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에

동네 신문은  Joe Biden이  South Carolina primary에서 기사회생 했다는 기사를 일면 탑에 올려놓았다. 아무렴 이 동네 출신이니 그 정도 호들갑은 눈 감아 주어야겠지만 그저 거기까지 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 뉴스는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19 소식과 간간히 총선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뉴스들을 접고 나를 위한 일요일 안식을 누리다. 하비 콕스 (Harvey Cox)의 ‘신이 된 시장(The Market as God)을 곱씹어 읽고 책을 덮었다.

이 책에서 하비 콕스가 말하고자 하는 주장이 요약된 제 3장의 제목은 <역사: 돈을 쫓다>이다. 그는 돈을 쫓아 이어진 역사, 특히 교회사를 이야기한다. 신학자인 그가 이해하는 근 현대의 자본시장은 바로 이 교회사를 쫓아간 것이다.

“돈” – 오늘의 뉴스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말이다.

하비 콕스가 책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말들이다.

<어떤 이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단순한 탐욕이다. 그들은 탐욕의 전염병에 감염되었고, 탐욕은 어떤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다.> ….(정치, 종교 등 제반 분야에서 탐욕의 전염병에 전염된 사람과 세력을 구분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민중을 넘어 시민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죽음의 자리에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고 한다. “아아 슬프도다. 지금 내가 신이 되어야 할 텐데.” 어떤 인간 개인이나 기관도, 심지어 ‘시장’도 신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제 신이 될 필요가 없다면 ‘시장’은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콕스가 말한 ‘시장(market)’에는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교회(종교), 정치, 언론, 문화 등 제반 분야를 포함한다.

아담 스미스를 다시 읽게 하는 콕스의 가르침은 덤이다.

<부자와 권세가에 대해서는 감탄하고 거의 숭배까지 하는 성향, 가난하고 비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적어도 무시하는 성향은…. 우리의 모든 도덕 감정을 타락시키는 가장 크고 보편적인 원인이다.> – 아담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서

모처럼 잘 쉬었다. 딱히 뭔지 모를 미안한 미음으로.

안식(安息)에

일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꽃과 대나무 향연을 펼친다는 늦가을 정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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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꽃내음을 타고 떠오른 오래 전 친구 얼굴 하나. 고등학교 시절 원예반 활동을 하던 친구 K다. 키 작은 내가 친구하기엔 버거울 만큼 키도 훌쩍 컷거니와 늘 맑은 얼굴에 말수도 적고, 말도 느릿느릿 몇 살 터울 형같은 친구였다. 그가 속한 원예반 친구들은 국화를 참 멋지게 키우곤 했다. 당시에 이 맘 때 쯤이면 열리곤 하던 전국 국화 경연대회에서 원예반 친구들은 대상을 거머쥐곤 했었다. 원예반 여러 친구들이 함께 이룬 일일터임이 분명하지만 내 기억속엔 국화 하면 그 친구 K가 떠오르곤 한다. 옛 친구 얼굴 하나 떠올려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일만으로도 오늘 산책은 그저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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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salvia 꽃잎을 보며 말했다. ‘이 사루비아 우리 많이 먹었지? 참 달았는데…’ 사루비아, 아카시아, 까마중… 개미 똥꼬 까지. 지금처럼 복잡하고 까탈스럽지 않았던 시절 이야기로 오랜만에 이어진 손 잡고 늦가을 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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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른 아침에 눈이 뜨여 손에 들었던 책 하나. 윤명숙이 쓴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책을 쓴 윤명숙은 조선인 위안부 한 사람 한 사람 그 사람 마다 태어난 후 겪어낸 저마다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어 당시의 제도와 일제 식민주의의 폭력성을 들추어 나간다.

추억이란 결국 사람인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사람 얼굴 하나 떠올리는 일 아닐까?

역사 역시 뭐 거창한 게 아닐게다. 그 시절 거기 있었던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

제도, 체제, 주의, 사상 등속이란 모두 헛 것일 수도… 어쩜 종교에 이르기까지.

그저 그 시절 가장 아팟던 사람들 이야기를 꺼내어 곱씹고 오늘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딱 한번 만이라도 눈길 줄 수 있다면 나는 역사 속 하루를 사는 게 아닐까?

늦은 저녁, 노부모 곁 지키느랴 애쓰는 누나에게 들고 간 생선 튀김 하나로 누나 얼굴에 함박 웃음 가득.

내가 누린 하루의 안식이여!

안식(安息)에

봄비 오락가락하는 흐린 일요일. 뜰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출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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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간 아내가 돌아오기엔 아직 이른 시간, 친구 농장에서 온 두릅과 돌나물을 씻어 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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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무친 오이와 더덕도 넣어 국수 한 그릇 뚝딱. 막걸리가 딱인데, 아쉬운대로 와인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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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게으른 낮잠을.

신이 주시는 안식의 축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