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페친 한분이 웹툰(미국에서는 Webtoon보다는  Webcomic 이라 합니다만) ‘송곳’ 이야기를 꾸준히 올리실 때만 하여도 제 눈길은 거기 가닿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드라마 ‘송곳’ 이야기가 연이어지면서 티저 영상을 올리셨고, 제가 그걸 보게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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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드라마 ‘송곳’을 찾아 보기 시작했고, 5회까지 보았답니다. 매회 드라마가 시작될 때 똑 같은 자막이 되풀이 됩니다. “이 드라마는 2003년 6월 어느날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라는 자막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제 머리속엔 2003이 아니라 1970년대와 2015년 오늘의 모습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답니다.

조지송, 조화순, 김경락(이 양반은 1980년대 미국와서 만났지만)목사님들의 모습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인천과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를 이끌었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이들을 이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내 중반(제가 이민온 이후는 모른답니다)까지 이른바 노동운동에 삶을 바친 이들의 얼굴들을 떠올려 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 어제 송곳 5회를 보다가  “같은 색인지 알았는데 아니였다.”라는 대사에서 떠오른 이가 있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 기억속에 있는 1970년대에 비하면 2015년 지금의 대한민국은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비단 대한민국 뿐만 아닙니다. 이곳 미국내 동포사회의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먹고, 입고, 자는 환경의 변화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제가 이민온 1980대 중반만 하더라도 개밥통조림 사다먹은 이야기가 그냥 우스개소리만은 아닌 때였습니다.

아무리 못입고, 못먹고, 열악한 잠자리라 하더라도 그 때에 비하면 오늘날은 가히 천국에 가깝다고도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나, 2003년이나, 2015년 오늘에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줄세워 평가하고, 가르고, 나누어 차별하는 일입니다. 어찌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차별이 더욱 더 심화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쯤, “같은 색인지 알았는데 아니였다.”라는 대사에서 떠오른 분 이야기입니다. 조지송, 조화순목사 이상으로 유명세를 탓던 이입니다. 이즈음에도 종종 뉴스에 이름이 오르락하기도 합니다. 저희 부부 결혼식 때 축복기도를 해주신 분이기도 하십니다.

올초에 그 이에 대한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답니다. 그와 가까이 지내는 분에게서 전해들은 것이지요. 꽤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그 이에게 물었답니다. “(목사로서) 이거 좀 과하지 않은가?”라고 말이지요.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답니다. “우리 고생할만큼 했잖은가? 이젠 이 정도는 우리도 누릴만 하지!”라고요.

저는 목사가 최고 고가의 차를 타고 다닌다고 문제가 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그 차를 어떤 생각으로 타고 다니고, 그 차를 이용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따져 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무엇보다 “우리 고생할만큼 했잖은가? 이젠 이 정도는 우리도 누릴만 하지!”라는 말은 2015년 한국인들 특히 60대 이후 세대들의 굳어진 생각을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우리 고생할만큼 했잖은가? 이젠 이 정도는 우리도 누릴만 하지!”라는 말을 고민없이(내가 느끼기에) 뱉어내셨을 이 어른이 두 분 조목사님들과 어깨 나란히 노동현장을 누비고 다니셨던 1970년대에는 분명 성서에 뜻을 두고 예언자적 사명을 다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성서 예언자들은 그들이 예언자적 소명을 다할 때만 기록으로 남겨졌고, 그 소명을 다했을 땐 소리없이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2015년 오늘은 여전히 ‘송곳’같은 예언자들이 요구되는 시대랍니다. 어쩌면 1970년대나 2003년 보다 더욱 절실하게 말이지요.

돌아가라! – 엘리야 이야기

성서 우리들의 이야기 -13

남북으로 왕국이 갈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 된 여로보암의 죄는 성소에 야훼 제단을 쌓고 거기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일에서 시작됩니다. 여로보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남왕국 유대와 달라야 한다는 신생국가로써 내세워야 할 국가적 모델이 필요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똑같은 야훼를 섬기지만 남왕국 예루살렘과 다른 형태의 제사 방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죄를 쌓게 된 배경입니다.

여로보암 이후의 왕들인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때까지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런 모습에서 크게 엇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아합왕 때에 이르러 야훼는 철저히 버려지고  이세벨의 신인 바알이 나라의 신으로 섬겨지게 됩니다.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 사당이 들어선 것입니다. 또한 아세라신의 목상도 만들어 세워 섬겼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 것이고, 갈멜산에서 일 대 850 싸움까지 겪게되고 바알신을 섬기던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는 일대 숙청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뒷심은 바로 야훼만이 하나님이라는 백성들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 이후 목숨줄 연명하고자 도망친 쪽은 아합왕이 아니고 엘리야였습니다.

왜? 승자가 도망을 가야했을까요?

남북 분단왕국 이야기

왕(王)이 아닌 예언자들의 역사(役事 또는 歷史) – 남북 분단 왕국 이야기 1

예언자 이야기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아주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비밀 – 포로기 7

(당신의 천국 – 쉰 일곱 번 째 편지) 

“너 다니엘아, 이 말씀을 비밀에 붙여 마지막 그 때가 오기까지 이 책을 봉해 두어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쳐 잘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 중략 –  “언제쯤 마지막 때가 와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 중략 –  “한 때, 두 때 하고 반 때가 지나 거룩한 백성의 군대를 부순 자가 죽으면 모든 일이 끝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 일이 어떻게 끝날 것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다니엘아, 물러가라. 이 말씀은 마지막 때가 오기까지 봉한 채 비밀에 붙여질 것이다.  – 중략  – 정기제사가 폐지되고 파괴자의 우상이 선 다음 일천 이백 구십 일이 지나야 끝이 온다.   일천 삼백 삼십 오 일을 기다리며 버티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그러니 그만 가서 쉬어라. 세상 끝날에 너는 일어나 한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다니엘 12 : 4 -13 

먼저 다니엘서 마지막(?)장인 12장의 성서 구절을 소개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마는 아닌 여정이랍니다. 

