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루살렘인가?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열번 째

지난해 문창극에 이어 이번에는 황교안이 오늘날 한국기독교 또는 한국교회의 편협하고 천박한 신앙관을 세상에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 교계나 교회가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목청 높혀 그를 두둔하기 바쁜 모양새입니다.

심지어 <황 후보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일에 다니엘과 같이 쓰임받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에겐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아울러 여러분이 지인들 20명에게 이글을 전달하여 우리가 함께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한 것이 될 것입니다.>라는 SNS의 글들이 퍼지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몰염치의 당당함에 뻔뻔스러움을 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부(그 일부가 큰 세력이긴 하더라도) 한국교계나 한국교회가 천박한 모습을 더하면 더해 갈수록 옳게 믿으려하는 이들은 성서에 귀를 기울일 일입니다.

 

차이 – 귀환 3

(당신의 천국 – 예순 번 째 이야기)

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 진노를 내리실 일이 있어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셨다. – 사무엘하 24 : 1 

사탄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였다. – 역대기상  21 : 1 

조선은 나라를 세운지 매우 오래다. 그렇지만 강역이 지나(중국)에 접근함에 따라 항상 그들의 견제를 받았다. 지나인이 혹은 와서 왕이 되었다. 혹은 그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 또한 본국인으로 왕이 된 자도 대개 지나에서 봉작을 받았다. 조공을 힘쓰고 사대의 예를 하지 않는 자는 매우 드물다. 이것을 보면 조선은 거의 지나의 속국인 것과 같다. – 일본인 하야시(林泰輔)가 쓴 “조선사(1892)”에서 

조선 땅에 세계 열강들이 눈독을 들이던 1887년 일본의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에 사학과가 개설됩니다. 그곳에서 일본역사를 비롯한 조선역사의 연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3년 후인 1890년 이 학과의 교재용으로 국사안(國史眼)이라는 교과서를 만듭니다. 

그 교과서에 담긴 내용들입니다. 

“일본 개국의 시조는 세 아들중 스사노오가 행동을 함부로 하여 出雲으로 쫓아내고 그곳을 다스리게 했는데, 신라 및 常世國과 교통을 했고, 나중 에 한국(가라쿠니)으로 갔다고 한다.  일본에서 天孫이 강림한 곳은 日向 (휴가,  지금의 미야자키)의 高千穗(다카치호)  봉우리다.  日向에 도읍한 神代의 3세대 가운데 葺不合尊은 아들 五瀨命, 稻飯命, 御毛沼命, 磐余彦 尊을 낳았다. 이 중에서 稻飯命은 妣의 나라 海原에 있으며 新良國(시라 키)의 祖가 되었다. 稻飯命이 신라의 왕이 되고나서 왕자 천일창이 나라 를 知古에게 넘겨주고 寶器를 가지고 돌아와서 但馬(다지마, 지금의 효 고)에 거주했다.”

“韓의 대가라국이 신라와 三已汶의 땅을 놓고 다퉈 蘇那曷叱知를 보내 그 땅을 바치고, 鎭將을 요청했다. 朝議에서 鹽乘津彦彦을 파견하여 진수케 했다.” 

“태후가 섭정을 하면서……(중략)……백제를 綏撫하고 신라, 백제를 침 략했다. 荒田別, 鹿我別을 파견하고, 백제 卓淳과 함께 신라를 쳤다. 比 自㶱 등 7국을 평정했다. 應神帝 친정후는 武內宿禰를 보내 筑紫를 지키 게 했다.  筑紫都督府가 여기서 일어났다.……(중략)……신라 백제 등 여 러 나라에 관사를 뒀다. 임나일본부가 이를 총괄하고 도독부가 이를 控 制했다.  고구려 역시 來貢했다.” 

요약하자면 신라의 왕은 일본인이고, 신라와 가락국이 전쟁을 일으키자 일본군이 와서 평정하고 조공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 땅에 임나 일본부를 두었고, 신라 백제는 물론이고 고구려도 조공을 바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교과서 이후로 1892년에 일인 하야시(林泰輔)가 쓴 조선사를 필두로  조선관련 역사서들이 쏟아집니다. 이른바 반도사관(半島史觀), 식민지사관의 출발입니다.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기 전에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꾸는 작업을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한반도는 일본의 영향아래 있다는 것, 조선인들은 반도적 성격이 뿌리박고 있어서 사대(事大)가 심하고, 역사 발전이 더디어서 일본보다 한 천년은 뒤져 있고, 파당을 지어 싸우기를 즐기는 등 민족성이 저열하기 때문에 일본이 보호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는 이론을 만들어 퍼뜨린 것입니다. 이른바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입니다. 

일본인들을 이러 사관을 지닌 이들을 일컬어 국학파라고 불렀습니다. 

