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된 사내 이야기 – 1

<들어가는 글>

예수 – 제가 글을 깨우치기 전에 만난 이름입니다. 성장하면서 십대 후반까지 제 주된 놀이터는 교회 앞마당이었습니다. 이십대 초반에 전혀 새로운 모습의 예수를 만났습니다. 이십대 중반에 평생 그를 쫓기로 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제 나이가 너무 젊고 이르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를 쫓기엔 이젠 나이가 너무 들었습니다.

제 나이가 너무 젊었을 때부터 늙은 이 순간까지 여전히 예수는 제 삶의 주된 화두였습니다.

올해 정초에 문득 든 생각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간 머리글을 제대로 얹힐 날이 있기를 바라면서… 제가 이 글을 연재하는 뜻입니다.

크게 이야기를 셋으로 나누려 합니다.

머리로 만난 예수 이야기(밥이 된 사내 이야기), 가슴으로 만난 예수 이야기(신이 된 사내 이야기), 사람으로 만난 예수 이야기(부활한 사내 이야기)

그 첫번 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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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된 사내 이야기 – 1

세 개의 다른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내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첫 번째 이야기.

<본디오 빌라도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께 문안드립니다.

최근에 제가 직접 알아낸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기심 때문에 자기 자신들과 후손들에게 잔인한 심판을 가했습니다. 그 조상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늘로부터 거룩한 존재를 내려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는 왕이라 불려 마땅하며, 하나님은 그를 처녀의 몸을 통해 이 땅에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가 유대지방에 나타난 것은 제가 그곳에 총독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눈먼 사람에게 시력을 되찾아 주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해주고,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고, 악한 영을 쫓아내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바람에게 명령을 내리고, 물결이 이는 바다위를 맨땅을 걷듯 걸어 다니며, 그외의 많은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에 사로잡힌 대제사장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를 체포하여 나에게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에 또 거짓말을 덧붙여가면서 그가 마술사(사기꾼)이며, 자신들의 율법을 위반했다고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고소가 사실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저는 병사들을 시켜 그에게 채찍질을 가한 뒤에, 그를 유대인들 마음대로 처분하도록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는 그 무덤에 파수꾼을 세워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흘째 되던 날, 그러니까 제 휘하의 군사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을 때 다시살아 났습니다.

그런데 사악함에 이성이 마비된 유대인들은 저의 군사들에게 돈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시오” 병사들은 돈을 받긴 했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그가 살아났고, 자신들의 눈으로 그것을 보았으며, 자신들이 유대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까지 증언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보고하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이 사실을 왜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혹여라도 폐하께서 유대인들의 거짓말을 신뢰하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 이른바 빌라도문헌(Pilatusliteratur)으로 외경(外經)인 베드로행전과 바울행전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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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한편 바로 이 때 예수라는 지혜로운 사람-너무나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면-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선생이었다. 그는 수많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그의 곁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바로 그리스도였다.

빌라도가 유대의 유력 인사들의 청에 의해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으나 그를 처음부터 사랑하던 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에 관해 예언한 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이뿐 아니라 그에 관해서 수많은 놀라운 일들을 예언했었다. 그의 이름을 본떠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제18권 3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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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이스라엘 북동쪽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약 2000년 된 유골은 예수님과 비슷한 시대에 같은 십자가 처형을 받았던 ‘여호하난’이라는 청년의 것으로 밝혀졌다는데 복숭아뼈 부근에 박혀 있던 쇠못을 가족들이 빼어내질 못해 그냥 그대로 안장한 듯. 박아 놓은 십자가에서 발이 빠지지 않도록 끝을 구부려논 못이 복숭아뼈에 그대로 박혀있는 참혹한 모습.>

 

 

세 번째 이야기

<1968년 6월에 지금까지 발견된 것중 유일하게 십자가에 달려죽은 유골이 북동 예루살렘 지역 나불로스도로 바로 서쪽의 기브앗 하 미브타르에 있는 기원후 1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모두 서른 다섯 명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이중 남자가 11명, 여자가 12명, 어린아이의 것이 12명이었다. 아이들은 생후 6개월에서 여덟 살까지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굶주려 죽었고, 어른들은 불에 타 죽었거나 철퇴 같은 것에 맞아 죽었거나 화살에 맞아 죽은 흔적이 드러났다. 그런데 하나의 유골은 나이 스물 넷에서 스물 여덟 사이로 추정되며 키는 약 165cm정도인데 십자가형으로 죽은 것이 확인되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여호하난이다. 그러나 지금은 I/4A라고 불린다.

