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편지

모처럼 느긋한 주일 아침이다. 내 맘을 아는지 시간조차 느리게 흐른다.  간만에 넉넉한 마음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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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여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모처럼 아주 느긋하게 여유 있는 일요일 아침을 맞는답니다.

Long term care 시설에 계시는 장인이 병원 응급 환자로 옮기셨다 딱 일주일 만인 엊그제 상태가 좋아져 다시 시설로 돌아 오셨답니다. 어제는 딱 석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가 일주일 간 의 재활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셨답니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가게 이전과 마무리를 하느랴고 한 달여 매우 바빳었답니다.

이제 두 노인들도 제 자리를 찾았고, 가게 이전으로 어수선했던 제 일상도 이젠 거의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맞는 일요일 아침에 누리는 여유에 정말 감사한답니다.

한 열흘 전 아침, 어머니 병실에서 밤을 지내고 가게 문을 열 때, 문득 눈에 들어 온 하늘을 보며 떠오른 생각들이 있답니다. 삶의 아름다움과 일상에 대해 늘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답니다.

누구나 살며 아프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마련입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들과 이웃들 모두 겪는 일입니다. 그 모든 삶의 과정들을 아름답다고 새기고 곱씹어 보는 것은 바로 제 자신이라는 생각을 아침 하늘이 제게 가르쳐 주었답니다.

또 다른 생각 하나는 매일 똑같은 생활, 때론 지겹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그 똑같은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생각해 본 것이랍니다.

그날 아침 하늘 풍경에 감사하답니다.

온 천지가 봄입니다.

좋은 계절, 아름답고 감사가 넘쳐나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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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I was busy and nervous for about a month, today I’m leisurely greeting Sunday morning with ease.

My father-in-law, who had been staying at a long-term care facility, was taken to the emergency center, was recovered in a week and moved back to the facility the other day. Yesterday, my mother, who had been hospitalized for three weeks, moved back home after a week-long rehab treatment.

Furthermore, I was busy completing moving the store, as you might know.

Now, my mother and my father-in-law are recovered and my everyday life, which was disordered, has almost fallen into place. So, I’m really grateful for the relaxed feeling which I’m enjoying in this Sunday morning.

About ten days ago, when I opened the store and looked at the sky after I had spent the previous night in my mother’s hospital room, a couple of thoughts came across my mind. It was that I should always be grateful for the beauty of life and everyday life.

We all get sick in life and have to face death someday. We also must look at our loved ones’ situations of those kinds. What the morning sky taught me was that it would be me who imprints all the courses of life as beautiful and thinks about them over again.

The other thought was that I should realize how grateful I should be for everyday life, though so often I feel that it seems to be a tedious repetition of the same things over and over again every day.

I’m thankful for the sky tha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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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around is shouting that it’s spring.

I wish that you’ll have over-flowing gratitude every day in this pleasant and beautiful season.

From your clea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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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상태

모처럼 누린 사흘 연휴도 끝나가는 시간이다. 사흘 동안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일들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사흘 연휴를 맞아 미리 계획했던 일들은 그저 집적거리만 했을 뿐 마무리된 일들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연휴를 맞기 직전 맞은 돌발적 상황들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은 그럭저럭 잘 해낸 것도 같다.

일테면 장인 어른의 수술과 회복 중에 다시 맞게 된 중환자실 이전 과정이랄지, 이젠 어리광 단계에 들어 선 내 아버님과 함께 한 시간이랄지, 오랜만에 긴 시간을 함께하는 딸아이와의 시간 등을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연휴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름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일들과 코 앞에 다가온 가게 이전에 대한  계획을 마무리 하는 일 등은 관련 자료와 서류 등을 꺼내만 놓은 채 눈길 조차 보내지 못하고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연휴가 끝나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피로가 온 몸을 덮쳐 낮에 잠시 졸다가 머리 속에 떠오른 말 ‘임계상태’였다.

물도 아니고 수증기도 아닌 상태, 부글부글 뭔가 터질 듯 한데 그냥 이대로 다시 식어 버릴 것 같은 상태, 그렇게 시작된 생각의 연속으로 뜻 맞는 벗들에게 편지 한 장 띄웠다.

비단 내 개인적 삶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임계상태’는 아닐게라는 생각에서였다.

부모님, 아들 며느리, 딸 그리고 형제들과 조카들 올망졸망한 조카손주들 모두 모여 나눈 성탄 만찬은 풍성했다.

