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적 자유와 비판의 권리가 일반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사회에서, 그 소수자 권력의 이익에 상응하는 사상, 가치관의 신념체계는 ‘특수주의 이데올로기’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반대되는 신념체계, 즉 다수를 위한 그것을 ‘보편주의 이데올로기’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비민주주의적 사회에서는 그 특수주의 사상이 그 사회의 ‘공인(公認)’ 또는 ‘제도적’ 사상으로, 그리고 보편주의 사상이 ‘이단적(異端的)’ 또는 ‘비판적’ 사상을 구성하게 된다. 이 두 입장이 적대관계냐 협력관계냐 하는 것은 주로 그 공인, 제도적 사상과 입장의 관용도에 달려 있다.
권력층의 세계관과 정치적 성숙도가 높을수록 ‘이단적’, ‘비판적’ 사상 및 입장의 정당한 가치와 기능을 승인하며, 양자간의 부단한 변증법적 통일을 발전의 계기로 이용할 줄 안다. 그 사회의 구성원이 합의하는 궁극적 목표와 이상을 공유하는 한, 그 양자는 동반자이지, 적이 아니다.
‘공인’사상과 ‘비판’사상간의 이 모순관계를 항구적으로 협조, 통일 및 발전의 관계로 활성화하게끔 제도화하는 장치가 민주주의임은 우리의 상식에 속한다. 한 사회의 생존과정에 개제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그 쌍방의 입장, 관점, 접근 방법이 다를 수 있다. 그럴수록 발전의 잠재적 범위는 확대되게 마련이다.>
돌아가신 리영희선생님께서 1980년에 쓰신 <민주주의와 진실의 추구>라는 글의 한 대목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민주주의를 정의하시며 그저 1980년 현재 ‘우리들’의 상식에 속하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여러 다른 생각과 사상들 곧 다양성이야말로 민주주의 발전의 자양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1980년은 광주 민중항쟁이 일어난 해이고, 당시 자연 변화까지 주관한다는 뉴스 멘트를 받았던 전두환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해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렇게 단언합니다.
<’반공법 적용에 있어서는 정부 대리인이 위반이라고 해석하면, 그것이 결정적 판단이다. 피의자는 다만 그것에 복종할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략-
관료의 판단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 법과 그 운용에 관한 한 그것은 공인사상과 체계적 특수 이데올로기의 ‘신성불가침’으로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다. ‘절대화’의 규범을 넘어서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채, 일체의 반대도 비판도 허용치 않으려 한다. 이것이 한 법률의 종교화라는 뜻이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2014년도 저물어 갑니다. 참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몇 주전인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통해 만났던 이의 소리는 2014년과 함께오래 기억될 듯합니다. 그녀는 장난감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예쁘장하고 똘똘하게 생긴 세살 아이를 둔 30대 젊은 엄마입니다.
“그 동안 저는 내 모국(母國)이 자랑스러웠답니다. 정말 짧은 시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게다가 민주주의를 그렇게 빨리 정착시킨 나라도 없다는 그런 자부심을 준 모국이었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뭐랄까요, 부끄러움이랄까요, 안타까움이랄까요, 그냥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그래 모국을 위해 뭔가라도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리영희선생이 “우리들의 상식(常識)”이라고 말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1980년 당시의 대한민국의 ‘비상식(非常識)’적인 모습에 대한 한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비상식적 모습으로 2014년을 보내는 한반도 남북의 모습에 이는 안쓰러움과 그나마 나은 게 있다면 그래도 몇 십년 동안 이루어낸 다양성이 보장된 남쪽이라는 생각마저 잃게하는 분노가 쉽게 가시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상식(常識)”이 이루어지는 날을 꿈꾸며 아주 작은 일이라도 쉬지않고 꾸준히 노력하려는 다짐으로 2015년 새해를 준비해야 할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