즉 무덤번호 I, 납골함 제 4번, 유골 A를 합친 고고학적 이름이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과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하사다 의과대학 교수들이 감정하고 다시 감정한 결과 십자가 처형방법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팔은 못으로 박힌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가로 막대에 묶여 졌는데, 아마도 팔꿈치까지 가로 대 위로해서 뒤로 넘겨 팔을 묶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두 다리는 수직으로 세워진 기둥의 양쪽 측면에 놓여졌는데, 별개의 못으로 각 발 뒤꿈치의 뼈를 기둥 측면에 박아 고정시켰다. 처형된 사람이 발을 비틀어 못에서 빼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올리브 나무로 된 작은 판이 못의 머리 부분과 발뒤꿈치 뼈 사이에 끼워졌다. >

빌라도의 편지와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그리고 십자가형으로 처형된 사람의 유골 발굴 이야기를 하였다.

빌라도의 편지는 대략 서기 100년 전후에 나온 문서들에 기록된 것이고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는 서기 93년이나 94년에 기록된 것들이다. 성서에 나오는 이른바 바울문서들이 대략 서기 50년에서 60년 사이에 기록되었으므로 약 반세기 뒤에 기록된 것들이다. 그나마 빌라도의 편지와 요세프스의 유대고대사에 나오는 예수에 대한 기록은 사실 이즈음 대다수의 학자들이 신뢰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하면 그 두가지의 기사는 후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첨가 삽입하거나 수정하였다는 말이다. 이쯤 이야기하면 경건한 정통 보수 예수쟁이 양반 한마디 할 것이다. “거룩한 성서의 기록을 나두고 왠 쓸데없는 이야길… 쯧쯧쯧…”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나는 이제부터 성서를 말하고자 함이니. 또 한가지 예로 든 것은 십자가에 처형된 유골이야기이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한꺼번에 많게는 이천 명 정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거의 이천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단 한 구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역사속에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다가 죽은 예수, 교인들의 신앙고백은 뒤로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실은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죽었을까?

엄숙한 죽음, 그것도 예수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우스개 소리 하는 것을 용서하시라. 그냥 머리속에 스쳐감으로 쓰는 것이니, 또한 삶과 죽음에 웃음이 좀 있어야 넉넉하지 않겠는가?

오래 전 일이다. 터놓고 지내는 이 하나가 어느 날 진지하게 내게 물었다. “김형, 예수가 왜 죽었는지 아시오?” 이럴 때 해답은 간단 명료하지. “그야, 나와 당신을 위해서지” 이 양반 껄걸 웃으며 “아니야. 목사님들 밥 먹여 살려 주시려구 죽으셨데” 너무 썰렁했나. 나는 많이도 웃었구만.

자 우스개 소리 접고, 내가 풀어 가는 예수의 죽음 아니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야기인데 제목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 붙인다. 이 이야기는 성서를 교과서로 하고 약간의 신학서적들을 참고서로 하여 내 작은 상상력도 조금 붙이고 하여 해 보는 소리이다.

여유(餘裕)

입춘도 지나고 내일 모레면 대동강물도 녹는다는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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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겨울이 이렇게 지나간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여라. 주(週)단위의 이 곳 생활이 시간의 빠름을 더욱 재촉한다. 엊그제가 일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한 주일이 지났다. 그 빠른 시간에 쫓기며 살다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엄벙덤벙 생활의 켜만 늘어간다. 한참 일할 나이에 삶의 여유 운운은 자못 사치일 수도 있지만 때론 조금은 쉬었다 갔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다.