기껏 이야기를 다 해 놓고서 “이건 절대 비밀이니, 마지막 때까지 너만 알고 있어라.”, 이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입이 근질거려서 말입니다. 게다가 “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 때가 언제냐?”는 물음에 돌아 온 대답은 그저 황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한 때, 두 때 하고 반 때가 지나 거룩한 백성의 군대를 부순 자가 죽으면 모든 일이 끝날 것이다.” 

당신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시겠는지요? 그래 다시 그 때가 언제냐고 다그쳐 묻자 돌아 온 답이지요. “정기제사가 폐지되고 파괴자의 우상이 선 다음 일천 이백 구십 일이 지나야 끝이 온다.” 

다니엘 이야기는 이렇게 헷갈리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성서에 놓여있는 위치도 애매하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읽고 있는 성서에는 에스겔서 호세아서 사이에 놓여 있어 예언서 가운데 하나로 놓여 있는데 반해 히브리 성서에는 에스더와 욥기 사이에 있어 욥기, 잠언, 전도서, 시편 등과 함께 성문서에 속해 있답니다. 

그 뿐이 아니랍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성서에는 12장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헬라 성서에는 14장으로 되어 있답니다. 공동번역에는 외경에 다니엘 제 2경전으로 기록되어 있고요. 

이 책을 쓴 사람과 그 시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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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고,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실존한 사람이냐 아니냐하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다니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길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 1장에서 6장까지는 유다왕조의 여호아김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포로 다니엘이 바벨론 왕궁에서 겪는 이야기에서부터 바벨론이 망하고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 시절 까지의 역사적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의 바벨론 유다 포로 시대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던 무렵까지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후반부 7장에서 12장까지는 다니엘이 본 환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곧 종말을 예견하는 묵시록입니다. 신약에서 요한계시록에 대비되는 구약의 유일한 묵시록입니다. 

묵시록 또는 묵시문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신구약 중간시대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이야기 할 때 풀기로 하고 여기서는 대충 넘어가겠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묵시문학이 널리 퍼졌던 시절에 대해서만 잠시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성서에는 몇가지 단편적인 묵시문학적 이야기들이 있답니다. 창세기 에녹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이사야, 스가랴 등에 나오는 것들이지요. 그러나 한 권의 책으로 담아 이야기가 쓰여진 곳은 구약의 다니엘과 신약의 요한계시록 두 권이 있습니다. 

성서에는 두 권 뿐이지만  오늘날까지 알려지거나 남아있는 묵시문학 책들은 에녹서, 바룩서, 천문서, 희년서 등등 여러 책들이 있답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이 기록된 때는 대략 기원전 250년 부터 기원후 150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답니다. 

세상 마지막 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깊었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묵시문학 또는 묵시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므로  따로 떼어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비밀로 하라! 너만 알라!”, “그 때는 모년 모월 모일인데 그 모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명령 사이에서 사기치고 도적질한 수많은 인간들의 기록들이 있거니와 오늘도 여전히 차고 넘쳐 난답니다. 

자! 오늘은 다니엘서의 전반부만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많은 설(說)들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가 쓰여진 때는 기원전 165년 전후, 유다 땅이 그리스 곧 헬라의 영향 아래 있을 때 쓰여진 것이라는 설이 대세입니다. 

이 때는 유다의 전통과 신앙이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크게 흔들릴 때였고, 당시 유다를 지배하고 있었던 헬라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주전 175-163년)는 철저히 유다의 전통과 야훼신앙을 짓밟고 엄청난 유다인들을 학살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중간사 시대에서 이야기합니다.) 

견딜 수 없는 험한 세상에서 옛날 바벨론 포로시절(약 사백 년 전)에 모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야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굿굿히 지켜 나갔던 다니엘과 함께 하셨던 야훼에 대한 기억들을 남긴 책이 바로 다니엘서 전반부입니다. 

이제 바벨론의 멸망과 바사(페르시아)의 등장, 그리고 포로들의 귀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복기 – 포로기 6

(당신의 천국 – 쉰 여섯 번 째 이야기) 

과거의 역사를 복기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전망한다. – Nouriel Roubini (세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던 뉴욕대 교수)  

‘너희의 하느님 야훼께서 앞장서서 친히 싸워 주실 것이다. 에집트에서 너희에게 해 주신 일을 목격하지 않았느냐? 이번에도 몸소 그대로 해 주시리라.  광야에서도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았느냐? 너희가 바로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길에서도 야훼 너희 하느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제 아이를 업듯이 너희를 업어다 주시지 않았느냐?  그렇게까지 해 주셨는데도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를 믿지 않았다. – 신명기 1 : 30 -32 

바벨론 포로 시절에 일했던 신명기 역사학자들의 정신은 신명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의 제목을 보면 대략 그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성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創世記) 는 천지창조 이야기, 출애굽기(出埃及記)는 애굽 탈출 이야기, 레위기는 제사법전, 민수기(民數記)는 인구조사 이야기라는 가늠이 가능합니다. 

한국어 성서는 초기에 중국어 번역본을 재번역해서 이루어진 것들이지요. 그래 제목들도 중국어(한자어) 성격과 일치하는 것이 많답니다. 모세 5경 중에 중국어 번역본과 한글 번역본의 제목이 다른 것은 레위기 하나 뿐입니다. 중국어는  利未記라고 한답니다. 영어 번역본 제목이Leviticus인데 이걸 중국어 발음과 가깝게는利未이 되고 우리말로는 레위가 된 것이지요. 

그러면 신명기(申命記)는 무슨 뜻일까요? 영어 번역본은Deuteronomy   라고 되어 있지요. 영어 제목의 뜻은deutero- 가 “두번 째” 또는 “다시(再)”라는 뜻이 있고 –nomy는 어떤 학문을 말할 때 붙이지요. 그러니까 다시 쓴 이야기 정도의 뜻이 있겠지요. 