2013년 오늘날까지 한반도 남쪽에 이런 사관에 물든 무리들이 횡행하고 있음은 심히 불행한 일이지요. 

그렇다고 일본의 모든 역사학들이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주자학파 또는 신유학파라고 해서 조선이 일본보다 앞선 문화와 전통을 지닌 역사를 지닌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소수일 뿐인 것이지요. 

이런 주장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느냐 또는  ‘그게 다 나하고 뭔 상관이냐!’며 머리 내 저으신다하여도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처지는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떠나볼까요. 

바벨론 포로기 시절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인들은 “왜 우리들의 처지가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으로 기록을 남겼고, 그들을 일컬어 신명기 역사가들이라고 한다고 했고, 그들이 쓴 책들이 신명기, 여호수아, 사무엘, 열왕기 등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주장은 광야에서 야훼 하나님과 히브인들 사이에 맺었던 계약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계약을 위반한 민족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고, 회개하고 돌아가면 용서와 구원이 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자신들의 고향 땅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 온 사람들은 비록 많지 않은 숫자였지만 그들만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돌아 온 땅에는 자신들이 생각하고  믿었던 야훼 하나님의 믿음과 자신들만의 민족 전통과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분명 그들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예날 이스라엘 12지파의 후손들이었지만 다른 민족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섞여서 혼혈이 많았고, 종교도 조상들이 지켜왔던 것과는 다른 이방적 의식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롭던 조상들의 성전은 파괴되어 있었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성벽조차 제대로 된 곳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비들이 했던 물음을 다시 꺼집어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얻은 해답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바로 역대기와 에스라, 느헤미야서 입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신명기 사관에 동의를 합니다. 다만 야훼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루어 나가는 주체를 자기들 나름으로 명확하게 규정을 한 것입니다. 바로 성전 중심의 공동체입니다. 

예루살렘모형

그리고 그 성전 중심 공동체의 핵은 다윗과 솔로몬이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성이었고 솔로몬은 성전이었습니다. 

역대기 상  1장이 족보로 시작하는 까닭입니다. 이 족보는 태초의 아담으로 시작하여 아브라함 야곱을 거쳐 유다지파를 통해 다윗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솔로몬에 이어 남왕국 유다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예 역사에서 제외를 시켜버립니다. 

그들에겐 예루살렘과 성전만이 야훼 하나님의 전통을 잇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역사가들도 북왕국 이스라엘에 결코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한민족, 한 계약 백성으로 이해한 반면 역대기 역사가들은 아예 거들떠 보지를 않은 것입니다. 

또한 신명기 역사가들은 왕들이 행실이 야훼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했는지를 평가의 잣대로 삼은 반면에 역대기 사가들은 왕들이 성전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잣대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의 눈 앞에 절실했던 것은 바로 성전 재건과 예루살렘 도성의 새로운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이 두 역사가 그룹의 사관을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기록에서 나타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지요. 

첫째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위해 받은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먼저 신명기 사가가 쓴 장면입니다.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만일 그가 죄를 지으면 나는 사람이 제 자식을 매와 채찍으로 징계하듯 치리라. 그러나, 내가 일찌기 사울에게서 내 사랑을 거두었지만 그에게서도 그처럼 내 사랑을 거두지는 않으리라.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 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 사무엘하  7 : 14 – 16 

다음은 역대기 사가의 기록입니다. 

나는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네 선임자에게서는 내 사랑을 거두었지만, 네 후계자에게서는 그렇게 사랑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세워 준 이 왕조, 내가 세워 준 이 나라를 다스릴 직책을 그에게 맡겨 끊어지지 않게 하리라. 그의 왕위는 길이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나단은 환상 가운데서 받은 이 모든 말씀을 다윗에게 전하였다 . – 역대기상 17 : 13 – 14 

어떤 차이가 있지요?  다윗과 자식들에 대하여도 징계하신다는 내용이 한 쪽엔(역대기 기록) 쏙 빠진 것이지요. 

또 하나 볼까요. 

신명기 사가의 기록입니다. 

또 다윗은 모압을 쳐서 이기고 그 사람들을 땅에 엎드리게 한 다음 줄로 재어 두 줄 길이 안에 든 사람들은 죽이고, 한 줄 길이 안에 든 사람들은 살려 두게 하였다. 이리하여 모압은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 사무엘하 8 : 2 

똑같은 장면을 전하는 역대기 사가의 기록입니다. 

그는 또 모압을 쳐서 속국으로 삼고 조공을 받았다.  – 역대기상 18 :2 

여기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자칫 잔인해 보일 수 있는 다윗의 모습을 쏙 빼버린 것이지요. 

(아이고 너무 늦어서 내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