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고집을 버려야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7

제 3강 – 1 : 어떻게 ? (How ?) – 인문학 방법론 1

인문학도 여러가지 학문 중에 하나 입니다. 인문학은 종교적 수행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우선 학문이란 무엇입니까? – 학문에 대한 서구의 전통적 이해는 Aristoteles가 그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에 의하면 ‘학문’(academy), 혹은 ‘학문연구’(academic study)란 “자연, 인간, 인간사회에서 나타나거나(현상) 감지되거나(느낌) 경험(관찰)되거나 생각(사유와 판단)되는 그 어떤 현상, 운동, 행위, 경험, 사유, 판단, 주장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연구, 설명, 증명, 토론, 정리, 정돈, 응용하는 인간의 일체 이성적 행동”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이론적이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이 필요합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감정적 설교나 설득, 종교적 명상이나 기도, 혹은 주관적 자기체험을 일반화하거나 객관화 할수 없습니다.)

Aristoteles는 학문의 영역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져지지는 현상계(現象界)입니다. 즉 우리의 오관(五觀)으로 경험되는 세계가 첫 연구의 대상 입니다. 이것을 그는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고 했습니다.

Physics, 즉 눈 앞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 수학, 화학, 천문학, 기하학, 지리학, 의학, 농학을 비롯하여 이를 응용한 제반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법학, 등 제반 사회과학을 포함하여 모든 자연현상과 사회 현상을 다루는 학문 일체를 형이하학 이라는 이름으로 묶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히 물리학과 천문학, 수학과 기하학에서 출발했던 형이하학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세분화 되었습니다. (의학, 농학, 정치학, 법학 등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서 같은 학문들 사이에서도 서로 소통이 않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최근엔 융합학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으로 감촉되지 않는 세계, 즉 현실적으로 경험되지 않는 분야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전면에 나타나지 않고 뒤에 있는 이면의 세계’를 Metaphysics 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물리학, 즉 physics 뒤에 meta 놓여 있는 학문 philosophy이 모든 학문의 본질을 다루는 근본학이라고 보았고 이를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 혹은 ‘제일 철학’ Proto Philosophia 이라고 이름했습니다.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은 그 접근하는 방법이 어떻게 다를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1)  2004년 Mexico만에서는 Hurricane Charlie가 Florida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Orlando시에서는 엄청난 폭리가 있었습니다. 2불 짜리 ice bag 하나가 10불로, 40불 짜리 모텔 방 하나가 200불이 되었습니다.

이 경우 미 의회와 행정부를 포함한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취 할 수 있는 조치는 ‘재난 발생 지역에서의 가격 폭리 처벌 특별법’의 제정 입니다. 이것이 형이하학의 세계에서 다룰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런데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보면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은 선한가 악한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과연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인간성 속에 있는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있는가?’(M.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2) 이명박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거대한 토목공사 사업인 4대강을 개발했습니다.형이하학적 접근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력의 증가, 실업자의 감소, 산업의 활력, 국토의 개발과 같은 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란 한번 파괴하면 다시 복원이 가능한 것인가?’ ‘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은 우리 후손 들에게도 물려주어서 고루 함께 써야 할 인류 모두의 유산이 아닌가?’

(3) 최근 박근혜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력을 비선 실세와 함께 부당하게 남용하였다는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당하여 헌법재판소의 심리에 의해 파면되었습니다.

이 대통렬 파면 과정 속에서 많은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여러가지 개인적 이해관계나 친소 관계를 따라 촛불이니, 태극기니 하면서 의견을 달리하기도 하면서도 또 법을 지키자, 법질서대로 하면 된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형이하학적 접근법입니다.

인문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목표는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사람은 정직할 수 없는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4)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에 나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자리 창출, 실업자 구제, 복지 수당 증액, 경제 안정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모두 정치에 대한 형이하학적 접근법입니다.

인문학자들은 ‘사람은 과연 밥만 먹고 사는가?’ ‘돼지의 행복도 행복인가?’ ‘진정한 행복과 참된 평등을 이루는 벙법은 무엇일까?’ ‘물질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가?’ 같은 것을 화두로 제시 합니다.

