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상식(常識)

<민주주의적 자유와 비판의 권리가 일반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사회에서, 그 소수자 권력의 이익에 상응하는 사상, 가치관의 신념체계는 ‘특수주의 이데올로기’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반대되는 신념체계, 즉 다수를 위한 그것을 ‘보편주의 이데올로기’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비민주주의적 사회에서는 그 특수주의 사상이 그 사회의 ‘공인(公認)’ 또는 ‘제도적’ 사상으로, 그리고 보편주의 사상이 ‘이단적(異端的)’ 또는 ‘비판적’ 사상을 구성하게 된다. 이 두 입장이 적대관계냐 협력관계냐 하는 것은 주로 그 공인, 제도적 사상과 입장의 관용도에 달려 있다.

권력층의 세계관과 정치적 성숙도가 높을수록 ‘이단적’, ‘비판적’ 사상 및 입장의 정당한 가치와 기능을 승인하며, 양자간의 부단한 변증법적 통일을 발전의 계기로 이용할 줄 안다. 그 사회의 구성원이 합의하는 궁극적 목표와 이상을 공유하는 한, 그 양자는 동반자이지, 적이 아니다.

‘공인’사상과 ‘비판’사상간의 이 모순관계를 항구적으로 협조, 통일 및 발전의 관계로 활성화하게끔 제도화하는 장치가 민주주의임은 우리의 상식에 속한다. 한 사회의 생존과정에 개제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그 쌍방의 입장, 관점, 접근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그럴수록 발전의 잠재적 범위는 확대되게 마련이다.>

돌아가신 리영희선생님께서 1980년에 쓰신 <민주주의와 진실의 추구>라는 글의 한 대목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민주주의를 정의하시며 그저 1980년 현재 ‘우리들’의 상식에 속하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여러 다른 생각과 사상들 곧 다양성이야말로 민주주의 발전의 자양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1980년은 광주 민중항쟁이 일어난 해이고, 당시 자연 변화까지 주관한다는 뉴스 멘트를 받았던  전두환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해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렇게 단언합니다.

<’반공법 적용에 있어서는 정부 대리인이 위반이라고 해석하면, 그것이 결정적 판단이다. 피의자는 다만 그것에 복종할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략-

관료의 판단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 법과 그 운용에 관한 한 그것은 공인사상과 체계적 특수 이데올로기의 ‘신성불가침’으로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다. ‘절대화’의 규범을 넘어서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채, 일체의 반대도 비판도 허용치 않으려 한다. 이것이 한 법률의 종교화라는 뜻이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2014년도 저물어 갑니다. 참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2014, 2015몇 주전인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통해 만났던 이의 소리는 2014년과 함께오래 기억될 듯합니다. 그녀는 장난감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예쁘장하고 똘똘하게 생긴 세살 아이를 둔 30대 젊은 엄마입니다.

“그 동안 저는 내 모국(母國)이 자랑스러웠답니다. 정말 짧은 시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게다가 민주주의를 그렇게 빨리 정착시킨 나라도 없다는 그런 자부심을 준 모국이었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뭐랄까요, 부끄러움이랄까요, 안타까움이랄까요, 그냥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그래 모국을 위해 뭔가라도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리영희선생이 “우리들의 상식(常識)”이라고 말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1980년 당시의 대한민국의 ‘비상식(非常識)’적인 모습에 대한 한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비상식적 모습으로 2014년을 보내는 한반도 남북의 모습에 이는 안쓰러움과 그나마 나은 게 있다면 그래도 몇 십년 동안 이루어낸 다양성이 보장된 남쪽이라는 생각마저 잃게하는 분노가 쉽게 가시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상식(常識)”이 이루어지는 날을 꿈꾸며 아주 작은 일이라도 쉬지않고 꾸준히 노력하려는 다짐으로 2015년 새해를 준비해야 할 터입니다.

게으른 아침, 뉴스 셋

성탄절 아침입니다.

오랜 습관에 나이 탓까지 얹혀져 이른 시간에 침상을 벗어나기 마련이지만 모처럼 게으른 아침을 맞았답니다.

늦은 아침 커피를 즐기며 뉴스들을 훑어봅니다.

먼저 눈에 뜨인 소식은 제가 사는 동네 신문 온라인판 뉴스 헤드를 장식한 기사입니다. 말많았던 영화 The Interview 개봉소식과 우리동네 어느 극장에서 상영하는지 또 이후 영화를 상영할 극장수들이 어떻게 늘어갈 것인지 등에 대한 내용입니다.

interview

미국내 온라인 신문 거의 대부분들이 초기 화면에 이 영화에 대한 소식을 싣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다 눈에 뜨인 이에 관한 다른 기사랍니다.

