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내리는 아침

지난 주에 눈 치우며 무리했던 허리가 ’이젠 좀 살만하다’ 큰 숨 내쉬려는데, 에고 아침나절부터 눈이 또 다시 펑펑 쏟아져 내린다.

눈 치울 염려랑은 눈 그치면 다시 만나도 되는 일, 그저 한없이 내리는 창밖 눈 구경에 빠져 일요일 아침을 보내다.

어제 밤 늦은 시간까지 스무 명 남짓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세월호 가족들 이야기를 듣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서 출애굽기 이야기를 종종 인용하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은 “모든 해방 활동은 출애굽기에 덧붙여지는 성서 이야기”라고 했다지. 결코 끝나지 않은 예수 이야기를 쓴 것은 마가였고.

오늘을 아파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간절한 이들에게 실망이나 좌절은 그저 넘어야 하는 언덕일 뿐.

뜻을 품고 산다는 일은 그저 단 한 걸음만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것 뿐.

쉬지 않고 눈 내리는 주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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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내가 우리 동네신문이라고 일컫는 The News Journal지의 시초는 1866년이니 그 역사가 제법 오래 되었다. 긴 세월 신문의 이름과 소유주는 여러 번 바뀌며 오늘에 이르렀다. 가장 오래 이 신문을 소유했던 것은 델라웨어주의 거부였던 듀퐁(Du Pont)가문이었다. 1919년 부터 현재의 이름인 The News Journal을 쓰기 시작했으며, 듀퐁 가문이 이 신문에서 손을 뗀 것은 1978년이었다. 그 후 1989년에 델라웨어 주내 경쟁사 두 곳을 병합시켜 오늘에 이른 The News Journal 은 명실공히 델라웨어 주를 커버하는 유일한 신문이다.

이 우리 동네 신문에 지난 몇 달 동안 헤드라인 기사로 가장 많이 다룬 기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죠 바이든 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죠 바이든, 그리고 사건사고 기사는 아침 눈뜨면 만나게 되는 뉴스거리들이었다.

며칠 전 재미있게 읽은 기사로, 엊그제 워싱톤으로 떠난 바이든과 그의 일행들이 몇 달 동안 이 곳에 머무르면서 그들이 지역 상점들을 이용한 내역들을 공개한 것이 있었다. 듀퐁 호텔을 비롯해 아침 전문 식당, 카페, 주점 등등 어느 가게에서 얼마의 돈을 사용했는지 이른바 바이든 호황을 누린 가게들을 다룬 기사였다.

이 시간 현재 이 신문의 헤드를 장식하고 있는 기사 역시 바이든의 가족 이야기다.

어제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도를 했던 이 곳의 목사 이야기와 백악관으로 향하는 대열의 선두에 섰던 바이든의 모교 델라웨어 대학 밴드부 소식도 뉴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델라웨어 대학 밴드부 제복을 비롯해 이 대학 세탁물들은 내 주 수입원 가운데 하나인데, 지난 일년 여 학생들 활동이 없다 보니 세탁할 일이 없어졌다. 밴드부 소식에 하루 입었으니 세탁해야겠다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하는 헛 꿈도 꾸어 본다.

우리 동네 신문은 바이든에게 특별 주문까지 하여 ‘델라웨어 주민들에게 전하는 대통령의 편지’를 게제하기도 했다. 이 편지에서 바이든은  ‘델라웨어야말로 미국인들이 이루어 내야 할 모범’이라고 추켜 세우며, “내가 죽을 때, 더블린은 내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라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명언을 인용하며 델라웨어에 대한 감사와 고향을 잊지 않겠노라는 말을 보탰다.

어제 대통령 취임식을 보면서 내 눈을 끈 것은 바이든이 선서할 때 사용한 두꺼운 성경과 아만다 고든(Amanda Gorman)의 시 낭송이었다. 그녀의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과 그녀의 몸짓은 어제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오늘 우리 동네 신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어제 취임식에서 사용된  5인치 두께의 성서는 1893년 이래 오늘까지 바이든 집안이 간직해온 가보란다. 1973년 그가 첫 번 째 상원의원이 되어 선서할 때와 부통령이 되었을 때, 그리고 죽은 그의 장남(Beau Biden)이 2013년 주 법무장관에 취임할 때 이 성서를 사용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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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 이즈음 내가 성서를 통해 새롭게 곱씹어 보는 말이 하나 있다.  ‘성서란 오늘을 견디어 내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견디어 내며 살’되 ‘내일을 위한 싸움’에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게 바로 성서라는 생각 말이다.

