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며칠 전 US News & Business Report라는 신문사 기자라는 이와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사연인즉은 그 신문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을 견뎌내는 Local Businesses를 다루는 기사를 준비하면서 영업주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로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사업상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겪고 있는 일들과 이즈음 느끼는 점들을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CBS News에 실린 <세탁업의 최악 사이클: 세탁인과 재봉업자들이 겪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 – COVID 연대기 Laundry’s worst cycle: The coronavirus’ impact on dry cleaners and tailors – COVID chronicles>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가 왔다. 그리고는 취소가 이어졌다. :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주정부가 군중집회를 단속하여, 결혼식, 출장, 결혼기념일 축하 행사, 스포츠 대회, 종교적 휴일, 프롬, 졸업식 그리고 장례식 등 모든 행사들을 그만두게 되었다. 신부들과 졸업생들은 세계적 전염병이 중요한 날을 집어 삼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전국의 세탁인들과 재봉업자들은 자신들의 생계가 심각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초기에, 대부분의 세탁소들은 매상이 83 – 92% 감소했다고 하고, 지난 해 대비 80% 정도 매상이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이 기사는 여러 세탁소 주인들이 겪고 있는 저마다의 경험들을 다루고 있다.

나아가 이 기사는 전반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바뀐 생활 패턴에 따르자면 세탁업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뉴햄프셔주 시골지방 Littleton에서 Martin’s Cleaners를 운영하고 있는 Edward Martin의 말로 맺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가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끝까지 견뎌 나갈 것이다.”

내 개인적인 사정도 일반 세탁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즈음 하루 하루를 보내며 해 보는 생각도 Edward Martin씨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부부가 일할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끝까지 견디어 보는 것이다.

이즈음 내가 누리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팬데믹이 발생한 지난 봄에 뒷뜰 언덕배미에 뿌린 야생화 씨앗들이 꽃으로 변해 내게 건네는 즐거움이다.

DSC00736DSC00722DSC00725DSC00726DSC00727DSC00728DSC00729DSC00733DSC00736

몹시 무더운 날에.

새 장난감, 손전화에 대해

‘쓸데없이 고집만 쎄서….’ 내가 종종 아내에게 듣는 잔소리 가운데 하나이다. 아내가 그 말을 던지는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절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아내의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내가 지적하는  ‘쓸데없는 고집’ 가운데 하나는 손전화(스마트폰 또는 핸드폰)없이 사는 내 삶이다. 이런 나를 골동품 취급하는 이들은 아내말고도 종종 만날 수 있다.  골동품으로 여기든 촌놈으로 여기든 ‘쓸데없는 고집’으로 치부하든, 아내를 비롯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몫일 뿐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손전화를 전혀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십 수년 전 아직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 모두들 투박한 모양의 핸드폰들을 사용하던 시절에 한 일년여 손전화기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그만 전화기를 없앤 이후엔 손전화기와는 상관없이 살았다. 뭐 큰 이유나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단지 편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내 나이 또래 이상의 노인들 조차 스마트폰을 사용하는게 어색하기는커녕 당연한 세상이 되었어도 나는 그 물건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딴 이유없다. 그저 없이 지내는 편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믿을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앱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기술적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지언정 스마트폰은 없이 살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편한 삶을 위해서였다.

아내에게 ‘고집세다’는 잔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없이 살았던 내가 마침내 손전화(스마트폰)를 사서 손에 넣었다.

내가 개인컴퓨터(pc)로 사용하는 텔레그램 말고, 스마트폰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카톡도 pc버전이 있지만 아내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에이 할 수 없다’하고 하나 장만한 것이다.

이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고 지금 열공중이다. 나는 이 장난감을 가지고 전화를 주고 받는 일에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밥 먹고 사는 업종인 세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해 카톡 또는 sns등을 이용해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전달해 주는 일이나, 언어문제로 순간을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해 보고자하는 내 늙으막 꿈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해 보고자 함이다.

내 새 장난감으로 하여 아내의 잔소리 가운데 하나는 사라질런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