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기막히게 들어맞기도 하지만 종종 호들갑으로 끝나곤 하는게 일기예보다. 어찌 딱히 일기예보 뿐이랴! 내일이란 늘 열려 있어야 사는 맛이 더하는 법이니, 무릇 예보(豫報)란 그저 준비하라는 지시어로 족하다.
일기예보 덕에 단단히 준비하고 맞은 아침, 예보의 호들갑에 비해 눈은 2인치가 조금 넘게 내렸을 뿐이었다. 눈을 치우려 나갔더니 날씨는 생각보다 꽤 추웠다. 집안으로 돌아와 방한복을 찾다가 눈에 들어 온 스웨터 조끼와 자켓에 오 륙십 년 전, 그 시절에 잠시 빠졌었다.어머니가 짜 주셨던 스웨터와 조끼를 참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내가 잠시 대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땐 참 추웠었다. 어머니는 그 추위에 넉넉히 견딜 수 있도록 두툼하지만 결코 투박하지 않게 멋을 내어 조끼와 스웨터를 짜 주셨다.
글쎄? 내가 몇 번이나 입었을까? 한 땀 한 땀 당신의 잠을 줄여가며 짜 주셨을 옷을 입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십대 후반을 넘겨 이십 대로 접어 들 무렵 헛 꿈에 들 떳던 내게 어머니의 정성은 늘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도 2022년 그 옷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일견 대견스럽다는 생각에 부끄럽진 않다.
어머니는 그렇게 오늘도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후배 양정용선생. 그를 안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와 단 둘이 밥을 먹거나 술 한 잔 나눈 사이도 아니다. 살아 온 이야기나 사는 이야기를 깊이 나누었던 기억도 없다.
필라세사모(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 그를 만났고, 일을 통한 이야기를 간간히 해 왔던 사이이다.
모를 일이다. 그를 바라는 내 시선은 늘 애틋했다. 나와는 나이 차이도 제법 있고, 삶의 경험과 서로의 삶의 자리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 점도 있었으니, 어떤 일에 대한 접근 태도와 이해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애틋함을 느끼곤 했다.
딱 열흘 전 일만 해도 그렇다. 그는 일어난 현상에 대한 반응에 순수했고 나는 노회한 편이었다. 아주 짧은 논쟁도 아니고 그저 의견 교환이 끝이었다. 그는 다시 거리에 섰고, 나는 일상에 충실했었다.
그러다 들은 그의 소식이다. 그는 오랜 동안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즈음 들어 꽤나 회복 되어가는 모양새여서 참 좋았다. 그런 그가 갑작스런 병원행을 하였는데 의사들이 그만 손을 놓았단다.
아직 그의 나이 오십 대인데…
후배 양정용선생. 나는 그를 깊이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살아 온 시대와 환경은 알고 이해하며 살려고 애쓰는 편이다.
양정용선생.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저돌적인 그의 순수함은 오래 살아 있을 것이다, 내 안에.
기적을 비는 마음과 함께
무릇 종말론적 삶이란 기억과 예보에 귀 쫑긋 세우고 사는 하루 하루가 아닐까?
눈 내린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