바라기는 가보(家寶)나 선서(宣誓)용 성서가 아닌 ‘오늘을 견디어 내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서의 성서가 바이든의 임기에 함께 하기를 빌며.

*** 이즈음 한국 뉴스 속 세월호 가족들 소식을 들을 때면 ‘오늘을 견디어 내는’ 성서 속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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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또는 성서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성서 베드로전서 1장 24절(새번역에서)

설교자는 말씀하셨다. ‘어느 날 떨어지는 꽃잎처럼 삶은 유한할지언정 우리네 삶을 꽃이라 비유하신 사도들의 신앙고백은 얼마나 감사한가! 또 그런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신 신의 은총은 얼마나 큰가! 우리 모두 언젠가 확실히 떨어지고 말 꽃들이다, 다만 그 언젠가를 우리는 가늠할 수 없기에 불확실한 존재들이다. 모든 생각들을 접고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 모두는 꽃이다. 오늘을 꽃처럼 살자!’

그리고 설교자는  ‘아름다운 꽃처럼 설다 간 사람’이라고 내 장모를 기렸다.

장모가 세상 뜬지 오늘로 딱 만 삼년,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목사님을 비롯해 교회 공동체들이 장모 삼주기 추모 예배 자리를 마련해 주어 함께 했다.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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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후 아내와 아들 내외와 함께 장모 쉬시는 공원을 찾다. 장모 계시는 곳, 바로 앞 묘지 터엔 오래 전 예약해 놓은 내 부모와 우리 부부가 누울 자리가 있다. 장인은 장모와 합장이 예약되어 있고… 묘지 공원엔 성탄이 이미 함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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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시간을 쪼개어 준 아들 내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해 보낸 후, 일흔 세 해  함께 사시며 이젠 오락가락하는 정신 줄 같이 붙들고 씨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뵙다. ‘이젠 진짜 갈 때가 됬는데… 왜 이리 안 데려 가신다니…’ 어머니 푸념에 그저 웃으며 답하다. ‘아이고 오늘 얼굴 좋으시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장인 누워 계신 양로시설에 들리다. 대낮에도 한밤 중이시던 양반이 잠시 깨어 묻는다. ‘김서방 나이가 몇 이야? 김서방도 나이 많지?’ 나는 또 웃으며 말했다. ‘에이 장인보단 한참 젊지요!’

양로시설 성탄 장식은 정물화(靜物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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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휴일 낮잠을 즐기려던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으므로. 낮잠 대신 동네 한바퀴를 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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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도 늦은 걸음으로 성탄이 오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마주 한 컴퓨터 모니터가 전해 준 세상 소식 가운데 하나.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엇비슷한 생각으로 이즈음 삶의 결을 같이 하고 있는 벗의 모친상 소식.

하여 다시 손에 들어 보는 성서. 그리고 떠오른 안병무선생님의 말씀 하나.

<성서는 묻지 않으면 침묵한다. 그런데 어떻게 묻느냐 하는 것이 대답을 유도한다. 우리는 성서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이에 대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성서 대신 아집에 정좌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계속 성서를 향해 물어야 한다. 그런데 물을 때에는 언제나 어떤 관심이나 전제를 갖고 묻는다. 관심이나 전제 없는 성서해석은 없다. 까닭은 성서를 읽을 마음이 나는 것은 그것에 관심이 갈 때 가능하며 그 관심은 성서가 이런 대답을 줄 수 있으리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심이나 전제가 묻는 자의 삶과 최단 거리에 있으면 있는 만큼 그 물음이 진실하며 그것에서 얻는 대답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된다.>

오늘, 삶 또는 죽음에 대하여.

2016년 성탄에

새 식구를 맞고, 또 다른 가족이 하늘나라로 떠나는 길을  배웅하노라 지난 두어 달 동안 몸과 마음이 조금 분주했었다. 눈과 귀는 열려있어 미국이나 한국의 숱한 뉴스들은 저절로 내게 들어와 생각의 분주함을 더했다.