– 기타 우리는 Boat people 이나 asylum seeker 문제, 혹은 FTA 문제, America First, Brexit 같은 정치-사회적 잇슈들을 가지고서도 인문학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를 살펴 볼 수 있겠습니다.

모든 학문은 저마다의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에 따라서 세운 가설과 목표를 향하여 연구, 추진 하게 됩니다.

방법론은 학문 마다 다르게 마련이고 또 같은 학문 사이에서도 여러가지 차이가 있읍니다. 원리는 하나라고 하더라도 방법은 다양 합니다.(One Principle, Many Methods) 방법론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첫 출발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이나 동양적 가부장적 사고를 지닌 이들은 여기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신은 신답게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5

제 2강 – 2 : 무엇을 ? (What ?) – 전환의 시대

6. 서구 인문주의의 역사적 흐름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철학의 시대를 넘어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시대로 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가지 인문주의 사조들이 있어왔지만 , 이제 우리는 르네쌍스 시대의 인문학, 계몽주의 시대의 인문학, 그리고 20세기의 인문학의 내용과 성격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7. 첫째는 15, 16세기에 시작된 인문학으로 르네쌍스 휴매니즘(Renaissance Humanism)입니다. 우리는 이를 ‘인문주의 인문학(人文主義 人文學)’이라고 부릅니다.

인문주의 인문학은 중세 스콜라철학에 대한 반동입니다. Thomas Aquinas에 이르러 절정에 오른 Scholar 철학은 모든 학문을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신(形而上學的 神)에다 집중 시켰습니다. 그야말로 신학이 모든 학문의 여왕이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형이상학적 하나님은 얼마든지 이성적, 논리적으로 그 존재와 활동이 증명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여기에는 현재도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신학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여튼 중세 천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알수도 없는 신을 중심 삼아 왔는데 르네쌍스 인문주의는 모든 학문의 촛점을 이 형이상학적 신으로 부터 눈에 보이는 현실적 인간 세상으로 바꾸었습니다. 눈 앞에서 변하는 이 세상, 과학, 문화, 예술, 정치, 경제 등 실제적 인간 삶의 현실에 관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르네쌍스 인문주의에서는 고전어, 문학, 역사를 비롯하여 법과 정치, 수학과 물리학, 천문학과 지구과학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수학이 학문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르네쌍스 휴매니즘에서는‘인간은 인간답게 생각하고 그저 인간답게 말하고 인간답게 행동해야한다’는 원칙이 강조되었습니다. 꾸미거나 숨기거나 위선적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그리고 신은 신답게’(Francesco Petrarch 1307-1374나 Lorenzo Villa 1407-1457는 인문학의 이상으로 인간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제대로 말하고 떳떳하게 행동해야한다고 주장함으로 데카메론이나 나체화 등이 출현하게 됩니다.)가 이 때의 구호였습니다.

르네쌍스 인문주의는 이후  ‘18세기 啓蒙主義 人本主義’의 기초가 됩니다. 이는 새로운 전환입니다. ‘신으로 부터 인간으로’, ‘맹신적 신앙에서 합리적 이성으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억압에서 자유로 ’코페루니쿠스 Copernicus 적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사람이 사람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중세 천년을 지내는 동안 잃어버렸던 그리스의 고전을 다시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라틴어와 헬라어를 중심한 고전어를 다시 배우고 공부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6세기 유럽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250개를 넘었습니다. 데카르트 자신도 Jesuit에서 세운 ‘라 폴레쉬’에서 그리스어, 라틴어, 문법,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 이 전통이 이어져서 오늘날도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호주 등에서는 고등학교 과목에 Greek과 Latin어 같은 고전어를 개설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고전어 하나를 더 배운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개혁정신의 기본을 이어가자는데 있습니다.)

이리하여 르네쌍스 인문주의자들은 헤로도토스와 호메로스, 헤시오도스와 호라티우스, 아이소포스와 피타고라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전을 재발견해 내고 이를 다시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에 이어 논리학과 수사학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논리학과 수사학은 이론과 합리성과 상식의 터전 위에서 표현하고 설득하는 기술입니다. 사람을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깊게 감동 시키는 것은 감정을 움직이는 설교나 기도가 아니라 이성을 통한 설득이라고 보았습니다.

