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한국학교

비교적(?) 제 말을 잘 들어주는(?) 아내가 몇 년 동안 제가 노래를 불러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내가 35년째 하고 있는 주말학교 델라웨어 한국학교 선생입니다.

‘이젠 그만 마쇼! 오래 했잖아! 이젠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하는 내 말은 족히 오 년은 이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아내는 그야말로 콧방귀도 뀌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델라웨어 한국학교 종업식이 있었던 날입니다. 종업식 겸 학예회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이런 저런 행사 영상을 보여주며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그저 좋아 보입니다.

이젠 전에 가르치던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되어 데리고 오는 아이들과, K-pop과 K-drama에 빠진 비한국계 성인 학생들에게 한국말과 한국무용을 가르칩니다.

오늘 학생들에게 받은 한아름 꽃다발을 화병에 꽂은 후 좋아라 하며 사진을 찍으라고 명령(?)하는 아내를 보며, 교육성과나 아내의 나이는 따질 필요 없이….

그냥 할 수 있는 날까지 제 말은 듣지 않은 게 좋을 듯 하답니다.

(학예회 한 장면과 한 학생의 가족소개 영상입니다.)

장미에

‘결혼 기념일?’ 아님 ‘누구 생일?’. 카운터에 새롭게 놓인 장미 화병을 보며 손님 몇이 아내에게 던진 물음이란다.

어제 딸아이가 각기 12송이씩 묶은 장미 두 다발을 보내왔다. 나름 생각 깊은 아이가 숫자 놀음을 했겠다 싶지만 툭 튀어 나온 내 혼자 소리, ‘쯔쯔쯔, 돈 아까운지 모르고…. 뭘 …한다발이어도 족한데…”. 아내는 싫지 않은 듯 내 괜한 트집에 토를 달지 않았다.

내 젊은 시절 고약한 기억 가운데 하나인 12.12 사태 이전부터 아내의 생일을 함께 했으니 우리 부부가 함께 한 세월도 만만치 않다.

나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우기지만 아내는 큰 연(緣)이라고 믿는 우리 가족 생일력이  그 세월과 늘 함께 한다. 생일력이란  2땡, 9땡, 10땡, 12땡으로 월과 일이 함께 하는 우리 네 식구 생일에 대한 이야기다.

딸아이 덕에 집과 가게가 장미 화병으로 화사하다.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라 아내의 십대 초반 어린 시절이 환하게 보이는데… 쯔쯔… 어느새 아내도 은퇴연금 수령이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그게 웬지 또 공연히 미안하다.

이젠 제법 시간이 흘렀다만, 이민 후 살 만 하다 싶었을 무렵 내 엉뚱한 욕심으로 하여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치루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나는 거의 삶에 대해 체념(諦念) 상태였다. 허나 아내는 늘 웃었고 우스개 소리를 끊이지 않았었다.

나의 체諦가 깨달음의 제諦가 되는 세상을 맛보게 한 것은 아내였다.

하여 살며 내가 맛보는 즐거움의 반은 온전히 아내에게서 온다.

장미를 안겨 나를 깨운 딸아이에게도 아낌없는 한 몫.

고마움을.

가을 밤

가을이 깊어 가는 화창한 토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숲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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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 나무들이 내쉬는 숨이 이 숲을 채우고 있다는 말이렸다!’ 아내는 어디서나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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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산책으로 한 주간 노동의 피로를 씻다. 날다 지친 잠자리 한 마리 내 등에 업혀 함께 걷다.

저녁 나절, 육영수가 지은 <혁명의 배반, 저항의 역사>를 훑어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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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에 대한 주류해석이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재성찰하고….’ 책을 소개하는 저자의 말이다.

그리고 그가 에필로그에 남긴 소명과 소망.

‘일상생활정치에서 자발적으로 왕따 당하려는 용기와 독립심은 나의 특권이며 역사적 소명이다.’

‘공장 바깥에 있는 노동자, 학교 바깥에 있는 학생, 감옥 바깥에서 생산되는 품행방정 남녀들, 국가 바깥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이들 모두에게 혁명은 실패나 성공으로 마감되는 권력다툼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할 열정 그 자체이다.’

‘너와 나의 또 다른 시작은 일상적으로 가볍지만 정치적으로 진지한 저항의 박자에 실려 비누거품처럼 온 세상에 번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권력의 여의주를 움켜진 악마가 늙을수록 뻔뻔하고 노회해지는 것에 반비례해, 우리의 연대와 투쟁은 뱀처럼 매끄럽고 모꼬지처럼 흥겹고 늠름할 것이다.’

