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 그 씁쓸함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고, 여전히 아파하는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며, 오늘 여기에서 세월호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빌어 보자는 마음으로 함께 모여 꾸준히 의견을 나누는 작은 모임이 있습니다.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인근에 사는 뜻맞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그 모임의 이름을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약칭, 필라 세사모)이라고 부른답니다.

그 중 몇 사람들이 매주 한차례 온라인에서 만나 “인권”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기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인권문제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까닭을 찾아보고자 시작한 토론모임입니다.

매주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대한 발제가 있은 후 자유토론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한시간 남짓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젠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모임으로 뜨거워졌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인권이란 무엇인가?’, ‘왜 인권을 말하는가?’, ‘유럽 인권사’, ‘동양 인권사’, ‘미국 인권사’ 등을 두루 훑어 보았고 이제 ‘한국 인권사’로 넘어가고 있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발제자들이 열성적으로 준비하고 있어서 새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참 많답니다.

지난 주에는 미국인권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상당 시간을 미국내 인권보호 증진에 크게 기여한 미 연방대법원의 중요한 인권판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그리고 이민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재미 한인동포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이야기들도 제법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미연방대법원이 때론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의 의도와 어긋나는 판결도 하고 (아이젠하위 대통령과 워렌 대법원장), 국민감정에 반대되는 판결도 소신 있게 내놓기(아히만 판결-성조기보호법 위헌 판결) 도 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소수자 보호라는 큰 논리가 있었고, 그 논리를 지탱해 주는 기반에는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이야기했답니다.

최근에 있었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은 바로 이런  소수자 보호라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판결을 내린 미 연방대법원 법관 가운데 한 사람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82)대법관이  이 주 초에 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녀의 방한 일정 중에는 한국내 1호 동성 부부인 김조광수(영화감독)·김승환(영화사 대표) 부부와 트렌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씨 그리고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 국내 대표적인 성 소수자들과 만찬 간담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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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성소수자들과 미국 연방대법관의 만남 방한중인 미국 연방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운데)가 4일 저녁 서울 용산미군기지에서 성소수자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하리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만나 만찬을 했다. 만찬을 마친 김조광수 감독과 임태훈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과 만찬 내용을 공개했다. – 출처 오마이뉴스

이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82)대법관의  방한 행보에 발끈한 곳은 한국 기독교계였다고 합니다.

<38개 교단 협의체인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양병희 목사)은 지난  5일 <미국 긴즈버그 대법관의 방한 행보에 우려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그가 한국에 와서까지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며 소송 중인 김조광수-김승환씨를 만나고 트랜스젠더를 초청해 격려하는 등의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법질서와 윤리가치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므로 삼가야 한다”고 비판했다.>고 오마이뉴스는 전하고 있었답니다.

또한 이 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 역시 이날 <미국은 한국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종과 타락의 성문화를 강요하는가?>라는 논평을 통해, ‘긴즈버그 미 대법관은 동성애 전도사인가?’라며 “노골적인 성소수자 지지활동과 법조인들에 대한 소수자 보호 인권운동 강연은 법관들의 성윤리 의식마저 왜곡시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언론회는 “미국이 우리의 우방국가요, 혈맹이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와 문화가 있고, 공유할 수 없는 문화와 가치도 있다”며, “긴즈버그 대법관에게 충고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이유로도 동성애 조장 확산과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강연을 중지해주기 바란다. 미국의 타락한 가치를 대한민국에 강요하지 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고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들의 주장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한국의 성소수자를 만난 것은 “한국의 법질서와 윤리가치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요 “방종과 타락의 성문화를 강요”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딱히 그들의 언사가 조목조목 따질 가치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오늘날 한(인)국사회의 ‘ 법질서와 윤리’는 무엇인지?”, “’방종과 타락의 성문화’가 만연한 곳은 과연 어디인지?”를 따져 묻는 일과, 한국교회가 과연 그러한 질문을 던질만한 수준에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법이 있기 전에 삶이 있었고, 그 삶에는 하나님의 뜻이 먼저 있었다”는 성서적 가르침과는 너무나 먼 곳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구약성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저 유명한 예수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마가 2: 27)”라는 선언은 바로 사람살이의 삶을 보호하는 가치가 최우선이라는외침입니다.