‘마음을 흥분시키지마라 머리로 이해하게 하여라!’ 사실 언어와 논리는 단순한 지식의 확대 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과 품성을 넓히는 일을 합니다.

언어란 단순히 의사 소통의 도구 만이 아니라 사물의 실체와 본질을 탐구하는 인식의 수단이고 보다 더 넓은 세상을 알게해 주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하여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다른 글과 말을 통하여 다른 나라와 다른 사람과 다른 문화, 역사, 전통, 풍습을 알고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됩니다.  동시에 르네쌍스 인문주의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이때부터 드디어 모든 학문하는 방법론이 철저하게 과학적 터전 위에 세워지게 되었다는 점 입니다. 이는 15세기 중반 인쇄술의 발명과 그 후 이어진 물리학에서의 천체이론에 대한 새로운 학설들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 만유인력의 법칙 등과 신대륙의 발견, 새로운 화학무기의 발명 등이 일체의 인문-사회과학에 대해서도 귀납적 방법론을 요구하게 된 것 입니다. 우리가 이 시기의 정신 사조를 통칭하여 ‘르네쌍스 인문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때부터 드디어 인간이 우주와 역사의 중심에 놓여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3

교실문을 여는 글 3 – 왜 인문학인가?

‘시드니 인문학 교실’이 지향하는 제 1차적 목표는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와 삶의 현장은 물질과 권력(정치권력, 자본권력, 종교권력)을 사람 보다 위에 두고 이것들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며 이를 추구하고 더 많이 획득하는 것에다 사람이 사는 최고의 목표를 두고 있는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한 마디로 이 시대의 인간은 비인간화되고 동물화 되어가고 도구화 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탐욕과 교만의 노예로 전락된지 오래되었습니다.

나에 대한 최대의 원수는 나 자신이고 인간에 대한 최대의 적은 인간 자신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 개인들과 우리 공동체가 보다 더 인간이 인간답게 되고 인간의 품격을 회복, 유지, 확장해 나갈수 있을까 고민하고 생각하고 토론하여 보다 더 선하고 아름다운 개인과 사회를 꿈꾸어 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하여 종교적 신앙에 의존하거나 반대로 사회 변혁적 방법들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읽고 듣고 쓰고 말하고 나눔으로 ‘개인적으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자하고 공동체적으로는 사람다운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어 보자는 하는 이상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 시대 성리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선비가 학문을 하는 이유, 즉 지식인이 글을 읽고 쓰고 가르치는 목표는 ‘사람이 사람답게 되고 또 사람답게 살기 위함’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면 자연히 사람다운 삶도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문학의 일차적 목표는‘사람됨’에다 둡니다.

동양에서의 인문교육이란 곧 인성교육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전인’(全人 Whole man)교육으로 이해했습니다. 서양은 기술, 과학, 테크닉을 중심하여 합리성과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왔지만 동양은 사람됨, 즉 인간의 품성을 중시해 왔습니다.

중국을 중심한 동북 아시아에서는 그의 신분과 직책이 무엇이든, 이를테면 왕이든 사대부이든, 상민이든 천민이든, 농부이든 상인이든 그의 하는 일과 직책이 어떠하든 간에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 될려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외우고, 거기에 따라서 일체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서(四書)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이고 삼경(三經)은 시경(詩經), 역경(書經, 易經<周易>)입니다.

대학의 핵심 개념은 ‘덕(徳)’입니다. 이‘덕’을 기초와 기본으로 삼아 논어는 그 위에다 ‘인(仁)’을 더하고 맹자는 ‘의(義)’를 가르치고 중용은 ‘예지(禮智)’를 보탭니다. 우리는 논어, 맹자, 중용이 가르치는 4가지 핵심 개념인 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사덕(四德)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이것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하나가 추가 됩니다. 곧 ‘중용(中庸)입니다.

아무리 인의예지가 중요한 사덕이요, 모든 것의 기초요, 또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그 어느 경우에도 자기만 옳고 자기만 바르고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는 아직도 덜된 사람이라고 보는 겁니다.

