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 짓

이런저런 흉내들을 많이 내며 살아왔다. 더러는 꿈으로 비나리로 그리 하기도 하였고, 때론 욕심이 동하여 내 본 흉내들도 많았다. 이제와 따져보니 대개가 흉내 짓으로 그치고 말았을 뿐, 온전히 내 몸짓 맘짓 이었다할 만한 것은 없다. 이젠 솔직한 그런 내 모습에 족할 만도 하건만 내 흉내 짓은 지금도 여전하다.

텃밭을 일구고 푸성귀를 거두어 밥상 한 번 차려 내는 일 따위는 꿈 속에서 조차 그려 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이 나이에 흉내를 낸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찾아 온 아이들에게 차려 낸 밥상을 달게 즐기는 모습을 보며 모처럼  흉내 짓이 온전히 내 것인 양 좋아라 했다. 그저 속으로 만이지만.

감자 캐어 돼지갈비와 함께 감자탕도 끓이고, 알감자로 감자조림도 켵들였다. 상추와 오이 따다 묵 한 사발 무쳐 놓고 완두콩 따서 콩밥 한 사발 씩, 그렇게 모처럼 나눈 밥상.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도 내 일터인 세탁소에서 하루를 보낸다.

때론 흉내 짓만으로도 족한 순간들이 있는 법이다.

*** 한적한 공원 길을 함께 걷고, 동네 사람들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함께 즐긴 일은 아이들이 내 흉내 짓에 건넨 연휴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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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선물

엊그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우체통을 여니 귀하고 고맙고 반가운 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출판사 여울목에서 펴낸 <홍목사의 잡기장>이라는 책인데, 멀리 호주에 계시는 홍길복 목사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매우 독특한 책입니다.

일테면 ‘목사의 이중성’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은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목사라는 직업은 남들에게 힘과 용기도 많이 주지만, 남들에게 상처도 많이 입히는 직업이다.” 이렇게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제목이 붙은 글들이 아주 많답니다.

‘관점’은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능력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항상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려 한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독특하다’는 생각은 점점 제 나이에 마땅히 느껴야만 할 어떤 울림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일테면 이런 제법 긴 문장의 글들 때문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다. 모든 것은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다.>

<나에게는 당신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인격과 모순이 있다. 진실과 거짓, 사랑과 증오, 믿음과 불신, 희망과 좌절, 아름다움과 추함, 왜 나에게는 이런 조화될 수 없고, 조화되어서도 안 되는 상극된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것일까? 우선 나는 정직하게 인정한다. 나에게는 분명히 이런 이중 인격적 요소가 뒤섞여 있어 나를 매우 모호하고, 불분명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다음 나는 이에 대하여 변명한다. 그래도 뒤죽박죽 내 인격은 끊임없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지려고, 그 어느 한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속에 있는 모순은 내 속에 있는 선한 노력이다. 이는 내가 나와 싸우는 전투이며 그 전쟁을 숨기지 않고 표출시킨 나의 고뇌에 찬 눈물이다.

나는 단지 회의주의자나 허무주의자로 전락되지만 않는다면, 그렇다면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신앙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할렐루야 승리의 합창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거친 후 허무와 회의 갈등을 통과한 다음에만 불러야 한다.>

책 표지 다음 면에 홍목사님께서 손수 저희 내외에게 써 주신 글에는 “가끔 한 두줄 읽고 커피 한 잔 드시고 또 가끔 다시 한 두줄 읽으시고 하늘 한번 쳐다 보시”라고 했지만, 280쪽 책장을 그예 다 넘기고 말았답니다.

이제, 제가 이따금 하늘 쳐다보며 꺼내 읽는 책들인 성서와 Walden 노장자 곁에 꽂아두고 한 두줄씩 새기며 호주와 제가 사는 여기의 거리를 좁히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