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2 – 포로기 5

(당신의 천국 – 쉰 다섯 번 째 이야기) 

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읍니다.  우리는 그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 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 고린도전서 2 : 12 – 14, 공동번역에서 

성경을 다른 말로 풀이하자면 이중적인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들은 이것을 기록했고, 하나님은 인간들을 통해 이것을 기록하였다. 성경은 인간의 기록인 것과 동시에 신적인 기록이다.  – J. I. Packer의’ 하나님의 말씀들(God’s Words)’에서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모든 일은 뜻이다. 뜻에 나타난 것이 일이요, 물건이다. 사람의 삶은 일을 치름(경험)이다. 치르고 나면 뜻을 안다. 뜻이 된다. 뜻에 참여한다. 뜻이 있으면 있다.(존재 存在) 뜻이 없으면 없다.(무 無) 뜻이 있음이요, 있음은 뜻이다. 하나님은 뜻이다. 모든 것의 밑이 뜻이요, 모든 것의 끝이 뜻이다.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다. 뜻 깨달으면 얼(영 靈), 못 깨달으면 흙. 전잰을 치르고도 뜻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영원히 멍에를 메고 맷돌질을 하는 당나귀다.  –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 

사관(史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고 했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예순 해를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그리고 지금도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입니다. 그 가운데는 제 아내처럼 저와 거의 한 몸인 사람도 있고, 제게 베풀기만 하신 부모님들, 그저 주고만 싶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족들입니다. 조금 범위를 넓혀 본다면 지금 현재 제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나 모임, 일에 연관되어 만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주 범위를 넓혀서 제가 누려온 시간들 곧  60년으로 시간을 늘이고 그 안에서 스치듯 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어마어마한 수가 될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지금 이 순간 제 머리 속을 스쳐가는 얼굴들도 있고, 전혀 제 머리 속 기억에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말 한 번 꼭 다시 보고 싶은 얼굴도 있고, 행여라도 다시볼까 겁나는 사람의 얼굴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얽혀서 일어났던 혹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일들 역시 ‘아, 다시 한번…’하는 일들도 있거니와 ‘다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일들도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와 만났던 모든 이들도 그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와 똑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지금 제 모습을 봅니다. 지금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현재의 제 모습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운 제 아내로부터 지금 제 머리 속에 없는 그 누군가가 생각하는 저에 대한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 예순 해 동안의 결과물입니다. 그 결과물에 대한 평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객관적 평가가 있을 터이고, 제가 스스로 내리는 주관적 평가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개인사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 때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객관적인 평가와 주관적인 평가 사이에서 말입니다. 

바로 그 평가의 잣대, 기준을 어디에다가 두느냐 하는 문제를 이야기 하려는 것입니다. 

개인사에서 공동체나 민족, 국가라는보다 큰 범위로 생각을 키워 보기로 하지요. 

일단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 공동체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보지요. 지난 약 한 세기 동안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지 경험, 이산(離散자신들의 삶의 자리에 따라 후에 제일동포, 조선족, 고려인, 미국인 등등…), 해방, 분단, 전쟁, 4.19, 5.16, 유신, 10.26, 5.17…. 등등등 

이런 집단 또는 공동체의 경험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평가의 잣대가 바로 사관(史觀)이라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은 똑같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1987년 6월10일에 유월항쟁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생활을 하시던 부모님 사이에서 피난지 부산에서 세상에 나왔고 유월 항쟁 직후 미국으로 이민을 온 제가 경험했던 시기의 대한민국 곧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난 일들 입니다. 

바로 어떤 시점에 어떤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아주 심지어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즈음 한국에서 뉴스가 되어 이 곳까지 전해진 역사 교과서 문제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 

어떤 평가의 잣대로 지난 일들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기록하느냐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그 기록에 따라 그 공동체의 미래가 결정되어지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정말 중요한 열쇠중 하나가  바로 사관(史觀)인 이유입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내가 되어 있는 모습, 또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오늘 여기에 그려져 있는 모습을 바라 보면서, 여기 이렇게 있기까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며, 어떤 까닭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이 바로 사(史)이고, 그것을 보는 눈이 바로 관(觀)입니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을 되돌아 보면서 그 시절은 치욕의 세월이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니와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한민족이 근대화되고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거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 왔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오늘, 나와 가까운 사람들 또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영원 무궁토록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늘 우선하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이게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세로 이어지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서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약 이천 오백년 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갑니다. 

