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에

오늘 손님 하나 가게로 들어서며 연신 내 뱉던 말, “Strange!  Strange! Unbelievable!

난 그의 말을 ‘이런 옘병할!’로 듣고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도 아니고, 사월에 장마도 아닐 터인데… 지난 일요일부터 오늘까지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어제 밤엔 심하게 바람이 불더니만, 내 가게와 멀리 않은 곳으로 회오리가 지나가 곳곳에 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떳다.

손님의 날씨 불평이 어찌 그의 것이기만 하랴.

저녁에 비가 잦아든 창밖을 보니 그 빗속에서 튤립들이 배시시 얼굴들을 내밀었다.

하여 삶은 늘 익숙하고 믿을만한 것들의 연속이다.

일상(日常)에

전화벨이 울린다. 낯선 전화번호가 뜬다. 망설이다 받아 본다. 대뜸 들리는 소리 “저예요, 오랜만이죠!.” 내 응답, “누구신지?”. 큰 웃음소리와 함께 들여오는 소리, “아이~ 제 목소리도 기억 못해요?”

끝내 그가 이름을 대기까지 나는 스무고개를 넘어야했다. 참으로 내 감이 무뎌졌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는데 그에게 미안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내 응답, “뭐 그냥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 뭐.”

오랜만에 만나거나 목소리 듣는 이들이 곧잘 묻는 물음, “이즈음 어떻게 지내느냐?”에 대한 내 응답은 마냥 같다. “똑같지요, 뭐” 아님 “그냥 숨쉬고 살지요.” 둘 중 하나다.

나만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다 엇비슷하게 특별한 일 없이 똑같은, 지나가고 나서야 아쉬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닐까?

바로 일상(日常)이다.

누군가는 그 일상에 대한 도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고, 때론 그 몸짓으로 역사를 바꾸는 사람들도 있고.

돌이켜보면 그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던 모습의 연속이었다. 내 지난 시간들은.

이즈음은 틀에 박힌  내 일상이  점점 다르게 다가온다. 그날 내가 누리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으로.

하여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내 응답, <“똑같지요, 뭐” 아님 “그냥 숨쉬고 살지요.”> – 그 속내는 예와 지금이 사뭇 다르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초가을 오후, 아내와 함께 정원 길을 걷다.

이른 아침, 다시 첫 서리 하얗게 내린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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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오늘 델라웨어 주지사는 지난 13개월 이래 가장 완화된 COVID-19 제한 규정을 발표하였다. 펜데믹 이후 바뀐 주민들의 생활들이 그 이전에 누리던 일상으로 많이 돌아갈 수 있을 만한 내용들이다.

오는 5월 21일 부터 적용될 변경 사항들로는 우선 6피트 거리두기 규정이 3피트로 줄고, 실내에서는 여전히 마스크 착용이 필수이지만, 야외에서는 백신 접종을 받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단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식당을 비롯한 각종 상점들과 교회 모임에 있어 3피트 거리 두기 요건만 충족된다면 최대한 수용 가능하단다.

이는 백신 접종율이 늘어나고,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줄어들며, 날씨가 따듯해 지는 등 여러 조건들이 규정을 완화해도 좋을 만큼 나아졌기 때문이란다.

반가운 일이다.

어제 내 세탁소에 동네 보건소 직원들이 찾아와 포스터 한 장 가게에 부착해 달라며 두고 갔다. 내용인즉 동네 보건소에서 백신 접종을 하니 누구라도 예약없이 찾아와 맞을 수 있다는 홍보물이었다.

한달 사이에 참 많이 바뀌었다. 달포 전 내가 백신을 맞을 때만 하여도 신청을 하고, 수시로 확인을 하고 기다리고 하였는데, 이젠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접종을 받게 되었다. 이달 말 까지는 집단 면역이 이루어지는 전 주민 접종률 70%를 달성할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 기사도 보았다.

