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네는 열차 맨 앞칸, 우리는 끝에서 두번 째 차량에 있는 객실로 떨어졌다. 예약 이후 같은 차량에 있는 객실 두개로 바꾸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이미 만석이어서 애초 배정받은 객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매 식사 때마다 만나 함께 식사한 후 라운지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방으로 헤어지곤 하였는데, 이 방배정은 긴 여행에서 오히려 잘된 선택 같았다.
객실 안에는 기차노선 안내 설명서가 꽂혀 있었는데 이는 여행에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되었다. 비록 서지는 않더라도 열차가 지나가는 모든 기차역들과 그 지역에 대한 안내를 견하고 있었으며, 시카고 기점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곳인지와 지나가는 시간들을 잘 안내해 주고 있었다.
안내서는 시카고를 “미국의 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미 전역으로 뻗어가는 기차노선 및 각급 교통망의 중심지라는 것이다.
시카고를 출발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끝없는 옥수수밭이었는데, 일리노이주를 지나 아이오와주를 건널 때까지 이어지던 것이었다.
아이오와주로 들어서기 직전에 지나간 곳은 일리노이 Galesburg였는데 안내서에는 아주 낯익은 이름을 소개하고 있었다. 바로 그곳 출신인 시인 Carl Sandburg였다. 나는 그가 쓴 “행복”이라는 시를 아주 좋아해서 종종 내 가게 손님들에게 소개하곤 한다.
Happiness
I ASKED the professors who teach the meaning of life to tell me what is happiness. / And I went to famous executives who boss the work of thousands of men. / They all shook their heads and gave me a smile as though I was trying to fool with them / And then one Sunday afternoon I wandered out along the Desplaines river / And I saw a crowd of Hungarians under the trees with their women and children and a keg of beer and an accordion.
행복
인생의 의미를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 수천명의 사람들을 지휘하는 유명한 사장들에게도 물어보았다. / 그들은 다들 고개를 내저으며 내가 장난이나 치고 있다는 듯 웃기만 했었다. /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데스플레니스 강에서 강을 따라가니 / 나무 아래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맥주통과 손풍금을 곁에 둔 한 무리의 헝가리인들을 보았다.
**** Desplaines river(데스플레니스강) – 일리노이주에 있는 강이름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유럽에서 몰려온 이민자들 대부분들이 그렇지만 특히 헝거리 이민자들은 가난을 피해 온 바닥 인생들이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이 땅에서도 고된 노동자였다. Carl Sandburg는 돈과 지식과 명예를 지닌 사람들에게서 찾지 못했던 행복을 잠시의 쉼을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헝가리 노동자들에게서 찾았다는 노래이다.
열차가 미시시피강을 건너며 아이오와로 들어섰다. 미시시피강은 탁하고 거칠게 다가왔다. 미국 중부지역을 남북으로 가르며 흐르고 있는 미시시피에는 미국내에서는 두번 째, 세계로는 네번 째로 긴 강이라고 한다. 인디언들이 ‘큰 강’, ‘위대한 강’이라는 뜻으로 불렀다는 미시시피강에는 아직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 인디언들과 흑인들과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강바닥에 묻혀 있을 것이다.
아이오와는 옥수수밭의 연속이었다. 아이오와 코커스로 유명한 아이오와 땅넓이는 한국보다 큰데 인구는 한국의 1/15 수준이란다. 아무튼 미주, 공화 양당의 대통령 경선이 제일 먼저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 경선에서 이기는 사람이 그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하여 유명한 것인데, 공화당 경우는 그리 맞지 않는 말일 수도 있겠다. 이번 선거에서는 트럼프가 아닌 테드 크루즈가 이겼었으니.
침실객차 손님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무료가 아니라 기차값에 포함) 식사 시간은 저녁식사에 한해 세 차례 스케쥴 중 시간을 선택해야 했다. 우리는 마지막 서빙 시간을 택했다.
식사 하기 전에 지나친 역 이름이 Ottumwa 였는데 이 역에 대한 설명에 또 낯익은 이름이 하나있다. 우리 또래쯤 되는 사람들은 AFKN이라는 방송을 통해 익은 M*A*S*H라는 드라마 이름이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이동외과병원 부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보고 욕 한번 안해본 한국 사람이 있을까? 돌이켜볼수록 이제 한국은 아주 다른 나라가 되었다. 아무튼 이 드라마 주인공 가운데 Radar” O’Reilly(드라마 주인공 이름이고, 실제 배우 이름은 Gary Burghoff) 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설명이다.
열차안에서의 첫 식사는 대단히 만족한 것이었다. 물론 전문 스테이크 하우스와 견줄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치는 넘어선 것이었고, 게와 새우 등을 넣은 해물요리도 즐길만하였다. 각종 음료와 맥주는 제공되지만 와인이나 liquor는 제외(물론 돈주고 사먹으면 된다).
식사후 라운지에서 바라본 풍경은 바뀌어 있었다. 끝을 볼수 없는 목축장 그리고 천하태평으로 노니는 검은소들, 그리고 이내 지평선 넘어로 숨는 해를 보며 우리는 소소한 행복을 즐겼다.
기차 아래층에 있는 샤워룸은 아주 깔끔하였다. 샤워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오니 기차는 미조리강을 건너 네브라스카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