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방문길에 오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9일 미국 상하원에서 행할 연설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여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으면서 적대적으로 승전국과 패전국 관계였던 미일 양국이 이제는 상호 돈독한 우방이 되어 만나는 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관점은 바로 “과거사 문제” 입니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각종 만행을 인정하고 그 국가 행위에 대한 사죄와 사과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입니다.
한국과 중국이 제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미일 양국이 눈앞에 놓인 중국을 향한 동맹관계와 경제 동반자로써의 상호 이해관계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국이야 자기나라의 이해와 아시아 종주국으로써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사 문제를 계속 꺼집어 내겠지만, 어정쩡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대한민국이 아닐까합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 뉴스를 보면서, 미일 양국과 특히 대한민국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인물 한사람을 소개해 볼까합니다.
에버렐 헤리만(William Averell Harriman, 1891-1986)입니다. 그는 살아생전 미국 외교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 “현자(賢者, The Wise Men)”로 불리었던 사람입니다.
헤리만의 아버지는 조선과 만주의 철도건설을 도맡았던 대재벌이었고, 헤리만 자신은 투르먼(Truman) 대통령 아래에서 상무장관, 48대 뉴욕 주지사, 1952년과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또한 은행업을 비롯한 투자, 부동산업 등에서도 성공을 거둔 뛰어난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를 비롯한 동시대의 한국인들에게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그가 베트남전쟁 말기에 미국과 월맹 사이에 있었던 휴전협정에서 미국 수석대표를 지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1969년, 그가 휴전협정 수석 대표직을 사임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남긴 말은 2015년 오늘 미일 양국의 지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인들이 한번 곱씹어도 좋은 명언입니다.
그의 말입니다.
<월맹(북베트남)이나 월남(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과거 프랑스 식민에 식민권력에 앞장섰거나 협력한 인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대부분은 식민정권의 권력이나 행정 그리고 군대에 대항해서 민족해방과 독립투쟁을 평생 동안 해온 사람들이다.
그와는 반대로 월남(남베트남)의 정부, 군대, 종교,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지도층 인물들은 해방후 국토가 분단되기 이전에 프랑스 식민권력의 관리였거나 군대의 장교 또는 하사관으로서 자기 동포와 적대적 입장에 서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남북베트남의 대중들이 어느 쪽을 더 존경하고 신뢰할 것인가? 어느 쪽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베트남의 재중과 민족을 위해 행동할 것인가? 이에대한 답변은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 전쟁은 이미 진 전쟁”이라고 선언합니다.
역사란 과거사와 오늘과 미래사가 단절되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가 곧 현재사이자 미래사가 된다는 충고입니다.
아베 신조의 방미 행보를 보면서 곱씹어도 좋을 헤리만의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