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약 – 예언자 21

(당신의 천국  쉰 번 째 이야기)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이다. “너는 야훼의 성전 대문에 가 서서, ‘야훼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 오는 유다 사람은 모두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하고 이렇게 큰 소리로 일러 주어라.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 너희는 생활태도를 고쳐라. 그래야 나는 너희를 여기에서 살게 하리라.  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한다마는 그런 빈말을 믿어 안심하지 말고 너희의 생활태도를 깨끗이 고쳐라. 너희 사이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여라. 유랑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말라. 이 곳에서 죄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지 말라. 다른 신을 따라가 재앙을 불러 들이지 말라. – 예레미야  7 : 1 – 6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이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나 야훼가 말한다. 너는 내 집 마당에 가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내 집에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에게 전하라고 준 말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일러 주어라. 행여나 이 백성이 내 말을 듣고 그 못된 생활태도를 고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게만 한다면, 재앙을 퍼부어 그 악한 소행을 벌하려던 계획을 나는 거두리라.  너는 야훼의 말이라고 하며 이렇게 일러 주어라. ‘내 말을 따라 살아라. 내가 세워 준 법대로 살아라.  내가 거듭거듭 보내는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이 집을 실로처럼 만들리니, 이 성읍은 세상 모든 민족에게 욕을 먹게 되리라.'” – 예레미야 26 : 1 – 6 

앞으로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나 야훼가 분명히 일러 둔다.  이 새 계약은 그 백성의 조상들의 손을 잡아 에집트에서 데려 내 오던 때에 맺은 것과는 같지 않다. 나는 그들을 내 것으로 삼았지만, 그들은 나와 맺은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귀담아 들어라.  그 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 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 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며 야훼의 심정을 알아 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 예레미야 31 : 31 – 34, 이상 공동번역 

요시야왕의 성전정화와 개혁 작업이 미완으로 끝난 후, 밀려 오는 이집트, 바벨론 등의 이방 문화와 관습, 이방 종교 앞에서 유다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시작되는 싯점의 상황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를 깨어진 계약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탈애굽후 광야에서 맺었던 야훼 하나님과 자기 백성들 사이에 이루어졌던 계약이 깨졌기 때문에 유다의 멸망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예언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라본 당시 유다 왕국 예루살렘 성전에서 올리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경배나 제사, 예배 등의 모든 절차나 의식은 철저히 위장된 가짜요 거짓된 것 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들을 비롯하여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들마다 “바로 이 곳이 야훼 하나님의 성전이다”라며 마치 그들이 야훼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처럼 호들갑들을 떨고 있었지만 그건 다 위선일 뿐이라고 선포합니다. 

더하여 당시 많은 가짜 예언자들과 가짜 사제들이 야훼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 가운데 있는 한, 또 자신들이 성전을 드나드는 한, 모든 위험과 외부의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것이고, 평화로운 번영이 계속될 것이라는 말들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미신이요, 마술적 부적 같은 것이고, 끝내 야훼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죄악이라고 적시합니다. 

특히 그런 거짓 예언을 하며 야훼 하나님의 성전을 미신의 부적으로 만드는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불의한 소득을 탐내며, 백성들의 눈을 가리는 일들에게 닥칠 심판은 피할 수 없다고 강한 경고를 합니다. 

이른바 “예레미야의 성전설교”라고 알려진 예레미야 7장과 8장 1-3절 까지를 꼼꼼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예레미야의 이 경고는 26장에서 또 한 번 반복됩니다. 