지나간 내 삶이 그랬듯, 습관처럼 생각의 분주함을 떨치려 성서를 손에 들곤 하였다. 2016년을 보내는 이 시간속에서 성서는 내게 이렇게 응답했다. 우리는 신의 은혜와 은총을 소유하고 마냥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신의 은총을 그냥 겸허히 받아 드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처지와 환경에 놓여 있든간에, 신 앞에서 사람(존재)이 존귀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 맘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성탄편지를 띄웠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귀한 모습으로 2017년 새 희망을 맞자고…


2016년 마지막 일요일이자 성탄절입니다.

올 한해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도 지나간 올 한 해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당신 덕분에 세탁소도 잘 운영되었으며, 제 개인적인 삶이나 가정 일들도 그럭저럭 잘 꾸려 온 것 같답니다. 그러나 곰곰히 다시 따져보면 아쉽고,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들이 너무나 많답니다.

그런 생각으로 선택해 읽은 책의 제목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한국의 불교 스님인 혜민이 쓴 책인데, 이 사람의 이력이 재미있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종교학을 공부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종교학 석사, 프린스턴에서 종교학 박사를 마친 뒤, 매사추세츠 주의 Hampshire College에서 7년간 종교학 교수로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스님이 되었답니다. 현재는 가족을 먼저 보낸 분들, 암 진단을 받으신 분들, 장애인 아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들, 힘든 취업 준비생들, 유산의 아픔이 있으신 분들 등등을 위한 무료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혜민 스님은 그의 책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 이런 말들을 기록하고 있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85퍼센트 정도 괜찮다 싶으면 넘기고 다음 일을 하세요. 완벽하게 한다고 한없이 붙잡고 있는 거, 좋은 거 아닙니다. 왜냐하면 완벽이라는 것은 내 생각 안에서만 완벽한 거니까요.>

<오랫동안 원하던 것을 성취하고 나면 두고두고 행복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막상 성취하고 나면 잠시의 행복감 뒤에 허탈의 파도가 밀려오고, 성공 후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낸 생각지도 못한 후폭풍이 몰려와요. 그러니 지금의 과정을 즐겨요. 삶에 완성이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행복해지시길, 건강해지시길, 편안해지시길. 어디를 가시든 항상 보호 받으시길. 자신의 존귀함을 잊지 않으시길.>

성탄절 아침에 불교 스님의 말로 인사 드리는 것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지만, 비록 결코 완벽할 수는 없는 존재일지라도 우리 스스로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는 점에서는 다 통한다는 마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Holidays!

당신의 세탁소에서


 

It’s the last Sunday of 2016 and Christmas Day.

How has this year been to you? I’m also trying to look back on my life this year. Thanks to you, I think that I have been able to manage to run the cleaners as well as my personal life and my family well enough. However, brooding over things in this year more thoroughly, I feel that many things are lacking and that this year leaves me much to be desired.

With that thought, I chose and read a book whose title was “Love for Imperfect Things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It was written by a Korean Buddhist monk, Hyemin, who has a very interesting career. After graduating from a high school in Korea, he studied the science of religion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in Berkeley, received a master’s degree in the science of religion from Harvard, and a Ph.D. from Princeton. After that, he taught at Hampshire College in Massachusetts as a professor in the science of religion for seven years. Then, he returned to Korea and became a Buddhist monk. At present, he is running a free special healing program for unfortunate people, such as bereaved families, people with cancer, parents with handicapped children, jobseekers in difficult situations, women with the ordeal of miscarriage, and so on. He is also a best-selling author.

He said the followings in his book, “Love for Imperfect Things”:

<If you think that it is 85% fine, if not perfect, move to the next work and do it. To hold on to something forever to make it perfect is not good. That’s because to be perfect really means to be perfect only within your own perspective.>

<Though you may think that you would be happy for a long time if you accomplish what you have wanted for so long, that is nowhere near the truth. Once you have accomplished it, you would face a wave of letdown after a brief feeling of happiness. You would confront the unexpected backlash which a new situation after the success will cause. So enjoy the process at the present time. It seems to me that there is no completion in life.>

And, he made wishes for the readers of his book:

<I wish for all of those who are reading this book to be happy, healthy, and comfortable, and to be protected wherever you may go, and not to forget the nobility of yourself.>

It may look inappropriate to greet you with a Buddhist monk’s words on Christmas morning. But, I’m doing so with the thought that Christianity and Buddhism have something in common: they enlighten us that though we can never be perfect, we are still precious.