한국 여의도 광장을 비롯해 곳곳에서 실패와 성공을 넘어 열정 그 자체로 전혀 새로운 혁명의 역사를 쓰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을 생각하며…

가을 밤에.

어느 아침

아침부터 찌는 날이다. 한 주간이 이리 긴 것은 딱히 날씨 탓만이 아니다.

아내는 의사가 minor surgery라고 했다고 거듭 강조했었다. 그저 간단한 수술일 뿐이라는 말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루 일과 같은 것이거니 했었다.

주초,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 가기 전에 간호원은 아주 간략하게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아주 간단한 어깨 수술로 마취 후 한 시간 정도 내외의 수술 시간과 30분 정도 회복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수술 후 집도 의사가 수술 결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라고…. 간호원의 설명을 듣는 시간에 아내는 이미 마취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넉넉잡아 두 시간이라…’ 나는 대기실에서 나른한 낮잠에 빠졌었다. 수술실에 들어 간 후 한 시간이 지나면서 연신 시계에 눈이 갔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는 앉아있지 못하고 오줌 마려운 노인이 되어 엉거주춤 대기실 안에서 서성거렸다.

두 시간 반쯤 되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 온 의사는 말했다.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12시간 정도는 수술 후 통증이 이어질 것인데, 약이 처방될 것이고… 마취에서 깨어날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릴게고…’ 준비된 대본을 읊조리 듯 이어진 그의 말이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내 이름이 호명되어 들어 간 회복실에서 만난 아내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었다.

최근 이년 사이에 수술 후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전에 보았던 장모, 장인 그리고 어머니의 낯 선 모습처럼 아내가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모두 minor surgery라는 말에 대책없이 느긋했던 내 탓이었다.

긴 한 주간 시간에 비해 다행히 아내의 회복 속도는 빠르다.

이른 아침 찜통 더위를 예고하는 아침풍경이 반가웠던 까닭이다.

결혼 기념일

‘이젠 해방되는 해인가?” 식사 주문을 마친 아내가 던진 말이다.

36년이라! 내가 겪지 않았던 세월을 대변하는 시간을 명시하는 세월. 그저 긴 시간을 표현하는 말. 아내와 함께 한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

만나 눈 번쩍했던 시간까지 따져보니 마흔 한해다.

그래! 이젠 모든 것에서 서로 해방된 관계를 시작할 나이다.

36주년 되는 날, 우리 가게 손님에게 받은 최고의 찬사.

<God continues to bless us through you. Yours is a great work offering such beauty and goodness.>

조촐하게. 해방을 위하여!

춤과 꿈 그리고…

아내는 북치며 춤을 추고 나는 상추를 씻고 고기를 굽는다. 오늘 저녁 내 집안 풍경인데, 이즈음 이따금 우리 부부가 저녁을 맞는 모습이다. 물론 북치고 춤추는 아내 모습은 한결 같지만, 나는 상추를 씻는 대신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고기를 굽는 대신 생선을 튀기기도 한다.

나이 육십대 중반으로 들어선 나는 아직도 꿈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철부지다. 어찌하리, 환갑 나이 아내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것을.

아내는 더 늦기 전에 춤을 한번 추고 싶다며 춤을 배우겠다고 했다. 춤 배우러 한국에 갔다 오겠노라고도 했다.

올 봄 어느 날이던가, 아내는 동영상 두 개를 보여주며 어떤 춤을 추면 좋겠냐고 물었다. 태평무와 진도북춤이었는데 솔직히 나는 둘 다 마뜩치 않았다. 춤과는 거리가 아주 먼 내가 뭘 알아서가 아니었다.

태평무(太平舞)는 그냥 내 체질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무릇 춤이란 흥이여야 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그저 만들어낸 동작 같아서 ‘아니다’ 하였다. 진도북춤은 춤으로써는 대만족이었으나 아내가 저걸 과연 흉내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를 떨칠 수 없어 차마 둘 중 어느 하나도 선뜻 집지 못하였다. 경쾌하고 빠른 춤사위가 이어지는 진도북춤을 아내가 흉내내다 자칫 자빠지거나 넘어질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내는 그렇게 진보북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까지는 아니고 주말이면 몇차례 왕복 하루길인 북부 뉴저지를 오가며 춤을 배우고 있다. 나는 운전 기사와 촬영 기사가 되어 그 길을 함께 한다. 녹화된 연습 동작들을 보며 아내는 저녁이면 춤 연습을 한다. 오늘 저녁도 그렇게 보냈다.

