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늘~

어머니날이라고 딸아이가 꽃을 보냈다. 기억컨데 딸아이가 직장을 얻어 집을 떠난 이후 기억할만한 날이면 꽃 보내는 일을 잊은 적이 없다. 꽃 선물을 받을 때면 내가 늘 궁시렁 거리는 변치않는 소리다. ‘지 쓰기도 바쁜데 뭐 이런데 돈을 쓴 담!’ 허나 꽃배달이 조금 늦어지는 날이면 아내보다 내가 조바심을 내는 편이다.

한 두 해 전쯤이던가? 딸아이가 내게 물었었다. ‘아빤 이제 일 그만둘 때 되지 않았어? 일 언제까지 할꺼야?’, 잠시 머뭇거리던 내 대답이었다. ‘글쎄….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대답에 딸아이는 ‘왜?’라고 다시 물었다.

‘Why?’하고 묻는 딸아이의 몸짓과 얼굴 표정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내색과 그런 나를 마치 나무라는 듯한 속내를 담고 있었다. 이어진 딸아이의 주문이었다. ‘일 많이 했잖아! 이젠 좀 쉬고 엄마랑 여행도 좀 다니고….’ 그쯤 나는 적당한 타협안을 내 놓았었다. ‘일 좀 줄이고, 일하며 여행 다닐 계획은 있어.’

딸아이는 어릴 적 내 세탁소를 ‘아빠 집’이라고 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면 나는 아들과 딸에게 그저 미안하다는 맘이 크게 저며온다. 아이들이 한참 자랄 나이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미안함이다.

그 무렵 내가 자는 시간 빼놓고 모든 시간을 보냈던 세탁소 일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할 수 만 있다면 빨리 세탁소 일을 벗어나고 싶었었다. 이따금씩 들었던 이웃과 지인들이 건넸던 뜻없이 지나가는 인사말, ‘당신은 세탁소 하기엔 참 아까운데…’라는 풍선 같은 말에 혹해 여러 해 들떠 지내다 낭패를 본 부끄러운 시간들도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을 되새기면 무엇보다 난 아이들에게 미안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내 세탁소에서 나는 내 천직을 받아 들였다. 그 이후 손님들에게 듣는 말들, ‘너희 세탁소가 우리 동네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너희 내외 웃는 얼굴 보러 온다….’

오늘 하루만 해도 그랬다. 평소 성질 고약한 손님 하나 찾아와 눈물 흘리며 하던 하소연… ‘아이고 글쎄 내가 유방암이란다… 아이고 어쩜 좋니…’ 그 하소연 한참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걱정마! 괜찮을거야. 기도할게’라는 말에 환한 미소 지으며 떠난 얼굴 떠올리며 혼자 중얼거려 보는 말, ‘그래 아직은 더 일 할 나이지!’

‘오늘’이라는 말을 ‘오! 늘~’이라고 풀어 주셨던 이는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님이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루(오늘)만이 영원히 있는 것이다. 오늘의 ‘오’는 감탄사이고 ‘늘’은 언제나 항상이라는 뜻이다.>

글쎄… 언제까지 내가 세탁소 일을 계속할 수 있을런지 모를 일이다만, 하는 날까지는 ‘오! 늘~’이라는 맘으로 감사하며 할 일이다.

딸아이에게 해 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아내와 함께 여행도 한 번 떠나야 할 터.

아이가 보내 준 꽃이 시들 때까지 아내는 손님들에게 말하겠지. ‘제 딸이 제게 보내 준 꽃이랍니다.’

아침에

아침은 늘 새롭다. 아니 ‘늘 새로워야만 한다.’는 내 아집을 이 나이에도 버리지 못하는 내 고백이다. 아침 공기, 아침 바람소리, 아침 새소리 그리고 아침 하늘에 눈, 코, 귀를 맘껏 열어 제치는 내 습관에 대한 고백이다. 하여 아침은 늘 새로워야만 아침답다. 허나 내  주제에 어찌 그 욕심을 채우랴. 허다한 날 아침이 버겁고 이젠 그런 날들이 점점 늘어간다.