Merry Christmas & Happy Holidays!

From your cleaners.

 

세월호 – 다시 성서에게 묻는다

예수는 그의 짧았던 공생애를 통해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야기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가 말한 이야기만 남겼던 것이 아니라 일(행위)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모습을 실천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그가 행했던 여러 기적들과 치유 행위들 그리고 용서의 행위들이 바로 그런 일들입니다.

예수는 눈먼 자의 눈을 뜨게하고, 귀먼 자의 귀를 열어주었습니다. 누워 자리보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곧 죽어가는 이를 일으켜 세웠고, 죄(간음)로 인해 사람들의 돌팔매에 맞아죽울 지경에 처한 여인을 용서하며 살리기도 했습니다.

성서는 이러한 예수의 일하심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가 끝내 침묵하고 우리들에게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성서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침묵한 것들입니다.

눈과 귀가 멀고, 병으로 고통받거나 심지어  자신의 행위로 인해 죽음 앞에 놓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용서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아픔과 고통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는 거기에 담긴 신의 뜻이 무엇인지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설명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러한 아픔과 고통과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 대해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어떤 평가에 대해서도 일체 묵언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병고침이나 기적 또는 용서의 행위를 내렸던 사람들은 모두 당시의 관습으로 보아 죄인들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격리, 소외되어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좀 더 거센 표현을 하자면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없는 마치 짐승이나 물건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 이쯤에서 이야기를 멈추고 한가지 정리를 합니다.

4-16예수 이야기와 얽혔던 사람들 모두 지금은 없습니다. 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때” 다 죽었습니다. 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병을 고쳐서 좀 더 살았든, 돌팔매에 맞아 죽는 일을 피해 좀 더 살았든, 아니면 그 당시에 배 두드리며 떵떵 거리며 살았든 모두 찰라를 살다 죽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기적과 용서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사람이 겪는 아픔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아픔은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또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람들(또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왕따돌림을 당해 소외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수의 일하심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의 삶이란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회”를 기적으로 치유로 용서로 “사람이 사람답게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라고 성서는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천년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제 고작 일년이 갓 지난 세월호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이 <인권>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명해야만 할 성서적 물음입니다.

4.16 연대 바로가기

돌아가라! – 엘리야 이야기

성서 우리들의 이야기 -13

남북으로 왕국이 갈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 된 여로보암의 죄는 성소에 야훼 제단을 쌓고 거기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일에서 시작됩니다. 여로보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남왕국 유대와 달라야 한다는 신생국가로써 내세워야 할 국가적 모델이 필요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똑같은 야훼를 섬기지만 남왕국 예루살렘과 다른 형태의 제사 방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죄를 쌓게 된 배경입니다.

여로보암 이후의 왕들인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때까지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런 모습에서 크게 엇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아합왕 때에 이르러 야훼는 철저히 버려지고  이세벨의 신인 바알이 나라의 신으로 섬겨지게 됩니다.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 사당이 들어선 것입니다. 또한 아세라신의 목상도 만들어 세워 섬겼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 것이고, 갈멜산에서 일 대 850 싸움까지 겪게되고 바알신을 섬기던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는 일대 숙청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뒷심은 바로 야훼만이 하나님이라는 백성들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 이후 목숨줄 연명하고자 도망친 쪽은 아합왕이 아니고 엘리야였습니다.

왜? 승자가 도망을 가야했을까요?

하나님의 이름들

부활의 아침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사건을 나에 대한 구원 사건으로 이해하고 믿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은총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은 누구에게나 늘 열려있습니다.

다만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의 선언처럼  신의 용납(은혜와 은총)을 용납(받아드리는) 하는 것은 사람의 몫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아침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다섯 번째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새의 노래소리에 귀 기울여지는 아침에.

