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생을 위하여

“공감은 진정한 이타성(altruism)을 촉진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의 관점을 취하면, 그가 가상의 인물이라도, 그 계층에게 공감을 확대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다른 생명체들의 경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들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 현상이 부분적으로나마 인도주의 혁명에 기여했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이다.” –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1002쪽에서-

내 기억력이 아직 믿을만한 것이라면 그를 두차례 만났었고, 그나마 수인사를 나눈 일은 딱 한번 뿐이다. 함께 차 한잔 나눈 적이 없으니 그가 나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 듯이 나 역시 그를 잘 모른다.

그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며 아직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있고, 엔지니어(이것도 정확치 않지만)로 회사 생활을 하며 이따금 해외출장을 다니곤 한다는 것이 내가 아는 권선생의 전부이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미국사회에서 전형적인 회사원으로 중산층에 속한 중년이다. 그저 ‘내가 아는 한’ 말이다.

그런 권선생과 나는 지난 일여년 동안 거의 매주 한차례씩 두어 시간 동안 자리를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주제는 단 한가지였는데 “세월호”였다. 그것은 온라인 화상 모임을 통해서였다. 그러므로 권선생과 나는 서로간에 아는 것은 거의 없지만, 단 한가지 “세월호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는 서로를 꿰뚫고 있다고해도 크게 엇나간 말이 아니다.

권선생은 이번 여름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한국방문으로 보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한국방문을 하는 일이 매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무렴,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민이든 해외파견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모국을 떠나 살면서 온가족이 함께 모국 방문을 하는 일이 결코 쉽거다나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리고 어제, 나는 권선생이 올 여름휴가를 보낸 한국방문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온라인 모임을 통해 함께 하는 친구들과 함께.

그는 작심한 사람처럼 한국방문 동안의 많은 시간을 “세월호”와 함께 하였던 듯하다. 광화문과 안산을 갔었고, 그 곳 풍경들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모국방문 중 내내 스친 사람들과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는 아파했다.

“광화문 광장의 분수대는 찌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민들의 놀이터였어요. 이런저런 사람들의 놀이와 쉼의 공간인 것 같았어요. 제가 뉴스에서 보듯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누리고 있는 공간은 초라하기까지 하였고 사람들의 관심도 별로였어요.”

“일부러라도 지하철을 많이 탔는데요. 제가 있는 동안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단 사람은 딱 한사람 보았을 뿐이예요.”

“안산에서는…. 그냥 휑한 커다란 주차장이랄까요, 달구어진 사막같이 열기만 있고 사람은 없는…. 제가 꽤 오래 그 곳에 있었는데 추모객은 고작 두 명 뿐이였어요.”

“제가 참 마음이 아팟어요. 걸린 현수막들이 참 오래 되었다는 느낌 때문이었지요. 저 오래된 현수막들을 처럼 사람들이 다 잊어버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도 역시 엄마였어요. 물론 생활전선 최일선에 있는 아빠들은 벌어 먹고 사는게 우선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저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들은 좀 지쳐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들은 달랐어요. 그녀들은 목숨을 내놓은 것 같았다고 할까요.”

나는 권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참 착한 사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즈음 내가 읽고 있는 책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티븐 핑거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그것인데, 권선생은 바로 그 착한 본성을 내게 깨우쳐 주는 듯 하였기 때문이다.

스티븐 핑거는 “세상은 점점 폭력적이고 나쁜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라는 사람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지으며 “사람들은 폭력성과 꾸준히 싸워왔고, 점점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그렇게 세상이 바뀌어 가는 이유 중에 첫번 째로 ‘감정이입(empathy)’을 꼽는다.

다른 사람들, 특히 처지와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서로 겪는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감정이입(empathy)’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세상을 선한 쪽으로, 좋은 쪽으로, 비폭력적인 쪽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얼굴 크기만큼이나 두꺼운 스티븐 핑커의 책속의 숱한 증거들보다 권선생에게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일하면서 권선생의 아픔을 조금 덜어낼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것인데, 그것은 비단 권선생의 아픔이라는 보다는 ‘세월호’라는 말이 아직도 아픔으로 들리는 그 무수할 해외의 숱한 권선생들의 아픔을 덜어낼 방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광화문이나 안산에 있는 오래고 낡은 현수막 옆에 새 현수막을 다는 일이다.