그래도 아직은 아침이 참 좋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내 가게가 있는 샤핑몰은 거의 삼 년 째 공사중이다. 몰 안에 많은 가게들 중 내가 두 번 째로 이른 아침에 문을 연다. 거의 24시간 영업을 하는 그로서리 체인점을 빼고는 내가 언제나 제일 먼저 가게 문을 연다.

그런데 이즈음 종종 나보다 먼저 공사판 일을 벌이는 일꾼들 모습을 보곤한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아침 새소리보다 더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오곤 한다.

일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다.

세탁소 일을 한지 거의 서른 다섯 해가 가까워 온다. 그 사이 별 일 다 겪었다. ‘겨우 이런 일 하려고 이민 왔나?’, ‘빨리 내가 하고픈 일을 해야 할텐데…’ 등등. ‘혹’하는 생각에 빠져 이런저런 진창속을 많이 헤매기도 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그저 우리 내외 하루 일할 수 있는 터전이 있다는 것으로 그저 감사다.

오늘 아침, 가게 문을 열고 얼마 안되었을 때 아주머니(할머니- 솔직히 나는 이제 구분이 잘 안된다. 내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이므로) 한 분이 예쁜 꽃바구니 하나를 건네 주셨다. <내 남편이 쓰러져 넘어졌을 때 도와주신 당신들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라는 쪽지와 함께.

엊그제 일이었다.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를 나를 불렀다. 가게 앞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고. 나가보니 거대한 체구의 노인이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괜찮냐?”는 내 물음에 대답한 것으로 보아 노인의 정신은 말짱했다. 꼼짝을 못하고 있는 노인은 다리통이 내 몸통보다 큰 듯한 거구였다.  우선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려고 아내와 나는 거즈로 피를 닦고 붕대를 대며 물었었다. “911 전화를 해 드릴까요? 앰블런스 부를까요?” 노인은 연신 괜찮다며 자신의 차에 올라 앉게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자신이 운전해 병원을 가겠노라며.

순간 참 나는 난감했다. 내 힘으로는 그의 팔을 들어 올리는 것도 버거웠으므로. 그는 거의 250파운드는 족히 넘지 않았을까?

하여 이웃가게 젊은이들과 내 가게 손님들에게 도와 줄 것을 요청했고, 노인을 겨우 겨우 그의 차에 태울 수 있었다. 노인이라고 했다만 나와 몇 살 차이나 났을까, 거의 내 또래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진이 빠진 나는 엉뚱한 감사의 맘이 일었었다. ‘아이고, 이렇게 작고 마르고 가벼운 내 몸에 대해 그저 감사. 어느 순간 내가 저 이와 같은 일을 당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그 누군가의 진을 빼진 않을 터이니…’

바로 그 노인의 부인이 오늘 아침 꽃바구니를 들고 감사를 전해 온 것이었다.

하여,  고백컨대…내가 아직 일을 할 수 있어 감사다.

무엇보다 아직은 아침의 새로움 느낄 수 있어 감사다.

아침에.

딸에게

어느새 12월이 코 앞에 다가섰다. Thanksgiving day 하루를 쉬고 습관으로 이른 아침 가게로 향했다. 연휴 새벽 도로는 한산했다.

어제 밤, 딸아이가 물었었다. ‘아빤 언제까지 일해?’ 아무 생각없이 튀어나온 내 대답은 ‘일할 수 있을 때까지…’였는데 그에 대한 딸아이의 간단한 물음이 내 앞에 놓인 질문이 되었다.  딸아이가 던졌던 아주 간단한 질문은 ‘왜?’였다.

내 나이 마흔이 다 되어 낳은 딸아이가 사는 세상을 내가 모두 이해할 수 없 듯, 아이 역시 내가 사는 세상을 다 알 수는 없을게다. 어쩜 내 스스로도 모르는 일일 수도 있거늘.

