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주일 편지

뉴스 이외에 한국 TV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엊그제 일이었고 ‘알쓸신잡’이라는 프로였다. 편집의 힘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 하여도, 출연진들은 이 시대에 대단한 입심을 보유한 지식들이었다. 시청 후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 하나 있어 주일 아침 편지를 쓰다.

10-7A

제 부모님은 Pike Creek 에 있는 노인 아파트에, 장인은 Wilmington 시내에 있는 노인 아파트에 살고 계십니다. 아흔 줄 연세 노인들의 가장 큰 일과 가운데 하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일입니다.

한국 TV 방송을 직접 시청할 방법이 없으므로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해 드라마들을 시청하십니다. 그러니 노인들이 드라마를 즐기기 위해서는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TV 모니터가 필요하답니다. 이 세 가지들이 아무런 이상이 없을 때는 노인들에게 참 좋은 친구들이지만, 셋 중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노인들의 일상을 망가뜨리는 물건이 되고 맙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은 노인들을 찾아 뵐 때가 되었다 싶으면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TV 모니터 셋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곤 한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의 오작동이나 기기들을 다루는 것이 서툴러서 생긴 일이랍니다.

지난 주에 가게 문을 닫은 후, 하루는 장인에게 다른 하루는 제 부모님에게 같은 일로 들리게 되었답니다. 대부분의 같은 경우처럼 문제를 해결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일들이었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돌아왔답니다.

엊그제 부모님 집에 들렸다가 돌아 온 늦은 밤, 평소에 잘 보지 않던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답니다.

Italy Florence에 있는 유럽 최초의 보육원이라는 Ospedale degli Innocenti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프로였습니다. 보육원이 생기게 된 배경과 과정 500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그 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최근에 그 보육원에서 지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동영상에 담아 방문객들에게 보여 주기도 한답니다.

그 중 한 여성의 이야기가 제 머리 속에 깊이 박혔답니다. 보육원과 그녀를 입양한 양부모, 그리고 다시 만난 친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녀가 말하는 ‘가족’에 대한 정의였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가족’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바뀌어 나간다고들 합니다. 가족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서로 간의 깊은 배려 속에  함께 만들어 나가는 가족이 있는 한 세상은 따듯할 듯 합니다.

물씬 가을 냄새가 나는 때입니다. 딱히 피붙이들이 아니어도 따듯한 세상을 만드는 이웃 가족들이 함께 하는 가을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My parents live in a senior apartment in Pike Creek and my father-in-law also lives in a senior apartment, but in Wilmington. They are in their nineties. One major part of their routine or entertainment is to watch and enjoy Korean dramas.

As there is no other way to watch Korean TV here, they watch Korean TV programs through the internet site. So, in order to enjoy Korean dramas, they need a computer, internet connection and a TV monitor. When there is no problem in any of these devices, they are good friends to them. But, when there is a problem in any of them, they become troublesome machines which break their everyday lives.

Looking back, interestingly, whenever I thought that it was about time to see my parents or father-in-law, they called and asked me to fix a problem which arose in the devices. Actually, in the majority of cases, the problem came up, not because any of the devices malfunctioned, but because, understandably, they were not good at dealing with these technical devices.

Last week, after closing the cleaners, I had to stop by at my parents’ apartment one day and at my father-in-law’s another day, for such a reason. In most such case, it did not take even 10 minutes for me to fix the problem. But I stayed and talked with them for a while.

A couple of days ago, when I stopped by at my parents’ and came back home late at night, I happened to watch a TV program which I had not watched usually.

It was a story about “Ospedale degli Innocenti” in Florence, Italy, which was the first orphanage in Europe. The program covered the background of its establishment and those who passed through since it had founded about 500 years ago.

According to the program, the orphanage shows videos about those who used to live there recently to visitors.

One woman’s story among them was stuck deeply in my head. She grew up in the orphanage, under adoptive parents, and later under her real parents who she met again later. She said that “a real family” is not something given, but something molded.