동양의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키 워드(key word)는 중용입니다. ‘극단적으로 나가지 마라. 극단은 절대로 않된다. 극단을 피하라!’  중용이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며 정도(正道)를 걷는 것 입니다. 이 경우 정도(正道)란 ‘옳바른 길’이지 ‘가운데 길’이 아닙니다. 중용(中道)나 중립(中立)이 정도(正道)는 아닙니다.

중용은 흑과 백 사이에 있는 회색이 아니라 검은 검은 검다고 하고 흰 것은 희다고 분명하게 말하면서도 그 둘을 아우르는 포용성을 말 합니다.

동양 인문학의 핵심인 ‘중용’을 영어로는 Harmony and Balance로 번역 합니다. 포용성이란 관용, 너그러움, 똘레랑스(Tolerance)입니다. 동양의 인문학은 극단, 오직, Only, 영어에서 ‘나’ ‘I’는 아무리 문장의 중간에 와도 늘 대문자로 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그릇된 태도라고 봅니다.

나와 다른 것은 그냥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거나 달리 말하거나 다른 스타일로 산다고해서 나만 옳고 그는 틀린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호주와 같이 180여 개나 되는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야하는 ‘다문화 사회(Multi-cultural society)’ 에서는 특정한 민족이나 그들의 문화, 언어, 종교, 전통만 주장하는 것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Living Together 우리의 삶과 평화를 위태롭게 합니다.

과거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십자군 전쟁을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믿었던 중세 기독교, 근대 이후 서구 강대국의 식민지 정책을 등에 업고 선교라는 이름 아래 아프리카와 중남미를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살인, 폭력, 수탈을 감행해 온 기독교 선교의 죄악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수 백만명이나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의식을 비롯하여 지금도 이어지는 이슬람 과격주의자들,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교회만 외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민족적 배타주의, 비관용적 인생 태도, 비타협적 인간 관계 등은 인문주의 정신을 그 밑바탕에서 부터 흔들어놓는 것들 입니다.)

동양의 인문학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원리에 따라서 사람이 현실 속에서 사람답게 살아야 할 실천적 덕목을 네 가지로 요약해 줍니다.

첫째는 측은지심 (惻隱之心 Sympathy)입니다. 사람은 신분과 직업, 성별과 나이, 사상과 언어를 초월하여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자연계와 동식물계 등 세상 삼라만상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일러 줍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자비심, 사랑, 희생,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둘째는 수오지심 (羞惡之心 Goodness)입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 친지, 이웃, 사회와 국가체제에 대해서 까지 잘못된 것이 드러나고 알게되었으면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그 그릇된 일을 바로잡기 위하여 싸워야한다는 교훈 입니다.

셋째는 겸양지심 (謙讓之心 Tolerance)입니다. 한 마디로 겸손과 양보 입니다. 겸손이란 그냥 공손하게 처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어떠한 모습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입니다. 양보란 말이나 행동이나 일이나 물건에 있어서 일체 타인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고 나를 제일 뒤에 세우는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는 시비지심 (是非之心 Justice)입니다. 이는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하여 옳고 그른 것을 가릴줄 아는 지혜입니다. 특히 사회적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그 악에 동조하는 것 입니다.

예수도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강론이나 설교나 설법을 해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한 시대의 지식인들과 지성인들, 교수들과 언론인들은 300여명도 더 되는 어린 학생들이 차거운 바다에서 떼죽음을 당하고서도 2년 반이 넘도록 그 원인은 무엇이고 누가 책임자이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찌 말하지 않고 분노 할 줄을 모른다면 인문학적으로 볼 때 그는 인간이랄 수가 없습니다.

맺는 말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모여서 무엇을 위하여 듣고 읽고 말하고 나눌려고 하는가? 한 마디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고 서로 서로 좀 돕고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 책, 영화, 음악, 그림, 연극, 드라마, 기타 무엇이든지 사람이 되는 데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들을 소개해 주십시요.

그 다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답게 ‘살려고’ 합니다.