뉴욕 기반으로 발행되는 온라인 신문 The Daily Beast에 실린 기사입니다. 제목이 “아니, 북한은 소니를 해킹하지 않았다. No, North Korea Didn’t Hack Sony”입니다.

이 기사는 FBI가 북한을 소니 해킹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들을 조목조목 반박을 하며, 북한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폅니다.

FBI가 내세운 주된 요인 두가지들, 곧 이번에 사용된 악성코드와 IP주소에 대한 것들은 범행의 증거로 삼기엔 너무 빈약한 것들 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사는 명확하게 북한이 아니라는 논증을 펼치며 (의도된) 여론몰이는 그만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무튼 영화는 흥행 성공을 거둘 듯 합니다. 영화에 대한 노이즈 마케팅은 확실히 성공한 것처럼 여겨지지 때문입니다. (The Daily Beast 기사보기)

안산한국뉴스로는 기사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 오마이뉴스 기사가 눈에 뜨였답니다.

<성탄절 예배로 하나 된 ‘세월호 안산’>이라는 큰 제목아래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 주제로 2014 성탄절 연합예배 열려>라는 기사입니다.

“첫째, 우리가 떠날 때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는 아기예수처럼 ‘세월호 유가족들과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둘째, 가족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용기를 내어 일상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해주십시오’.

셋째, 생명경시와 황금제일주의, 권력독점욕 이 세 가지 구조적 모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참사는 되풀이 되는 만큼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누가 아무리 무어라해도 제가 예수쟁이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밝혀주는 기사입니다.(오마이뉴스 기사보기)

마지막으로는 사실과 다르게 신문쟁이들이 조작한(?) 것으로 믿고 싶은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와 읽어 보았답니다. <진보 진영 “종북 뺀 새 정당 만들자”>라는 제목을 단 국민일보 기사입니다.

<이른바 ‘종북 세력’을 배제한 진보 진영 인사들이 ‘진보적 대중정치 복원’이라는 목표 아래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나섰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국민모임)은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진보적 대중정당 창당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동영 상임고문도 참여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고문은 “이분들의 선언이 시대 요청에 부응한 것이라고 본다”며 “저를 아끼고 성원하는 분들의 말씀을 듣고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정 고문이 탈당할 경우 야권에 큰 파장이 일 수 있다.>

설마 스스로를 미리 종북 프레임에 가두어 놓고 진보정치를 말했을까?라는 물음이 드는 기사랍니다. 만일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른바 국민모임은 쓰레기들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탄의 참 의미는 “사랑”에 있을 것입니다. 저물어가는 2014년 현재 “사랑”을 어떤 의미로 새겨야할지…

집안청소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할 오늘 만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백성이 소외감을 느끼면…

포박자세상은 참 빠르게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하고 있고,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을 멈추고, 변(變)하지 않고 정지(停止)하고 있는 것들을 따져 보기로 한다면 그 역시 엄청나게 많거니와 어쩜 그렇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까 하는 물음을 지울 수 없답니다.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여길 줄 모르지만 정말 변하지 않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람이 아닐까합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살이를 보며 해 보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함께 모여사는 세상 역시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을 보노라면 깜작깜작 놀랄 때가 있답니다.

어느 사회건 신과 사람 사이에서 브로커 노릇을 하며 사기를 일삼는 종교 브로커들이 늘 있어왔다는 종교적 무변화 곧 정지상태는 이어져 왔고요.

인류사에 있어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이 없었던 때는 어느 사회든 단 한차례도 없었다는 무변화가 있을 것이고요.

이런 저런 이유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꾸 사람들의 생각에서 점점 뒷전으로 밀려가는 듯한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초기에 있었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역시 곰곰히 따져보면 인류 역사 이래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계속 던져 온 질문이랍니다.

어쩌면 이런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질문으로 하여 사람들의 역사는 발전해 나왔고, 발전해 가고 있고,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 기원후를 따질 것도 없이 오늘날에 똑같이 품고있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생각을 곱씹어봅니다.

