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기쁨

한 해 마무리를 재촉하는 주일 아침에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 한 통 띄우다. 어쩌면 내게 보낸 편지일지도.


어느새 12월 중순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새로운 꿈들을 꾸어 보는 때입니다.

연 이틀 비가 내리던 어제 오후, 가게가 한가해진 시간에 잠시 저의 한 해를 돌아보았답니다. 그렇게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 되여 본 말은 그저 감사랍니다.

올 한 해 가게 자리를 옮겼고 그 과정에서 여러 걱정들이 있었지만 그 걱정들이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가 첫째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제껏 살아오며 제일 많이 병원을 드나든   였지만저희들을 그렇게 병원을 찾게 했던 노부모님들이 오늘도 살아 계심에 대한 감사가 둘째입니다.

카운터에 놓인 장미 화분을 보며 든 아내와 제 아이들에 대한 감사가 세번 째입니다. 며칠 전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제 딸아이가 보낸 장미 화분이랍니다.

그 감사에 대한 생각 끝에 이어진 것은 아쉬움입니다. 올 한 해 이루지 못한 것들, 계획과 엇나간 일들, 여전히 이어지는 이런 저런 불안과 아픔들입니다.

그리고 어제 늦은 밤, 새로 산 시집 시들을 읽다가 번쩍 눈이 뜨이는 즐거움을 맛보았답니다.

<내비게이터를 꺼버려/ 대충 방향 잡고 돌아 오는 길/ 도로가 한갓지다. / …  / 하늘에는 멎은 듯 흐르는 넓은 구름 강물/ 있다가 없다가 다시 있는 것들의 모습

이왕 길을 벗어난 김에/ 물새들과 알 듯 모를 듯 같이 걷는 해변, 번지는 황혼/ 금빛 우려낸 빛이 사방에 어른댄다./ …  / 하늘에 희한하게 하얀 반달 하나/ 찾으면 있고. 않으면 없고.>

황동규라는 시인이 쓴 ‘내이비게터를 끈 여행’이라는 시의 일부랍니다. 시인의 나이 올해 여든 한 살인데 아직도 왕성히 시를 쓰고 있답니다.

그가 시집을 내며 하는 이야기랍니다.

<시를 좇아가다 보니 바야흐로 삶의 가을이다. 주위에 자신의 때깔로 단풍 들거나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가득 찬 잔만큼 아직 남은 잔이 마음을 황홀케 한다.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

이제 올 해도 겨우 보름 남짓 남았습니다. 뭐 크게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올 한 해 ‘남은 잔이 마음을 황홀케’하는 시간들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Mid-December came so soon. It is a time to wrap up a year and to dream a new dream for a new year.

Yesterday afternoon when the store was quiet and while the rain continued for two consecutive days, I tried to look back over the year. It was just gratitude which I reiterated and listened to myself, while I was looking back on the year 2019.

This year, I moved the store and had many worries in the process of moving. But, it was like I cried before I was hurt. To get to realize it was the first gratitude.

Though my wife and I had to go to the hospital this year more often than any other year because of my father-in-law and my parents, the gratitude for their being alive today was the second.

The third was the gratitude for my wife and children, which came across when I looked at the pot of roses on the cleaners’ counter. It was what my daughter had sent to my wife as a birthday gift the other day.

What followed after the gratitude was a sense of regrets and frustration, because of the thoughts about things to be done but unfinished, things that went awry, and this and that anxiety and suffering.

Then, last night, while I was reading a new book of poetry which I had gotten recently, I enjoyed an eye-opening happiness.

<Turning off the navigator/I took the course roughly, returning/the road was deserted./… /A wide river of clouds which looks to halt but flows in the sky/the look of things which appear, disappear and appear again.

Once straying from the right path/the beach on which I walked with waterfowl as if we both knew or not, spreading twilight/the lights brewing golden light glimmered everywhere./ … /The strangely white half-moon in the sky/was there when I looked for it and was not there when I didn’t>

It is a part of a poem, “A Trip with the Turned-off Navigator,” which Dong-gyu Hwang wrote. Though he is eighty-one years old, he is still very active in writing poetry.

He wrote in the preface of the book:

<As I have followed the poetry, I now stand at the autumn of my life. Those who have turned or are turning into their own colors around me are beautiful. A still-some-left glass makes my mind thrilled as much as a full glass. Please forgive me for this ‘joy of living’ which is small and itchy like a bug bite.>

Now only about half a month is left before the end of this year.

I wish that you will have time in which a still-some-left glass makes your mind thrilled for the remaining days of this year, if not life itself.

From your cleaners.

주일아침, 세월호 그리고 시

사람들이 내세웠던 일반적인 예상과는 사뭇 다른 한국 총선 결과를 두고 입달린 이들의 말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 며칠 사이에 전해오는 뉴스들의 논조도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이대로 사그러질 것만 같았던 세월호 이야기가 마침 2주기에 맞물려 상당 지면을 차지하고 있음도 그 바뀐 정황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남쪽의 조선을 자임하는 조선일보 등의 철저한 외면은 여전하지만 말입니다.

