수파에게 권력을 양도하는 것”이라는 로크(John Locke)의 말처럼, 선택한 그 시대 그 곳에 사는 공동체의 몫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지금 트럼프를 보며 살 듯, 이명박, 박근혜의 권력을겪었던 사람들이 어떤 선택하든 그 공동체의 몫이다. 다만 한국인들의 선택에 크건 작건 내 생활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한국계 이민자이기에 비록 투표권은 없지만, 내 관심이 이어지는 것이다.

바라기는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이 미국사회가 정의로운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하며 이야기한 ‘공동선의 정치’를 펼칠 만한 인물이 뽑혀지기를 기대해본다. 시민의식, 희생, 봉사,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깨달음, 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 도덕적인 참여 정치 등의 고민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이쯤 살다보니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제 본성과 살아온 과정을 배제한 채 바뀌기란 좀처럼 힘든 일임을 알게되었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욱 그렇다. 정치꾼들이 조작한 상징에 빠져 자신들이 겪어내야만 하는 세월을 맡기지 않는 시민의식이 크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참 좋아한 연기인 김영애선생과 황금찬시인의 부고 소식도 크게 다가온다. 내가 사는 동네 70넘은 올드 타이머가 종종 모주꾼이었던 고등학교때 국어 선생님 이야기를 하곤한다. 바로 황금찬 시인이다.

또 다시 아침을 그리며


아 침

  • 황금찬(黃錦燦)

 

아침을 기다리며 산다./ 지금은 밤이래서가 아니고/ 아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을 맞으면/ 또 그 다음의 아침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아침을/ 이에 맞았고 또 맞으리/ 하나 아침은 기다리는 것이다.

 

이미 맞은 아침은/ 아침이 아니었고/ 이제 맞을 아침이 아침일 것 같다./ 아침을 기다리는 것은/그 아침에 날아올/ 새 한 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잔치 그리고 숙제 – 평화

마치 잔치가 끝난 듯한 분위기입니다. 약  100시간에 달했다는 프란치스코  천주교황  방한 이후의 한국언론들 모습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교황이 남긴 말씀들의 의미를 꼽는 기사들도 차고 넘치거니와 말씀들이 누구를 향한 것이라는  나름의 해석들도 넘쳐납니다.

짧은 한국방문 기간동안 보여주었던 교황의 언행을 보고 들으며 저마다 자기 생각 한자락쯤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혀 관심 밖이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터이고, 애써 무시하려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교황의 방한과 그의 언행들이 행여 자기 밥그릇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를 저울질하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며, 자신들의 맺힌 한과 숨통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자로 기대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터입니다.

날라리 기독교인(개신교)인 저는 어제 주일을 맞아 모처럼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두어 달만의 일인 듯 싶습니다.

예배순서가 거의 마칠무렵에 찬송을 부르다가 문득 프란치스코교황이 방한 중에 하셨다는 말씀 하나가 머리 속에 뱅뱅 돌았답니다. 그 연유로 잔치가 끝난 마당을 돌아보며 제 생각 한 자락 풀어 놓습니다.

먼저 어제 제가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의 내용이랍니다. 교회생활 조금 하신 분들이면 익히 잘 아는 찬송입니다.

<내 마음속에 참된 평화있어 주 예수가 주신평화/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과연 귀하다 나의 평화/ 주 항상 계시네 내 맘속에 주 가 항상 계셔 아 기뻐라/ 주 내 맘속에 계셔 위로 하신다 /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이런 내용의 찬송입니다.

사람 일반이 종교에 귀의하여 의지하고자하는 일차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가사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당연히 귀의한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식과 평화를 보장합니다. 적어도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종교들 일반의 모습입니다. 원시종교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비록 날라리일지언정 기독교인인 저는 예수가 유일한 구세주로서 제게 평안과 평화를 주시는 분임을 정말 자랑스럽게 어느 자리,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거나 주장하지도 않거니와 그런 일에 시간과 정열을 허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답니다.

아무튼 “주 예수가 내 마음에 평화를 주신다”는 찬송을 부르는 일은 신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 믿음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는 그 찬송을 읊조리며 영 편편치 못한 제 마음 한구석을 다스릴 수가 없었답니다. 바로 교황이 던진 평화에 대한 뜻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  <평화란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교황이 남긴 말씀들입니다.

교황과 김용오그가 말한 평화는 신과 나와의 관계가 아닌 나와 이웃간의 관계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신과 나와의 관계란  믿음의단계에 있어 아주 깊은 곳에 이를 수도 있는 관계설정일 수가 있는 동시에 가장 저급하고 천박한 신앙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신을 쫓아가면 신앙의 깊이는 깊어질수 있지만 신이 나를 쫓게 만들면 천박하기 그지없는 장사속  종교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나와 이웃간의 관계 설정에서 신의 존재를 묻는 물음은 자못 경건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싸움과 다툼의 시작이고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바로 그 지점에서의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바로 정의가 세워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너와 나 사이,  우리와 너희 사이에 정의가 이루어 진 결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세우는 일을 민주적으로 풀어나가라는 조언을 덧붙인 것입니다.

대다수의 언론들이나 글쟁이들이 이런 언행을 풀고 간 프란치스코교황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들을 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잔치가 끝났습니다.

이제 교황이 말씀하신 평화에 대한 참된 뜻을 제대로 알려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서 있는 자리를 바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가 어느 순간 하늘에서 툭 떨어져 2014년 8월 한반도 남쪽에 현현했던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교황이 2014년 8월 세월호 집단 생수장 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반도를 향해 평화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천주교 반세기사(50여년)의 고뇌와 교황 개인이 걸어 온  77년사라는  고뇌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년 전(1962년 10월 –  1965년 9월)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있었던  천주교의 일대 회개운동이 없었다면,  그의 신앙을 키워낸 아르헨티나라는 척박한 환경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정의의 결과물로 얻을 수 있는 평화”란 잔치 끝마당에 저절로 떨어지는 열매가 아니라 앞으로 50년이 더 걸릴지라도 한국민들이 노력해 얻어야만하는 숙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