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16

<세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 중략 –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한 반향실(反響室, echo chamber, 메아리방)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주는 뉴스피드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제15장 ‘무지’에서

오월이다. 여전이 비일상적인 생활이 계속되고 있지만 오월은 오월이다. 화사하다.

총을 차고 미국기를 흔들며 모든 가게들은 정상영업을 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해야 한다는 시위대 소식과 연일 늘어나는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들이 동네신문 온라인판 헤드를 함께 꾸미고 있다. 주지사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조금은 강경한 편이다.

내 가계경제(家計經濟)와 어머니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르면 나 역시 빨리 모든 것들이 정상화 되기를 바라지만, 공동체 사람살이로 보자면 조금은 진득해 질 때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이즈음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빠르면 앞으로 두어 주, 길어야 한달 안짝으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이전처럼 다시 세탁소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게 될 듯하다.

마음이 급해지는 까닭은 마구 뒤집고 파 놓은 채마밭과 화단들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뿌린 씨앗들과 심은 구근 들에서 파란 싹이 올라오고, 옮겨 심은 모종들의 하루가 궁금한 이즈음 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내 삶에 찾아 온  새로운 걱정이다.

생각컨대 아마도 내 일상은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 이전으로 완벽히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달포 전 신문에 게재된 유발 하라리의 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처음 읽었을 때 떠올랐던 말은 ‘변곡점’이었다. 그것이 역사의 변곡점이든 내 개인적 삶의 변곡점이든 이즈음 내가 살아가고 있는 COVID -19  상황은 분명 하나의 큰 전환점임에 분명하다. 그 무렵 책장을 덮었던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느꼈던 그에 대한 생각의 연장이었을 수도 있다.

이즈음 COVID 이후 경제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넘쳐나지만, 유발 하라리의 지적은 사람살이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운 좋게도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벗들이 있다. 이건 분명 내가 누리는 더할 수 없는 축복이다.

벗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요 며칠 동안 하라리의 글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을 꼼꼼히 곱씹어 읽다.

혹시 관심있는 이들을 위하여 원문 링크와 번역한 글을 드린다.

무릇 이전(以前)과 이후(以後), 모든 시간들은 그 하루를 사는 이들의 몫이다.

https://amp.ft.com/content/19d90308-6858-11ea-a3c9-1fe6fedcca75 (영문)

https://docs.google.com/document/d/1lIU7c1JRVQ1D4W5n7vBY8CGCOQPJtSMlu6hfSvkmG-o/edit?usp=sharing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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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에

한국에서 갑자기 확산된 코로나 바이러스와 연계되어 듣게 된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에 대한 뉴스들을 보다가 다시 손에 든 유발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까닭은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부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의 전작들에 대한 믿음도 한 몫 했다.

5부 21장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저자는 17장과 20장에서 이즈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는 거짓 뉴스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 몇 대목들이다.

<우리는 요즘 ‘탈진실(post-truth)’이라 부르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사방이 거짓말과 허구로 둘러싸인 무서운 시대다. >

<사실 인간은 늘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왔다. 호모 사피엔스야말로 탈진실의 종이다.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데서 나온다.>

이쯤해서 저자는 종교를  예로 든다.

<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들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짜뉴스’라 불러서는 안된다는 충고를 들어왔다.>

신천지 뉴스가 다시 이 책을 들게 한 대목이다.

어찌 신천지 뿐이랴! 모든 종교와 이념과 오늘 내 삶 가운데 마주치는 정치 경제 언론 등등 모든 시장의 영역에서 마주치는 문제이다.

유발 하라리가 내어 놓는 가짜로 부터 해방되는 해결책이다.

<모든 가짜 뉴스의 기저에는 진정한 사실과 고통이 존재한다.>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좋은 출발점은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니다.

종교적으로는 참 평신도가 되는 일이고, 그저 일상에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는 일이다.

그저 내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