간 밤에 모처럼 나눈 딸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되새기며 이르른 가게 앞 하늘 풍경에 홀려 내 눈에 담아 보았다.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열리는 아침에 홀려 아직 어둑한 상가를 덮은 추위를 잊은 채 아침 풍경을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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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든 생각 하나. 동 트는 아침 해를 맞기 위해  산이나 바다 등 명소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내 일터의 아침은 내가 누리는 큰 축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 나절에 맞은 손님 한 분, 며칠 전 작고 예쁜 포인세티아 화분과 분에 넘치는 찬사를 담은 손편지를 전해 주셨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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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편지와 화분을 받던 날, 문득 내 눈에 들어 와 박힌 풍경은 가게 뒤편 우체국 담장 너머에 있는 단풍나무였다. 사철 푸른 나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무들이 누런 잎새들을 다 떨어 버리고 열반에 이른 계절에 우체국 담장 안 단풍나무는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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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우체국 나무인데…. 좋은 소식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시들지 않는 단풍 나무 하나 오래 품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이쯤 내 딸아이에게 보내는 응답을 찾다.

내 일터에서 찾는 즐거움이 있기에… 적어도 그 즐거움을 잃는 날까지는…

36계 줄행랑

오늘 온라인 잡지 American Drycleaner에 실린 세탁인들의 말이랍니다. 올 3월과 지난 해 삼월의 매상 비교를 하는 서베이에 커멘트한 말들입니다. 

동네 다섯군데 있던 세탁소 중 나만 살아 남았답니다.([There were] five dry cleaners in town, now I’m the only one.)”

지난 육 주간 조금씩 나아지는 추세랍니다.(It’s [been] getting better for [the] last six weeks)”

동네 시장 환경은 아주 조금씩 꾸준히 나아지고 있는 듯 한데…(market conditions in our area are somewhere between static and slight improvement.)”

해마다 시간이 갈수록 형편이 나빠진다는…(Year over year, the conditions are getting worse)”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대꾸들이랍니다. 좋아진다는 사람도 있고, 갈수록 어렵다는 사람도 있고 말입니다. 

서베이 응답을 보면 서부 지역을 빼 놓고는 미 전역에서 매출이 지난 해보다 못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아주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세탁인들의 이야기도 있답니다. 

어제 어느 세탁인에게서 받은 전화 내용도 바로 이런 헷갈리는 환경 탓에서 오는 고민이었을 겝니다. 내용인즉은 지난 해 대비 올 1/4분기에 매상이 떨어졌는데 가격을 올릴까 말까하는 물음이었답니다. 

저라고 뭐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뾰족하게 신통방통한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저마다 처한 입장에 따라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일들을 시도하고 되풀이 해 보는 것이지요. 

그 방법들 가운데 한가지랍니다.  얼핏36계 줄행랑과 맞닿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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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불분명 할 때 사람들의 심리도 흥미롭다. 이스라엘 학자 바 엘리는 축구에서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와 골키퍼를 관찰했다. 차는 방향을 보니 왼쪽 1/3, 오른쪽 1/3, 가운데가 각각 1/3이었다. 근데 볼을 막는 골키퍼의 반은 왼쪽으로, 나머지 반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가만히 있는 골키퍼는 없었다. 볼의 1/3은 가운데로 오는데 왜 가만히 있는 골키퍼는 없을까? 왜 그들은 가만히 있지 못할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행동편향이다(action bias).> – Rolf Dobelli의 책 “스마트한 생각들”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들이지요. 뭔가 불안하고, 앞날이 확실치 않을 때면 무슨 일이던 뭔가 해야만 될 것같은 초조감이 일곤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초조함으로 벌인 일들로 인해 상황은 더 꼬이기도 하곤 하지요. 

하여 때론 조용히 하던 일을 묵묵히 하면서 기본적인 일들에 충실해 보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무릇 36계 줄행랑이란 도망그 자체에 뜻을 두는 게 아니니 말입니다.

세태(世態) 이제(二題)

세월이 하수상하니 별별 일을 다 보게 된답니다.