먼저 만찬 자리를 뜬 우리 부부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단 몇 분 사이에도  80년 넘는 세월을 맘대로 오고 가며 오늘 일인 양 웅얼거리시는 장인을 뵙고 돌아온 늦은 밤, 내 이메일함에 담긴 성탄 카드 한 장.

My dear friend,

As usual, you are “Right On!”

I am thankful for you, the cleaner, who cleans my clothes.

I am thankful for you, the person, and your dear wife, too, for you are good, kind, thoughtful persons, making a better world,…one interaction, one letter,…at a time.

I am thankful for your letters, which make me think and smile, and think again.

Blessings,

가게 손님 한 분이 보낸 메세지에 연휴가 끝났음을 감사한다.

그래, 임계상태란 무릇 일상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위하여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 어제, 오늘 내 가게 손님들이 나를 깨우친 생각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를 정말 반갑게 맞아 준 이들은 내 가게 손님들이었다. 바로 우리 부부의 일상이었다.

손님들은 저마다의 경험으로 지난 시간들을 꺼내어 ‘오늘’, ‘여기’에서 우리들의 일상을 함께 했다.

“내 마누라에게는 너희들 여행 이야기는 하지 말아줘! 마누라가 또 가자고 할지 모르니…”

“거긴 아주 형편 없는 곳이었지, 이태리가 정말 좋았어!”

“출장 길에 딱 하루 들렸었지. 언제간 나도 시간 내서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야.”

아련하게 옛 기억을 떠올린 이는 1970년대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 이젠 할머니가 된 옛 소련 출신 피겨 선수였던 그녀의 기억이다. “모나리자 앞에 서 있었단다. 마침 나를 알아 본 관광객이 있었단다. 그 이가 내게 사인 요청을 했단다. 모나리자 앞에서 사인을 해 주었었지”

그랬다. 무릇 여행이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내게 파리는 역사 속에서 오늘을 바라보며 내일을 꿈꾸게 하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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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일상(日常)

새해 첫날 지는 달과 뜨는 달을 보다. 때마침 둥근 보름달이다.

좀 느긋해 질 나이도 지났건만 연휴에도 일상적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서성거렸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에 집을 나섰다. 행여라도 가게 보일러가 얼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연휴는 일상이 연속되어 진다는 담보가 있어야 참 휴식이다. 이 추위에 보일러가 얼기라도 한다면 연휴 끝에 이어질 내 일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비록 노파심이라도 집을 나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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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새벽 녘에 둥근 보름달이 지고 있었다. 새해 첫 날 첫 새벽에 둥근 보름달은 운전을 멈추게 하였다. 내 일생 새해 첫 날 첫 새벽에 보름달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60여년의 세월을 빠르게 돌아본다.

일상의 연속을 위하여 휴일 아침에 일터로 향하며 누린 이 놀라운 감흥이라니!

우연이었다.

다 저녁 무렵에 홀로이신 장인을 뵈러 가는 길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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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지는 달과 뜨는 달을 보는 일, 어쩌면 그도 일상(日常) 아닐까? 그 달이 보름달이어도.

2018년 첫날에

기차여행 –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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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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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주택가 상점들 가운데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미용실이었다. 도시는 치장이 필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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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서도 노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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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서 여러 다른 모습의 홈리스들을 보았다. 잠시 제 자리를 비운 다른 노숙자의 짐을 터는 모습, 남녀 노숙인들이 서로 마주보며 스마트폰을 들고 전화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 신문 경제면을 샅샅히 훑고있는 모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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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문제는 비단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해 전, 우리 동네에서 만났던 힘깨나 쓰던 한인 노숙자 사내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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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가늠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아주 넉넉하다싶게 떠난 공항행이었지만 길위에서 꼼짝을 못하고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이 비단 우리 일행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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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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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가 청과상에서 닭한마리 값으로 사먹은 Saturn Peach(도넛 복숭아) 는 새롭고 신기하면서도 익숙한 맛이었다. 무릇 여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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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과 초를 다투며 공항 렌트카 반환지에 도착한 우리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었다는 안도에 조금전 겪었던 일들을 추억거리로 새기며 웃을 수 있었다. 주행거리 겨우 만 마일 정도였던 렌트카가 공항으로 오는 하이웨이 진입로에 들어서자 엑셀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좀처럼 놀란 티를 내지 않고 여행 내내 느긋했던 하나아빠가 당황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 베테랑이었다.