어려운 일인줄 뻔히 압니다. 알기는 해도 실천하는 것은 아마 숨을 거두기 까지 불가능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고민하고 괴로와하고 슬퍼라도하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희망의 빛이 비치리라고 기대하며 ‘행복했지만 괴로웠던 사나이’를 조금은 이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생각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             Comments and Questions

             Sharing Time – 함께 생각을 나누어 봅시다.

절대란 절대로 없다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2

교실문을 여는 글 2 – 왜 인문학인가?

1.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일화 입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앞으로 질주하다가도 가끔은 멈추어 서서 그 동안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곤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너무 빨리 달리면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 합니다. 육신을 말 위에 싣고 빨리 달리다보면 정신은 저 만치 뒤쳐진다는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몸만 너무 바쁘게 살아왔던 우리가 생각과 마음을 추수려 보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 중 하나 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은 자아를 둘러보는 ‘자기 성찰’입니다.

명나라 문인 진유계(陳繼儒)의 글 입니다.

‘고요히 앉으니 평상시 내 마음이 얼마나 경박했는지 알겠구나.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니 지난 날 내 말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드러나는구나’

2. 혜능대사(慧能大師)가 법성사에서 한 말 입니다.

어느날 법당 밖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면서 두 스님이 논쟁을 벌렸습니다. 한 스님은 바람이 분다고 했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한참 자기 주장이 옳다고 서로 말싸움을 하고 있는데 혜능이 끼어들었습니다. ‘그건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너희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려는 것은 생각이나 사물에 대한 자기 주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고집 내려 놓기’ ‘집착 내려 놓기’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아닌 동질성 찾기’ 같은 것들에 있습니다.

3.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당 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여행 중 해가 져서 어두운 산중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한 밤 중에 너무 목이 말라 더둠거리다가 웬 바가지에 손이 닿아 그 안에 담긴 물을 마셨습니다. 아주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 둘러보니 간 밤에 시원하게 마셨던 그 물이 어떤 사람의 해골 속에 담겨진 해골수 임을 알게 되어 토기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원효가 말했습니다. ‘물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로구나! 물은 그 물이 그 물인데 어찌하여 나는 꽥꽥거리는가?’

모든 착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 일체의 진리와 비진리는 모두 다 이해의 넓이와 깊이, 그리고 관점, 상황,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칸트식으로 말 하면 ‘물 자체’ (Ding an sich /Thing itself)는 변하지 않습니다.

4. 황희 정승 이야기 입니다.

한번은 종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종이 나아와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은 틀렸고 자기가 옳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난 황희는 ‘네 말이 맞다’ 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얼마 후에 상대방 종이 또 정승을 찾아와서 오전에 나리를 찾아왔던 종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설명을 다 듣고난 황희는 ‘듣고보니 네 말도 옳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종일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본 조카가 못마땅해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흐리멍텅합니다. 제가 들으니 아침에 와서 말한 종 아이 말이 맞습니다’ 그러자 황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 그렇구나 네 말을 듣고 보니 네 말도 맞구나’ 세상은 모두 다 일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절대란 절대로 없습니다.

5. 1920년 대 막스 프랑크 연구소에서는 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빛에 대한 연구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광학 연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일한 실험실에서, 동일한 시간, 동일한 조건을 갖추고, 같은 연구자가 실험을 하는데도 빛이 어떤 경우에는 작은 알갱이, 즉 입자(cubic)로 나타나는가 하면, 또 어떤 경우에는 파동(waves)으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빛은 입자다 ! 아니다 빛은 파동이다!’하는 두 가지 가설이 서로 충돌하고 큰 이론적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 만들어진 이론이 그 유명한 ‘불확정설’(The Theory of Uncertainty /The Uncertainty Principle) 입니다. ‘빛은 입자이기도 하지만 또 파동일수도 있다. 꼭 한가지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이론 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가 세운 이 이론은 이후 자연과학 뿐만이 아니라 철학, 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일체의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전반에 걸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도 정답이 하나로 나타나지 않는데 어찌하여 신학과 철학, 인문학과 사회학, 문화와 예술 같은 인문학이 한 가지 질문이나 하나의 개념에 대하여 오직 한개의 대답이나 결론만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의 질문에는 하나의 답만 있는게 아니다’ 이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생각 입니다.