무릇 역사상 무너져 사라진 모든 민족들이나 국가들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  개인적 삶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그 원인을 따져보면 외부적 요인들보다 내적 요인들이 많았음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않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성전은 여전히 예루살렘 도성에 있었고, 그 백성들은 그 성전을 드나들며 “야훼 하나님”을 외쳤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외침이 모두 빈 말 뿐이었던 것입니다.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기를 이방신들을 모시고, 이방 풍습을 따른다고 할 때 눈에 확 뜨이는 어떤 불경한 일들을 상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경고는 정신이 사라진 껍데기만 남은 제사를 향하여 내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남은 제사, 그것이 바로 이방신이요, 미신이요 마침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계약정신으로 돌아가라” 는 회개의 명령이 바로 예레미야의 외침이었던 것이고, 그 계약정신이란 바로 정직한 생활태도로 사는 일이고, 함께 사는 이들 가운데 억울한 사람들이 없게 하는 일이며, 떠도는 사람들, 과부, 고아 등 똑같이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돌아보는 일인 동시에 죄없는 사람을 곤경으로 몰거나 죽이지 않는 정신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외침은 그저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의 백성들은 “나(야훼)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으로 찾아 와 나(야훼)의 앞에 나서서 살려 주셔서 고맙다고 하고는 또 갖가지 역겨운 짓을 그대로 하고 있(7 : 11)”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예레미야는 더는 돌아서 건너 올 다리 조차 없어졌다는 사실을 공표하기에 이릅니다. “너는 이런 백성을 너그럽게 보아 달라고 빌지 말라. 용서해 달라고 울며 불며 기도하지도 말고, 떼를 쓰지도 말라. 나는 너의 소리를 들어 주지 않으리라.(7 : 16)” 

이제 예레미야의 예언들은 예루살렘과 유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고 파괴되고 멸망할 것이라는 최후의 것들로 이어지고, 백성들과 제사장, 권력자들은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는 연금되거나 도망치거나 하는 지경에서도 예언을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언들은 모두 현실이 되어 그와 그의 백성들 앞에 펼쳐집니다. 

유다의 왕들(여호야긴, 시드기야)과 고관대작 및 제사장들 그리고 백성들은 두차례에 걸쳐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예루살렘과 성전은 무너지고 맙니다. 유다 땅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바벨론이 세운 총독 게달리야 치하에 살다가 바벨론 총독에 대한 반란 사건 일어난 후 이집트로 피난을 갑니다. 예레미야는 그 대열에 합류하여 이집트 생활을 하면서도 죽기까지 그의 백성들이 야훼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을 쉬지 않고 선포합니다. 그의 마지막 예언들이 있었던 곳이 바로 이집트입니다. 

이집트로 피난갔던 유대인들도 결국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예레미야의 죽음에 대해 성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전설들이 남아 있으 뿐입니다. 그 중 하나가 심판의 예언을 그치지 않는 그를 동족들이 죽였다는 설입니다. 

예레미야의 위대성은 인간이 지닌 모든 한계 속에서, 그 어떤 기적의 징표도 없이, 온갖 수난과 멸시와 협박 끝내 살해 위협을 받아가면서 까지 야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속에서 만났던 회의와 의심과 반항과 도망의 끊임없는 유혹들을 이겨내고 이루어진 순종이었습니다. 

새싹1

그의 위대성의 진면목은 바로 깨어진 옛 계약대신 새 계약이 이루어 질 것을 선포하는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예레미야 32장과 33장을 주목해야만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들이 찾아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 길목에 세워진 또 다른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안들과 유다 집안들과 더불어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이 새 계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아 에집트 땅에서 인도해 내던 날 그들과 맺은 그런 계약이 아니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았으니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다.” – 히브리서 8 : 8 -9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한 예레미야의 새 계약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예레미야의 새 계약은 이제 신약시대에 이르러 다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남북 왕국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유다 민족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만나 볼 예언자들은 바로 이런 때에 야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새 계약 – 새 부족(部族) 3

(당신의 천국 – 열 네번 째 이야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종교 공동체를 가르킬 뿐만 아니라 생존과 건강한 삶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갖는 주권적인 재부족화(再部族化) 사회를 가르킨다. – 노만 갓월드의 ‘히브리 성서”에서 

제가 사는 미국 동부의 아주 작은 주인 델라웨어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낚시터들이 제법있답니다.  주 남단에 있는 Indian River도 그 중 한 곳입니다. 특히 대서양과  만나는  강 하구는 주변 해변가와 함께 아주 잘 알려진 낚시터입니다. 흑돔을 비롯한 다양한 어족들이 낚시꾼들을 부르는 곳입니다. 

그 곳에 가면 주립공원 낚시터와 계절에 따라 잡히는 어족들과 낚시 규율 등을 담은 안내판이 있답니다. 안내문은  3개국어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스페인어 그리고 한국어입니다.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떤 언어권에 속한 사람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답니다. 