아내에게 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었다.

‘진도북춤은 한 잔 마시고 세상사 희로애락을 춤으로 풀어내는 그런 춤인 것 같아요.’

이제 곧 아내는 자기 흥으로 진도북춤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추게 될 것이다. 그게 춤으로써는 그저 흉내에 불과할지라도 아내의 몸짓과 맘짓은 온전히 꿈을 이루는 행위라고 나는 믿는다. 아내의 꿈과 삶에 얽힌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춤으로써.

그리고 나는 춤추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한잔 그 힘만으로도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터.

아내의 춤 – 그 점 하나.

토요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 행사 녹화 영상을 보며 세월을 뒤돌아 보았다. 그 때 그 수많은 인파 속에 나도 점 하나로 서 있었다. 그 무더위를 뒤로 하고 그 땅을 떠났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이민 30년. 참 많이 변했다. 내가 느끼는 그 세월의 모든 변화들을 감사로 받아 드리고 싶다.

환갑 나이가 된 아내가 느닷없이 ‘진도 북춤’을 배워야겠다고 선언한 것은 올 초의 일이었다. 난 ‘저러다 말겠거니’했다. 아침에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며 무릎이 시큰거린다는 아내가 그 일을 저지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30년 전 아내는 한풀이 춤도 탈춤도 추곤했다. 그러나 그건 30년 전의 일일 뿐.

그러다 오늘 나는 왕복 300마일 ‘진도 북춤’을 배우러 가는 아내의 운전기사였다.

두 시간 춤을 배우고 난 뒤 아내가 물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 동안 너나없이 모두가 그 물음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30년 전 한풀이 춤을 추었던 아내는 이제 어느 날엔가 진도 북춤을 출 것이다.

그랬다. 30년이란 그저 시간의 흐름 가운데 하나의 점일 뿐.

그 점 하나에 대한 감사가 이어지는 밤에.

아내의 나이

제 아내의 기억력에 대해서는 그 어떤 칭찬도 절대 과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이 부부싸움을 해 보신 경험이 있다면(결혼경험은 있는데 부부싸움 경험이 없다고 하시면 그건 제대로 삶을 살아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감히…) 아내의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하신 적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아내에 대한 제 감탄은 그 누구라도 당신의 경험보다 열배는 더할 것입니다.(물론 거의 제 부류 모든 사내들이 같은 생각일지라도…)

제 가게 손님들에게 종종 듣는 이야기랍니다. “니 마누라는 손님들 이름 언제나 다 아는데, 너는….”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답니다. 아내는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 이름들을 기억한답니다. 결코 작은 숫자라고도 할 수 없거니와 거의 세계 각국 여러나라 이름들을 그렇게 잘 외운답니다.

그에 반해 저는 조금전에 제 가게를 들어왔다가 나간 손님이 무언가를 잊고 다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도 또 다시 맞는 새손님이랍니다.

언젠가 어느 손님 한분이 놀랍도록 다른 저와 아내의 기억력에 대해 물었었답니다. “니 마누라는 손님 이름들을 다 외우는데 너는 어떻게 손님 그것도 이십년된 손님 이름 하나를 못 외우냐?”고요. 그래 제가 한 대답이랍니다. “아! 그거. 지능지수의 차이야, 아마 너도 나와 똑 같을 걸. 지능이 낮을수록 단순한 것들을 잘 기억하지. 내 아내의 경우야. 아마 니 마누라도 마찬가질 걸. 그러나 나는 너를 알아. 비록 이름은 모르지만. 바로 너처럼. 지능이 높거던.” 물론 그 손님은 저와 매우 친한 남자 손님이었지요.

뒤에 그 손님이 제 말을 제 아내에게 그대로 옮긴 탓에 제가 받았을 수모(?)는 당신이 생각한 이상이라는 말씀을 덧붙이도록 하고요.

그런 제 아내가 확실하게 기억력이 떨어진 현상이 오늘 나타났답니다.

“오마! 그럼 내가 몇살이야? 오마마…..”

14 정미생일

그런 아내를 위하여, 참 좋은 기억력으로 오래오래 살라는 맘으로 장모님이 끓여주신 갈비국에 넉넉히 넣은 당면국수를 점심에….

저녁에는 아직은 특별한 날에는 곁에 있는 아이들과 이태리 국수를….

아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