“도시국가의 상태는 개인의 몸과 아주 닮아있다. 일테면, 우리들의 손가락 하나가 상처를 입으면 몸 전체가 고통을 느끼듯이, 제대로된 국가는 이러한 유기체와 아주 흡사하다. 국민 가운데 어느 누구든 고통을 당하면 국민 전체는 그것이 마치 자기의 것인양 느낄 것이고, 국민 개개인의 즐거움이나 고통은 국민 전체의 그것이 될 것이다.” – 플라톤의 국가론

국가는 마치 하나의 선박이나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다. 그 일부의 와해는 전체의 보전에 치명적인 붕괴 요인이다. – 플라톤의 법률

인간의 몸은 국가를 상징하는 바와 같다. – 중략 – 정신(精神)은 제왕(帝王)과 상응하고, 피는 신하와 기(氣)는 백성과 상응한다. 이러한 까닭에 자신의 몸을 자제할 수 있는 이는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백성을 사랑하므로써 국가에 화평을 가져올 수 있고, 자신의 기를 함양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이 소외감을 느끼면 국가는 와해, 붕괴될 것이고, 기가 다하면 사람의 신체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 포박자(抱朴子)

세월호, 차라리 남기지 않았다면…

지난 일요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이 주최한 걷기대회에 다녀왔답니다. 그리고 그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답니다. 오늘 그 영상들을 함께 참석했던 이들에게 보내자는 생각으로 조금 편집을 해 보았답니다.

그러노라고 세월호 생수장 사건과 관련한 동영상들을 두루 찾아 보았답니다.

그러다 든 생각입니다.

DSC01844첫째는 과연 “문명(文明)”이란 무엇일까하는 물음이었습니다. 뭐 거창한 질문을 하자는 뜻이 아니고, 보통사람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안에서 동영상을 남겨 여러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된 것은 채 십년도 안된 일입니다. 엄청난 문명의 발전이지요. 그런데 그 문명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아픔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았답니다.

차라리 남기지 않았다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이토록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뒤짚어 놓지는 못하지 않았을까하는 물음이었답니다.

두번째로는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뻔뻔해 질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천개의 사실도 하나의 진리(힘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로써의 진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현실에 대한 물음이랍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러므로 더욱 해야할 일들이 많은 세상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로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저 제가 살고 있는 이 땅끝에서, 작은 몸짓 하나라도 아픈 이들, 더불어 함께 살려고 애쓰는 이들과 함께 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한 감사랍니다.

 

 

세월호 – 난 더욱 예수쟁이어야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이 일어난지도 어느새 반년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일심 재판도 끝났습니다. 끝내 시신조차 거두지 못한 아홉 영혼(추정하는 숫자일지도 모를 일이지만)들의 가족들에게 깊은 한을 남기며, 시신 수색작업도 끝냈다고 합니다.

노란리본실로 어이없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거대한 여객선이 육지가 빤히 바라보이는 연안에서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잠겼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사고 이후 단 한사람도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아직 인생을 꽃피우기도 전인 아이들이었습니다.

육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왜 그 많은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바다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는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오늘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다가 정말 기가 찬 나머지 헛웃음 터트릴 수 밖에 없는 기사를 보았답니다. 달탐사를 위한 엄청난 예산을 쪽지예산으로 들이밀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도대체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라는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에서 – 그것을 국가라 부르든, 사회라 부르든, 교회라 부르든, 당파라고 부르든 간에 –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람이건만 어디에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오로지 “돈”입니다. “권력”은 돈을 그러 모으기 위한 일차적 수단이고요. 그렇다면 돈과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조차 없습니다. 물론 거기 모습으로만 사람이 있으되 이미 사람이 아닌 악귀들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부끄러움”을 상실한 악귀들만이 공동체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모습이랍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이래로 정말 조용한 공동체가 한 곳 있습니다. 바로 개신교회입니다. 그렇게 느끼는 까닭은 제가 평생 개신교도인 까닭입니다. 이 나이에 개종(改宗)을 하거나 무종교자가 되는 일은 없겠기에 제겐 그저 아픔입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세월호 생수장 사건으로 인해 불거진 인사파동에서 드러났던 문창극이나 김성주 류의 사람들이 읊어댔던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 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야말로 “사람을 철저히 배제한” 것입니다. 오직 “돈과 연계된 악귀들 만을 위한”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문창극이나 김성주 류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믿는 사람들이 한국교회와 한인교회에 여전히 차고 넘치는 주류라는 것입니다.

뭐 멀리 가서 찾을 이유가 없답니다. 그저 주변에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개신교도임을 부인하지도 않을 것이고, 예수와 교회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믿기 때문입니다.