그렇게 시간에 쫓겨 탑승게이트에 도착한 우리들을 맞은 것은 비행기 연착 안내였다. 샌프란시코에서 1시간 40분 늦게 출발한 비행기 탓에 우리는 환승지 샤롯(노스 캐롤라니아)에서 4시간을 맥없이 앉아 있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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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행 환승 비행기를 기다리던 노스 캐롤라이나 Charlotte 공항 대합실에서 나는 어느 노부부의 모습을 한동안 넋놓고 바라보았다. 노마나님은 연신 먹을거리를 남편에게 건네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무표정하게 그를 받고 있었는데, 마치 오래전 시골 버스 정거장 대합실에서 마주쳤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하였다. 짐이라야 달랑 작은 백팩 두개 뿐인 것으로 보아, 떨어져 사는 자식들 얼굴 한번 보고 돌아가는 길이 아니였을까?

나는 노부부를 보면서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Toni Morrison이 쓴 소설 “고향”을 떠올렸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다. Frank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유는 이  미국땅에서 흑인들이 겪어냈던 아픔 때문이었다. 남부 조지아주 로터스 출신의 흑인 Frank는 아주 어릴 적에 겪었던 일로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의 경험이란 한 흑인 남자가 백인들에 의해 생매장 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훗날, 그렇게 생매장당한 흑인은 백인들의 놀이도구로 죽게 된 사실을 알게된다.

백인들은 흑인 아버지와 아들을 싸우게 해놓고는 내기를 벌인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그때 흑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죽이라고.” 흑인 아버지는 결국 생매장을 당하고 만다.

작가 Toni Morrison는 1940년대에만 해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었던 미국의 원시적이고 병적인 인종차별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이런 병적인 사회로부터 탈출하고자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이다.

평범한 삶의 현장에서 단지 피부색이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누군가에는 심심풀이 놀이가 되고, 또 다른 누구가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노리개가 되어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던 세상을 겪어왔을 대합실의 노부부를 보며, 그들이 헤쳐왔을 세월들에 잠시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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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향의 길목이 되어버린 필라의 스카이라인은 반가움이었다.

그랬다. 여행 끝에서 만나는 일상은 반가움이어야만 했다.

후기 – 하나네와 우리 부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처 맛보지 못했던 중국인촌 만두를 아쉬어하며, 여행 후 두어 주 지나 필라델피아 중국인촌에서 만두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아이의 부모 Washington씨 부부와 저녁을 함께 하였다.

 

밤새 안녕하셨어요?

교회에 속한 작은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송년회를 겸한 모임이었습니다. 제 엉덩이가 좀 가벼운 탓에 어느 모임에 가던 진득히 앉아있는 편이 못됩니다. 제 아내의 한결같은 불만들 가운데 하나이지요. 

오늘은 거의 다섯시간 넘는 시간을, 그것도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도 않고 쏟아내며 앉아있었답니다. 편하고 즐거웠다는 말씀입지요. 

집으로 돌아와 이즈음 일상 가운데 하나인 “당신의 천국” 이야기를 쓰려다 접고, 이 글을 쓰고  있답니다. 

대자보

이즈음 한국 대학가에 나붙은 대자보 하나가 뉴스의 촛점이 된 소식을 듣고 보고 있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자보입니다. 늦게 본 제 딸 아이가 대학 졸업반이랍니다. 아이들 말에 귀 솔깃할 나이는 이미 지났답니다. 제가 그 뉴스를 보고 대자보의 내용을 찾아 읽으며 든 생각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사실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은 우리 세대에겐 아주 낯익고 입에 배인 인사말이랍니다.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을 주고 받으며 자란 세대랍니다. 저도 어느새 육십줄에 걸친 세대가 되었습니다만,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 땐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는 6.25 전쟁 때 생긴 인사법입니다. 남쪽 군대, 북쪽 군대가 오르락 내리락 밀고 밀리던 일들이 계속 되는 전쟁을 치루면서 밤새 목숨을 잃는 일들이 다반사였던 일상 속에서 사람들 입에 배이게 된 인사말이랍니다. 

50년대 말, 60대 초까지 제가 어릴 때 입에 붙어있던 한국인들의 인사말이었답니다. “밤새 안녕하셨어요?” 

또 다른 입에 달고 살던 이삿말이 “진지 잡수셨어요?”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세월에 생긴 인삿말입니다. 끼니를 때우는 일이 모든 일에 최우선이던 시절에 생긴 말이었겠지요. 