우선 한가지.

어제 커테티컷 Darien에 있는 Sandra’s Cleaners에서 일어난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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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쯤이었다고 하니 정말 눈 깜작할 사이 코를 베인 형국이랄 수 있겠습니다. 시티 워터 (수도물)을 쓰지 않는다면 세탁소에  필수 장비 가운데 하나인chiller를 뜯어다가 팔아 먹으려던 도둑 두 명이 잡혔다는 뉴스랍니다. 

세탁소에서 일어난 강절도 사건 뉴스는 종종 듣는 것이지만, 세탁소가 한참 일하는 시간에 통상 건물 밖에  놓이게 마련인 장비를 뜯어가는 일은 처음 듣는 일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두 명의 도둑들의 나이에 또 한번 놀랐답니다. 쉰 둘, 쉰 셋이랍니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오늘 오후에 뉴저지의 어느 세탁인이 전화를 주셨답니다. 어눌하지만 절실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만….”으로 시작한 그 이의 문의였답니다.

“오늘, 맡긴 지 오년이 지난 웨딩 가운을 찾으러 온 손님이 있었는데요. 분명 맡긴 영수증을 들고 오긴 했는데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도 안나고…. 물건도 없고해서…. ‘없다고 했더니…. 화를 내며 돈을 안주면 법정으로 간다며…. 이럴 땐 어떻하면 좋을지요?” 

처음에 제 대답이었답니다.

“뭘 걱정하십니까? 통산 관례법이라는 게 있는데, 5년이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는 감사하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지만 제가 오히려 찜찜했답니다. 그래 자료를 찾아 보았답니다.

대부분의 주마다 왈 관례에 따라 적용되는 것 같고요. 실제 판례에 나타난 세탁물 보관에 따른 소송 결과들은 이렇답니다. 

Massachusetts Law에 따르면 90일을 보관하도록 되어 있고요. New York Law는 6개월이고요. Ohio Law는 120일로 규정하고 있답니다. 

이런 시비에 말리지 않으려면 넉넉잡고 한 일년 정도는 보관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무튼 세월이 녹녹치 않아서 일어나는 일인듯 합니다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런 일들은 인류사 수천년 이래 늘 일어났던 일이겠지요. 

무릇 세월이 하수상하다는 말은 느끼기 나름일게고요.

자!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나는 게 사람사는 세상이겠지요.

그렇다하더라도 이즘 세태를 감안하여 chiller도 틈틈이 확인하고, 세탁물과 손님들 확인하며 산다고 손해 볼 일은 아닐 듯하답니다.

 

필요와 욕망

언젠가 어느 스님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얻은 한 깨달음입니다. “필요와 욕망을 분별할 수 있는 삶만 살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제 삶에 있어 필요한 것이고, 어디서부터 내 욕망으로 끌고 가는 삶일까? 

불가에서는 “내려 놓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비움”을 말씀합니다. 욕망을 비우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그렇게 비우다 더는 비울 수 없는 것이 “필요”이겠지요. 

나는 어디까지 비울 수 있을까요?

출가(出家)한 사람이 아니니 아내와 아이들과 부모님들과 또 그렇게 얽힌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우선 확보해 두어야겠지요. 그렇게 우선 확보해둔 기본적인 필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꼽아 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필요”부터 따져보니 버려야 할 “욕망”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지요. 

그래 이번엔 거꾸로 버릴 것을 먼저 버려 보는 것이지요. “욕망”을 벗어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컴퓨터 옆에 있는 종이 한 장 버리는 일에서부터 “망설임”이 먼저 인답니다. 필요를 꼽을 땐 별 시간이 걸리지 않던 것이 욕망을 꼽자니 그 놈의 “집착”이라는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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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버리고, 부모조차 버리고,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나를 따르라>했던 것은 예수이지요. 

이 쪽으로나 저 쪽으로나 참다운 출가를 하기 전엔  “욕망”의 끈을 놓긴 어려운 일인가봅니다. 