이때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삶이란 약한 자, 가난한 자, 소수자의 몫이라고 성서는 단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런 자명한 성서의 선언에 얼마나 부합된 모습으로 신앞에 서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방한 행보에 발끈했다는 한국 기독교계의 대응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비성서적 모습을 또 다시 확인한 듯하여  씁쓸하답니다.

박래군을 생각함

오늘 한 사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삶과 그가 오늘 겪고 있는 모습을 읽으며 제 가슴 속에 커다란 돌멩이가 하나 달렸습니다.

사내의 이름 박래군입니다.  그는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한국시간으로 어제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사들을 훑어본 바에 따르면 이번이 열 두번 째 겪는 일인 듯합니다.

제가 세월호참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뉴스들을 찾아 읽고는 했지만 박래군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던 까닭은 이른바 ‘운동’이나 ‘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공동위원장이자 4.16 연대 상임 운영위원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현 대한민국 정권이 그들의 예정대로 세월호참사 마무리 작업 수순에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박래군이 누굴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답니다. 그래 그와 관련된 뉴스들을 검색해 보았답니다.

우선 눈에 먼저 뜨인 것은 그가 지난 달 어느 야외집회에서 박근혜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늘어놓았다는 기사였습니다.

지난 6월 22일자 TV 조선의 “뉴스특급 730”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세월호 대책위 “박근혜 마약?” 발언 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월호대책회의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해 마약 했는지 안 했는지, 한 번 확인해봤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세월호 당일 ‘피부미용, 성형수술 등을 하느라고 보톡스 맞고 있던 것 아니냐. 보톡스 맞으면 당장 움직이지 못하니까 7시간 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의혹도 있다”,  “청와대 곳곳을 다 뒤져서 마약이 있는지 없는지, 보톡스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등등의 말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설혹 그런 의심과 밝히고 싶은  굴뚝 같은 마음이 있다하더라도 그래도 대통령인데 좀 과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의 구속 사유에는  “괘씸죄”도 한 몫 했겠다는 생각이 더해졌답니다.

그냥 그쯤해서 “자기 과시형 운동권 사내”쯤으로 치부하고 그에 대한 관심을 끄려고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의 이력이 그에 대한 검색을 더하게 만들었답니다.

참으로 몹쓸 학연이나 지연이 그에 대한 관심의 끈을 잇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이력을 보니 저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가 적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졸업하던 그 해에 그는 입학을 했다고 합니다. 저에게 딱 10년 후배인 셈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민 보따리를 꾸리던 그 때 그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제 관심은 급격히 높아졌답니다. 그래 낮일을 제끼고서 그에 대한 본격적인 검색에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하루해를 접는 이 시간, 박래군 생각에 가슴에 돌덩어리 하나 메고 있습니다. 그 묵직한 아픔은 그가 살아온 지난 30년 세월 때문이 아니라 그가 어제 영어(囹圄)의 몸이 되면서 남긴 말에 그의 30년이 오롯이 녹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구속되더라도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목표를 향해 변함없이 국민과 함께 행동 할 것”이라는 그의 말속에는 그가 30년 인권운동에 몸바쳐왔던 생각과 꿈과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박래군다음은 지난 2012년 11월에 한림 국제대학원 정치경영연구소에서 그와 대담한 내용들 가운데 발췌해 소개드리는 박래군의 생각들입니다. 당시 대담 제목은 “별 11개 단 이 사람, 인생 제2막에서 던진 돌직구”입니다.

그의 생각들을 곱씹으며 동시대를 가슴으로 안고 살아온 한 사내에게 빚진 마음으로 무거운 밤입니다.