새롭게 다시 세월호의 아픔을 되내기는 말을, 해외에사는 각자의 지금 고향의 이름으로 말이다.

우선 나부터 하나 시작하고 볼 일이다. 권선생을 위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어제밤 이후 제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가 그 생각을 무어라 불러야는지 딱히 이름지어 부를 수가 없었답니다. 제 머리속과 가슴을 꽉채운 어떤 생각이 있기는 한데 “그건 바로 이거다”라고 이름지어 말할 수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월요일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 ‘어떤 생각’이 그냥 느낌으로만 뱅뱅 돌 뿐이지, 생각이 영글어 표현에 이르는 지경에는 닿지 못했답니다.

그러다 하루가 지난 이 밤, 옛 선생님의 가르침 하나 문득 떠올리면서 그 생각을 무어라 이름 지어야 하는지를 찾아내었답니다. 바로 “아름다움”이랍니다.

저는 어제밤 <접속 – 세월호가족과 재외동포 온라인 만남>이라는 온라인 화상 모임에 함께 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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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임에는 한국에 계신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비롯하여 미국, 캐나다, 독일 등지의 19개 도시에서 참가하신 약 백여명에 가까운 동포들이 함께 했답니다.

비록 컴퓨터나 휴대폰 화상을 통해 얼굴을 맞댄 것이지만, 마치 실제 한 공간에서 만나고 느끼는 것 같은 시간을 함께 했답니다.

어제밤, 거의 두시간을 넘긴 만남속에서 함께했던 이들은 마치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이어진 모습으로 하나가 되었었답니다.

그 순간들의 느낌들을 하나로 엮는 생각이란  바로 “아름다움”이었답니다.

사실 어제밤 함께했던 이들이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은 아픔이었답니다.

그리고 어제밤 모임은 그 아픔이 ‘너’만의 것이 아닌 ‘나’와 ‘우리’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던 동시에 그 아픔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저들을” 향하여  “끝내 너희들도 우리가 되리라”고 함께 외쳐보자고 만든 자리였답니다.

그렇게 아파하는 자들의 모임이었지만 모임에 참석했던 우리 모두는 웃음을 잃을 수 없답니다.

바로 어제밤, 아파하는 우리들이 함께했던 그 웃음에 대한 생각을 “아름다움이다”라고 말씀하신 이는 함석헌선생님이시랍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다움은 어디 있는지 아느냐? 도리어 강한 대조에 있지 않느냐? 푸른 잎에 붉은 꽃, 시커먼 구름에 반짝이는 샛별 모양으로. 감격을 하지. 비극이 무엇이냐? 극단의 대조 아니냐?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을 맞대놓음으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비극이다.우리 마음은 하나됨을 얻는 때에 가장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하나될 수 없는 것을 맞대놓고 거기서 하나됨을 찾으려 하는 때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바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세월호에 맺힌 한이 이미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한 “잊혀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아름다운 일들을 이어가는 새로운 걸음들을 이어갈 것입니다.

초대 – 강도맞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환갑 진갑 다 지났어도 웬만한 모임에 나가면 말석차지랍니다. 하여 자리 펴고 자리 접는 뒷일과 막일들이 제 몫이거니하며 개의치 않는답니다. 물론 말석차지가 좋은 점도 있답니다. 그런 자리에선 이 나이가 아직 청춘이라는 생각도 할수 있거니와 조금 헝클어진다 하여도 눈감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나이로 따져 저보다 어린사람들이 많은 모임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자리에선 아무래도 더욱 신중해지고 가급적 뒷자리에서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려고 애쓰는 편이랍니다. 허나 타고난 성격 때문에 불쑥불쑥 튀는 통에 모임이 끝나고나면 ‘아차!’하는 때가 종종 있답니다.

그렇게 종종 ‘아차!’하면서도 이즈음 제가 즐겨하는 모임이 있답니다. 모임의 이름도 있답니다. 바로 “필라 세사모”입니다. 정식 명칭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이랍니다.