They say that the world has changed and is changing. So is the concept of family, I think. However, as long as families are molded in mutual consideration and care, the world will stay warm, I believe.

The fragrance of fall pervades the air. I wish that you’ll be with neighbor families who make the world warm, though they are not your flesh and blood, this fall.

From your cleaners.

주일 편지 – 9/2

아침에 세탁소로 나오면서 한 동안 보지 않았던 스쿨 버스들을 다시 만난 지난 주간이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의 방학이 끝난 모양입니다. 그리고 주초 며칠 동안은 몹시 더운 날들이 이어졌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 가게 문을 열 때 찍은 사진이랍니다. 해가 떠오르면서 이글거리는 느낌이었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미처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캐나디언 구스들이 소리를 내며 떼를 지어 천천히 날아갔답니다. 순간 캐나디언 구스들의 소리가 제게 이렇게 들렸답니다. ‘덥다고? 이제 여름 다 갔어!’

구월입니다. 내일은 노동절이고요. 내일은 세탁소 문을 닫습니다. 저희 부부도 모처럼 이틀을 쉽니다.

한가지 궁금증이 일어 당신께 물어 본답니다. 휴일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특히 모처럼 맞는 이런 연휴에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제 경험들을 가만히 뒤돌아보면 제대로 휴일을 만끽했던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도 쉽지 않지만 쉰다고 것도 그리 쉽지 만은 않은 듯 합니다. 연휴가 다가오면 이런 저런 계획들을 세우곤 하지만 막상 휴일이 되면 그 계획대로 다 이룬 적도 별로 없는 듯합니다.

딱히 그런 생각 때문은 아니지만, 이번 연휴에 저는 아무 계획도 없이 아무 일도 않고 그냥 쉬려 한답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목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Wayne Muller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모든 삶의 핵심에는 이 비어 있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 비어 있음은 신의 입김이 들어와 삶이라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텅 빈 갈대 같다. 모든 창조는 이 비어 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건 아주 동양적인 사고인 듯 합니다.

Wayne Muller의 말처럼 깊은 생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노는 날 푹 쉬는 즐거움을 맛보려 한답니다.

구월입니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것은 창조해 낼 만한 여유로운 쉼이 늘 함께 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9-2-a

Last week, on the way to the cleaners one morning, I began to see school buses which had not been on the roads for a while. Before I knew it, summer vacation for school kids might be over. And the heat continued to beat on for some days earlier last week.

Here is a picture which I took in the morning when I opened the cleaners on Thursday. I felt the rising sun was blazing.

DSC02842A

A little bit later, a flock of Canadian geese flew over slowly with lots of noise, of which I could not take a picture. At that moment, I felt as if they were saying, “Did you say it is very hot? Now, summer is almost over!”

It is September now. Tomorrow is Labor Day and the cleaners will be closed. My wife and I will have two days off for a change.

I’m asking a question, because I’m just curious. How do you spend Sundays? Especially, on long weekends like this week?

Looking back, I think that I have almost never really enjoyed holidays. To me, working is not easy, but neither is resting. When a long weekend was approaching, I made this and that plan. But, when it came actually, I hardly ever completed the plan.

Though it was because of that thought, I decided just to take a rest without any plan and without doing anything this long weekend. Simply, I’ll eat when I want to, and sleep when I want to without worrying about anything.

Wayne Muller, a pastor and best-selling author, said:

“All life has emptiness at its core; it is the quiet hollow reed through which the wind of God blows and makes the music that is our life. Emptiness is the pregnant void out of which all creation springs.”

It sounds like Oriental thinking to me.

Though it is not like what Wayne Muller implied, I’ll try to enjoy the pleasure of complete rest on the off-days.

It is September now and the days have gotten a lot shorter already.

I wish that you’ll always have a leisurely rest out of which your new creation springs in spite of a busy everyday life.

From your clea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