사실과 진실 – 광야 1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9 

주변은 고요하다. 세례자가 나타나 외친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잠시 후 예수가 와서, 자신이 오실 ‘사람의 아들’임을 알고, 이 세상의 수레바퀴를 돌려, 정상적인 모든 역사를 끝장낼 마지막 혁명으로 굴러가도록 만든다, 그 수레바퀴가 굴러가기를 거부하자, 그 분은 그 위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러자 그것이 굴러가 그 분을 깔아 뭉갠다. 그 분은 종말론적 조건들을 초래하는 대신에, 그것을 파괴시켰다. 수레바퀴는 앞으로 굴러가, 자신을 인류의 영적 지배자라고 생각하고 역사를 자신의 목적대로 바꾸려 했을 만큼 충분히 강했던,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인간의 깔아 뭉개진 몸은 그 바퀴 위에 매달려 있다. 이것이 그 분의 승리이며 그 분의 통치이다. –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가 쓴 책 “역사적 예수 탐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에서 

이즈음 한국 뉴스들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과 이해는  “지난 일을 제대로 정리해 본 경험이 없는 공동체가 겪는 아픔의 하나로써 정리되어야 마땅한 세력들의 마지막 총공세”라는 것인데, 제 바램일 수도 있겠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후세들에게 가르칠 것이냐하는 문제에 있어 자기 이익을 결부시키는 세력들이야 제 배 부르자는 도둑 심보로 그리한다고 하여도, 이도 저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어떤 매체를 통해 그 뉴스를 접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지금 바로 여기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있는 사실일지라도 어떤 매체가 어떤 목소리로 그 이야기를 전하고 듣느냐에 따라 진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과서문제만 보더라도 수천년 전의 이야기나 수백 년 전의 이야기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길어야 고작 백년에서 바로 지난 해에 이르는 기간 중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진실 여부를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자, 사진, 동영상들을 비롯한 숱한 기록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두 눈 뜨고 보고 경험한 사람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실임에도 전혀 상반된 이야기들이 진실이라고 우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국가나 공동체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개인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겪은 일이라도 시간이 흐른 뒤 지난 사실을 전혀 다른 진실로 만들어 버리는 일들은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개인사던 적고 큰 공동체나 국가의 역사던 어떤 역사적 자료와 관점을 가지고 지금 내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진실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믿는 진실의 결과가 미래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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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는 스스로 글 한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예수와 글에 대한 기록으로 유일한 것은 간음한 여인을 두고 군중들에게 한 말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를 말을 하기 전에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썻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릅니다. 신약성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여졌다고 알려져 있는 데살로니가서 부터 일련의 바울서신들은 바울이 남긴 것임으로 그의 생각과 사상, 신앙, 의도 등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기록들과 행위들은 이야기로 전해지다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문자화된 기록들입니다. 

이것은 비단 예수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수많은 불경 가운데 어느 하나도 석가모니가 기록한 것들은 없습니다. 심지어 공자의 경우도 논어를 비롯한 어떤 경전도 공자 스스로 써서 남긴 기록은 없습니다. 무하마드 역시 그가 코란을 남긴 것이 아닙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변명’도 그가 스스로 썻다고 하지 않는답니다. 

모두 후대의 제자들이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불경이나 유교 경전등에 비해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점이 있다면 구전(이야기 전승)을 기록화하는 기간이 짧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주고 부활한 후 승천했다고 생각되는 시기는 대략 기원 후 30년경 전후입니다. 그리고 바울서신등이 기록되어진 것이 기원후 50년경 부터이고, 이른바 공관복음서들이 기록된 시기들이 기원후 70년에서 100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고 제일 늦은 연대라고 해도 기원 후 150년을 넘지 않는답니다. 