명확히 말하자면 제 거주지가 필라델피아는 아니지만 제가 사는 델라웨어주도 범 필라델피아 지역 변방에 위치함으로 끼워 주신 것이랍니다. 가급적 박수나 치며 앞서가는 이들을 쫓아나 가자고 얼굴 내민 일인데, 종종 버리지 못한 못된 습관으로 ‘아차!’하면서도 모임을 즐기고 있답니다. 무엇보다 모임에 대해 열성적이며 나이살에 비해 ‘아차!’하는 빈도수가 높은 저를 잘 이해해주는 이 모임의 구성원들이 넉넉한 까닭입니다.

이 모임에서 아주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재외동포들이 온라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랍니다. 이 행사를 위해 어제 저녁에 약 한 시간에 걸쳐 시험적으로, 온라인에서 여러 다른 지역에 있는 이들이 같은 시간에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연습을 해보았답니다.

한국의 세월호 유가족들 몇 분들을 비롯하여 호주, 영국, 캐나다, 그리고 미국 동부의 뉴욕과 뉴저지 그리고 필라델피아, 중부의 시카고와 테네시, 서부의 켈리포니아 등 여러 곳에 계신 분들이 함께 했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는 일요일(11월 15일) 저녁에 세월호 유가족들과 재외동포들이 온라인에서 만나는 첫번째 행사를 갖는답니다.

자, 이쯤 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 이야기를 좀 하고 넘어가려합니다. 제가 바라보고 느끼는 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의 모습입니다.

제가 잠시나마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들 가운데 서남동목사님이 계시답니다. 목사님께서 세상 뜨신지 벌써 서른 해가 넘었답니다.  그 어르신께서 즐겨 인용하시던 예수의 비유가 있답니다. 잘 아시거나 한번쯤은 들어보셨음직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 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 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0: 29-37

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 말씀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예수믿는 이들이 해야할 일이라는 해석은 익히 아는 교회의 전통적 이해입니다. 그런데 서남동목사님은 이 비유를 놓고 이렇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의 역할은?” 이라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서목사님은 “강도만나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예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2015년 현재, 제가 이해하고 느끼고 만나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이랍니다. 바로 이들이 제가 섬겨야하는 예수라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길을 가다 강도만났던 일에 대해 적절한 보상과 배상을 받았고, 이미 다 치유되고도 남을 대접을 받았다고 여긴답니다. 더하여 그렇게 강도 맞는 일은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데 유달리 특별나게 군다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의 시작은 “영생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 바로 영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대한 답변입니다.

서남동선생님은 그 성서적 물음과 답변을 제게 이렇게 해석해 주신답니다. 오늘 네가 보고 있는 ‘강도만나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예수인 줄로 알라고 말입니다. 바로 제가 만나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하는 일은 이런 제 생각을 넉넉히 이해해주는 필라세사모의 구성원들이랍니다.

혹시라도 오는 11월 15일 저녁에 있을 “세월호 유가족들과 재외동포들의 온라인 만남” 행사에 참여 하시기를 원하시는 페친이 계시다면(단, 재외동포 페친들만) 제게 연락 주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답니다. 이메일([email protected] 으로)을 주시면 함께 하실 수 있는 안내를 보내 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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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일로 정말 잔인하고 몹쓸 세상도 경험했지만, 사회를 지탱해 주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어요. – 중략- 아, 소수라도 이렇게 힘써 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덜 억울하구나, 내가 덜 바보구나, 내가 덜 외롭구나 싶어요. – 중략- 그런걸 보면 외면만 받는 세상속에 있는건 아니네요.” – 세월호희생자 길채원학생의 어머니 허영무씨

“진실이라는 목표 하나 보고 달려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 중략-  어쨌든 내가 할수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간다. 그거예요. 이길 가다보면 또 다른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 가고난 뒤에 다른사람들이 언젠가는 밝혀줄거다. 그건 확신해요. 우리가 앞서서 얼마만큼 가줬으니까 다음사람들이 거기에서 출발하면 되니까….” – 세월호희생자 이창현학생의 어머니 최순화씨

누군가의 외로움을 덜어줄 소수가 되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갈 좋은사람이 되어보지 않으시렵니까? 누군가 앞서가다 지친 이들의 곁에서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않으시렵니까? 그 자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희망의 빛

이제 꽉찬 한달을 맞는 이호진, 이아름 부녀의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진 소식을 봅니다.

