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異邦人)

때론 뉴스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와 믿기 어려울 때가 많다. 종종 내 이해의 한계를 벗어난 한국 뉴스를 접할 때면 이방인이 되어버린 내 처지를 돌아보곤 한다. 가까이는 오십 여년 전 기억이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부터 스물 무렵까지 한남동, 보광동, 이태원동은 외가 식구들이 살던 곳이었다. 혼인 후 한남동 본가를 떠난 이모와 외삼촌은 이웃 보광동, 이태원에 새 살림을 차렸었다. 모두 어머니 손잡고 드나들었고, 조금씩 머리 굵어 가며 사촌들과 뒷골목 누비던 곳이었다.

이즈음 한국 뉴스를 통해 자주 듣는 용산의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완전히 낯선 이방인이 된 내 모습을 보곤 했다만,  오늘 이태원 참사 뉴스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먼 나라 소식으로 다가와 정말 낯설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왜 이리 아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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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가을 하루였다. 아직 철이 덜 들어 하루를 헤아려 살기엔 이른 나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만, 계절은 세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즈음 가을을 음미하며 산다.

텃밭 가을걷이를 하다가 허리 펴니 눈길 닿는 곳마다 그저 감사가 이어졌다.

그 넉넉함으로 하루 해를 보내고 맞닥뜨린 이태원 참사 뉴스였다.

사정이 어찌되었건 목숨을 잃은 대다수가 젊은이들이었 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비록 이방인이 되어 산다만, 바라기는 거기나 여기나 편했으면 좋겠다. 두루 제 정신들 차리고.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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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장터에서

엊저녁 아내가 사 온 오이 양이   두 식구 먹기엔 좀 벅차다. 쉬는 날, 오이김치나 담아 볼까 했더니 마늘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침 산보 겸 마늘을 사러 나간다.

이른 주일  아침, 마켓은 한산하다. 얼핏 보아 서로의 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내 또래 더는 사내랄 수 없는 사내들이 가벼운 장바구니를 채운다.

한 사내가 나를 불러 세운다. 사내나 나나 일요일 아침 게으름이 잔뜩 묻은 허름한 차림새다. 사내가 입을 뗀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해 주렴. 나는 진심으로 너를 환영한다. 네가 이 땅에 사는 것을 환영한다. 네가 이 땅에서 이틀을 살았건, 사십 년을 살았건, 아님 여기서 태어났건, 이방인으로 보이는 너를 환영한다. 내 선조들 누군가도 처음엔 이방인이었으므로, 내 말의 진심을 이해해 달라. 나는 이즈음 워싱톤에 있는 미치광이(트럼프)를 대신해 마주치는 이방인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있단다.”

그는 은퇴한 변호사라고 했다. “나도 너를 환영해!” 내가 사내에게 던진 말이다.

나도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만은 아니라고 했다. 허나 이즈음 헷갈리고 있다. 트럼프가 수치스런 사내에게 동조하는 마음과 한반도 뉴스 속에서 박수칠 수 밖에 없는 트럼프의 모습 사이에서 헷갈리고 있다.

11월은 곧 다가올 것이고, 이방인인 나나 이방인이었던 사내는 또 한번의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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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동네 어귀 밤나무 집 밤꽃들이 한창이다. 코끝에 거슬리는 밤꽃 냄새와 가을에 맞을 그 튼실한 밤톨 사이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