그러나 제일 빠르게 기록화된 바울서신들이 예수가 떠난 뒤거의 한세대 뒤에야 이루어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크게 두가지 이유들을 들고 있답니다. 첫째는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예수가 행한 행위들과 말씀들이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고요, 둘째 직접적인 원인인데 당시 예수 이야기를 신앙으로 받아들였던 초대교회 사람들은 세상 끝날이 곧 온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종말이 눈 앞에 이르렀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바울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유대의 종말은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이 완전히 로마에 의해 파괴되고, 73년에 마사다요새에서 항거하던 유대인들이 모든 자결함으로 현실화되었지만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소위유대독립전쟁 또는 제1차 유대 로마 독립전쟁에는 열심당파들은 물론이요, 바리새파, 에세네파 등 파벌에  상관없이 전 유대인들이 나섰고,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공방전에서만 죽은 유대인들이 110만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이 전쟁에서 패한 유대인들은 로마의 노예가 되거나 디아스포라가 된 것이고요. 다만 이 전쟁에 기독교 초대 교인들은 참여하지 않았답니다. 

종말은 오지 않았으나 삶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무렵을 전후하여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문서화되고 기록되는 일들이 봇물 터지듯 일어납니다. 

이 때의 일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에 남깁니다. 

“존경하는 데오필로님,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들이 여럿 있었읍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것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 누가복음 1 : 1- 4, 공동번역에서 

이제 우리들이 이야기할 세례요한과 예수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기록된 사복음서와  기원후 95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지는 요세푸스의 역사서 ‘유대고대사’를 바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성서 무오론(無誤論)

밥이 된 사내 이야기 – 5

<성서 무오론(無誤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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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 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한 교회는 교부들의 주석들로, 성서해석의 기준으로 삼으며 교회의 권위를 드높여 갔다. 교회의 권위가 단단히 세워질수록 정전화(正典化:canon)된 성서는 일 점 일 획도 잘못이 없는 책으로 규정되어 졌다. 성서 무오론(無誤論)이 확립된 것이다. 더불어 성서는 교회의 지침서 나아가 윤리 생활의 교본으로 새로운 율법책이 되어 갔다.

처음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손으로 써서 두루마리 형태로 남긴 성서는 한 두루마리에 기껏해야 한 두 권의 책의 분량을 담아 낼 수 있었다. 인쇄술에 앞서 발달된 것은 장정술(裝幀術)이었다. 오늘날의 책처럼 면을 첩첩으로 쌓는 장정술인 코덱스(codex) 방식이 개발되자 신약성서뿐 아니라 방대한 구약성서까지 한 권으로 묶어 펴낼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묶음집으로써 성서를 펴낼 수 있게 되자 이것을 만들고 보관하는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다. “필사자”라고 불리었던 전문적 성직자들이 그들이다. 그들과 함께 발달한 것이 “필사학”이다. 기껏 베껴 쓴다는 뜻의 “필사”가 어찌 학문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그들은 단순한 필경사가 아니었다.

처음 기록된 경전들은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오늘날의 장(章) 절(節) 구분은 물론 되어 있지 않았고 구두점조차 없었다. 또한 기록한 이들의 편의에 따른 약자 표시는 거의 암호에 가까웠다. 오늘날 인터넷 세대들이 쓰는 약자들, 일테면 “u” 는 ”you”이고, “brb”는 ”be right back”을 말하지만 한 세기 전 사람들에게는 암호이듯 처음 성서의 약자(略字)들은 그렇게 전해져 왔던 것이다. 띄어쓰기가 없는 문장해독은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일테면 “GODISNOWHERE”를 “God is now here(신이 여기 계시다)”라고 읽을 수도 있으며 ”God is no where(신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리의 다른 뜻을 받아 적었을 경우는 정말 난감한 경우이다. 희랍어 ”우리들(hemeis)”을 “너희들(humeis)”로 받아 적은 경우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he와 hu는 똑같은 발음 [hi]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사자“들은 전문적 지식인이어야만 하였다.

오늘날처럼 성서에 장(章)이 구분된 것은 13세기 초기의 일이고 절(節)이 구분된 일은 16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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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 지식인으로서 “필사자”였던 성직자들에게 덧붙여진 권위가 있었으니 본문을 변형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그들은 전해 오는 여러 다른 필사본들을 비교하고 비평하며 종합하기도 하였고, 뜻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는 낱말들을 바꾸기도 하였으며 불경스런 어투를 빼거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새로운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전문적 지식층이 된 필사자들은 치열한 학파적 논리싸움으로 성서를 그들만의 전유물로 삼기에 이르렀다. 먹고 살기 바쁜 무식한 보통 사람들에게 성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나 누리는 계급이 된 지식층들은 그 권위를 받들어 줄 아래 계급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무지한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고귀한 업적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림 성서를 만들게 된다. “그림 성서” 중세 교회시대의 희화화된 모습의 단면이다.

