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외식(外食)은 팬데믹 이후 처음이니 가히 15개월여만이다. 간혹 take-out한 경우는 있었지만 식당 테이블에 앉아 본 일은 참 오랜만이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이웃 마을을 찾아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누리다. 작은 마을 금요일 저녁은 팬데믹과는 상관없는 해방구였다.

거리 구경을 하며 걷는 우리 내외를 향해 누군가 전하는 인사말. “아유~  안녕하세요!” 지나가던 차안에서 소리치는 귀에 익은 한국어였다.  연(緣)의 끈들이 이어져 있기에 살아있음이다.

“우리가 부모님들 처럼 함께할 수 있을까?” 아내의 물음에 나는 차마 강한 부정은 못하고 웃었다. 내 부모는 70년, 처부모는 60년 해로를 하셨는데… 우리 부부가 그걸 넘으려면 내 나이가?… 쯔쯔쯔…. 하여 웃다.

바라기는 이렇게 저렇게 얽힌 연들과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이런저런 소소한 시름과 걱정들 속에서도, 우리 내외가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고 감사하는 날들이 어제보다는 넉넉해지기를.

모처럼의 외식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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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외식

아내와 주말 저녁 조촐한 외식을 즐긴다. 식사를 하며 내가 말했다. “혹시 우리 이거… 박근혜  탄핵 기념 외식?” 아내의 응답. “그것도 괜찮네!”

이어지는 아내의 물음. “어머니 아버지꺼 하고, 울 아버지꺼랑 시켜서 배달해 드리고 가자!” 시간을 확인한 후 내 대답. ”시간상 아버지 어머니는 늦었고, 장인 것만 하나 시켜가자구. 아버지 어머니는 내일 따로 들리자구.” 그렇게 아내는 장인 몫으로 따로 주문을 해 놓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내가 놀라며 하는 말. “아니, 얘네들이….. 아버지꺼로 주문한게 이게 아닌데… “  이미 가져갈 음식은 테이블에 놓여 있었으므로, 아내의 화는 조금 도가 높아 있있다.

서빙하는 친구를 불러 뭔가 잘못되었다고 항의하는 사이, 매니저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젊은 동양처자였는데 그녀의 가슴에는 눈에 익은 뱃지가 달려 있었다. 노란 세월호 뱃지였다.

주말 저녁 꽉찬 테이블에 한국인(동양인)이라고는 우리 부부 밖에 없었으므로, 노란 세월호 뱃지로 연결되는 그 매니저와 우리 부부 사이의 연은 정말 남다른 것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문제는 무슨…. 그냥 당신 가슴에 달린 노란 뱃지가 고마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