적어도 우리 아이들 입에서는 이런 인삿말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살아왔겠지요. 너나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젠 그런 인삿말들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으니 잘은 모릅니다만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든지,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인사는 거의 하지 않거니와 설혹 하더라도 옛날과는 그 뜻이 다르게 사용되는 세상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던진  “당신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이 공감을 얻는 사회를 바라보며, 그 물음에 답을 할 사람들은 젊은이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인사법을 없애려고 애써온 우리 세대들 곧  1950년대생들이 대답을 찾아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제 블로그의 이름이 “1950대생들을 위하여”랍니다. 

2013년 겨울, 성탄절 즈음에 대한민국의 한 젊은이가 던진 “당신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의 핵심은 “당신은 이웃의 아픔에 저려오는 맘 하나 가지고 계십니까?”라는 물음이랍니다. 

그걸 아이들, 바로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가르쳐 주지 못한 우리 세대들을 향한 물음이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어 줄 수 있었던 제가 속한 교회의 작은 모임에게도 감사하며…

실행하는 사람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행한다. 한 시대가 그 전 시대로, 또는 그 전의 문제로 되돌아가곤 한다는 뜻이다포도주 병의 코르크 마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역사도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듯 하지만 사실은 수준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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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또는 비지네스맨의 영원한 멘토라고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의 말입니다. 어떤 하나의 현상을 보면 마치 역사가 뒷걸음치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전한다는 것이지요.

인생을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의 개인사나, 조직의 역동성을 굳게 믿는 단체나 크거나 작은 기업사, 민족의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진 민족사 나아가 인류 보편의 자유를 신봉하며 나아가는 세계사는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겠지요.

<실행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 물론 자신이 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아주 많은 일상적인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매일 3시간씩 연습을 한다. 아무도 그가 연습을 좋아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을지라도 40살 이후에도 실력을 향상 시키려면 그것을 즐겨야 한다나는 몇 년 전 한 피아니스트에게서 “나는 내 손가락에 생명이 있는 한 연습을 한다”는 훌륭한 말을 들었다.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연습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책 ‘경영 바이블’에서 한 말입니다.

무릇 직업적인 일이란 대부분 아주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즐길수 있어야합니다. 그 삶이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지요.

개에게 길을 묻다

당(唐)나라 고승(高僧) 조주선사(趙州禪師: AD:778-897)의 일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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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학승(學僧) 하나가 선사에게 물었답니다.

“개(犬)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개도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지요.

선사 왈.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제자가 와서 똑같이 물었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이번엔 선사 왈. “있다”

제자가 다시 물었답니다.

“아니 그럼 부처는 그만 두고 사람이 되지 왜 개로 그냥 있습니까?”

조주선사 호통을 치시며 “얌마! 그건 개한테 가서 물어 봐!”

뭐 당나라 때 뿐이겠습니까?

제 맘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제 안에 있는 부처 하나 느끼지 못하는 처지에 남이 무얼 하건, 개새끼가 무얼하건 그게 도(道)닦는 것과는 뭔 상관이냐는 조주선사의 가르침은 오늘에도 그대로 유효한 것이지죠.

순례자든 방랑자든 아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저 같은 사람이든

진리가 뭐 별거 있겠어요.

때론 화살이 되기도 하고 과녁이 되기도 하고

그게 삶이지요.

눈 뜨면 일어나 세탁소로 나가 보일러를 켜고, 일하며 배고프면 먹고,

집에 들어와 아내와 함께 가요무대 보며 세월도 한탄하고 흥얼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자고…

그 일상적인 바로 나의 삶에 도(道)가 있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심심하면 제가 글질하는 이 짓도 다 저를 위한 것이고요.

그게 때로는 누군가에겐 화살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따듯한 모포 한 장이 될 수도 있고…

과녁이 된 그가 하지 말란다고 아니 할 수도 없고

모포 한 장 더 달란다고 줄 여유도 없고

나도 때론 과녁이 되고

내미는 손도 되고…

그렇지 아니한가요?

무릇 도(道)라는 놈이….

그러다 다투기도 하고 표표히 떠나기도 하는.

다시

화살이 되고

과녁이 되는.