그래도 아직은 좀 이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따른다. 여전히 인구 백만명에 하루 확진자 수가 200명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수는 현격히 줄었다고 한다.

제한된 일상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일처럼 좋은 일은 없다.

내 아이들과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 앉아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서두르지는 않을 일이지만 아이들을 위한 상을 준비하다. 아이들 상에 올릴 이제 막 자라는 푸성귀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참 좋다.

이런 날은 반갑지 않은 손님인 딱다구리에게도 너그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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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 그리고 감사

참 좋은 친구 내외와 우리 내외가 함께 물러가는 가을 길을 걸었다. 이렇게 사람 사이 정(情)을 나누는 일도 조심스런 이즈음이다.

올해 변한 우리들의 일상이다.  일상(日常)!

철학자 강영안은 일상의 삶을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곱씹는 행위가 바로 철학이라고 가르친다. 그가 말하는 일상(日常)에 대한 정의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은 문자 그대로 따라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그러나 그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 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그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 강연안 지음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솔직히 나는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말을 길게 이어갈 만큼 배움이 크지도 않거니와 생각도 깊지 않다.

다만 할 수 있는 한 흉내라도 내보고 살아보자는 생각을 때때로 하며 살기는 했었다. 그나마 그 생각 하나 얻어, 흉내라도 내는 시늉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성서 때문이었다는 고백을 하며 산다.

뚱딴지 소리 같은 철학도 종교도 아니고 그저 일상 아니 오늘에 대한 감사로.

20년 가을 끝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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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常識)에

이른 아침 젖은 안개가 자욱하다. 날씨는 오늘도 무척 찌려나보다. 에어컨 없이도 간밤에 편안한 잠을 누렸다. 아무렴, 버텨온 세월이 얼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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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움직이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에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어 본다. 상식(常識)을 잃은 사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다. 어차피 사람사는 세상에는 모든 이들에게 통하는 상식이라는 게 애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이슬을 밟고 뜰 정리하며 아침 땀을 흘리다. 아침은 늘 축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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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거둔 깻잎, 고추, 오이 등속을 저려 우리 내외 한동안 먹을 밑반찬을 만들다. 오이 듬뿍 넣은 비빔 냉국수로 땀을 식히고, 왈 이열치열이라고 각종 야채와 오징어까지 넣은 호박전 부쳐 든든하게 배 채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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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질하는 여유까지 부리며, 신영복선생의 ‘강의’를 음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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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다. 많은 기계가 있지만 사용하지 않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 하고 멀리 옮겨 다니지 않도록 한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그것을 탈 일이 없고 , 무기가 있지만 그것을 벌여 놓을 필요가 없다. 백성들은 결승문자를 사용하던 문명 이전의 소박한 생활을 영위하며, 그 음식을 달게 여기고, 그 의복을 아름답게 여기며, 거처를 편안하게 여기며 풍속을 즐거워한다.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볼 정도이고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릴 정도로 가까워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내왕하지 않는다.> -노자(老子) 제 80장

신영복선생은 노자 80장을 풀어 이렇게 설명한다. – ‘노자의 이상국가론{理想國家論}입니다. 규모가 작은 국가, soft-technology, 반전 평화, 삶의 단순화 등이 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결승(復結繩)’은 결승문자를 사용하던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만 반드시 복고적 주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간디는 ‘진보란 단순화이다(Progress is  Simplification)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무변(無邊)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작은 미물이라도 찬란한 꽃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온 천지가 꽃으로 가득 찬 세계를 상상해 봅시다. 한마디로 장엄한 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  화엄경(華嚴經)을 푸는 신영복선생의 가르침이다.

낯선 것도 이어지면 일상이 되는가 보다. 몹시 더운 7월의 마지막 일요일도 저물다.