긴 역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임을 믿는 까닭이 첫째요, 누구나 짧은 인생을 통해 모든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신을 향해 응답하는 몸부림이야말로 참 신앙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은 죽은 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신앞에서 묻고 응답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제가 살며 사랑하는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신 홍길복목사님께서 그의 글 <디아스포라 코리안의 역사와 삶>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기독교신학에서 고난은 제3의 성례전이라 일컬어진다. 고난은 예수그리스도의 정체성이고 그의 구속사역의 방법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고난의 신학이다. 고난이 없이는 구원도, 부활도 없다. 고난은 인간존재의 가장 명확한 존재방식이다. 고난은 디아스포라의 존재방식이다. 고난은 모든 디아스포라의 삶과 이야기의 키 워드(key word) 이다.

고난을 넘어서는 길은 그냥 고난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다.  좌절을 극복하는 것은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난은 미화되서도 않되고 찬양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고난의 한 가운데는 고난의 주인이신 우주와 역사의 창조주가 계시다.

기쁨은 고난의 반대편에 있는것이 아니라 고난의 역사가 진행되는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승리 역시 실패가 끝난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진행되는 한 가운데 다른 얼굴로 현존하여 있다.

“고난이 지난 후에는 승리가 온다”라고 믿고 기대하는 것은, 자칫 고난 자체가 주는 위대성과 값어치를 모독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고난은 훗날 기쁨으로 바뀌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써 이미 엄청나게 위대한 축복이요, 승리이다.

수학에는 답을 얻는 과정이 있듯이, 인생에도 정답으로 가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마찬가지이다.

고난이 정답이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을 먼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제가 개신교도이어야 하고, 예수쟁이이어야만 하는 까닭입니다.

도대체 뭐가 다를까?

지금으로부터 155년 전인 1860년 5월에 한양 땅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조선조 철종임금 11년차에 일어난 일입니다.

포도대장을 지낸 신명순의 집에 낯선 중년의 여인이 스며듭니다. 여인의 이름은 주례, 당시 나이 쉰 네살이었습니다. 여인은 그 때 열 세살이었던 아들을 데리고 신명순의 집을 침입합니다. 가슴에는 단도(短刀)를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신명순은 큰 사랑방에서 아우와 함께 담소중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명순의 나이는 예순 둘. 주례라는 여인이 단도를 꺼내들고 신명순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신명순 형제의 힘에 맥없이 저지당했습니다. 열 세살 어린 아이도 그냥 얼어버렸고요.

아우성 소리에 신명순의 하인들이 달려들어 여인과 아이를 포박하고 포도청으로 끌고 갔답니다.

그리고 포도청에서 공초한 내용은 이렇답니다.

“지난해 오월에 제(주례) 맏아들이 병들어 죽고 작은 아들 회종이 지난해 팔월에 무슨 일인지 우포도청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열흘도 못되어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몇 달 동안 마음이 저리고 뼈가 삭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귀하거나 천한거나 다 같은 것입니다.

이 달은 제 맏아들이 죽은 달이요, 둘째 아들의 생일이 낀 달입니다. 도대체 제 작은 아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은 생각에 정신이 나가 포도대장 집을 들이닥치게 되었습니다.”

여인 주례는 이 일로 하여 목을 잘리는 형벌로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열 세살 막내는 귀양길에 올랐고요.

그리고 155년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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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월동안 아낙 주례같은 삶을 살다가 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이 일어난 지도 6개월이 지나 이백일을 맞는답니다.

이즈음은 ‘종북’이라는 신종 효수(梟首)놀음이 유행의 도를 넘은지라.

155년전과 오늘의 다름은 무엇일까요?