6. 점묘법 (點描法) – 점 하나 하나씩을 찍어서 커다란 형태를 이루는 미술 기법을 생각해 봅니다.

호주 원주민들의 그림입니다. 작은 점을 하나씩 하나씩 찍다 보니까 어느새 큰 그림이 됩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를 산다는 것은 점을 하나씩 하나씩 찍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 하루 점을 찍어가다보니 일생이 되는 겁니다. 또 우리 여럿이서 제각기 점을 하나씩 찍다보니 그것이 우리 사회가 되고 역사가 됩니다.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하나 입니다.

7. 모자이크(Mosaic)도 마찬가지 입니다.

조각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룹니다. 제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이 갖고 많이 누리는 것 처럼 보여도 인간과 인간이 하는 일이란 모두 모자이크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문학은 서로 협력하여 전체를 이루고 함께 모여서 보다 넓은 세상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작은 사람들이라 하여 기죽을 필요 없고 큰 사람들이라 하여 잘난 척 해서는 않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인문학의 목표 입니다.

8. 실학의 거두, 다산은 정조가 죽은 다음 해, 1801년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 강진 읍내의 한 허름한 주막집 뒤간방에서 처음 4년을 보냈습니다. 그 후 그 곳을 떠나 지금의 ‘다산초당’ (茶山草堂)으로 옮겼는데 그 때 다산은 4년 동안이나 이 폐족당한 선비를 돌보아 주었던 주모와 그의 딸을 위해 그 오두막에 당호(堂號)를 지어주었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사의제’ (四宜齊) 입니다. ‘이 집은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가지를 익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첫째, 늘 생각은 맑고 바르게 하거라. 둘째, 말은 반드시 생각한 다음에 하고 또한 적게하여라. 셋째, 모든 행동은 무겁고 신중하게 해야한다. 넷째, 용모와 의관은 항상 누가 보던 않보던 단정하게 해야한다>

이는 물론 유배 중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추수리려던 자아성찰의 인문학적 자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골의 한 주막집 주모에게 조차도 당호를 지어줌으로 사람을 결코 가벼이 대하지 아니하는 ‘牧民心書’의 태도요, 사람을 낮추어보지 아니하고 대등하게 대하는 인격입니다.

인문학의 목표는 너와 나, 사람과 자연, 하느님과 사람, 어린이와 어른, 여자와 남자, 가진자와 못가진자, having group 과 have nothing group, 정상인과 비정상인, 내국인과 외국인, 원주민과 이민자, 먼저 온 이민자와 후발 이민자, 일체의 모든 甲과 乙 사이에 그려진 빗금(슬레쉬 /)을 철폐하려는 데 있습니다.

인문학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섭니다.

결국 우리는 모여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이상동몽(異床同夢)

<홍길복 목사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에 수강 신청을 하며….

해마다 이월은 내 생각을 좀 넓히는 때이다. 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좀 한가하다는 말이다. 이맘 때면 춥고 눈도 많이 오곤 해서 내 가게가 좀 한가하다. 일요일 말고도 하루 이틀은 눈 때문에 가게 문을 닫고 쉬기도 하거니와 가게 영업시간을 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돈은 좀 덜 들어온다. 허나 시간은 좀 풍부해진다. 그러다보니 평소에 생각지 아니했거나 못했던 것들이 보이게 되어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지는 나름 내가 좋아하는 이월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삼월 초이면 언제나 내 지갑은 가난하다. 삼월 초 내 생일을 해마다 늘 그렇게 맞는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눈도 전혀 오지 않았고 날씨도 추워 본 적이 없다. 가게는 내가 많은 짬낼 틈없이 바빳다.

이 달초에 호주에 계시는 홍길복목사님께서 이메일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 편지를 소화해 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생각의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어서 생각과 돈 모두 풍족하게 삼월 내 생일을 맞게 되었다.

이달 초에 홍목사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내용이다.