11067514_373650812826590_1168410099292233094_n하루 한번, 그들이 어디까지 갔을까 아픈 마음으로 열어봅니다. 그들이 결코 외롭지 않을만큼, 딱 고만큼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고된 순례의 행진이지만, 매일 이 소식을 통해 제가 예수쟁이이어야만 하는 확신을 다짐니다.

어제 삼배일보 순례길에서 제 딸아이보다도 어린 아름이가 남긴 글입니다. 그 아이의 글에서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봅니다.

<한달이 다 되어갑니다. 출발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하루 하루가 감사합니다.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니라 감사하고 감사한 하루입니다.

길 위에서 절을 하고 있는 아빠와 저의 모습이 서글플 때도 있지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절을 했습니다. 제가 길바닥에 절을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달라졌습니다.

믿을 수 있어졌습니다. 제가 이 길 위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출근한다 생각하고 아침에 길을 나섭니다. 그리고 퇴근하듯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내일 하루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들 부녀의 하루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호진 페이스북

 

만남 – 잊지 않을께

지난 3월 8일 필라델피아를 방문했던 세월호 유가족 동혁엄마 김성실님과 경빈엄마 전인숙님이 남긴 말입니다.

9<저희마음에 들어와 주십시오. 그리고 침묵하지 말고 노란리본으로 외쳐주십시오.

우리에게 직접 물어봐주십시오. 홈페이지에도 자주 들어와서 힘을 내라고 해주시고, 광화문과 팽목항과 분향소를 잘 지켜내서 온국민이 원하는 것이 진실이 되도록 힘을 합해주십시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수 있는 국민정신을 회복하도록 해외에서도 많이 알려주십시오.>

 

 

 

 

우리가 돌이 되어 외치리니

어제 필라델피아 Glenside에 있는 Phil-Mont Christian Academy 강당에는 약 백여 명의 한인 동포들이 함께 했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인 두 분 어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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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 인근에는 약 사만 여명의 한인동포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만 여명 가운데 백여명이란 그야말로 한줌거리도 아닐 것입니다. 1%를 넷으로 나누어야 하는 정말 적은 숫자입니다.

그러나 비록 적지만 스스로 돌이 되어 외치는 이들의 절박함을 듣고 그들의 바램을 이어가기에는 충분한 숫자였습니다.

두분 어머님과 함께 오지 못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봅니다.

유해종(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웬만하면 애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거, 해달라는 거 우리 나름 해주며 살았어. 근데 자식이 이제 세상에서 없어졌네. 화가 나고 정말 미칠 것 같았어. 그래도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는 건 아닌가 싶고, 더 부패되기 전에 뭘 밝히라는 뜻 아닐까도 싶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것도 감사하다 싶고….이게 다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유가족들도 지금 많이 지치긴 했어. 벌썰 몇 개월이 지난거야. 끝까지 가자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정부를 싸워서 이기겠느냐, 계란으로 바위치는 거다 하는 사람도 있지. 너무 힘드니까. 근데 누구 하나 이탈하는 사람은 없어…..승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단기간에 끝날 싸움은 아니야.”

전민주(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우리는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온통 거짓말만 한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이제 사람들은 돈 얘기만 해요. … 사람들이 자식 팔아서 돈 벌려고 그런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어떻게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식 아니라고 돈이랑 자식이랑 어떻게 바꿀까 싶고…”

“그동안 힘들었죠. 지금도 힘들고. 그래도 끝까지 갈 사람들은 언젠가는 진상이 규명된다 그렇게 말해요. 10년이든 20년이든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맘이 편해요. 그것도 안하면 죄인이 될 것 같고… 언젠가는 이것도 끝이 있겠죠. 승희한테 엄마 진짜 열심히 했다고, 네가 헛되이 간 것만은 아니라고말할 날이 오겠죠. 아,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김진철(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제가 걱정인 건…… 일이 다 해결되고 함께혔던 분들이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저는 어떻게 살까하는 생각이 들어유. 여기와서 그려도 히히덕거리고 웃고 있지만 다 해결된 다음에는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 되유. 지금도 술기운에 사는데… 제가 앞으로 살 계획을 소연이하고 함께 허것다고 꿈꿨는디 이제 모든 게 사라져 버린 것 같아유.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깜깜허유.”<딸아이를 먼저 보낸 김진철씨는다른 가족없이 홀로이다.>

