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1

은퇴한 이들에게 물으면 종종 듣게 되는 대답이다. ‘당신도 해 봐. 또 바쁜 일들이 생겨요. 그냥 뭔지 모르게 그냥 바쁘다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시간이 넘쳐난다 했더니 그도 잠시, 계획 이외에 바쁜 하루를 보냈다. 엊그제 마치 지붕이 날라갈 듯 심한 비바람이 일더니 실했던 이웃집 사철나무 허리가 댕강 부러져 내 집 뒷뜰 언덕배미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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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사내와 오전 내내 쓰러진 나무 정리를 하고 샤워를 끝낼 무렵, 누이의 전화를 받았다.

예약된 hospice 시설에서 어머니를 위한 침대가 지금 온다고 하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며칠 전 어머니의 임종을 맞는 듯 했었다. 응급으로 모시고 갔던 병원에서의 결과는 이제 삶이 아닌 죽음을 준비할 시간 이라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먼저 보내 드린 장인 장모의 경험으로 인해 조금은 차분하게 준비할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젠 온전히 신이 주관하는 시간이다. 내 어머니의 삶은.

오늘 예정되어 있던 유일한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땀 식힐 시간 없이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다. 세월호 6주기를 추모하는 필라 세사모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때가 때인지라 함께 모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추모 행사를 함께 하기로 한 시간이었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고 쉼 없이 활동해 왔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모르던 사람들이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뿌리내린 이곳 필라델피아에서 6년 동안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어려움도 부족함도 많지만, 진상규명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의 기억과 연대와 행동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호와 아이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힘겹게 견뎌온 가족들과 생존 학생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모든 분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건강하시고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행사에서 필라 세사모를 대표해 이선아선생이 드린 추모사의 일부다.

오늘 이태후 목사님께서 선포해 주신 말씀은 가슴을 깊게 울렸다.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버리고 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끝없는 사랑을 외치고 베풀며, 그들이 끝내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를 위해 온 몸을 바쳤던 예수에 대한 선포였다.

그리고 함께 본 영화 한 편, ‘부재의 기억’이다. 보며 절로 흐르는 눈물 감출 수 없었다. 딱히 뭐라 표현 못할 분노의 눈물이었다.

예수가 그의 죽음을 앞두고 가장 도두라지게 했던 행동 하나가 바로 분노이다. 그리고 욕설도 따랐다. 바로 그 지점이랄까? 저절로 나오는 욕에 이어진 눈믈이다.

그렇다. 내가 살아가는 이 동시대에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버리고야 마는 죽음과 삶에 대해 고뇌하고 욕하고 저항하며 함께 하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의 축복이다.

모든 부활은 눈물 끝에 온다.

하루해가 또 저문다.

내일은 부활의 아침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내 집 풍경은 이미 온통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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