필요와 욕망을 흰 빨래와 검정 빨래 가리듯 가리울 수만 있다면 참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실행하는 사람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행한다. 한 시대가 그 전 시대로, 또는 그 전의 문제로 되돌아가곤 한다는 뜻이다포도주 병의 코르크 마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역사도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듯 하지만 사실은 수준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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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또는 비지네스맨의 영원한 멘토라고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의 말입니다. 어떤 하나의 현상을 보면 마치 역사가 뒷걸음치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전한다는 것이지요.

인생을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의 개인사나, 조직의 역동성을 굳게 믿는 단체나 크거나 작은 기업사, 민족의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진 민족사 나아가 인류 보편의 자유를 신봉하며 나아가는 세계사는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겠지요.

<실행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 물론 자신이 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아주 많은 일상적인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매일 3시간씩 연습을 한다. 아무도 그가 연습을 좋아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을지라도 40살 이후에도 실력을 향상 시키려면 그것을 즐겨야 한다나는 몇 년 전 한 피아니스트에게서 “나는 내 손가락에 생명이 있는 한 연습을 한다”는 훌륭한 말을 들었다.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연습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책 ‘경영 바이블’에서 한 말입니다.

무릇 직업적인 일이란 대부분 아주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즐길수 있어야합니다. 그 삶이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지요.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으로…

벌써 사년 전 일입니다만 당시 USA TODAY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이 날로 힘들어 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For immigrants, living the dream is getting tougher)

많은 이민자들이 스물비지네스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최근 불어닥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며, 이들의 삶이 이민초기의 무일푼의 상태로 되돌아 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스몰비지네스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내 약 150만명의 이민자들이 스몰비지네스를 소유하고 있으며 비이민자에 비해 이민자들의 스몰비지네스 창업율이30%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bout 1.5 million immigrants own U.S. businesses, according to a study for the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by Rob Fairlie, an economics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Santa Cruz. He found that immigrants are 30% more likely to start a business than non-immigrants.).

미국내 스몰비지네스의 12.5%가 이민자들 소유이며 멕시칸 이민자의 스몰비지네스 소유가 2.22%로 가장 많고 다음이 한인으로 전체의 0.7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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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남미,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이민을 와서 옷가게, 식당, 세탁소, 그로서리등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는 이렇게 끝납니다.

“내 피와 땀과 눈물을 이 땅에 쏟았습니다. (오늘의 고통은) 실로 슬픔입니다.” (I put my blood, sweat and tears in this place. It’s a sad story.)

한인 이민자들인 우리들의 삶은 어떨까 생각을 해 봅니다. 많은 우리 한인 이민자들이 스몰비지네스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신문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우리들의 착각과 편견을 벗어 내 버리면 말입니다.

다른 통계를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안계 대다수가 평균적인 중산층 수입 이하의 소득수준을 보이고, 1가구당 수입이 다른 인종(백인, 흑인, 히스패닉)에 비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5가구중 1가구가 빈곤선 이하) 게다가 아시안계 가정의 54%가 영어 미숙자로 언어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80-20 initiative)

저는 착각과 편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한국 이민자들은 아시안계에 속하기를 거부합니다. 특히나 남미나 흑인계 이민들과 비교되는 것들도 꺼립니다. “한국인”을 이야기 하고 높은 학력과 아시아의 유태인으로 견주기를 즐겨합니다. 이 땅의 타 민족 이민자들 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자부가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이젠 솔직해 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위에 통계나 USA TODAY의 기사와 우리 한인 이민자들의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부”는 지녀야 할 덕목이지만 그 보다 먼저 “솔직”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를 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의 USA TODAY 기사는 1970년대 중반에 그리스에서 이민을 와서 세탁소(Four Seasons Cleaners)를 경영하고 있는Panayiota Koskiniotis 씨의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이다.”라고.

저 역시 그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비록 경기침체의 끝은 보이지 않고, 갈수록 스몰 비지네스로 생계를 꾸려가지 힘들만큼 현실의 여건은 어렵더라도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입니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이질감, 터무니 없이 적은 자본능력 등등 현실을 헤쳐 나갈 도구들도 충분치 않지만 여전히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입니다.”