정부자(신호성 학생의 아버지)

“대통령이 다녀간 후에 체육관에 TV가 설치됐어요. 그때부터 뉴스를 봤어요. 그런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뉴스가 나오더라고요….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상을 알았나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내 가정만 챙기면 되는줄 알았지. 나라에 해경이 잇고 경찰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살았지. 이런 세상인지 몰랐죠.”

“나는 이런 나라인 줄 정말 몰랐거든요. 대통령이 애도 없이 혼자 사니까 욕심없이 똑바로 해줄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왔다가고 나서는 뭐가 더 이상했어요. 배를 가라앉혀 놓고는 애들을 건져 왔대요.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이런 나라에서 이렇게 아둥바둥하고 살았나…”

“누가 그러더라고요. 호성이 가고 호상이 엄마는 만능이 됐다고.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뭐라도 해야 편해요. 애가 힘들게 갔는데 부모가 편하면 안되지 싶어서. 그래야 애한테 덜 미안하고 죄가 좀 가시는 거 같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녀요. 아마 평생 갈 것 같아요.”

최순화(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어쨋든 진실이라는 목표 하나 보고 달려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끝장을 봐야 해, 내가 결과를 내야 해 그런 생각은 아니예요. 전에는 저쪽 길로 갔다면 지금은 방향을 틀어서 이 길로 가는 건데, 그냥 끝까지 갈 뿐이지요.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간다. 그거예요. 이 길 가다보면 또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 가고 난 뒤에 다른 사람들이 언젠가는 밝혀 줄 거다, 그건 확신해요. 우리가 앞서서 알마만큼 가줬으니까 다음 사람들이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되니까.”

문종택(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저희 유가족들은 지금 세월호를 두번 타고 있습니다. 그런 유가족들에게 국민이고 정치인이고 언론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컨테이너를 얹고 , 쇳덩어리를 얹고, 쌀가마니를 얹어요. 선원들보다 해경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어요.”

“우린 (진상규명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어요. 생명수당까지 다 줘야 해. 무슨 보상을 해 주려면 그동안 우리 일한 것 다 쳐서 제대로 해줘야 해. 보상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계산을 못하겠으니 당신들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 어떻게 계산할 수 있어. 어떻게 계산이 돼. 자식 잃은 게 계산이 돼?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하는 우리들 이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건강 잃으면서 하는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걸 위해 하는 우리들의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임종호(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유가족들은 노란 팔찌 차고 목걸이도 하고 있지만 딱 전철만 타도 뱃지 달고 있는 사람들이 없거든. 서울 광화문이나 가야 있지. 특정 지역에 가야 있지 진짜 보기 힘들어요. …세희 엄마도 특별법 제정 서명 받을 때 ‘이제 그만해’ 이런 얘기 진짜 많이 듣고 매번 울었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위로 받고 그러면 힘이나. 그래도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축 처져 있다가도 힘이 나지.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계속 있으니까.”

노선자(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저는 정말 그전까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고 그걸 보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다 거짓말이에요. 인터뷰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말만 담는 것 같아요. 뉴스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저는 앞으로 오래 살려구요.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 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이상은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인터뷰를 기록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 필라델피아에서 만났던 동혁엄마 김성실님과 경빈엄마 전인숙님의 목소리를 통해 제 맘을 두드렸던 그들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외칠 것입니다.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가 단 한사람이 남더라도 외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돌이 되어 외칠 것입니다. 끝까지 단 한사람만이라도 남아 있기만 하다면 그 순간까지 부디 우리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요. 기억해 주십시요. 그것만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그 바램으로 여기 필라델피아까지 우리들이 온 까닭입니다.”

 

“잘 들어라.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누가복음 19 : 40, 공동번역

 

돌들이 소리 지르는 세상을 외면한 뒤에 오는 세상은 암흑일겝니다.