여유(餘裕)

입춘도 지나고 내일 모레면 대동강물도 녹는다는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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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겨울이 이렇게 지나간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여라. 주(週)단위의 이 곳 생활이 시간의 빠름을 더욱 재촉한다. 엊그제가 일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한 주일이 지났다. 그 빠른 시간에 쫓기며 살다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엄벙덤벙 생활의 켜만 늘어간다. 한참 일할 나이에 삶의 여유 운운은 자못 사치일 수도 있지만 때론 조금은 쉬었다 갔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다.

업종에 따라 생활양식과 시간 씀씀이가 다르겠지만 영세 소규모 업종이 주를 이루는 많은 동포들의 삶은 큰 차이없이 엇비슷 할 것이다. 세탁소 10년은 초등학교 시절 생활계획표보다 더욱 단순하게 하루를 묶고 생활에 틈을 주지 않는다.

급한 성정(性情) 탓도 한 몫이지만 눈뜨기 무섭게 고양이 세수하고 가게로 나가 보일러를 켠다. 빨래를 하고 뒷 일 처리하다 이따금 아내가 자리를 비우면 손님들과 싱갱이도 하다가 옷배달 하다보면 어느덧 하루가 맥없이 끝나 버린다. 게다가 동네 일 한답시고 이렇게 저렇게 나선 일에 짬을 내다 보면 그야말로 하루 해가 눈 깜작할 사이다. 하여 이렇게 짬 내는 일조차 내겐 공연한 사치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는 것이다.

가까이 계시는 부모님들께 얼굴 한 번 제대로 비추지 못하고 매일 전화 인사드리는 것으로 자위하고, 결혼 15주년 때 아내에게 약속한 여행계획은 20주년으로 미루었건만 눈 앞에 다가 온 20주년도  무망할 것이라는 예감이고, 아이들 내 품 떠나기 전 함께 해야 할 일들도 그냥 늘 계획일 뿐 하루 해, 일주일과 함께 또 내일로 미루어지기 일쑤이다.

수녀 이해인 시집을 들척이다가 두 아이들을 부른 것은 달포 전 주일 저녁이었다. 그녀의 영역시 몇 편을 골라 아이들에게 타자를 부탁하였다. 잠시 후 아들 녀석은 제 애비 부탁이라 마다치 못하고 억지로 건성건성 타자한 시편들을 건냈으며, 딸아이는 제법 맵시있는 활자체까지 선택하여 예쁘게 일을 마치었다.

딸아이와 마주 앉아 포스터용지에 시편들을 오려 붙이고 지난 가을 앞뜰에서 주어 온 잘 마른 낙엽 두어장과 아내가 벽단장한 마른 장미 두 가지를 가지런히 붙여 근사한 시화지를 만들어 이튿날 가게 카운터 옆 빈 벽에 딸아이와 함께 만든 작품(?)을 전시했던 것이다. 간혹 손님들이 ‘누가 쓴 시냐?’, ‘참 좋다’며 복사해 달라고 하며 관심을 보일 땐 내가 제법 대견한 생각을 하였군 하며 자족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토요일 아침, 아내는 한국학교 교사 일로 자리를 비우고 빨래하랴, 손님 맞으랴 반은 얼 빠져 일하는데 손님 한 분이 기다리는 사이 그 시편들을 읽다가 <내 혼에 불을 놓아/ Kindle my spirit>라는 시를 가르키며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어쩜 이렇게 맑은 영혼이 있을까? 이 시를 함께 나눌 수 있게 한 너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네가 누리는 여유가 부럽다.”고 한 마디하고 떠난 후 그 여유(餘裕)란 말이 머리 속에 오래 남아 떠나지 않는다.

늘 정신없이 어지럽게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내 삶 속에도 이웃이 보기에 ‘여유’가 있다는데야?

그렇다.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하였을 뿐 내가 얼마나 많은 여유를 누리며 사는가. 정신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신이 내게 주신 ‘여유의 은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이다.

구걸할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는데 신이 주신 이런저런 작은 여유들을 찾아 감사해 보는 일도 바쁘고 바쁜 이민 생활을 이겨내는 삶의 한 지혜일 듯 싶다.

*** 오늘의 사족

내가 윗글을 쓴 것은 2001년 2월 15일이었다. 그로부터 만 12년 일개월이 흘렀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변함없는 세탁소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두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였고,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병원출입이 잦으시다.

아내는 토요일이면 여전히 한국학교를 나가고… 교장을 맡고 있는데 이제 임기만료가 다 되어간다.

나는 여전히 손님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시를 보낸다. 마치 삶의 여유가 있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