이걸 한자어로는 申은 보통 ‘납 신’이라고 해서 나비 곧 원숭이를 뜻하는데요, 그 이외에도 ‘알리다, 펴다 (신고 申告, 신문고 申聞鼓 등)’라는 뜻이 있답니다. 命은 명령이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알리는 책이라는 뜻인데, 때로는 申의 의미에는 重 곧 다시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명기(申命記)라는 책의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알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그리스어 성경본의 제목(deuteronomion)  역시 “다시쓰는 법전a copy of this law 또는 두번 째 법전this second law” 이라는 뜻이 있으니 신명기라는 제목은 알맞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은 대부분 유다의 전통과 관습에 통달한 계층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제사장 출신이었다거나 이제 우리들이 이야기하게 될 다니엘 등의 출신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입으로 전해져 오던 이야기들(구전)과 수많은 단편적 기록(원 신명기라고부르기도 한답니다.)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전통과 신앙에 따르면 야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신들 곧 유다민족의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자손 만대까지, 세상 끝날 까지 번성과 영화를 누리며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조상들의 신 야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길들은 야훼 하나님을 버리고 바벨론인들로 살아가는 방법과 야훼 하나님께 매달려 미래의 세상을 바꾸는 일에 매달리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실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이 시절의 바벨론 기록에 따르면 재빨리 바벨론 사람이 되어서 큰 돈을 번 유대인들의 이야기들이 남아 있답니다. 

“지난 세기에 발견된 상업용의 고대 문헌을 기록한 토판문서에는 수많은 히브리인들의 이름이 나온다. – 중략  – 히브리인들은 바벨론의 모든 환경에 적응하여 언어까지도 받아 들었다.” , “그러나 이방세계와 민족적 사회적으로 혼합되는 길을 그들의 독특한 종교적인 특성이 막아주었다.”  – 군네벡(Gunneweg)이 쓴 이스라엘 역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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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운데 신명기 역사가들이 택한 방법은 유다민족이 걸어 온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복기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왜 우리들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왜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 바벨론 땅에 끌려 오게 하셨는가?”, “그럼 이제 야훼 하나님은 우리들을 어쩌실 작정이신가?”라는 물음들을 안고 지난 일들을 돌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전해 오는 이야기들과 그들이 지니고 있는 기록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야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 보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을 기록해 남기는 일들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를 비롯한 신명기 역사서들(여호수아, 사사,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입니다. 

이 역사서들을 기록하면서 그들이 사용한 잣대 곧 사관(史觀) 을 일컬어 신명기 사관이라고 합니다. 

그 사관의 기본 틀은 “야훼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다. 계약을 위반한 쪽은 언제나 유다와 이스라엘이었다. 야훼 하나님은 유다 민족을 향해 첫번 계약의 정신으로 돌아 올 것을 늘 촉구하셨다. 여전히 계약을 위반하고 제 고집만을 피우는 유다민족에게 훈계의 채찍을 치셨고, 우리가 바벨론에 있는 까닭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만 간다면 신실하신 야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새 세상으로 인도 하신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신명기 역사가들이 생각한,  돌아가야만 하는 계약의 기본 정신은 누구에게나 평등함이 이루어 지는 공동체로 돌아가는 정신이었습니다.  오직 야훼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평등한 사람들이 온 몸과 마음과 혼과 영을 다하여 야훼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정신 곧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들의 노력을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천년 만년 갈 것 같던 바벨론제국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아주  짧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오바디야(오바댜) 예언자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가렵니다. 구약성서 가운데 단지한 장 그것도 21절로 끝나는 정말 짧은 책입니다. 내용은 유다의 영원한 적인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에서 시작된  후손들의 끈질긴 다툼에 대한 경고와 야곱 가문의 승리를 예견하는 것인데요, 이 책에서는 야곱 가문인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할 때에 에돔이 돕기는 커녕 고소해 하는 죄 때문에 애돔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행태에 대한 벌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랍니다. 

이제 다니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나는 누구? 2 – 포로기 5

(당신의 천국 – 쉰 다섯 번 째 이야기) 

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읍니다.  우리는 그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 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 고린도전서 2 : 12 – 14, 공동번역에서 

성경을 다른 말로 풀이하자면 이중적인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들은 이것을 기록했고, 하나님은 인간들을 통해 이것을 기록하였다. 성경은 인간의 기록인 것과 동시에 신적인 기록이다.  – J. I. Packer의’ 하나님의 말씀들(God’s Words)’에서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모든 일은 뜻이다. 뜻에 나타난 것이 일이요, 물건이다. 사람의 삶은 일을 치름(경험)이다. 치르고 나면 뜻을 안다. 뜻이 된다. 뜻에 참여한다. 뜻이 있으면 있다.(존재 存在) 뜻이 없으면 없다.(무 無) 뜻이 있음이요, 있음은 뜻이다. 하나님은 뜻이다. 모든 것의 밑이 뜻이요, 모든 것의 끝이 뜻이다.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다. 뜻 깨달으면 얼(영 靈), 못 깨달으면 흙. 전잰을 치르고도 뜻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영원히 멍에를 메고 맷돌질을 하는 당나귀다.  –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 

사관(史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고 했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예순 해를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그리고 지금도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입니다. 그 가운데는 제 아내처럼 저와 거의 한 몸인 사람도 있고, 제게 베풀기만 하신 부모님들, 그저 주고만 싶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족들입니다. 조금 범위를 넓혀 본다면 지금 현재 제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나 모임, 일에 연관되어 만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주 범위를 넓혀서 제가 누려온 시간들 곧  60년으로 시간을 늘이고 그 안에서 스치듯 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어마어마한 수가 될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지금 이 순간 제 머리 속을 스쳐가는 얼굴들도 있고, 전혀 제 머리 속 기억에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말 한 번 꼭 다시 보고 싶은 얼굴도 있고, 행여라도 다시볼까 겁나는 사람의 얼굴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얽혀서 일어났던 혹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일들 역시 ‘아, 다시 한번…’하는 일들도 있거니와 ‘다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일들도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와 만났던 모든 이들도 그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와 똑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지금 제 모습을 봅니다. 지금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현재의 제 모습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운 제 아내로부터 지금 제 머리 속에 없는 그 누군가가 생각하는 저에 대한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 예순 해 동안의 결과물입니다. 그 결과물에 대한 평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객관적 평가가 있을 터이고, 제가 스스로 내리는 주관적 평가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개인사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 때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객관적인 평가와 주관적인 평가 사이에서 말입니다. 