JewsInExile

나라가 완전히 망했고, 포로로 끌려간 이들, 피난 간 이들, 그 땅에 남은 이들 그렇게 새로운 공동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전에는 모두 다윗과 솔로몬의 자손인 유다인들이었는데 이제는 가나안에 남은 유다인, 이집트 등으로 피난 간 유다인 그리고 바벨론 포로가 된 유다인들이라는 새로운 집단 공동체가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한 때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스런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 남 북으로 갈라져 살던 이야기들, 아니 아주 오래 전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에 정착하기 까지의 이야기들이 이들 모든 집단에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다 나라가 망하고 서로 살고 있는 자리와 처한 위치가 다르게 된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차라리 잘 된 일일수도 있었고, 다른 어떤 집단이나 개인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였을 수도 있고, 어떤 공동체나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여기에 왜 어떻게 이렇게… 그럼 내일은?”이라는 물음으로 다가 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바벨론에 포로로 가 있던 그 누군가가 그런 물음 앞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신명기사관으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라고 한답니다. 신명기 역사가들 이랍니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남으 나라에 잡혀와 있는그 당시 현재의 모습 속에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그 모든 과정 속에 담긴 뜻을 찾아 내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결과가 바로 신명기에서 열왕기까지의 이야기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시대가 구약성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바로 이 신명기 역사가들이 “나는 누구냐? 우리는 누구냐?”라는 물음으로 야훼 하나님 앞에 서 있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깨달은 ‘나’, ‘우리’ 곧 신명기 정신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나는 누구? 1 – 포로기 4

(당신의 천국 – 쉰 네 번 째 이야기)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성 안에 살아 남은 사람들과 미리 항복했던 사람들과 남은 기술자들을 바빌론으로 데려 가고,  가진 것 없는 영세민들은 포도원과 농토를 주어 유다 땅에 남겨 두었다. – 예레미야 39 : 10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성에 남은 사람들과 바빌론 왕에게 항복해 온 자, 그리고 기타 남은 백성들을 포로로 데려 갔다.  그는 백성들 중 가장 비천한 층의 사람들만 남겨 두어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 열왕기하 25 : 11- 12 

구약은, 역사책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작용된 이 구속사가 ‘곳곳에서 이미 신약의 그리스도 사건을 미리 예표한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 폰 라드(Gerhard von Rad)의 구약신학(Old Testament theology)에서 

우리는 패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한국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 아베 노부유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들은 함께 모여 살게 됩니다. 에스겔의 기록에 따르면그발강가 텔아비브에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말이 포로이지 반자유인으로 자신의 전통을 이어가며 살 수 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들은 멸망 직전의 유다사회에서 상층부에 속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identity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유다인들은 왕국이 멸망하던 당시 사회의 중하층민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유다인 출신의 총독을 세우고 그들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이들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바벨론으로 잡혀간 사람들의 땅으로 추정할 수 있는 토지들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토지개혁을 이루어 그 때까지 땅이 없던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농사를 짓게 한 것입니다. (저 위에 예시한 예레미야와 열왕기하의 기록입니다.) 

땅을 분배받은 이들은 새롭게 변한 사회에 급격히 물들고 맙니다. 야훼 하나님에 대해 조상들이 해오던 전통을 쉽사리 잃어 버린 것입니다. 왕국이 망했건 말건, 왕이 내 나라 사람이건 이웃 대국의 총독이 다스리든, 내 땅이 있고 내 식구 잘 먹고 잘 사는데 뭐 골 아프게 “바르게 살자” 운운하며 삶을 제약하는 조상들의 신은 별 재미가 없게 된 것입니다.  정신을 잃어 버린 것이고, 정체성을 잃어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왜 ? 지금?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들과 조상들이 걸어 온 길이 어떤 길이었고,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서와  제2 이사야라고 부르는 이사야 40장에서 55장 까지의 이야기들은 바로 그런 신앙고백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꼭 알아 두어야 하는 비밀 하나는 신명기 역사관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어 가려면 우리들이 좀 알아야하는 전제가  있답니다. 나중에 신약시대 이야기가 끝나고 교회시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잠시 다루려고 하는 성서 형성사에서 좀 상세히 설명드리려고 합니다만 오늘은 이야기를 잇기 위한 설명으로 그치려 합니다. 

18세기, 그러니까 약 삼 백년 전 까지는 토라 곧 모세 오경이라고 불리우는 책들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쓴 사람은 모세라고 믿고 있었답니다. 이른바 모세 오경설입니다. 

물론 유대교나 기독교(천주교나 개신교)를 믿는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1711년 개신교 목사인 비터(Henning B Witter)라는 양반이 창세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서로 다른데가 있네, 이거 뭐 좀 이상하네 하는 연구(이스라엘의 법)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모세 오경에 대해 한 문장 한문장 연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19세기부터 지난 세기의 최근까지 내노라하는 연구자들과 신학자들이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모세 오경을 쓰게 되었을까를 연구 발표한답니다.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고요. 특히 19세기 말부터 불기 시작한 고고학에 대한 연구들과 연이는 고적 발굴 등은 이런 연구에 힘을 더해 주었답니다. 

아무튼 오늘날에 이르러 이런 연구 결과들의 대세는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있는 성서가 완성되어지는데는 신명기 역사가라고 불리우는 개인 또는 그룹이 있었다는 것이고요. 그들이 기록물을 남긴 시점은 바로 유다인들의 바벨론 포로기 때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신명기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상하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뛰어난 연구가 가운데 마틴 노트(Martin Noth)라는 독일 신학자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바벨론 포로가 된 유다인들이 “우리들이 왜?”라는 질문으로 지난 일들을 되새기며 재해석한 작업들의 결과물들이 바로 신명기 역사서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관(史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연유입니다. 바로 신앙고백의 핵심이고, 믿음의 확신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핵심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은 제가 글 쓸 일이 많아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