하루 – 22, 그리고 다시 일상

어머니 마지막 길 배웅하고 돌아와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내가 어머니 속 끓이는 일을 하곤 하면 어머니는 머리 싸매고 곧잘 누우셨다. 그렇게 몇 끼 식사 거르시곤 당신 스스로 제 풀에 일어나 ‘이 눔아!. 이눔아!’하시며 일상으로 돌아가시곤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내 일탈된 일상을 적어 놓고 싶어 하루를 세기 시작했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할 무렵 어머니가 더는 일상을 이어가시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 떠나시고 오늘 장례를 치루었다.

이제 어머니가 늘 그러하셨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오늘 예식에서 내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그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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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증손들은 제 어머니를 왕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집안에 많은 할머니들 중에 연세가 제일 많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저희 집안에서 실제로 왕이셨습니다.

왕은 왕이로되 섬기는 왕이셨습니다. 넉넉치 않은 소농의 6남매 중 둘째 맏딸로 태어나신 어머니는 딸로서 동생으로 언니로 누나로 출가외인이 되어서도 왕처럼 친정가족들을 돌보셨습니다.

시집와서 꽉 찬 30년, 홀 시아버님 한복 계절마다 시치시고 다려 준비해 올리셨습니다. 제 할아버지 마지막 임종을 지키신 이도 어머니입니다.

저희 네 남매를 섬기는 일은 그냥 어머니의 즐거움이셨습니다. 딱 일년 전 아흔 둘 연세에도 저희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맛있는 것 먹일 수 있을까 그 생각으로 늘 분주하셨습니다.

손주들과 증손자들을 위한 축복의 기원과 기도는 그냥 어머니의 일상이었습니다.

73년 함께 사신 제 아버님 삼시 세끼 어머니 손 안 거친 음식 잡수신 횟수를 셀 수 있을 만큼 지극히 섬기셨습니다.

어머니의 93년 한 평생은 온전히 가족들을 위한 삶이셨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머니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저 감사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머니의 아픔과 슬픔에 더해, 제가 눈치조차 채지 못한 어머니만의 아픔과 슬픔 모두 가슴에 묻고 오직 그저 감사로 당신의 삶을 정리하신 어머니셨습니다.

하여 오늘은 어머니처럼 모든 게 감사입니다.

먼저 어려운 때에 제 어머니 마지막 환송예배를 집례해 주신 송종남 목사님과 배성호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델라웨어 한인 감리교회 믿음의 성도 여러분들께 드리는 감사도 큽니다.

저나 저희 가족들이 알지 못하더라도 어머니 살아 생전 제 어머니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속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제 가족들에게 보내는 감사도 큽니다. 어머니께서 누리신 마지막 일년은 제 누나의 극진한 정성 덕입니다. 외조 해 주신 매형과 누나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전화 인사 이어와 어머니의 한 주간을 즐겁게 마치게 해 준 아틀란타 동생 내외에게 어머니가 전하는 감사 위에  형제들의 감사를 덧붙입니다. 우리 집안에 웃음과 활력을 도맡아 준 막내동생 내외 특히 우리 집안의 기도 담당 막내 매제 덕에 어머니 편하게 떠나셔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말 잘 안 듣는 집안의 유일한 골치거리이자 걱정거리였던  제가 그나마 이 만큼이라도 아들 노릇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제 아내에게 드리는 감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73년 만에 맞는 아버지의 새로운 일상에 이어질 감사의 몫은 이제 왕을 잃은 우리 모든 가족들이 나눌 일입니다. 어머니처럼.

마지막으로 오늘 온라인으로 함께 한 저희 아이들에게 주는 감사 인사입니다.

In memory of your grandmother or great-grandmother, what I want to say is two things. The first is that she lived a life of dedication and sacrifice for her family; that is, your grandfather or great-grandfather, your uncles and aunts, me, and of course, all of you. The other one is that what she said most often in her lifetime was “Always and simply be grateful.”

I believe that she will reach heaven comfortably, thanks to you all being with me today.

Thank you all.