바로 그 평가의 잣대, 기준을 어디에다가 두느냐 하는 문제를 이야기 하려는 것입니다. 

개인사에서 공동체나 민족, 국가라는보다 큰 범위로 생각을 키워 보기로 하지요. 

일단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 공동체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보지요. 지난 약 한 세기 동안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지 경험, 이산(離散자신들의 삶의 자리에 따라 후에 제일동포, 조선족, 고려인, 미국인 등등…), 해방, 분단, 전쟁, 4.19, 5.16, 유신, 10.26, 5.17…. 등등등 

이런 집단 또는 공동체의 경험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평가의 잣대가 바로 사관(史觀)이라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은 똑같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1987년 6월10일에 유월항쟁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생활을 하시던 부모님 사이에서 피난지 부산에서 세상에 나왔고 유월 항쟁 직후 미국으로 이민을 온 제가 경험했던 시기의 대한민국 곧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난 일들 입니다. 

바로 어떤 시점에 어떤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아주 심지어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즈음 한국에서 뉴스가 되어 이 곳까지 전해진 역사 교과서 문제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 

어떤 평가의 잣대로 지난 일들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기록하느냐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그 기록에 따라 그 공동체의 미래가 결정되어지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정말 중요한 열쇠중 하나가  바로 사관(史觀)인 이유입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내가 되어 있는 모습, 또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오늘 여기에 그려져 있는 모습을 바라 보면서, 여기 이렇게 있기까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며, 어떤 까닭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이 바로 사(史)이고, 그것을 보는 눈이 바로 관(觀)입니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을 되돌아 보면서 그 시절은 치욕의 세월이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니와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한민족이 근대화되고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거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 왔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오늘, 나와 가까운 사람들 또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영원 무궁토록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늘 우선하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이게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세로 이어지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서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약 이천 오백년 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갑니다. 

JewsInExile

나라가 완전히 망했고, 포로로 끌려간 이들, 피난 간 이들, 그 땅에 남은 이들 그렇게 새로운 공동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전에는 모두 다윗과 솔로몬의 자손인 유다인들이었는데 이제는 가나안에 남은 유다인, 이집트 등으로 피난 간 유다인 그리고 바벨론 포로가 된 유다인들이라는 새로운 집단 공동체가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한 때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스런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 남 북으로 갈라져 살던 이야기들, 아니 아주 오래 전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에 정착하기 까지의 이야기들이 이들 모든 집단에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다 나라가 망하고 서로 살고 있는 자리와 처한 위치가 다르게 된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차라리 잘 된 일일수도 있었고, 다른 어떤 집단이나 개인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였을 수도 있고, 어떤 공동체나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여기에 왜 어떻게 이렇게… 그럼 내일은?”이라는 물음으로 다가 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바벨론에 포로로 가 있던 그 누군가가 그런 물음 앞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신명기사관으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라고 한답니다. 신명기 역사가들 이랍니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남으 나라에 잡혀와 있는그 당시 현재의 모습 속에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그 모든 과정 속에 담긴 뜻을 찾아 내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결과가 바로 신명기에서 열왕기까지의 이야기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시대가 구약성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바로 이 신명기 역사가들이 “나는 누구냐? 우리는 누구냐?”라는 물음으로 야훼 하나님 앞에 서 있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깨달은 ‘나’, ‘우리’ 곧 신명기 정신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나는 누구? 1 – 포로기 4

(당신의 천국 – 쉰 네 번 째 이야기)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성 안에 살아 남은 사람들과 미리 항복했던 사람들과 남은 기술자들을 바빌론으로 데려 가고,  가진 것 없는 영세민들은 포도원과 농토를 주어 유다 땅에 남겨 두었다. – 예레미야 39 : 10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성에 남은 사람들과 바빌론 왕에게 항복해 온 자, 그리고 기타 남은 백성들을 포로로 데려 갔다.  그는 백성들 중 가장 비천한 층의 사람들만 남겨 두어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 열왕기하 25 : 11- 12 

구약은, 역사책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작용된 이 구속사가 ‘곳곳에서 이미 신약의 그리스도 사건을 미리 예표한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 폰 라드(Gerhard von Rad)의 구약신학(Old Testament theology)에서 

우리는 패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한국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 아베 노부유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은 함께 모여 살게 됩니다. 에스겔의 기록에 따르면그발강가 텔아비브에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말이 포로이지 반자유인으로 자신의 전통을 이어가며 살 수 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들은 멸망 직전의 유다사회에서 상층부에 속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identity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유다인들은 왕국이 멸망하던 당시 사회의 중하층민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유다인 출신의 총독을 세우고 그들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이들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바벨론으로 잡혀간 사람들의 땅으로 추정할 수 있는 토지들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토지개혁을 이루어 그 때까지 땅이 없던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농사를 짓게 한 것입니다. (저 위에 예시한 예레미야와 열왕기하의 기록입니다.) 

땅을 분배받은 이들은 새롭게 변한 사회에 급격히 물들고 맙니다. 야훼 하나님에 대해 조상들이 해오던 전통을 쉽사리 잃어 버린 것입니다. 왕국이 망했건 말건, 왕이 내 나라 사람이건 이웃 대국의 총독이 다스리든, 내 땅이 있고 내 식구 잘 먹고 잘 사는데 뭐 골 아프게 “바르게 살자” 운운하며 삶을 제약하는 조상들의 신은 별 재미가 없게 된 것입니다.  정신을 잃어 버린 것이고, 정체성을 잃어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왜 ? 지금?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들과 조상들이 걸어 온 길이 어떤 길이었고,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서와  제2 이사야라고 부르는 이사야 40장에서 55장 까지의 이야기들은 바로 그런 신앙고백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꼭 알아 두어야 하는 비밀 하나는 신명기 역사관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어 가려면 우리들이 좀 알아야하는 전제가  있답니다. 나중에 신약시대 이야기가 끝나고 교회시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잠시 다루려고 하는 성서 형성사에서 좀 상세히 설명드리려고 합니다만 오늘은 이야기를 잇기 위한 설명으로 그치려 합니다. 