걷자 – 잊지 않기 위해

‘록키의 길’ 걸으며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필라 세사모 주최 ‘세월호 추모 걷기 대회’ -11월 9일 필라 페어마운트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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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기를 바라며 갖은 노력을 하는 박근혜 정부의 노력과는 달리 해외 동포들의 세월호 기억하기는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매주 세월호를 기억하고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일인시위가 벌어지는가하면 런던, 뉴욕 맨해튼, 조지아 아틀란타 등지에서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자유와 독립의 도시 필라델피아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걷기대회가 개최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이하 필라세사모)은 오는 11월 9일(일) 오후 2시 필라델피아 페어마운트 공원에 위치한 켈리드라이브에서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 추모 걷기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필라세사모는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주변은 세월호 진상규명의 외침조차 식상해하며 잊고 싶은 과거사가 되어가고 있다”며 “침몰 당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어선 안 되며 ‘잊지말자’는 전 국민적 결의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경기불황의 원인조차 세월호로 돌리는 몰지각하고 비이성적인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현 상황을 통렬하게 비판한 뒤 “이런 몰상식의 흐름을 차단하고 무모하게 희생된 넋들을 추모하는 추모걷기대회를 준비한다”고 추모행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세사모 관계자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분, 함께 용기를 내고 싶은 분들의 동참을 호소한다”며 “무고히 희생된 어린학생들의 진혼과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분들의 귀환과 진상규명을 위해 아직도 거리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드리며 우리 조국이 더 안전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동포들의 참여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해외에서의 추모행사를 주도해온 미시 유에스에이 및 세사모를 종북으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가속화되고 한국의 극우단체들이 미시 유에스에이 관계자들을 고발하는 등 미주 동포들에 대한 탄압이 더해지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행사여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해외동포들의 세월호 진상규명과 추모 의지가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결연해지고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걷기대회가 열리는 장소는 페어마운트 파크 Lloyd Hall 1 Boathouse Row이며 소요시간은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걸릴 예정이다.

특히 걷기대회가 열리는 페어마운트 공원 내 켈리드라이브는 강을 끼고 열린 길로 미국 내 10대 아름다운 조깅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며 영화 록키에서 록키가 아침에 로드워크를 하던 장면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주변에 미국 4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필라델피아 아트뮤지엄과 로뎅의 진품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 로뎅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어 매주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으로 이번 추모 걷기대회가 많은 홍보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모걷기대회 관계자는 “가족들끼리 모처럼 나들이를 나오기에도 좋은 곳”이라며 “ 추모걷기대회에도 참석하고 가족들끼리 박물관 구경이나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은 기회”라며 많은 참석을 당부하기도 했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전화 484-557-0531, 215-430-3128으로 연락하거나 또는 이메일 [email protected]으로 문의하면 된다.

–       이상 <뉴스프로> 기사에서

*** 잊지 않는다는 몸짓으로 걷기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잊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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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에 일어났던 세월호 집단 생수장사건으로 죽은 이들의 유가족들이 아직도 길거리에서 하루해를 맞고있다고 합니다. 낙엽지는 이 가을에 말입니다.

이제는 세월호의 ‘세’자만 나와도 지겹다는 사람들이 있다기도 하고, ‘가만히 있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는 유가족들 때문에 나라살림이 절단날 것 같다고 목청 높이는 이들도 있답니다.

시체장사라는 말에서부터 매국노, 종북 좌빨까지 유가족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언사들도 날로 거칠어지기만 합니다.

유가족들과 유가족들을 대하는 권력과의 힘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만큼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유가족들을 포함하여 그들과 뜻을 같이하려는 사람들의 총체적인 힘의 합보다 수천, 수만 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쪽은 이른바 국가의 공권력과 언론 권력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른바 여론 쪽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마치 힘의 균형이 팽팽한 것처럼 거짓 정황들을 만들어 놓고는 차마 사람의 탈을 쓰고는 뱉어내서 안될 언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세월호에 대한 기억의 싹수를 도려내고야 말듯한 기세입니다.

이럴 때, 약한 자들이 힘을 잃지 않고 뜻을 지켜내는 방안은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는” 일입니다. 바로 잊지 않는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연대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서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주일아침, 두편의 시(詩)

뜰에 가을이 밀려든 주일아침입니다.

이 아침도 제 삶이나 세상 소식들은 그저 일상의 연속입니다. 딱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아침에 느끼는 허전함 말입니다.

그렇게 손에 든 옛 시집을 넘기다가 눈에 꽂힌 시 두편입니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제 믿음을 확인하며, 일상에 대한 감사를 되찾습니다.

팽목항

풀잎이 하나님에게

–       허형만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우리의 이파리를 꺾이지 않게 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지키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태풍이 몰아쳐도 뿌리 뽑히지 않게 하시고

들불이 번져 와도 타지 않게 하소서

비록 어둠 속에서도 두 눈 크게 뜨게 하시며

나팔을 높이 불어 쓰러진 동족을 일으키소서

우리의 햇살을 전과 같이 함께하게 하시고

우리의 새들도 처음처럼 돌려보내주소서

짓밟는 자에게 생명의 귀함을 일깨워주시고

낫질하는 자의 낫은 녹슬게 하소서

야훼, 우리 하나님

우리의 땅은 더욱 기름지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은 버러지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우리의 뿌리는 더욱 깊이 뻗게 하시며

우리의 하늘은 더욱 푸르르게 하소서.