참 오랜만 입니다. 그동안 어찌 지내셨습니까? 안부를 묻는 일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서 그래도 벌써 해가 바뀐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한가닥 작은 희망에 대한 희망 조차도 사라져 가는 땅 입니다. – 중략 – 시드니에서 작은 ‘인문학 교실’을 열었습니다. 한 달에 두번 모입니다. 첫번 모임에 그래도 마음을 함께하는 친구들 한 30여명이 모였습니다. – 중략 –  옷은 새 것이 좋지만 사람은 옛 사람이 좋네요.

그랬다. 홍목사님과 헤어져 그는 호주로 나는 미국으로,  함께 했던 한국이라는 삶의 자리를 바꾸었던 시절에 그는 30대였고 나는 20대였다.

이제 그이는 70대 중반의 은퇴목사이고, 나는 은퇴를 바라보는 60대 중반이 되었다. 그래, 우린 서로 옛사람이었다. 다만  거기에 수식어 하나를 얹는다. <변하지 않은…>이라고.

‘각자 삶의 자리는 다르지만 이 교실을 통하여 이상동몽(異床同夢)하는 <인문학 친구들> 입니다. <異床同夢>! 이 얼마나 멋진 말 입니까? 잠은 각기 다른 데서 자지만 꿈 만은 같이 꾸기를 소망합니다.’

그 이가 첨부파일로 덧붙인 <시드니 인문학 교실> 강의록에 적어놓은 말이다.

나는 홍목사님의 허락을 받고, 그 이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강의록을 이 곳에 올린다. 더하여 내가 참 사랑하고 존경하는 필라 인근의 친구들과 함께 한 달에 두번씩 이 강의록을 참조하면서 인문학 공부를 쫓아가려 한다.

자!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로  ‘들어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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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살며 딱 두 교회에 적을 올렸다. 한국의 신촌 대현교회 – 그 곳에서 만났던 많은 친구들은 내 삶을 지배했다. 홍목사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내 아내 역시. 수 년전에 아내와 딸과 함께 그 곳을 찾았었다. 그리고 이민와서 한 곳…. 나 역시 옛이 그립다.>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1

 교실문을 여는 글 1 – 왜 인문학인가? 

일찌기 다산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 한양에 있을 때 몇몇 친구들과 계(契) 모임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죽란시사’(竹欄詩社)라 했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며 세상을 걱정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선비들이 모여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일종의 풍류계(風流係)였습니다.

우리도 지금 ‘시드니 인문학 계’를 통하여 인생의 시름과 아픔은 서로 위로하고 시대와 인간을 피차 보듬어 주면서 이 절망의 땅에서도 함께 희망의 무지개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같이 먹고 자면서도 꿈과 생각은 서로 다른 동상이몽(同床異夢)가들이 아니라, 각자 삶의 자리는 다르지만 이 교실을 통하여 이상동몽(異床同夢)하는 <인문학 친구들> 입니다. <異床同夢>! 이 얼마나 멋진 말 입니까? 잠은 각기 다른 데서 자지만 꿈 만은 같이 꾸기를 소망 합니다.

지난 12월 이 모임을 준비하던 이들은 ‘시드니 인문학 교실’의 목적과 기대를 다음과 같은 말로 다듬어서 표현했습니다.

(1) 동양과 서양에서 이어온 인문학의 전통과 역사, 목적과 내용, 방법론과 한계를 함께 공부해보자. – 클라스의 진행은 주로 준비된 강연, 토의, 책읽기와 나눔 등이 될 것이다.

(2) 이를 통하여 인문학적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개인적 사고의 깊이를 심화 시키고 또 그 틀을 좀 더 넓혀 나가자. – 우리는 종교단체들 처럼 무엇을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하고 의심하고 고민하고 진솔하게 마주침으로’ 더 바른 삶이란 무엇인지를 추구해 나가려고 한다.

(3) 이런 사유의 깊이는 인문학 교실에 참여하는 친구들 개개인의 삶에 의미와 보람을 갖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4) 더 나아가 우리는 이 교실을 통하여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으로 하여금 보다 정의롭고 사랑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약간은 논리적으로 서술된 이런 <시드니 인문학 교실의 목적>을 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야기들을 통하여 좀 유연하게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