18세기, 그러니까 약 삼 백년 전 까지는 토라 곧 모세 오경이라고 불리우는 책들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쓴 사람은 모세라고 믿고 있었답니다. 이른바 모세 오경설입니다. 

물론 유대교나 기독교(천주교나 개신교)를 믿는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1711년 개신교 목사인 비터(Henning B Witter)라는 양반이 창세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서로 다른데가 있네, 이거 뭐 좀 이상하네 하는 연구(이스라엘의 법)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모세 오경에 대해 한 문장 한문장 연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19세기부터 지난 세기의 최근까지 내노라하는 연구자들과 신학자들이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모세 오경을 쓰게 되었을까를 연구 발표한답니다.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고요. 특히 19세기 말부터 불기 시작한 고고학에 대한 연구들과 연이는 고적 발굴 등은 이런 연구에 힘을 더해 주었답니다. 

아무튼 오늘날에 이르러 이런 연구 결과들의 대세는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있는 성서가 완성되어지는데는 신명기 역사가라고 불리우는 개인 또는 그룹이 있었다는 것이고요. 그들이 기록물을 남긴 시점은 바로 유다인들의 바벨론 포로기 때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신명기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상하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뛰어난 연구가 가운데 마틴 노트(Martin Noth)라는 독일 신학자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바벨론 포로가 된 유다인들이 “우리들이 왜?”라는 질문으로 지난 일들을 되새기며 재해석한 작업들의 결과물들이 바로 신명기 역사서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관(史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연유입니다. 바로 신앙고백의 핵심이고, 믿음의 확신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은 제가 글 쓸 일이 많아서 이만….

관점 – 포로기 3

(당신의 천국 – 쉰 세번 째 이야기) 

그러니 너는 이렇게 일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그들을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쫓아 보내어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살게 하였지만, 나는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얼마 동안 그들에게 성소가 되어 주리라.’ – 에스겔  11 : 16 

너희는 아비가 남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겨레 가운데서 못할 짓을 하다가 자기의 죄를 쓰고 죽었는데,  그 아들이 아비의 죄를 쓰고 벌을 받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이냐고들 한다. 그 아들은 내가 정해 준 규정을 지키고 그대로 바로 살았는데 왜 죽겠느냐?  죽을 사람은 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 에스겔 18 : 18 – 20, 이상 공동번역 

Turkey day라고도 부르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아침입니다. National Geographic  Daily News에 따르면 오늘 하루 미국인들의 밥상에 오르는 칠면조의 숫자는 대략 사천 육백 만 마리가 된답니다. 

저의 가족들 저녁상도 칠면조 위주로 차려집니다.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제겐 그렇게 당기지는 않는 음식 가운데 하나랍니다. 이곳을 살아가는 관습이기도 하거니와 모처럼 한 상에 둘러 앉는 식구들 특히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기에 해마다 큼직한 Turkey 한마리를 구어온지도 벌써 스물 다섯해가 넘었습니다. 

에스겔 이야기를 잇기 전에 오늘 아침에 떠오른 시 한 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즐기는 시 가운데 하나랍니다.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의 관점(觀點Point  Of  View)이라는 시입니다.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주일만찬은 즐겁지 않다 /부활절축제도 재수 없을 뿐 /닭과 오리의 관점으로 / 그걸 바라 본다면. 

한때 나는 참치 샐러드를 얼마나 좋아했었던지 /돼지고기 가재요리, 양갈비도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식탁의 관점에서 /식탁을 바라보기전까지는. 

Thanksgiving dinner’s sad and thankless / Christmas dinner’s dark and blue /When you stop and try to see it /From the turkey’s point of view. 

Sunday dinner isn’t sunny /Easter feasts are just bad luck /When you see it from the viewpoint /Of a chicken or a duck. 

Oh how I once loved tuna salad /Pork and lobsters, lamb chops too /’Til I stopped and looked at dinner /From the dinner’s point of view. 

turkey_hunt

추수감사절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 해 동안 각자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생활하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해 동안 누린 기쁨과 감사를 나누는 날이지만, 칠면조 입장에서 본다면 해마다 맞는 칠면조  대학살의 날이 되는 셈입니다. 

사람과 칠면조의 관점이라는 대칭이란 그저 상징이지만, 실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찬찬히 꼼꼼하게 들여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있는 관점의 차이를 느끼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그 다른 생각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가 아주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잡혀간  에스겔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바로 유대인들이 그들의 기존 관점을 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새롭게 바꾸게 되는지를 설명한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과 유대민족 사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었다는 말입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바로 관점을 바꾸게 하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에스겔은 환상을 통해서 야훼 하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런 하나님의 모습이 움직이십니다.  이제까지 야훼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룩한 다윗의 성, 영광스런 솔로몬의 성전이었습니다. 에스겔이 환상속에서 본 야훼 하나님은 그 곳 솔로몬의 성전을 떠나 동쪽 동산으로 움직이셨고, 바벨론 그발 강가에도 나타나셨습니다. 

솔로몬 성전 안에서 칩거하시는 야훼 하나님이 아닌 흩어진 유다 민족들과 함께 움직이시는 야훼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야훼 하나님께 받은 예언을 통해 이제 유대민족들이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제껏 예루살렘 성안에서 성전 중심으로 바라본 야훼 하나님과 유대 민족의 주관적 시각에서 포로가 되어 지금 살고 있는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예루살렘과 솔로몬 성전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으로 시각을 넓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민족과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이 생기자 첫번 째 하게 되는 일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이제껏 이야기로 전해 지거나 조각 조각 단편적 기록들로 전해져 오던 탈애굽 이후로부터 바벨론 포로라는 현재의 시점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을 기록화 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읽고 있는 구약성경의 골격을 이루게 되는 많은 자료들이 바로 이 때, 포로기 시대를 전후해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두번 째는 예배와 제사의 형식에 대한 전통을 세우는 반면 현실적인 여건에 맞는 예배와 제사 의식으로 발전 시킨 것입니다. 전통을 세웠다는 말은 조상들이 해 온 일들에 대한 기록들을 모아 남겨서 후대에 전했다는 것이고, 그 전통을 이어갈 수 없는 현실적 여건에 맞는 제사 의식을 세우고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의 영역을 크게 확대한 것입니다. 