 

 

–       이탄

돌멩이처럼 굴러 있는 그런 것들의

틈에서 사는 평범한 하루

아침이 왔다 가고 저녁이 왔다 가고

더러는 왔다 갔는지 모르게 가고

아직 한번도

내가 부른 아침, 내가 부른 저녁은 없었지만, 이제 아침이나 저녁은 가족 같은 걸.

 

연기가 새어나오는 틈으로 새어나가듯

틈에서 사는 하루

그래도 보이는 하늘은 넓다.

늘 푸르다.

 

돌멩이처럼 사라져 간들

깨끗한 귀 깨끗한 눈으로

틈을 메우며 살려는 재미.

리영희 – 그의 되살아남

“괴로움으로 엮어진 만 7년간의 군대생활은 1957년 8월 16일 육군소령으로서의 진급명령과 제대비 8천 원이 덧붙여진 223848 군번의 예편통지서를 받아든 것으로 그 지루했던 막을 내렸다.

1950년 8월 16일 입대했을 때 스물 두 살이던 철부지 젊은이는 스물 여덟 살의 고민하는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이북에서 내려온 한 청년으로서 이 나라와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의무에 거의 무조건 맹목적으로 순응하고 복종하던 개체의 내면에서는,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을 회의하고 질문하고, 허위와 가식으로 가려진 진실된 가치를 밝혀내어, 진실 이외의 그 무엇에 대해서도 충성을 거부하는 종교같은 신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 자신은 그 변화를 분명히 자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고 하나의 되살아남이었다. 되살아난 그 후의 삶은 그에게 많은 고난과 시련을 안겨줄 것이 분명했지만 그의 삶은 그 변화로 말미암아 충족될 것이었다.”

리영희작고하신 리영희선생님께서 1984년에 쓰신 ‘전장과 인간’이라는 글의 마지막 한 부분입니다. 자신의 6.25 전쟁체험을 자전적으로 엮은 글입니다. 선생께서는 이 자전적 이야기에서 줄곧 “나”라는 화자(話者)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그러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글의 화자를 “그”라고 객관화 시킵니다.

그 시점부터 리영희선생님의 삶은 “나”라는 자기 중심적 삶에서 “그”라는 공동체적 삶으로 바뀝니다. 그 공동체를 정의하여 리선생님은 “민족도 아니요, 국가도 아니다”하셨습니다. 그는 “진실을 찾는 공동체” 안에 자신을 객관화시켰습니다.

그 이후 그가 걸어온 언론인과 학자로서의 길은 바로 그런 자기 객관화의 삶이었습니다.

같은 시대의 인물로 청암(靑巖) 송건호(宋建鎬)선생님이 계십니다. 한겨레신문 초대사장을 지내신 분입니다. 그 역시 자신을 민족과 민중 속에서 객관화 시키기 전까지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삶”에 빠져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편안하게 많은 것 누리시며 사시다 가셨을 수도 있는 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두 분 모두 스스로 고난의 짐을 메고 사시다 가셨습니다.

리영희선생님은 평북출신의 피난민이었습니다.

이즈음 70여년 전 서북청년단 흉내내기에 빠진 미친놈들 뉴스를 보다가 떠올려본 두 분 선생님 이야기였습니다.

리선생님께서 ‘전장과 인간’이라는 글에 남기신 이야기 하나 더 소개 드립니다.

“동물적 생존본능에 있어서는 지식이나 교양이라는 것이 그 후 경험하고 목격하게 된 무식한 사병들이나 형무소의 파렴치 잡범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쓸쓸한 심정이었다. – 중략 – 이런 동물화된 인간군의 상태는 그 현실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으리라.”

이즈음 세월호 집단 수장사건의 처리과정 모습은 바로 이런 “동물적 생존본능”이 “집단 이기주의”로 발전한 한 양태일 것입니다.

혹자는 리영희선생님나 송건호선생님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패로 규정하기도 할 것입니다. 거의 광기에 빠져있는 이즘 세태로 보자면 분명 실패로 규정지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리영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의 경지에 이르고보면, 그 즐거움이 여간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맛본 사람들만의 몫입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되살아난 그 후의 삶은 그에게 많은 고난과 시련을 안겨줄 것이 분명했지만 그의 삶은 그 변화로 말미암아 충족될 것이었다”

이런 충족하고 만족한 삶을 꿈꾸며 자유하는 삶을 누리는 이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