만남 – 필라델피아의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어찌 된 일이냐?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께서 저기서 네 아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다.” –성서 창세기 21장 17절, 공동번역

성서는 힘없고 약한 히브리인들의 울부짖음과 신음 소리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성서는 강한 자들의 종교가 아니라 잃었던 권리를 다른 어떤 곳에서도 호소할 수 없는 약자들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아파하는 소리, 누군가가 호소하는 소리, 누군가가 절박하게 외치는 소리를 들어주는 일은 이미 신앙행위입니다.

때 : 3월 8일 일요일 오후 5시 ~ 8시
곳 : Phil-Mont Christian Academy
        35 E Hillcrest Avenue, Glenside, PA 19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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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 – 그들의 순례

News about snow“With up to 10″ snow due, prepare to stay home Thursday” – 이 시각 현재 제가 사는 동네 신문 온라인판 헤드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의 제목이랍니다. 오늘 밤부터 내일 온종일 10인치(약 25센티) 정도의 눈이 내리니 집안에 콕 박혀 있을 준비들 하라는 것이지요.

춘삼월이라는데 제가 사는 곳은 겨울이 극성이랍니다. 엊그제 월요일에는 얼음비가 내려 두시간 늦게 일터로 나갔고, 어제는 또 다시 얼음비에 두 시간 일찍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내일은 집에서 온종일 쉬여야 할 것 같답니다. 아내는 올겨울 마지막 휴일(?)이라며 폭설소식을 즐기는 듯 합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날씨에 상관없이 가게문은 늘 열었건만 나이 탓인지 운전하기 좀 불편하거나 불안하면 문을 닫거나 시간조정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답니다.

아무리 10인치 눈이 내려도 내일이면 경칩인데 쌓인 눈속에는 이미 봄이 함께 할 것입니다.

10일 째열흘전 팽목항을 출발하여 삼배일보를 하며 느린 걸음으로 서울 광화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씨와 그의 딸 아름씨는 아직도 진도에서 그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고 오마이뉴스가 전하고 있습니다.

10인치 내린다는 눈속에 이미 봄이 함께 하듯이, 이호진씨 부녀가 걷고있는 고난의 순례길속에 이미 그의 기도가 이루워진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기도랍니다.

“(우리부녀가)국민들을 향해 하는 절이자, 기도이니 국민 여러분이 저의 진심을 알아주시고, 희생자 304명을 품어줬으면 한다”

이호진씨는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무릇 종교의 여러가지 기능 가운데 중요한 기능 하나를 들자면 보상(報償, compensation)기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녀의 순례길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셔서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빌어 보는 것입니다.

삼보일배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매일 업데이트되는 뉴스들 가운데 구글 서비스를 통해 제가 받아보는 특정 항목에 해당하는 뉴스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직업상 세탁업(dry cleaning business)에 대한 뉴스가 있고, 미국내 한인 이민자들의 주업종인 micro business에 대한 뉴스와 미국경제에 대한 뉴스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이 한반도관련 뉴스입니다.

이런 항목들에 대한 영문뉴스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제 이메일함에 들어옵니다.

세월호-이호진거기에 엊그제부터 하나 추가한 항목이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3보1배”라는 한국어 검색을 추가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이승현군을 잃은 아버지 이호진씨와 그의 딸 이아름씨에 대한 기사를 받아보기 위함입니다. 바라기는 한국내 언론 가운데 이들과 함께 3보1배하며 이들의 고행에 대한 기사를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좀 사사롭고 사치스럽기까지한 이야기지만 이호진씨의 나이가 제 아내와 같거니와 제가 제 아내의 본 이름대신 즐겨 부르던 이름이 이아름이었다는 사실이 뉴스를 쫓는 정말 하찮은 이유도 되었다는 말씀을 덧붙이면서, 그 나이에 30만번의 큰절을 해가면서 520km를 길을 걷는 부녀의 모습을 잊지 않기위해 부녀에 대한 뉴스를 쫓고자 하는 것이랍니다.

교회력으로 사순절기랍니다.