이제껏 조상들이 지켜 온 예배와  제사의식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 형태였습니다.  물론 에스겔 시대에도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환상속에 나타나신 야훼는 그 성전을 떠나셨던 것입니다. 에스겔서 전반부는 야훼께서 왜 성전을 떠나게 되셨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제 에스겔의 입장에서 곧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유다인들의 관점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지요.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포로 초기에는 “이제 곧”, “내가 살아 생전에…”  고향 땅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간절한 생각에 사로잡혀 평생을 보낸 이들에 대해 알고 있답니다. 아마 우리 세대라면 거의 기억속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아버지들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 어릴 적 친구들 가운데는 고향이 함경도, 평안도인 아이들이 제법 있답니다. 아니 어릴 적 친구들까지 들출 것 없이 제 장모님, 돌아가신 처고모부와 제 고모부님 모두 평안도 사람들이랍니다. “이제 곧 돌아 갈 고향”을 생각하며 떠나 온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 세대들 중 대부분이  고향땅으로 돌아갈 기회없이 하늘고향으로 떠났습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선포한 예언 가운데 하나가 “너희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포로생활은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70년이 흐르고서야 돌아갈 수 있었으니 포로가 된 당대는 물론이고 아마 그 다음세대들 가운데도 돌아간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성전 예배를 더 이상 드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야훼 하나님만을 기리는 약속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세상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인 현실에 부닥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새로운 예배와 제사 의식을 세운 까닭입니다. 바로 회당(會堂)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것입니다. 나아가 이제껏 예루살렘에서 지켜왔던 희생제물 중심의 예배에서 말씀 중심의 제사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번 째는 이제까지 공동체와 함께 하는 야훼 하나님 신앙에서 공동체는 물론이요 사람 누구나 개개인들이 만날 수 있는 야훼 하나님을 새롭게 보게되는 눈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서 18장과  33장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선 나 또는 당신이 될 수 있는 한 개인에 대한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에 대한 민족신앙이란  개인신앙을 내포한다는 선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심은 일입니다 .비록 이젠 다  끝난 것 같은 현실이지만 관점을 달리 놓고 본다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구원의 확신을 세운 일입니다. 

그 새로운 세상은 야휘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평화로운 세상이고, 그 일은 마치 마른 뼈들이 모여 다시 생기있는 몸으로 부활하는 꿈같은 일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들(40 – 48장)은 그의 직업 의식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들입니다.  제사장 출신이었던 에스겔이 바라본 새로운 예루살렘 새 성전에 대한 환상입니다. 특히 47장에 나오는 성전에서 솟는 샘이 나쪽으로 흘러 사해 바다로 흐르는 환상은 성서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 나오는 요한의 환상과 만난다는 사실 하나는 기억해 두시기를 바랍니다. 

에스겔이 꼼꼼히 기록한 성전 건축에 대한 환상은 결코 그가 남긴 기록대로 세워지지는 않는답니다. 

그러나 그가 관점을 바꾸어 바라본 세상은 그의 예언대로 오늘날까지 그 지경을  넓혀오고 있는 것입니다.

환상 – 포로기 2

(당신의 천국 – 쉰 두번 째 이야기)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 나는 유다 사람들을 이 곳에서 바빌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가게 하겠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이 좋은 무화과처럼 잘 돌보아 주리라.   – 중략 –   그러나 유다 왕 시드키야와 그의 고관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살아 남은 자들 가운데 국내에 남아 있는 자나 에집트로 망명한 자는 썩어서 먹지 못할 무화과같이 만들겠다. 나 야훼가 선언한다. – 예레미야 24 : 4 – 8 

그 날 부지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가 바빌론의 그발강 가에서 야훼의 말씀을 받았다. 거기에서 그는 야훼의 손에 잡혔던 것이다.   그 순간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 오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이 막 밀려 오는데 번갯불이 번쩍이어 사방이 환해졌다. 그 한가운데에는 불이 있고 그 속에서 놋쇠 같은 것이 빛났다.  또 그 한가운데는 짐승 모양이면서 사람의 모습을 갖춘 것이 넷 있었는데     각각 얼굴이 넷이요 날개도 넷이었다. – 에스겔 1 : 3 – 6 

허황한 환상이나 보고 속임수로 점이나 치면서 야훼의 말을 사칭하는 것들이다. 내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지껄이고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들이다.   너희가 허황한 환상을 보고 속임수로 점을 치면서 야훼의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 에스겔 13 : 6 – 7 

에스겔은 기원전 597년 유다왕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 갔을 때 함께 끌려갔습니다. 이른바 제 일차 바벨론 포로 사건 때의 일입니다. 이 때의 일을  열왕기하 24장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전 시민과 고관들과 군인 일만 명, 그리고 은장이들과 대장장이들을 사로잡아 가고 가난한 지방민만 남겨 두었다.” 

그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이 에스겔이었고 그는 사제였습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지 다섯 째 되던 해에 그는 환상속에서 야훼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환상속에서 본 이야기로 에스겔서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환상을 본 장소는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였습니다. 

에스겔이 예언을 시작하던 때는 아직 예루살렘에 유다의 마지막왕인 시드기야가 왕국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던 시절입니다. 총 48장으로 이루어진 에스겔서의 전반부 반인 1장에서 24장까지의 이야기는 예루살렘이 곧 망할 것이라는 예언들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그로부터 약 5년 후 현실이 됩니다. 

우리들이 이미 이야기했던 예레미야는 그가 본  무화과 나무  환상을 통해 유다왕국의 멸망 이후 그 맥을 이어나갈 집단은 바벨론 포로로 간 사람들이라는 예언을 했습니다.(예레미냐 24장) 유대 땅에 남아있는 유대인들도 아니고, 이집트나 다른 나라로 이주한 유대인들도 아니고 오직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간 이들이 결국은 유대의 정통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에스겔은 그런 예언의 결과를 확인시켜 주는 사람입니다. 