뉴스를 훑던 눈으로 성서를 들고 성서에게 묻습니다. 마침 주일 아침인 까닭입니다.

성서 구약에 있는 시편 22편입니다.(알기쉽게 번역한 공동번역 개정판으로 읽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나의 하느님, 온종일 불러봐도 대답 하나 없으시고, 밤새도록 외쳐도 모르는 체하십니까?> – 22편 1-2절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사람마다 나를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야훼를 믿었으니 구해 주겠지. 마음에 들었으니, 건져주시겠지.” 당신은 나를 모태에서 나게 하시고,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주신 분, 날 때부터 이 몸은 당신께 맡겨진 몸, 당신은 모태에서부터 나의 하느님이시오니 멀리하지 마옵소서. 어려움이 닥쳤는데 도와줄 자 없사옵니다.> -6-11절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주시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 개 입에서 빼내 주소서. 가련한 이 몸을 사자 입에서 살려주시고, 들소 뿔에 받히지 않게 보호하소서. > – 20-21절

시편 22편은 까닭도 모른채 덮쳐온 고통과 고난속에서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이, 이웃들의 멸시와 조롱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부르짖는 소리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 가운데서 지난 두해동안 세월호 유가족들과 그들과 함께 하려고 애썻던 이들이 부르짖던 소리를 듣습니다. 또한 그 세월 동안 부르짖는 소리들을 의도적으로 묵살하고 외면했던 이들의 모습들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아무런 상관없이 무심히 자신들의 일상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거의 제 모습입니다.

시편 22편은 울부짖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끝내 이루어질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확신에 찬 믿음으로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시는 야훼 하나님을 고백하는 소리를 전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옥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이 찬양하는 분, 우리 선조들은 당신을 믿었고 믿었기에 그들은 구하심을 받았습니다. 당신께 부르짖어 죽음을 면하고 당신을 믿고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 3-4절

<내가 괴로워 울부짖을 때 ‘귀찮다, 성가시다.’ 외면하지 않으시고 탄원하는 소리 들어주셨다.> – 24절

울부짖음과 구원 사이에 어떤 이야기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주고 받는 값이 없습니다. 울부짖음이 있는 현장에 야훼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른바 무상성(無償性)이요, 조건없음입니다.

그러나 시편 22편은 때론 공허하기만 합니다.

현실은 여전히 울부짖는 소리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일만이 아닌 백만이 넘쳐나도 여전히 “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사람마다 그들을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거리는 세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고한 자들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이 여전히 이어지는 세상을 향해 시편 22편이 던지는 맺음말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겨레에게 알리고 예배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리니,  “야훼를 경외하는 사람들아, 찬미하여라. 야곱의 후손들아, 주께 영광 돌려라. 이스라엘의 후손들아, 모두 다 조아려라.> 22-23절

<온 세상이 야훼를 생각하여 돌아오고 만백성 모든 가문이 그 앞에 경배하리니, 만방을 다스리시는 이 왕권이 야훼께 있으리라. 땅 속의 기름진 자들도 그 앞에 엎드리고 먼지 속에 내려간 자들도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이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오고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그 이름을 세세대대로 전하리라. 주께서 건져주신 이 모든 일들을 오고오는 세대에 일러주리라.>

바로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지금 울부짖는 소리(사람)들과 함께 구원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그들과 함께 손잡고 확신에 찬 구원의 기쁨을 외치라는 맺음구입니다.

다시한번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여전히 진실을 향한 애타는 소리들과 고통을 벗어나고자하는 애달픈 소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한낱 어리석은 소리로 들릴수도 있는 맺음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신앙이요, 믿음이라고 성서는 다시 다잡아 일러줍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 고린도전서 1장 18절>라고 말입니다.

주일 아침, 신경림 시인의 시를 성서의 눈으로 다시 읽습니다.

sewol_2016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아무도 우리는 너희 맑고 밝은 영혼들이
춥고 어두운 물속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밤마다 별들이 우릴 찾아와 속삭이지 않느냐
몰랐더냐고 진실로 몰랐더냐고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걸
우리가 만들어온 세상이 이렇게 바르지 못했다는 걸
우리가 꿈꾸어온 세상이 이토록 거짓으로 차 있었다는 걸
밤마다 바람이 창문을 찾아와 말하지 않더냐
슬퍼만 하지 말라고
눈물과 통곡도 힘이 되게 하라고
올해도 사월은 다시 오고
아름다운 너희 눈물로 꽃이 핀다
너희 재잘거림을 흉내내어 새들도 지저귄다
아무도 우리는 너희가 우리 곁을 떠나
아주 먼 나라로 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바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뜨거운 열망으로 비는 것을 어찌 모르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보다 알차게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을 보다 바르게
우리가 꿈꾸어갈 세상을 보다 참되게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아름다운 영혼들아
별처럼 우리를 이끌어 줄 참된 친구들아
추위와 통곡을 이겨내고 다시 꽃이 피게 한
진정으로 이 땅의 큰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