요즈음 국립공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놀고 있지요. 아직도 미국 정부의 shutdown이 풀리지 않은 탓입니다. 그랜드 캐년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라지요. 그랜드 캐년의 관광 포인트에는 많은 안내문들이 중국어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답니다. 심지어 어떤 곳엔 영어 표기없이 중국어로만 만들어진 표시판도 볼 수 있답니다. 중국 관광객들이 대세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중국  –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의 한 축으로 일컬어지는 대국이지요. 그런데 중국이 대국이었던 것은 21세기 뿐만 아니지요. 유사 이래 그들은 중화(中華) 곧 세계의 중심이요, 한족(漢族)이 제일 잘난 종족이라는 우월감으로 똘똘 뭉쳐진 나라지요. 

오늘은 잠시 중국 역사를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역대 수많은 왕국들이 있었지요. 혹시 진나라, 한나라, 남위,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라는 이름들 기억하시나요. 중국에 있었던 나라들 이름이지요. 그러면 북위,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는요? 마찬가지로 중국에 있었던 나라들 이름이지요. 

그런데 차이가 좀 있답니다. 먼저 이야기한 진, 한, 남위, 수, 당, 송, 명나라는 한족이 세운 나라들이고요. 나머지 북위, 요, 금, 원, 청나라는 다른 민족들이 중국을 정복해서 세운 나라들이랍니다. 

북위는 선비족이, 요나라는 거란족이. 금나라는 여진족이, 원나라는 몽골족이,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들이지요. 

그런데 중국을 정복했던 이민족(異民族)들은 지구상에서 없어졌거나 지금은 세력이 아주 미미하지요. 중국만 남아 있을 뿐이지요. 중화(中華) 안에는 그 모든 민족들의 것들이 섞어서 하나가 된 것이지요. 

자! 이쯤 우리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던 때로 돌아가 보는 것이지요. 

가나안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사는 모든 다른 종족들을 멸하시고 그 땅을 너희들에게 주마고 히브리족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의 일을 마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니 그가 죽고 난 후, 다윗과 솔로몬 왕국이 들어서기까지 가나안의 원주민들 다 정복하지는 못했답니다. 

성서는 그리된 까닭을 야훼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먼저 깬 이스라엘의 탓과 또한 그들을 경고하고 교훈을 주노라고 야훼께서 택하신 방법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태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이후 기독교인들 믿음의 근간이 되는 아주 중요한 고백입니다. 

실제 역사적 사실을 놓고 보자면 나중에 삼손이야기나 다윗이야기에 막강한 적수로 등장하는 블레셋족 같은 경우는(그들의 이름 블레셋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된 까닭은 나중에 다윗 이야기 때 하도록 하고요.) 이미 그 당시 철기문화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히브리족들은 아직 청동기 수준의 무기를 쓰고 있었을 때이니까요. 

아무튼 가나안의 서쪽으로부터 동쪽까지 많은 땅을 정복하고 나서의 일입니다. 그도 이제 기가 쇠할떄로 쇠해져서 땅으로 돌아갈 나이가 되었답니다. 

세겜2

여호수아는 말년에 세겜이라고 하는 땅에서 민족 총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12지파로 알려진 부족 총회를 연 것이지요. 

이미 그 당시에는 애굽으로부터 탈출해 온 무리들과 가나안 정복 과정을 통해 히브리족과 함께 한 가나안 원주민들, 타지에서 이들 새로운 세력들과 합친 무리들 등등이 그 민족 총회의 구성원들이 되어있었을 것입니다. 

자! 여기서 한번 깊게 생각해 볼 것이 있답니다. 

모세가 이끌어던 광야시대의 히브리족과 야훼와의 약속을 되새겨 보는 것이지요. 십계명 말입니다. “나 야훼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약속말입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야훼 말고 다른 신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러지 말라는 계약이 성립된 것 아니겠어요. 

바로 이것이랍니다. 중화사상(中華思想)이 중국인들의 버팀목이듯 당시 히브리족들의 버팀목은 유일한 야훼만이 신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시절 히브리족들을 제외한 모든 족속들의 주된 신들은 자연신 일테면 해, 달, 별, 바람이나 먹고 사는 음식이나 하루살이에 절대 불가결한 소, 말, 곡식 들이 바로 신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우상화했고요. 또 다른 아주 중요한 우상, 야훼가 가장 싫어했던 우상은 바로 사람이라는 우상이었답니다. 바로 왕으로 대변되는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체제였습니다. 