업종에 따라 생활양식과 시간 씀씀이가 다르겠지만 영세 소규모 업종이 주를 이루는 많은 동포들의 삶은 큰 차이없이 엇비슷 할 것이다. 세탁소 10년은 초등학교 시절 생활계획표보다 더욱 단순하게 하루를 묶고 생활에 틈을 주지 않는다.

급한 성정(性情) 탓도 한 몫이지만 눈뜨기 무섭게 고양이 세수하고 가게로 나가 보일러를 켠다. 빨래를 하고 뒷 일 처리하다 이따금 아내가 자리를 비우면 손님들과 싱갱이도 하다가 옷배달 하다보면 어느덧 하루가 맥없이 끝나 버린다. 게다가 동네 일 한답시고 이렇게 저렇게 나선 일에 짬을 내다 보면 그야말로 하루 해가 눈 깜작할 사이다. 하여 이렇게 짬 내는 일조차 내겐 공연한 사치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는 것이다.

가까이 계시는 부모님들께 얼굴 한 번 제대로 비추지 못하고 매일 전화 인사드리는 것으로 자위하고, 결혼 15주년 때 아내에게 약속한 여행계획은 20주년으로 미루었건만 눈 앞에 다가 온 20주년도  무망할 것이라는 예감이고, 아이들 내 품 떠나기 전 함께 해야 할 일들도 그냥 늘 계획일 뿐 하루 해, 일주일과 함께 또 내일로 미루어지기 일쑤이다.

수녀 이해인 시집을 들척이다가 두 아이들을 부른 것은 달포 전 주일 저녁이었다. 그녀의 영역시 몇 편을 골라 아이들에게 타자를 부탁하였다. 잠시 후 아들 녀석은 제 애비 부탁이라 마다치 못하고 억지로 건성건성 타자한 시편들을 건냈으며, 딸아이는 제법 맵시있는 활자체까지 선택하여 예쁘게 일을 마치었다.

딸아이와 마주 앉아 포스터용지에 시편들을 오려 붙이고 지난 가을 앞뜰에서 주어 온 잘 마른 낙엽 두어장과 아내가 벽단장한 마른 장미 두 가지를 가지런히 붙여 근사한 시화지를 만들어 이튿날 가게 카운터 옆 빈 벽에 딸아이와 함께 만든 작품(?)을 전시했던 것이다. 간혹 손님들이 ‘누가 쓴 시냐?’, ‘참 좋다’며 복사해 달라고 하며 관심을 보일 땐 내가 제법 대견한 생각을 하였군 하며 자족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토요일 아침, 아내는 한국학교 교사 일로 자리를 비우고 빨래하랴, 손님 맞으랴 반은 얼 빠져 일하는데 손님 한 분이 기다리는 사이 그 시편들을 읽다가 <내 혼에 불을 놓아/ Kindle my spirit>라는 시를 가르키며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어쩜 이렇게 맑은 영혼이 있을까? 이 시를 함께 나눌 수 있게 한 너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네가 누리는 여유가 부럽다.”고 한 마디하고 떠난 후 그 여유(餘裕)란 말이 머리 속에 오래 남아 떠나지 않는다.

늘 정신없이 어지럽게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내 삶 속에도 이웃이 보기에 ‘여유’가 있다는데야?

그렇다.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하였을 뿐 내가 얼마나 많은 여유를 누리며 사는가. 정신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신이 내게 주신 ‘여유의 은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이다.

구걸할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는데 신이 주신 이런저런 작은 여유들을 찾아 감사해 보는 일도 바쁘고 바쁜 이민 생활을 이겨내는 삶의 한 지혜일 듯 싶다.

*** 오늘의 사족

내가 윗글을 쓴 것은 2001년 2월 15일이었다. 그로부터 만 12년 일개월이 흘렀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변함없는 세탁소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두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였고,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병원출입이 잦으시다.

아내는 토요일이면 여전히 한국학교를 나가고… 교장을 맡고 있는데 이제 임기만료가 다 되어간다.

나는 여전히 손님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시를 보낸다. 마치 삶의 여유가 있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