“솔직”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를 돌아 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이 “이 땅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도구입니다.

비록 어려운 경제환경과 우리들이 지닌 핸디캡들(언어의 장벽, 문화의 이질감, 터무니 없이 적은 자본능력)에도 불구하고 세탁소를 비롯한 스몰 비지네스로 성공 이민의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으로 내 비지네스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일분만 시간을…

오늘 엉뚱한 일로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였답니다. 그걸 허비라고 할런지 좋은 경험이라고 할런지는 아직 판단할 일이 아니지만 아무튼 예상치 않은 일로 하루 해가 저물었답니다.

 

사건은 오늘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이메일함을 체크하면서 일어난 듯합니다. 평소와 달리 아침 출근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건성으로 메일함을 쭉 훑다가 낯익은 이름과 주소에서 보낸 메일이라 무심코  열었는데 아마 그게 화근이었던 거 같습니다.

 

상대방 메일 주소를 이용한 스팸메일이었습니다.  평소같았으면 열어보지 않고 그냥 스팸처리를 했을 것인데… 아뿔사….

 

일을 나가서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고는 컴앞에 앉았더니만 글쎄 제 메일 계정 중 스팸 메일을 열었던 계정에서 누군가가 마구 스팸메일을 뿌린 것이었습니다. 단지 서너시간 사이에 거의 천 여통의 스팸 메일이 제 이름으로 뿌려진 것입니다.

 

부랴부랴 그 회사에 신고를 하고 패스워드를 비롯한 정보를 바꾸었답니다. 해놓고보니 찜찜한 구석이 있어 제가 쓰는 모든 온라인상 계정의 정보들을 다 바꾸었답니다. 엉뚱하게 생각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고나니 머리속이 멍하였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 National Clothesline 2월호  편집자의 글을 읽게 되었답니다. 마침 제목이 “Got a minute?”이었답니다.

 

1분이 그렇게 아깝고 많은 일을 아니 결정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인데, 단지 급한 마음으로 1초를 잘못써서 열지 말아야 할 것을 열어서 소비한 시간들이 생각난 것이지요.

 

아무튼 편집인의 글을 소개 드립니다.

 

 

1분만 시간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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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기대할 뿐 아니라, 좀 더 빠르게 아니면 즉석에서 그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우리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보통 컴퓨터는 초당 100 million(1억), 다르게 말하면 분당 6 billion(60억)의 명령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매 1분 동안에,  570개 이상의 웹싸이트가 새로 만들어지고, 약 47,000회의 애플 ‘app’의 다운로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트위터 사용자들은 100,000개 이상의 트윗을 보내고 있다. 또한 매 1분 동안에, 구글에 2백만 이상의 서치 요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684,000개 이상의 콘텐트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메일 이용자들은 204 million 이상의 메세지를 전송하고, 소비자들은 온라인 쇼핑으로 $272,000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단지 1분 동안에.

 

인터넷에서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60초 라는 시간은 다른 유형의 세계에서도 차이를 나을 수 있다. 매 1분 동안, 미국인들은 총 21,000개의 피자를 먹고 있어서, 곳곳의 피자집 주인들을 수입을 올려 기쁘게 만든다. 물론, 당신도 피자로 끼니를 때울 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당신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60초 동안의 복근 운동 ‘abs’를 다운받을 수 있다. 정말로 더 이상 무엇이든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통증 해소, 빨리 마르는 네일 폴리시, 스프레이 선탠, 밥과 달걀 식사 등을 치과의사가 통상 식사후 양치질 하라는 시간 2분의 절반의 시간으로 할 수 있다.

 

또한 취직 면접에서 첫 60초 동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그 직장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들 한다. 세탁소 손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손님이 옷을 찾아갈 때, 품질에 좋은 인상을 받고 만족하여 충성고객으로 될 지를 결정짓는 것은 종종 바로 대충 살피는 그 첫 번째 눈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