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 세탁소 한 쪽 벽면엔 가족 사진 몇 장과 내가 찍은 사진 몇 장 더하여 내가 좋아하는 시 몇 편이 장식으로 걸려 있다.

오늘 거기에 작은 소품 몇 개를 더했다. 천조각들과 실을 이용해 만든 내 바로 아래 누이동생의 작품이다.

내겐 누나 하나 동생 둘 그렇게 누이가 셋이다. 부모들에게 아리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느냐만, 우리 네 남매 가운데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은 아마도 세 째 였을 게다. 한국전쟁 통에서 다 키워 잃었던 맏딸 몫까지 온전히  받아 안았던 내 누나는 내 부모의 기둥이었고, 막내는 어머니 아버지의 재롱이자 기쁨이었고, 아들 하나인 나는 늘 걱정거리였다. 세 째에겐 늘 아린 구석을 내비치시던 내 부모였다.

거의 오 분 거리 한 동네에서 사는 나와 누나와 막내와 다르게 세째는 멀리 떨어진 남쪽에 산다.

그 동생이 나를 깜작 놀라게 한 것은 달포 전이었다. 바느질 일을 하며 살았던 동생이 가게를 접은 지도 꽤 오래 되어 그저 손주들 보며 사는 줄 알았는데, 천과 실을 이용한 작품들을 만들어 작은 전시회를 열고 작품집도 만들었다는 소식이었다.

동생의 작품집을 받아 들었던 날, 나는 내 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 일어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 한 방울 찔끔했다.

동생의 작품집은 자연, 사계절 그리고 가족이라는 주제로 꾸며 있었다. 나는 그 주제들이 참 좋았다.

이젠 우리 남매 모두 노년의 길로 들어섰다. 이 길목에서 조촐하게 주어진 삶 속에서 신이 내려 주신 은총과 살며 만들어 나가는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사를 드러내며 살 수 있다는 기쁨을 잠시라도 나눌 수 있음은 우리 남매들이 누리는 축복일게다.

아내와 매형, 매제들은 덤이 아니라, 이 관계의 실제 주인일 수도 있을 터.

*** 엊그제 막내가 내게 보낸 신문 기사 하나. 아틀란타 조지아 Gwinnett County 공립학교 올해의 교사상 semifinalist에 조카 아이 이름이 올랐다고.  열심히 사는 아이들에게 그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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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 떠오르는 일터의 아침 하늘을 바라본 아주 짧게 누린 느긋함이 건내 준 하루의 은총(恩寵).

그 은총은 일터를 향해 무거운 걸음을  떼던 늙은 노동자나, 먼 길 떠날 준비로 든든한 아침 밥상을 즐기던 오리 떼들이나, 늘 같은 아침이건만 하늘 바라보는 여유를 잊고만 사는 내게나 똑같은 크기로 아침마다 다가올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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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은총에

어느 해 부터인가 추수감사절 저녁상을 내 손으로 차리기 시작했었다. 아마 족히 십여 년은 넘었을게다. 이젠 내가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칠면조는 아들 녀석이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아주 작은 것을 굽고, 아내와 딸과 며느리는 닭이 좋다고 해서 제법 큰 놈을 골라 구웠다. 어머니 입맛에 맞게 새우젓 듬뿍 넣고 김치찜과 코다리찜도  쪄 상 위에 올렸다. 매형과 누이 생각하며 단호박도 굽고 통오징어 구이도 곁들였다. 내 몫으로 돼지갈비를 구워 와인 한잔 곁들였다. 아내는 전을 부치고 잡채를 더해 상을 풍성하게 했다.

두 해 전부터 먼저 떠난 장모가 자리를 비우고, 올핸 거동할 수 없는 장인이 함께 하지 못했다. 올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셔 오기 위해 누이와 나는 많이 망설였었다. 그러고보니 그 사이 며늘아이가 새 식구가 되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나는 전도서 가운데 한 구절을 읊었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을 일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전도서 3: 12-13)’

몇 젓가락 입에 넣어 오물거리시던 어머니가 말했다. ‘당최 입맛이 없어 먹질 못하겠더만,,, 오늘은 입맛에 딱 맞아 많이 먹었네…’

오늘 내가 누린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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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사족 – 내 서재 한 구석에서 발견한 약 상자 둘. 웬만한 통증에는 타이레놀 하나 먹기 싫어하는 내게 달포 전 서울 큰 처남이 보내 온 보약이었다. 인삼이야 익히 아는 것이고 황보단이 뭔가 하여 검색해 보다 그 가격에 놀라다.

바라만 보아도 은총에 은총을 더하는 감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