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시절의 4월은 늘 추웠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추위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1960년 4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당시엔 새학기가 4월에 시작되었다. 왼쪽 가슴에 커다란 흰색 손수건을 달고 운동장에서 ‘앞으로 나란히’ 등의 제식과 체조, 그리고 동요 등을 배우다 처음 교실을 배정받아 들어가던 날, 바로 4월 19일이었다.
전쟁이 막 끝날 무렵에 태어난 우리 또래들에게 학교와 교실은 많이 부족했다. 본교와 분교로 교사(校舍)가 나누어져 있었고, 더하여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등교를 하였다. 나는 오후반이었는데, 그날 어머니가 내게 빨리 서두르라고 재촉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나섰던 등교길인데 내 걸음은 신촌 노타리(당시엔 노타리가 아닌 버스 종점이었다.)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무수한 대학생들이 어깨 걸고 문안(당시엔 시내를 문안이라 했다.)으로 달려가는 행렬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행렬이 끝나고서야 향했던 학교 운동장은 휑하니 텅 비어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배정된 교실로 다들 들어간 후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운 기억은 없다. 그저 서늘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었을까.
그날 밤이던가 그 이튿날이던가, 내게 자전거를 태워 주곤 하던 고등학생 동네 형이 문안에 나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에 동네 아줌마들이 혀를 차던 일도 기억난다.
머리 굵어진 어느 해 4월부터 나는 벗들과 함께 어깨 걸고 매캐한 최루가스로 가득한 그 신촌 거리를 뛰어 다녔다. 1980년 4월, 이미 나이 든 축에 속한 나는 여전히 그 거리를 뛰었었다. 그리고 정말 아팠던 5월을 맞았던 기억들이 새롭다.
그랬다 젊은 시절 내가 겪은 4월은 늘 추었다.
이제 늙막의 선을 딛고 선 나이에도 4월 소식은 여전히 몸 움추려 드는 서늘함이 이어진다.
그래도 언제나 4월엔 꽃들이 핀다. 내 젊은 시절의 신촌이나 오늘 여기 내가 서 있는 델라웨어나 꽃들이 핀다.
꽃은 추웠던 4월의 기억을 잊게 하곤 한다. 오늘은 꽃들이 내 4월의 추억들을 되새겨 놓았지만.
<꽃과 과일은 언제나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꽃은 세상의 모든 쓸모 있는 것들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빛으로 도도하기 때문이다. Flowers and fruits are always fit presents; flowers, because they are a proud assertion that a ray of beauty outvalues all the utilities of the world.”> – 미국이 처음 시작할 무렵에 큰 생각으로 노래하던 사람,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노래이다.
에머슨의 노래처럼 꽃의 도도한 아름다움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취하기 위해, 4월이 더는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어느 곳에 사는 누구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