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에

이즈음  일상 가운데 새롭게 굳어져 정해진 일과가 있다. 매 주 두 차례 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하고 차려 드리는 일이다.

올 봄에 어머니가 돌아 가신 후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찾아 온 가장 큰 스트레스는 매 끼니 식사였다. 칠십 년 넘도록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상을 받아 오신 아버지에게 혼자 밥을 해 드시는 것이 제일 두려운 듯 했다. 어머니 덕에 한국식 밥상을 평생 즐겨 오신 아버지에게 노인 아파트 식당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입에 맞지 않으셨다.

하여 나와 누이들은 당번을 정해 아버지의 식사를 책임지기로 했다. 맏딸인 누나가 사흘을 나와 누이 동생이 각기 이틀씩 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하여 차려 드리기로 정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 두어 달 간은 이리저리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던 아버지는 이즈음 많이 편해 지셨고 우리들이 차려 드리는 밥상을  아주 즐기고 계신다.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이즈음 내가 고마워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음식을 만드는 재능을 물려 주신 것이다. 아내에게 부탁을 하면 아니될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주신 재능으로 가급적 어머니 솜씨를 흉내 내어 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는 작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드릴 밥상을 준비하여 아파트를 찾는 저녁 무렵이면, 시원한 그늘이 진 노인 아파트 한 쪽에 할머니 몇 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곤 한다.

처음에는 그녀들과 가벼운 눈인사 정도를 나누다가, 이어 손을 흔들게 되었고 이즈음은 아주 지극히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제도 여느 날처럼 그녀들은 환한 웃음으로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새 8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지난 봄 이후 우리들 모두에게 잃어버린 일상도 있지만 새롭게 다가 선 일상들도 있다. 어떤 일상이건 그 일상을 맞이하여 대하는 것은 바로 나다.

아버지가 살고 계신 노인 아파트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의 웃음으로 내가 누리는 작은 천국에 감사하는 하루다.

종종 그 아파트를 나서면 만나는 길인 Skyline Drive에 서서, 지는 석양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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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든 삶의 순간들은 아름답고 뜻있는 시간들이 아닐까?

이제  9월,  어느새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다.

웃음이 이어지는 새로운 한 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손님들에게 띄우다.

팔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에.

석양(夕陽)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 공기가 평소와 영 다르다. 후끈한 열기에 놀라 온도계를 보니 바깥 온도와 거의 맞먹는다. 에어컨 팬은 쉬지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기계 제품에 대해 문외한 이거니와  더더우기 전기와 연관된 물건이라면 손 될 엄두를 내지않는 내겐 난감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하필 오늘은 또 금요일 저녁이다. 사람을 부르기도 딱 쉽지 않은 날인데다 날씨는 찌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군데 에어컨 설치 및 수리 업체들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빨라야 사흘 후인 월요일 운운이고 주말에 급점검이라며 웃돈을 요구하는 형국이었다.

심호흡 길게 한 후 조금 느긋한 마음이 되어 내 형편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에 방책에 대해 구글신(神)에게  물었다. 안타깝게도 구글신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에어컨과 전기에 대해서는 나는 무지하였으므로.

그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더웠다. 하여 십 수년 넘게 내 가게 기계들을 돌보아 준 이에게 전화를 넣어 사정 설명을 하고 혹시라도 내가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언제나 처럼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 주었다.

그의 가르침대로 하나, 둘, 셋, 넷을 따라 점검해 보았지만 그저 땀만 더 흘렸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하늘엔 석양이 막 들어서고 있었다. 땀을 식힐 겸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그 하늘을 담아보았다.

구글신은 내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에어컨 시스템의 사용 가능 연령은 10년에서 20년으로 추정하며 평균 사용연령은 15년 쯤이라고 일러 주었는데 기록을 찾아보니 내가 에어컨을 새로 갈았던 것이 딱 만 15년 전 일이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해 본 신, 사람, 기계 그리고 하늘(자연)인데 모두가 그저 내 삶과 연결된 것들이었고, 이런 생각의 모든 시작과 끝 그리고 연결 고리는 모두 나라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사나흘, 에어컨 없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삶의 주인공은 그저 나일 뿐.

하늘은 늘 그렇게 아름답다. 석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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