사순절(四旬節)이란 부활주일 이전에 주일(일요일)을 뺀 사십일 동안을 말합니다. 예수가 겪었던 고난을 되새김하면서 오늘 살아있는 자로서 그를 따르고자하는 신앙고백으로 보내는 40일이랍니다.

“예수를 믿는다” 또는 “예수를 따른다”는 말은 바로 내 자신이 예수가 된다는 말입니다. “나의 나됨” 곧 내 정체성과 “예수의 예수됨” 곧 예수의 정체성을 하나로 일치한다는 말이지요.

이천년 전 예수가 명령한 “나를 따르라”는 말에 따라 2015년 오늘을 사는 내가 그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가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의 상황속에서 했던 것처럼 오늘 내가 사는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물음과 결단으로 살라는 말일겝니다.

이천년 전 예수의 모습 가운데, 그 때의 상황과 예수의 삶을 표본처럼 축약해 주는 성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마가가 전하는 예수의 말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마가복음 2:27-28, 개역개정본)

예수시대에 안식일은 바로 법이었습니다. 하여 이 성서 본문은 이렇게 읽어도 무방합니다.

“법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법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사람이 법의 주인이니라.”

그 당시의 법 곧 안식일법에 대해 전해지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 가운데 이런 것들도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이란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그 다음날인 토요일 해질 무렵까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금요일 해질 무렵에 나귀가 끄는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막 집에 도착한 순간 해가 서산으로 꼴깍 넘어갔습니다. 이제 안식일이 시작됐으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물건을 나르거나 옮기는 일은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 하루동안 나귀는 무거운 짐수레 굴레를 지고 지내야만 하는 것이지요. 안되었다 싶었던지 예외조항이라는 것이 하나 있었답니다. 한번만 딱 쳐서 나귀에게 매인 수레의 끈을 풀 수는 있다는 조항입니다. 딱 한번만 쳐서 말입니다.

당시 안식일법이란 아주 엄격한 법률이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 법은 있는 사람들만 지킬 수 있는 법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만 하루를 아무 일도 하지않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이란 이미 어느 정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먹고 살기위해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 몸이 성치 않거나 아파서 안식일에 회당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그냥 바로 죄인이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사람 특히 없고, 누리지 못하고, 억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안식일법이란 곧 죄인이라는 족쇄를 채우는 도구였습니다.

본래 성서적 의미의 안식일이란 없는 자, 부려 지는 자, 노예, 비정규직 노동자, 품팔이 등등을 위해 하루 쉼을 주는 날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안식일에는 이것도 하지말라 저것도 하지말라는 금지조항들이 하나 하나 추가되면서 (있고 누리는) 사람들이 (없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법으로 바뀐 것입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안식일법 만능시대에 예수가 내렸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가히 혁명이었습니다. 이즘식으로 말하자면 예수는 가히 좌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를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제임스 콘(James Hal Cone)이라는 미국인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교회의 인종차별과 인종분리에 정면으로 “No”를 선언하며 백인들이 이야기하는 해방신학과는 완전히 다른 흑인해방신학을 주창한 신학자입니다.

그는 그가 쓴 책 <눌린 자의 하느님( God of the Oppressed)>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어서 죄와 악과 죽음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이겨냄으로써 인간에게 아픔의 실체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자유와 능력과 희망을 준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이다.”

제임스 콘은 “아픔의 실체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자유와 능력과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오늘날 살아있는 예수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자유와 능력과 희망을 안고 아픔의 실체에 대항하여 싸우고자” 3배 1보의 길을 걷고 있는 이호진씨 부녀에게서 제가 느끼는 성서적 예수의 모습입니다.

이들 부녀를 향해 “가만히 있어라”거나 “이젠 그만하라” 나아가 “종북 좌빨”을 뇌까리는 교회나 기독교인이 있다면, 적어도 제가 믿는 신앙의 잣대로 그들은 종교적 사기꾼들일 뿐입니다.

이즈음 기독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가운데 하나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의 고난은 세상 도처에서 “여기 지금 나와 함께”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라는 노랫말을 “여기 지금 내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곱씹는 일이야말로 이 사순절에 예수쟁이들이 해야만 하는 일일겝니다.