“운동권 진영에서 가장 큰 문제가 정파적인 문제다. 이런 것들이 자꾸 운동을 왜곡시키고 대중들의 참여를 막고 그들의 자발성이 분출되는 것을 막는 것 같다. 정파가 종파화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 가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역량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며 대중과 유리된 채 정파 이익 중심의 운동을 전개하는 운동권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나는 지금 인생의 제2막을 살고 있다.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갖고 대학에 들어가서 소설을 썼던 것까지가 제1막이다. 그다음은 원치 않는 운동권이 되어 운동을 사는 게 제2막이다. 2막을 60살까지 살려고 한다. 제3막의 삶은 1막에서 못 이룬 소설가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운동을 하다 보면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거지 운동의 주체는 당사자들이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의 성과도 그 사람들이 가져가는 게 맞고 패배도 그들의 질 수 있어야 한다.”

“인권운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정파에 속해있기도 했는데 그게 참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유가협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NL열사면 내가 NL이 아니라고 해서 안 갈 것인가? 그렇지 않은 거다. 그 죽음 앞에서 내 입장에서 다르다고 하더라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파적인 것을 내려놓자고 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적 인권운동론을 주창하는 사람이다. 인권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청춘은 그런 중에서도 되게 더럽다.(웃음)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1학년 때는 학생운동 이런 것은 일절 무시하고 소설 쓰고 술만 마셨다.(웃음)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악마의 손길에 의해(웃음) 운동권이 되었고 그 뒤로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한 1년 동안 학생운동을 하다가 이제는 재밌게 운동하나 보다 하다가 강제징집을 당했고, 일주일 동안 서대문경찰서에서 두들겨 맞고 그날로 강원도 양구에 있는 훈련소 가서 또 두들겨 맞았다. 맷집이 약했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웃음)”

“프랑스 철학자 자끄 랑시에르가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진짜 정치지 주류가 하는 것은 지배’라고 얘기를 했는데 참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 정치란 누군가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갈등들을 조절하고 자기 권리를 못 찾고 있는 사람들로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는 인권운동은 아주 훌륭한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훌륭한 정치를 30년 이상 해온 것이니까 정치에 미련이 있겠는가.(웃음)”

“1998년 ‘양지마을 사건’이라고 큰 이슈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충남 연기군에 한 부랑인 수용시설이 있었는데 진짜 감옥보다 더한 비참한 곳이었다. 거기에서 탈출했던 어떤 한 사람의 얘기를 듣고 일주일 동안 조사를 해서 당시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과 몇몇 단체와 함께 그곳에 쳐들어가 거기에 갇혀 있었던 300여 명이 되는 사람들을 전부 해방시켰다. 그 사건이 터지고 언론에는 ‘노예의 섬’이라고 해서 기사화되었고 우리는 거기서 나온 사람들을 위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대행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상당수가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사회복지시설은 죽어도 가기 싫다고 해서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나중에 수소문 해보면 이들 대부분은 노숙인이 되어버리거나 죽어 있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과연 무엇이 잘못됐나’ 고민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대행해서 언론에 폭로도 하고 소송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옆에서 돕고 그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풀도록 했으면 그 사람들이 이후 노숙자가 되고 알콜중독자가 되어 거리에서 죽어가는 일이 없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다. 인권센터를 통해 대리하는 운동이 아니라, 피해자가 스스로 주체로 서게 하는 인권운동과 사람들이 차분히 인권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자기의 권리를 찾아가는 길을 밟아갈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싶다.”

“독재 정권 때는 억울하다는 생각조차도 못 했었고, 조금 상황이 나아졌을 때는 억울하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으니까 그냥 지나쳤던 것이 지금은 사람들의 의식이 좀 높아져서 자신이 인권을 침해당한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송까지 가는 경우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굉장히 이기적으로 수용되어 있다.