인쇄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던 무렵 일어난 종교개혁은 성서학 나아가 성서연구학의 일대 혁명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오늘의 사족> : “필사자” 곧 중간자이며 매개자이다. 이것과 저것을 이어주는 자이다. 그 뿐, 제가 한 노릇의 대가만 받으면 만족해야지.

그가 곧 하늘이 되고자하면 망하는 법. 그 이치 모르고 “내가 곧 법”이라는 필사자들이 오늘도 판을 친다.

또 다른 쪽의 문제 하나.

필사자 곧 매개자를 하늘로 우기는 광신도들. 왈 미친…

성서의 정전화(正典化:canon)

밥이 된 사내 이야기 – 4

<성서의 정전화(正典化:canon)>

사건을 만들고 말하기를 즐겼던 예수는 이야기꾼이었을 뿐 글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이야기-그가 한 말, 그가 행했던 일들, 그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는 입에서 입으로 바람타고 떠돌며 전해졌다.

제일 처음 예수 이야기를 글로 써서 기록한 사람은 글 깨나 배운 바울이라고 한다.

예수보다 열 대여섯 살 아래였던 바울은 생전의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가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전 유대지역에 떠돈지 약 두 해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부활한 예수를 만났고, 그 만남으로 하여 그에게 사로잡힌 바 되었다고 쓰기 시작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배운 이들이 쓰는 글들은 읽기 어렵다.

불행하게도 갈릴리 호수가를 헤매던 예수의 모습은 바울의 관심 밖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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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사건은 곧 신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전파하는 일에 전 생을 바쳤다.

타고난 이론가이자 조직가였던 바울은 “일하고 말하던(선포하는) 예수”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말하고 전해야 할(선포된) 예수에 대한 기록”에 전념하였다.

무슨 말인고 하면 김아무개가 살아생전 무슨 일을 하다가 그렇게 죽었다하는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는 김아무개가 살아서 이런 일을 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그가 이런 뜻에서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죽었다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였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울이 처음(초대) 교회들을 향한 설교의 형태인 편지글로 남겨 전해졌다. 이 때가 대략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후 이 삼 십년이 흐른 뒤(서기 50-60)였다.

초대교회의 기둥들인 야고보(서기 62년경) 베드로(서기 64년경)와 바울(서기67년경)이 죽은 후,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던 살아 생전의 예수 이야기들을 기록한 첫 번째 책 마가복음이 서기 67년에서 74년 사이에 쓰여졌다.

이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서기 80년대 추정) 요한복음(서기 90년대 추정)이 뒤따른다. 이 네 권의 복음서와 정전에서 제외된 도마복음서는 역사적 예수를 찾아가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렇게 일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예수에 대한 기록들은 이후 백 여 년간 오늘날 정전(正典)이 된 27권을 비롯하여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바나바서신> <베드로계시록> <헤르마스목자서신> <이집트인복음서> <바울행전> <히브리인복음서> <요한행전> <12사도교훈집(디다케)>등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예수를 따르던 갈릴리 무리들은 예수가 떠나자 교회를 형성하였다.

야고보, 베드로, 바울이 조직한 교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도화 되어져갔다. 예수와 함께 했던 첫 세대들이 죽고 예수에 대한 이야기책들이 쏟아지자 교회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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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도대체 어떤 책이 예수에 대해 바르고 본래적인 모습을 말하고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이 책들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가?”하는 질문 앞에선 고민이었다. 더욱이 2세기에 나타난 최초의 기독교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와의 싸움에서 교회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정전화 작업(canonization)”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특별히 교회는 영지주의와 싸우는 과정을 통해 교회법, 신조, 주교조직 등을 공고히하며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전화 작업은 그리 만만하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27권의 책들이 묶여 “신약성서”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은 4세기 중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때의 일이다. 역설이지만 교회는 이 무렵에 이미 어두운 중세로 들어 서고 있었다.

Canon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