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도에 태어났다면 현재 만 95세이고 1929년생이면 만 86입니다. 아무리 백세 장수시대라고 하지만 1920년대생들 태반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그들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실제 징용, 징병되었던 연령대이고 보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분들이 다른 세대들 보다 많습니다.
이들 가운데 생존해 계신 분들은 살아있는 현대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북의 김일성(金日成, 1912년)과 남의 박정희(朴正熙, 1917년)가 1910년대생들이었고 그 뒤를 이어 한국정치사에 일획을 그었던 이른바 삼김<三金 :김대중(金大中, 1924년), 김영삼(金泳三, 1927년), 김종필(金鍾泌, 1926년)>씨들이 모두 1920년대생입니다.
아직 이 세대들에 대한 제대로된 정리와 평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입니다.
저는 이 세대들 중 막내축에 속하는 한분을 우리 후대들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국어 공동체의 미래가 밝게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임종국(林鍾國, 1929년 10월 26일 ~ 1989년 11월 12일) – 바로 그 사람입니다.
선생은 고작 60을 넘기시고 세상을 떴습니다. 그나마 그의 60년의 삶은 그리 평탄치 않았습니다. 선생은 해방이후 20년이 지난 1966년에 <친일문학론>이란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20년이 지나서야 식민지치하 이른바 엘리트들의 친일행각에 대한 연구의 첫 발을 그가 디딘 것입니다. 이후 그가 세상을 등질 때까지 친일행각을 벌인 인물들에 대한 연구에 매진합니다.
그가 죽기 얼마 전 그의 삶을 돌아보며 그가 남긴 말입니다.
<60의 고개마루에 서서 돌아다보면 나는 평생을 중뿔난 짓만 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가를 꿈꾸던 녀석이 고시공부를 했다는 자체가 그랬고, <이상전집>이 그랬고, <친일문학론>이 그랬고, 남들이 잘 안하는 짓만 골라가면서 했던 것 같다. 타고나기를 그 꼴로 타고났던지 나는 지금도 남들이 흔히 하는 독립운동사를 외면한 채 침략사와 친일사에만 매달리고 있다. <일본군 조선침략사>가 지난해 말에 출간된 터이지만 계획된 일을 완성하자면 앞으로도 내겐 최소한 10년이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 대신 하늘만한 자유를 얻고자 했지만 지금의 나는 5평 서재 속에서 글을 쓰는 자유밖에 가진 것이 없다. 야인(野人)이요,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고독한 60년을 살았지만 내게 후회는 없다. 중뿔난 짓이었어도 누군가 했어야 할 일이었다면 내 산 자리가 허망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민족을 배반하고 친일행각으로 삶을 이어온 이들을 낱낱이 밝히기 전에는 죽을래도 죽을 수 없다며 이런 글도 남깁니다.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糧食)으로 삼아야 한다. 15년 걸려서 모은 내 침략 ․ 배족사의 자료들이 그런 일에 작은 보탬을 해줄 것이다. 그것들은 59세인 나로서 두 번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 할 뿐인 것이다.
나는 지금 65년에 걸쳤던 <주한일본군 침략사> 1,800매를 반 쯤 탈고했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경향에 신경이 쓰여서 예정에 없던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1876~1945년의 모든 사회분야에 걸친 침략 ․ 배족사 전8권을 8년 작정으로 완결할 생각이다. 그러고서도 천수(天壽)가 남으면 마음 가볍게 고향(문학)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문학사회사의 꿈이나 쫓고 싶다. 친일배족사 8권을 끝내기 전에는 고향(문학)이 그리워도 갈 수가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8년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일을 남기고 떠난 그의 뒤를 잇고자하는 사람들이 모여 오늘도 함께 일하는 곳이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입니다.
그가 남긴 ‘친일문학론’과 연관지어 전해오는 이야기 두가지가 있답니다.
하나는 ‘친일문학론’ 초판 1500권이 다 팔리는데 걸린 시간이 13년이었고, 그 가운데 1000권은 일본에서 팔렸다는 사실입니다.
두번째는 그의 부친인 임문호입니다. 임문호는 천도교 지도자였는데 수차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대외 침략 전쟁에 동참할 것을 선동한 행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친일행각을 했던 전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임종국이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던 도중 아버지의 이러한 행적을 알고 상당히 괴로워했는데 이를 알아챈 그의 부친 임문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이름도 거기에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이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그의 부친의 이름도 “친일 명단”에 등재되었답니다.
그는 죽기전 자신이 살아생전 남긴 족적들은 50여년이 지나야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남겼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한반도에 얽힌 뉴스들은 답답함으로 다가옵니다.
1920년대 끝자락에 태어나 20세기 초반 한반도 역사를 가슴에 품고 살다간 임종국선생의 물음이 진정 끝나는 날, 그날이 한반도와 한국어 공동체의 미래가 새롭게 열리는 날이 될 것입니다.
1920년대생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이제 제 아버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