태(胎) – 3보 1배

<황사가 잔뜩 낀 23일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 이승현(단원고)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아름씨가 진도 팽목항 부둣가에 섰다. 참사 314일째 되는 이날, 부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해 ‘진도 팽목항~서울 광화문 3보 1배’를 시작했다(유튜브에서 동영상 보기).- 중략 –

100 여일 동안의 약 500km 여정에 나선 부녀는 “참혹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호진씨는 “(참사)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며 “(우리 부녀가) 30만 번 절을 하는 동안 적어도 세월호를 다시 한 번 떠올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전문보기)

오늘자 오마이뉴스가 전하는 기사 <팽목항→광화문 3보1배 “하늘 위 아들 위해 멈추지 않아”>의 도입부입니다.

일년 전 이호진씨와 그의 딸 아름씨는 승현군의 이름 앞에 “고(故)자가 붙고, 2015년 이 추운날 부녀가 함께 세걸음 걷고 큰절 한번하며 500km를 걷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일겝니다.

어느 인생이나 어느 가족에게나 아픔과 슬픔,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세상 누구에게라도 말입니다. 소소한 일상적 삶속에서 누구라도 겪게되는 아픔, 슬픔, 기쁨,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상상치 못했던 재난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다가오는 일은 뉴스로는 흔한 일이지만 실제 그런 일들을 당하는 사람들은 뉴스가 될만큼 흔치않은 일입니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꾸리고 사는 까닭은 바로 그런 상상치 못한 재난이 국가 구성원인 개인이나 최소 공동체인 가족에게 닥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고, 재난이 닥쳤을 경우엔 국가의 모든 역량을 다해 그 재난으로부터 개인이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국가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1.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3.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4.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5.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6.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호진씨와 그의 딸 아름씨는 지금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포기”한 상태입니다. 500km의 길을 (누구엔가 드리는 것인지도) 모를 30만 번 정도 큰절을 하며 백여일 동안 걷는다는 일은 <인간다운 생활> 을 “포기”’하는 사건입니다.

태

이들 부녀의 행동을 얼핏 이렇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포기”한 행위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녀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인간다운 생활”을 스스로 포기하고 항거하고 투쟁하는 긴 여정에 오른 것입니다.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고, 여전히 “노력하지 않고”있기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험하고 먼길을 떠나는 부녀와 나눈 대화를 이렇게 전합니다.

부녀는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는 이구동성으로 비관적인 답을 내놨다.

이호진씨는 “실종자 9명 수습하고, 진상 밝히고, 책임자 처벌하고, 법질서 올바르게 확립되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우리가 3보 1배로) 광화문까지 간다고 해서 그렇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개인적으로 쌓인 한을 조금이라도 길에 내려놓고 싶다”고 한탄했다.

이아름씨는 “정부에 바라는 게 있나”라고 묻자,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될 거 같다”고 싸늘하게 답했다. “별로 기대하는 게 없는 건가”라고 다시 물으니, 그는 “그렇다”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 기사를 일으며 오래전 대만 신학자 송천성(宋泉盛, Choan Seng Song)이 말한 “태(胎)의 신학”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송천성은 ‘태(胎)’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창조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말한 태의 신학은 인간의 자궁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데서 오는 투신의 신학입니다. 이는 어머니가 자신의 몸속에 깃든 생명이 결실을 맺기까지 혼신을 다 하는데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태의 신학은 궁극적으로 희망의 신학입니다. 생명의 궁극적 의미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호준씨와 딸 이아름씨는 죽은 아들과 동생인 이승현군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통속에 투신하는 여정에 나선 것입니다. 이호준씨 부녀의 투신은 죽은 고 이승현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결실을 맺기 위해 혼신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투신이 “태(胎)”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희망으로 이어지려면 그들의 긴 여정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연대는 필수조건인 동시에 충분조건이 될 것입니다.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의 삶은 수난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의 수난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신(神)이 스스로 몸소 겪었다는 고백 위에 있는 것입니다. 신과 사람이 고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선언 위에서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호진씨 부녀가 한 말처럼 그들이 걷는 고난의 삼보일배의 끝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의 행위는 이미 희망을 품은 태(胎)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