에스겔은  사제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의식 및 제례 전통에 대해서라면 통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제사 및 예배의 정통성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각종 전해오는 예법에 따라 올려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 그가 그의 동족들과 함께 바벨론 그발강가 유대민 포로 정착지에서 산지 오년 째 되던 해 그가 환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를 처음 읽는 분이시거나, 제대로 읽어 본 경험없이 교회 다니면서 설교를 통해 들어 본 것 만으로 에스겔에 대한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 또는 어떤 환상이나 몽환적 신비야말로 믿음의 증거인 양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에스겔은  아주 낯설거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비단 에스겔뿐만 아니라 이제 이어질 다니엘, 요한계시록을 위시하여 성서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환상, 계시, 꿈 등의 이야기에서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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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 일장을 보면 그가 환상에서 본, 하늘을 날아다니고 사방 어느 곳으로나 자유자재로 제 맘 먹은 대로 다닐 수 있는 병거 곧 수레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겔은 그 병거에서 야훼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리고 그 야훼 하나님의 영광된 모습이 병거가 움직이듯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유대 민족이 겪게 될 일들에 대해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상, 상징, 계시 등등의 언어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만나는데 아주 소중한 도구가 되는 동시에 걸려 넘어질 장애이기도 합니다. 

아주 우스꽝스러운 예를 두가지 들겠겠습니다. 

첫째는  지금으로부터 약 2,600여년 전에 에스겔이 본 병거의 환상(에스겔서 1장에 나오는) 은 오늘날 비행접시를 미리 예언한 것이라는 또라이(乭아이), 왈 미친 놈들의 이야기가 이 문명의 21세기에도 떠돈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그런 돌아이들이 수천년래 지구상에는 셀 수 없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종종 즐겨 드는 예 가운데 하나랍니다. 중세기 기독교 사제들 가운데에는 평생을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이나 앉을 수 있을까”라는 화두(話頭) 또는 신앙적 질문(?)을 풀려고 애쓰다 간 사람들도 있답니다. 

두 가지 예가 말해주는 것이 있지요. 바로 돌아이는 자신이 돌아이인 줄은 절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이런 돌아이같은 일들은 오늘도 매 주일 교회에서  또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돌아이들에게 에스겔이 해답을 준답니다. “그건 다 네 탓이다”라고요. (에스겔서 18장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아무튼 환상을 보고 예언한 것은 당시 에스겔 뿐만이 아니라 제법 많은 이들이 있었다고 에스겔은 전하고 있답니다. 

“ 허황한 환상이나 보고 속임수로 점이나 치면서 야훼의 말을 사칭하는 것들이다. 내가 보내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지껄이고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들이다.  너희가 허황한 환상을 보고 속임수로 점을 치면서 야훼의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주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터무니없는 환상을 보고 허무맹랑한 말을 하였다. 내가 기필코 너희를 치리라.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허황한 환상이나 보고 속임수로 점이나 치는 예언자라는 것들을 이 손으로 치리라. 내 백성의 모임에 들이지도 않고 이스라엘 족속의 명단에서도 빼어 이스라엘 땅에 들어 가지도 못하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야훼임을 알리라.   그 예언자라는 것들은 무엇 하나 잘 되는 것이 없는데도 잘만 되어 간다고 하며 나의 백성을 비뚤게 이끌었다. 그래서 백성이 담을 쌓으면, 그 위에 회나 바르는 것들이다.”  – 에스겔 3 : 6 – 7 

허황된 환상을 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허황된 환상을 보았다고 말하는 이들을 야훼 하나님 이름을 파는 사기꾼들이라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을 비롯한 성서의 인물들이 본 환상, 또는 계시, 꿈이 참 된 것들이냐 아니면 가짜거나 허황된 사기이냐를 가름하는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에스겔의 잣대입니다. 

“’주 야훼가 말한다. 저주받아라, 너희 사람 팔목에  토시를 만들어 끼우고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에게  너울을 씌워 사람들의 목숨을 노리는 것들아!  너희가 내 백성의 목숨을 노리면서 너희의 목숨은 부지할 듯싶으냐?   너희는 내 백성이 보는 데서 보리 몇 줌과 빵 몇 조각을 받고 나를 욕되게 하였다. 거짓말에나 귀가 솔깃해 하는 나의 백성을 속여,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을 죽이고 죽여야 할 자를 살려 두었다.” 

비단 성서에 나오는 환상이나 계시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나 오늘날에도 있을 수 있는 환상이나 계시의 옳고 그름의 잣대를 바로 세우는 열쇠입니다. 

바로 사람을 신이신 야훼(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바라보는 눈으로 본 환상이나 계시이냐는 것입니다. 

사람을 신앞에서 동등한 사람답게 바라보는 환상이나 계시만이 참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에스겔이 본 환상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흩어짐 – 포로기 1

(당신의 천국 – 쉰 한 번 째 이야기) 

야훼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바빌론 왕은 야훼의 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화를 털어 갔고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야훼의 전에 만들어 두었던 온갖 금기물을 다 부수었다.  또한 예루살렘 전 시민과 고관들과 군인 일만 명, 그리고 은장이들과 대장장이들을 사로잡아 가고 가난한 지방민만 남겨 두었다.  그는 여호야긴도 그의 어머니와 왕비들과 내시들과 나라의 권력층과 함께 사로잡아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데려 갔다. – 열왕기하 24 : 14 – 15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  제십 구년 오월 칠일, 바빌론 왕의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들어 와  야훼의 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성 안 건물을 모두 불태웠다. 큰 집은 모두 불탔다.  그  친위대장을 따르는 바빌론 군인들은 예루살렘을 둘러 싸고 있는 성벽을 죄다 허물어 버렸다.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성에 남은 사람들과 바빌론 왕에게 항복해 온 자, 그리고 기타 남은 백성들을 포로로 데려 갔다. – 열왕기하 25 : 8 – 11 

수민원의 총재는 민영환이요, 이민 모집에 관한 일은 인천에 거류하고 있던 데쉴러에게 위탁하여 동아개발회사를 창설하였다.  –  중략  – 이 때에 그 교인 남녀 50여 명과 항내 노동자 20명이 이민가기를 자원하고 나섰다.  – 현순(玄栒)목사의 포와유람기(布哇遊覽記) 에서 (1909년에 쓴 책) 

제가 명동거리를 출입하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초중반 쯤 부터였습니다. 당시 명동성당 옆에 있었던 시사문화사라는 인쇄 활자 판매 회사를 들락거렸던 까닭입니다. 제가 국민학교(초등학교)때 일입니다. 