모세가 이끌었던 광야 사십년 동안의 히브리족들은 주로 종족안에서 일어난 불만, 불평이나 갈등으로 야훼와의 약속을 저버리곤 했지만, 가나안 정복 이후로는 다른 종족들이 믿고 있는 신들과 생활 양식과 문화 등등에 눈을 돌리고 유혹 당하면서 야훼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들이 생긴 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부족 총회를 열고 새로운 계약을 맺은 까닭입니다. 

<만일 야훼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여러분들이 섬기던 신을 택하든지, 여러분이 들어 와서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인의 신을 택하든지 결정하시오.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소.”(여호수아 24: 15, 공동번역)> 

새로운 부족 이스라엘은 그렇게 새로운 다짐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짐도 잠시, 세대가 바뀌면 또 달라지는 법이지요. 그 이야기도 성경은 우리에게 잘 전해 주고 있답니다. 그 이야기는 내일로.

섞임 – 새 부족(部族) 2

(당신의 천국 – 열 세번 째 이야기) 

이것이 온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속에 들어 와 몸붙여 사는 사람이 누구든지 실수로 살인을 했을 경우에 피신하도록 지정된 성읍들이다. 그들은 회중 앞에 출두하기까지 피살자의 앙갚음을 할 근친의 손에 죽어서는 안 된다. (여호수아 20: 9, 공동번역)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의 일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로자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았다가 체포되는 일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흑인 해방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타는 버스를 탈 수 없다는 당시의 몽고메리시 법안에 대해 항거하는 일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습니다. 

지금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있는 시대에서 보자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느껴지지만 고작 오십년 전의 일이랍니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함흥냉면

제가 냉면이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 본 것은 대학을 막 입학하고 나서의 일입니다. 학교 앞 식당에서였습니다. 

그 때까지 저희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냉면이라는 국수를 만들어 주신 적이 없었답니다. 한남동 토박이 경기도 사람이었던 어머니에겐 냉면은 타지의 음식이었을 뿐입니다. 어쩜 그 당시까지 어머니는 냉면을 전혀 모르시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냉면은 이북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토속 지방 음식의 벽이 허물어진 역사적인 사건은 바로  6.25 전쟁입니다. 전쟁의 전 과정을 통해 마구 섞이게 되면서 지방 토속 음식 문화 역시 한정된 지역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찌보면 지역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이 발단이 되어 역사의 흐름이 바뀌거나 전쟁이나 천재지변이라는 사건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경험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흑인 해방 운동이나 제가 처음 먹었던 냉면의 경험처럼 말입니다. 

히브리족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처음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바로 이러한 바뀌는 경험들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섞임입니다. 

히브리족이 들어간 가나안에는 이미 그 땅을 차지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야훼라는 신의 깃발 아래 뭉쳐져 침략(? – 원주민의 관점으로 보자면)한 히브리족 보다 먼저 그 땅을 차지하며 살았던 그 땅의 본래 주인인 셈입니다. 가나안족, 모압족, 미디안족, 블레셋 등등 숱한 그 땅의 먼저 주인들이 도시국가나 부족국가 또는 왕권국가로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히브리족을 기다리며 “어서오십쇼”하고 반기는 아무도 없는 땅이 아니라 이미 살던 주인이 있는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족이 그 땅에 있던 원주인들을 밀어내고 새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는 “야훼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이름으로 여호수아를 대장으로 하는 히브리족은 가나안 도시와 성을 하나 하나 점령해 나갔던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히브리족에서 이스라엘족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답니다.  바로 도피성을 기록한 저 위에 인용한 여호수아서 기록에서 그 단면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속에 들어 와 몸붙여 사는 사람이…” 

야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을 점령해 나가는 무리들과 원래 그 땅 가나안에 살았거나 다른 지방에서 유입된 무리들이 섞인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여호수아와 판관(사사기)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가 바로 이스라엘 부족 동맹이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들은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 계약의 중심엔 역시 야훼 하나님이 있는 것이고요. 애굽으로 부터 온 노예 무리인 히브리족과 본래 가나안 땅에 살았던 종족, 그리고 타지에서 흘러 들러 온 종족들이 야훼 이름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며 이스라엘의 원형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새 계약에 대한 이야기는 내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