이 모든 감사를 오늘과 어머니와 우리들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루 – 17

내 생각보다 빠르게 주지사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그 동안 영업이 정지되었던 일부 업종들이 문을 열 수 있단다. 일부 업종이라고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업종들이 거리두기 등의 준수사항들을 지킨다면 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부터는 내 세탁소도 정상영업을 해야겠다. 느낌이 왔었나보다. 아침 일찍부터 텃밭 만들기를 오늘로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을 떨었다. 그리고 오후에 들은 주지사의 결정이었다.

열무, 배추, 고추, 파, 양파, 상추, 쑥갓, 들깨, 토마토, 오이, 가지, 시금치, 아욱 등의 채소와  백일홍, 금잔화, 데이지, 물망초, 칸나, 라벤다, 야생화 등의 화초 씨와 모종을 뿌리고 심는 일을 마치고 난 후 들은 소식이다.

이젠 평범한 일상 맞이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다가 재밌는 기사 하나 눈에 뜨여 읽다가 문득 옛 생각으로 웃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기사의 제목이었다. ‘듀퐁가(家)의 저택 돌담장 위엔 왜 둘쭉날쪽한 유리조각이  박혀 있을까? Why does a duPont mansion have a stone wall topped with jagged glass shards?’

내가 사는 델라웨어주는 한때 듀퐁주로 일컬어 질 만큼 듀퐁 가문의 위세가 한세기를 넘게 떨친 곳이다. 듀퐁가문의 시조격인 Alfred I. duPont이 유리조각들이 박힌 돌담장으로 둘러 쌓인 저택을 지은 때는 1901년, 당시 건축비가 2백만 달러. 오늘로 환산하자면 약 오천 삼백만 달러였단다.

제법 긴 기사를 소개할 필요는 없고, 10피트(약 3미터)나 되는 높은 담장에 유리조각들을 박은 까닭은 외부의 도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내부의 가족들 간의 분쟁 탓이었다는 것이다. 스스로들의 감옥을 만들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듀퐁가는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가족 분쟁기사들을 만들어 내곤 한다.

내가 기사를 읽으며 웃은 까닭은 내 어릴 적 기억에 남아 있는 담장 위에 박힌 유리조각들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신촌엔 기와집들과 초가집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서교동으로 넘어가는 언덕받이에는 루핑집들 이른바 하꼬방집들이 들어차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제2한강교가 들어 설 무렵 그 하꼬방들은 이층 양옥집들로 바뀌면서 동네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옥집을 둘러싼 시멘트 담장 위엔 어김없이 유리조각들이 박혀 있거나 둥그런 가시철망들이 얹혀 있곤 했다.

내가 이리도 그 시절을 정확히 기억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내 첫사랑이 그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에 흰 얼굴이 잘 어울렸던 그 아이가 사는 집 담장에도 유리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십 수년 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에서 다시 만났었다. 그 무렵 어느 날이었다. 교회를 갔다 온 아내가  뜬금없이 건넨 말이었다. ‘자기 첫사랑이 여기 온대! 곧 만나겠네.’

사연인즉, 그 얼굴 하얀 아이의 동생 부부가 교환교수로 이 곳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동생 부부를 방문하러 온다는 것이었고, 그 동생과 아내가 언니와 나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맞추다 보니 딱 맞아 떨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 얼굴 하얗던 아이와 그렇게 만나 저녁을 함께 했었다. 그 아이의 가족들과 내 아내는 놀리기에 급급했지만, 그 아이와 수 십년 전 유리조각 박힌 돌담장 집에 살던 아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래 웃었다.

다시 돌아가는 일상의 어느 날, 내 채마밭에서 밥상이 차려지고 화단의 꽃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웃는 모습을 그리며….. 또 웃다.

5-5-20

다시 일상에

<어느새 이월 첫 주일. 생각 하나, 가게 손님들과 나누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그저 바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새해 계획이랄 것도 없이 일월 한 달을 보냈답니다.