신촌에서 작은 인쇄소와 도장포를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심부름은 당시의 제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명함, 청첩장 등 작은 활판인쇄와 등사 프린트와 도장포를 겸했던 아버지의 가게의 원재료 구입처는 명동의 시사문화사와 종로 단성사 뒤의 청조사(?) 가 있었고 을지로의 지물포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 부터 명동 출입을 하게 된 이유랍니다. 

그리고 머리 굵어서 명동을 드나들 무렵에는 국립극장이 막 남산으로 이전하려던 무렵이었고 오래 전에 고인이 된 추성웅이라는 배우가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연극을 장기간 공연하던 곳이었고, 몇 해전 추억의 무대로 인기를 끌었던 쎄시봉이 아직 문을 열였던 시절이었답니다. 

그리고 70년대 말, 몇 개의 사건들이 일어났던 현장인 명동성당과 YWCA 등에 있었던 기억들이 남아 있답니다. 

덤으로 군대시절이었던 70년대 중반 명동 성당 앞 골목길 막걸리집들이 기억에 떠오르는군요. 

그리고 다시 명동을 찾았던 것이 2011년이었답니다. 많이 변해 있었답니다. 거리와 골목들을 옛 생각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을 호객하는 간판과 소리들이 아주 낯설게 다가왔었답니다. 

세월의 변화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낯섬의 크기는 아주 컸답니다. 

자!  이쯤 조선족, 고려인, 재일동포, 미주 및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한국인들과 대한민국인,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민으로 사는 한국인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실까요. 

19세기 말엽 까지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조선인)들은 한반도 안에서 살았지요. 당시만해도 자기 조상들이 누워있는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죄짓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때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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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국의 간도지방에는 19세기부터 일부 조선인들이 강(압록, 두만)을 넘어가 농지를 경영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이 한반도를 떠난 사건들이 연이어 진 것은 20세기 들어와서의 일입니다. 특히 일본의 한반도 침략 이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일이지요. 

1912년 12월 22일 인천항을 떠난 이민단 121명이 하와이로 떠난 미주 이민의 시작부터 1905년 1033명의 조선인들이 역시 인천항을 떠나 유카탄 반도로 향한 남미 이민의 시작, 그리고 1910년 이후 중국 간도 지방으로의 대규모 이주, 그리고 1930년대 이후 벌어진 대규모 일본 및 러시아 이주, 1940년대 남북분단으로 이어지면서 생긴것이 조선족, 고려인, 재일동포, 재외 동포의 시원이 될 것입니다. 

이쯤 한 번 생각해 보지요. 

다 같은 한반도의 조상을 뿌리로 한, 한민족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지금 한반도 남에 사는 사람들과 북에 사는 사람들, 미국에 사는 사람들과 중국, 일본, 러시아 중앙아시아에 사는 사람들,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 사는 한민족들의 공통점들과 다른 점들은 무엇일까요? 

제가 경험했던 1960, 70년대의 명동과 2013년 지금의 명동을 명동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차이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난 약 백년간 일어난 변동들입니다. 

약 백년 전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어떤 가치관이랄까 같은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생각들과 지금의 한국인들이 느끼는 그것들(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까닭이지요. 

이제 우리들은 유다인들이 약  70년 동안 겪게되는 이런 유사한 경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남왕국 유다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 시대에 유다민족들이 겪게되는 일대 변화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고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는 21세기에 흔히 말하는 유대인들 곧 Jewish 라는 말이 시작된 된 때가 이 무렵의 일입니다. 한마디로 민족이 갈라져 갈갈히 찢기면서 민족의 이름과 영역이 훨씬 커지는 정말 이상한 일이 발생한 때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지금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기 위한 길잡이 도구로 읽고 있는 구약성서의 대부분의 책들의 이야기들이 완성되어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가나안이라고 불리우던 땅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왕국의 이름으로 모여살던 한줄기 같은  민족이 바벨론, 이집트와 인근의 작은 나라들로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은 민족의 정체성을 바꾸어 놓는 지경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우리들이 먼저 그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해야만 하는 까닭입니다. 

유다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사건은 두 차례(엄밀하게 따지자면 세차례이지만)일어납니다. 첫번 째는 기원 전 597년에 유다와 여호야긴이 끌려가던 때에 포로가 된 사람들입니다. 두번 째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지고 마지막왕 시드기야와 함께 끌려간 기원전 586년 일입니다. 

바벨론 포로라고 하여도 이렇게 끌려간 시기에 따라 다른 집단이 생깁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 고급 관료들과 제사장들, 당시 유다 왕국 시절 사회 상층부를 구성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즈음 말로 하자면 있고, 누리고, 배운 사람들이 주로 바벨론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집트로 피난을 간 집단도 있었습니다. 이미 우리들이 이야기했던 예레미야도 이 집단에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들 중 일부는 후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지만 그 곳에 정착한 집단이 있습니다. 

또한 인근 작은 나라들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무리들은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서는 이들을 가리켜 “땅의 사람들”, “가난한 지방민”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집단으로 나뉘여져서 서로 다른 지방과 문화 속으로 분리되어 사는 시대로 접어 든 것입니다. 그렇게 약  70년을 사는 시간 동안 야훼 하나님께서 그 민족에게 내린 예언들을 대행했던 사람들을 이제 만나려는 것입니다. 

그 첫번 째 인물 에스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