‘이기적으로 수용되어 있다’는 말은…

‘내 인권피해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그것을 굳이 뛰어들어서 휘말려?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하면서 문제제기를 안 한다는 거다. 이렇듯 인권문제가 철저하게 개인화 되어 있고 이기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운동진영에도 존재한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욕하는 것이 ‘평소에는 남의 인권에 대해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너네 해고당하면 인권운동 찾느냐?’라는 것이다. 인권운동이라는 것은 일종의 ‘품앗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정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공감하고 같이 싸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특히 IMF 이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연대의 가치들이 철저하게 깨져 나갔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진보운동이 엄청난 패배를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1위고 범죄율도 엄청나게 높아지고 있지 않나. 사람들이 옆에서 죽어나가는 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있다. 내 일이 아니기도 하고, 이런 일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웃음)”

박래군  – 그의 말처럼 이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목표를 향해 변함없”는 길을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박래군을 생각하며…

묻는 이들에게 길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Those who do 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 미국의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가 한 말입니다.

또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나아가 선생은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라는 교훈으로 늘 역사에게 오늘을 묻고 내일을 설계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E. H. Carr(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과거의 어떠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선택할 때 존재할 수 있다.”라고 명징한 대답을 내민 바 있습니다.

저는 이즈음 뜻이 맞는 몇몇 사람들과 역사공부를 함께 하려고 시간을 좀 내고 있습니다. 조금 뜬금없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다.

4-16a세월호참사 일주기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결성된  4.16연대가 ‘이젠 인권을 이야기 할 때’라며 제안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뉴스에서 이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바로 “뜬금없이 이게 뭐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사람 살아가는 모든 모습들을 다 담아낼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그릇에 “세월호”를 주어담는다는 게 적절한 것인가?라는 스스로의 물음 때문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라는 말조차 피로감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즈음에 이런 접근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이런 물음을 들고 성서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성서가 제가 준 응답은 에스겔(에제키엘) 34장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너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목자들에게 그들을 쳐서 이르는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망하리라. 양을 돌보아야 할 몸으로 제 몸만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아! 너희가 젖이나 짜 먹고 양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 먹으면서 양을 돌볼 생각은 않는구나. 약한 것은 잘 먹여 힘을 돋구워 주어야 하고 아픈 것은 고쳐 주어야 하며 상처입은 것은 싸매 주어야 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 데려 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그들을 다만 못살게 굴었을 뿐이다.

양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 온갖 야수에게 잡아 먹히며 뿔뿔이 흩어졌구나. 내 양떼는 산과 높은 언덕들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내 양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 다니는 목자 하나 없다.

그러니 목자들아, 이 야훼의 말을 들어라. 내가 맹세한다. 나의 양떼는 마구 잡혀 갔고, 나의 양떼는 목자가 없어서 들짐승에게 찢겼다. 그런데도 내가 세운 목자들은 나의 양떼를 찾아 다니지 않았다. 제 배만 불리고 양떼는 먹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목자들아, 이 야훼의 말을 들어라.

주 야훼가 말한다. 목자라는 것들은 나의 눈밖에 났다. 나는 목자라는 것들을 해고시키고 내 양떼를 그 손에서 찾아 내리라. 그들이 다시는 목자로서 내 양떼를 기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양떼를 그들의 입에서 빼내어 잡아 먹히지 않게 하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보아라. 나의 양떼는 내가 찾아 보고 내가 돌보리라.’> – 에스겔 34 : 1 – 11, 공동번역

바로 “존엄과 안전 지대에서 내 팽개쳐져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위로이자, 그렇게 “사람들을 내 팽개친 권력자들”에 대한 응징의 소리였습니다. 나아가 신의 직접통치를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본 응답이었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 살아온 모습 곧 역사에 묻기로 한 것입니다.

혼자 역사 앞에 서서 묻기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는 일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평소 뜻이 엇비슷한 이들과 함께 나선 일입니다.

어디까지가서 어떤 응답을 얻을런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행여 헛수고가 되도라도 뜻을 새길 수는 잇겠다는 생각입니다.

‘인권’이라는 큰 그릇 속에서 지금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세월호에 얽힌 피맺히고 한맺힌 소리들이지만 언젠가 그 그릇을 꽉 채워 세상을 향한 큰 울림이 되는 날을 그리며 역사에 묻고자하는 것입니다.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함이요, 미래를 열기 위함이요, 세월호를 역사적 사실로 남기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