모처럼 엊저녁에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지난 한 해와 올 한 해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뉴스들도 찾아 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 하나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제 세탁소에 들어오는 세탁물 중 가장 많은 숫자의 단일 품목으로는 남성 비지니스 셔츠가 단연 으뜸입니다.

그런데 손님마다 맡기는 셔츠의 모습들이 다르답니다. 남성 비지니스 셔츠에 달린 단추들은 보통 9개에서 15개 정도인데 가장 일반적인 셔츠에는 11-12개 정도의 단추들이 있답니다.

어떤 손님들은 셔츠에 달린 단추들을 모두 잘 채워서 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단추들을 모두 풀어서 맡기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셔츠 앞 단추 맨 위에 한 두개를 푼 뒤 셔츠를 완전히 뒤집어서 가지고 오시는 분도 계시고, 셔츠 단추를 모두 다 채운 뒤 새 것처럼 잘 접어서 맡기시는 분도 계십니다.

제 입장에서는 단추를 모두 풀어서 가지고 오시는 분이 제일 반갑답니다. 왜냐하면 셔츠를 다릴 때 반드시 단추가 다 풀린 상태라야 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셔츠를 빨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셔츠의 모든 단추를 푸는 일이랍니다. 그러니 만일 셔츠 단추를 모두 채운 셔츠 10장을 세탁하기 위해서는 세탁 전에 단추 100개 이상을 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엊저녁에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이란 30년 넘게 세탁소를 해 오면서, 모든 손님들이 셔츠 단추를 모두 풀어서 셔츠를 맡긴 날이 단 하루도 없듯이, 모든 손님들이 모든 셔츠 단추를 다 채워서 셔츠를 맡긴 날 역시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이랍니다.

대다수의 손님들은 그저 제가 일에 지치지 않을 정도로 목 단추 두 개, 소매 단추 두 개 정도를 제외하곤 다 풀어서 맡기신답니다. 지난 30년 거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생각이랍니다. 사는 게 다 그런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답니다. 내가 편하고 좋은 쪽 일들이나, 내가 하기 싫고 불편한 일들이나 모두 늘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확율 보다는 대개 내가 마주치는 일들이란 그저 불평도 만족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들의 연속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남거나 오래 기억하는 일들이란 아주 좋은 일이나 아주 나쁜 기억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 끝에 다다른 생각이랍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 하루 일상에 감사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세워 본 올 한 해 제 계획이랍니다.

늘 감사가 넘쳐나는 2월 한 달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It seems like the Year 2020 started just a few days ago, but it is already February. I was simply busy every day and I had to deal with one thing and another. So I spent January without making New Year’s resolutions.

After a while, the other evening, I thought about the past year and this year with a somewhat relaxed mind and even looked for the news in which I was interested.

Then, one interesting thought came across my mind. I’d like to share it with you.

Among the items which were brought into my cleaners, a men’s business shirt is decisively at the top in terms of quantities.

But, the ways in which customers drop them off are various. The men’s business shirt has buttons from 9 to 15, and typically about 11 or 12 buttons.

Some customers bring shirts with all the buttons fastened and some do so completely unbuttoned. Some others bring shirts which are inside out with only one or two front top buttons unfastened. Some fasten all the buttons, fold them well like brand new shirts and drop them off for cleaning.

Those who undo all the buttons are my favorite customers. That’s because buttons must be unfastened in order to press shirts. The first thing that I should do before washing shirts is to undo all the buttons. So, if I process 10 shirts of which all the buttons are fastened, I should have to undo more than 100 buttons.

The interesting thought which had flashed across my mind the other day was that there had never been a day in which all the shirts were unbuttoned and also not a single day in which all the buttons of the shirts were fastened for my thirty-year-long cleaners’ life.

Most customers brought unbuttoned shirts except a few buttons on collars and sleeves, but not enough to make me too tired. It seems that it has been pretty much like that for the past 30 years.

It led me to an idea that life might be like that, too. Though we could face, anytime in life, the things which we feel good and comfortable in doing or the pesky things which we don’t like to do, the things that happen to us most of the time might be a series of simple everyday life events, without complaint or satisfaction.

However, the things which stayed long in our minds and memories might be ones which were extremely good or really bad. Just my thought.

It ultimately led me to the end. I should feel gratitude for simple everyday life. That became my New Year’s resolution.

I wish that you’ll feel overflowing gratitude in February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일상(日常)에

겨울도 없이 봄이 오는 듯한 날씨에 들판 길을 걸었다. 집에서 반 시간 정도 달려 다다른 펜주 West Chester County의 Stroud Preserve 산책길은 일요일 아침 내 일상을 매우 풍요롭게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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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철학자 강영안 선생이 쓴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 ;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를 훑어 읽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日常)은 문자 그대로 따라 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때로는 파안대소할 정도로 즐거운 일이 있는가 하면, 절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픈 일이 있기도 한 삶. 그러나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할 일도 ,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이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영원히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중략-

눈이 있고 귀가 있고 받아들일 가슴이 있다면 일상은 단순한 반복도, 단순한 필연도, 단순히 평범하기만 한 현실이 아니라 자유를 경험하고 깊은 의미를 체험하는 삶의 장소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오간 생각들과 강영안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일상으로 이어지는 내 새로운 한해의 꿈을 품다.

흥춤

흥춤을 한번 추어 보겠다는데 어찌하리! 왕복 다섯 시간 춤 공부 길 나서는 아내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여름 기세가 완연히 꺽인 아침은 상쾌하여 일요일 아침 일부러 라도 드라이브에  나설만한 날씨였다.

아내를 춤 공부방에 모셔(?) 놓고 나는 서둘러 허드슨 강변으로 향했다. 며칠 전 부터 내심 준비해 온 산책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아내의 운전 기사 노릇도 하고, 내 산책 욕심도 채울 수 있는 오늘을 맘껏 즐길 요량이었다.DSC07011DSC07016 DSC07017 DSC07019 DSC07022 DSC07024

허나 나에게 주어진 한 시간 반 산책 시간은 너무 짧았다.

춤 공부방에선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았다. 춤 동작을 놓치거나 잃곤 하는 아내에게 던진 선생님의 가르침이 나를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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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을 머리로 외우려 마시고 몸으로 녹여 음악에 따라 놀게 하세요’ – 그 소리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맘을 끄덕였다. 아무렴, 흥춤인데!

춤 공부를 끝낸 아내와 함께 허드슨 강변에서 일요일 오후 한 때를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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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장보기, 정갈하게 차려진 보리 비빕밥과 콩비지 찌게 밥상으로 배를 채우는 즐거움은 오늘의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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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앞에서 아내와 나는 일상의 다툼을 이어갔다.

아내 왈, ‘요즘 애들은 이런 거 안 먹을거야? 그치!’

내 응답, ‘뭔 소리야? 우리 딸애가 돼지 감자탕을 좋아한다구!’

다부진 아내의  소리, ‘이건 꽁보리밥이라고!’

그랬다. 흥춤은 일상(日常)의 티격태격으로 몸으로 출 일이다.

*** 집으로 돌아와 내 오래된 독서 카드를 찾았다. 이즈음 한국 뉴스를 보며 어지러워 진 내 생각과 오늘의 일이 어우러진 글 하나 찾아 헤맨 일이었다.

<찌들어 보이는 과거의 삶은 한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되었지만 그 때를 산 우리들의 선대(先代)들은 반드시 비관적인 삶 만을 사신 것이 아니었다. 상황은 비록 절망적이고 온갖 시도는 허무하게 끝났다 해도 그들은 굿과 놀이로 모진 현실을 이겨냈다. 부정적인 것들을 커다란 개혁의 의지로 역전 시키는 계기는 바로 어둠에 대한 그들의 따듯한 친근감 때문 일 것이다. – 이상일저 한국인의 굿과 놀이에서> –

흥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