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또는 성서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성서 베드로전서 1장 24절(새번역에서)

설교자는 말씀하셨다. ‘어느 날 떨어지는 꽃잎처럼 삶은 유한할지언정 우리네 삶을 꽃이라 비유하신 사도들의 신앙고백은 얼마나 감사한가! 또 그런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신 신의 은총은 얼마나 큰가! 우리 모두 언젠가 확실히 떨어지고 말 꽃들이다, 다만 그 언젠가를 우리는 가늠할 수 없기에 불확실한 존재들이다. 모든 생각들을 접고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 모두는 꽃이다. 오늘을 꽃처럼 살자!’

그리고 설교자는  ‘아름다운 꽃처럼 설다 간 사람’이라고 내 장모를 기렸다.

장모가 세상 뜬지 오늘로 딱 만 삼년,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목사님을 비롯해 교회 공동체들이 장모 삼주기 추모 예배 자리를 마련해 주어 함께 했다.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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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후 아내와 아들 내외와 함께 장모 쉬시는 공원을 찾다. 장모 계시는 곳, 바로 앞 묘지 터엔 오래 전 예약해 놓은 내 부모와 우리 부부가 누울 자리가 있다. 장인은 장모와 합장이 예약되어 있고… 묘지 공원엔 성탄이 이미 함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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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시간을 쪼개어 준 아들 내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해 보낸 후, 일흔 세 해  함께 사시며 이젠 오락가락하는 정신 줄 같이 붙들고 씨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뵙다. ‘이젠 진짜 갈 때가 됬는데… 왜 이리 안 데려 가신다니…’ 어머니 푸념에 그저 웃으며 답하다. ‘아이고 오늘 얼굴 좋으시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장인 누워 계신 양로시설에 들리다. 대낮에도 한밤 중이시던 양반이 잠시 깨어 묻는다. ‘김서방 나이가 몇 이야? 김서방도 나이 많지?’ 나는 또 웃으며 말했다. ‘에이 장인보단 한참 젊지요!’

양로시설 성탄 장식은 정물화(靜物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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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휴일 낮잠을 즐기려던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으므로. 낮잠 대신 동네 한바퀴를 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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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도 늦은 걸음으로 성탄이 오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마주 한 컴퓨터 모니터가 전해 준 세상 소식 가운데 하나.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엇비슷한 생각으로 이즈음 삶의 결을 같이 하고 있는 벗의 모친상 소식.

하여 다시 손에 들어 보는 성서. 그리고 떠오른 안병무선생님의 말씀 하나.

<성서는 묻지 않으면 침묵한다. 그런데 어떻게 묻느냐 하는 것이 대답을 유도한다. 우리는 성서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이에 대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성서 대신 아집에 정좌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계속 성서를 향해 물어야 한다. 그런데 물을 때에는 언제나 어떤 관심이나 전제를 갖고 묻는다. 관심이나 전제 없는 성서해석은 없다. 까닭은 성서를 읽을 마음이 나는 것은 그것에 관심이 갈 때 가능하며 그 관심은 성서가 이런 대답을 줄 수 있으리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심이나 전제가 묻는 자의 삶과 최단 거리에 있으면 있는 만큼 그 물음이 진실하며 그것에서 얻는 대답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된다.>

오늘, 삶 또는 죽음에 대하여.

유월, 더운 날에

일터의 환경을 바꾼 덕인지 올 여름엔 더위가 매우 더디 찾아 왔다. 스팀 열기와 함께 해야 하는 세탁소 여름을 수십 년  보낸 탓에 내 마른 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올 봄 가게를 이전하며 보일러를 사용하면서도 에어컨이 작동할 수 있도록 꾸몄더니 올 여름 호사를 누리고 있다.

바쁜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는데 잠자리 한 마리 세탁소 카운터 위에서 늦잠에 빠져 있었다. 더위는 게으름을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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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한바탕 소나기가 더위를 식히다.

차마 사진 운운하기엔 부끄러운 유치원 아동이지만 이즈음 깨달은 두 가지.

나는 렌즈를 통해 보고 싶은 것들만 본다는 것과 그나마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은 빛이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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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장인을 기다리는 요양원 앞뜰에서 이어진 깨달음 하나.

삶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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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앞뜰  고목 밑둥은 새 잎을 낳다.

6/ 28/ 19

과정(過程)

국민학교 몇 학년 때 였던가? 아마도 여름방학을 앞 둔 이 맘 때 쯤이었을게다. 신촌 신영극장 뒷길을 걷다 바라 본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들이 포근한 솜처럼 피어 있었다. 입 헤벌리고 그 하늘을 쳐다보며 걷는데 벌이 내 눈가를 쏘았었다. 그야말로 눈탱이가 밤탱이 되었던 그 여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제 오후 가게 밖 하늘 풍경은 딱 그 때였다. 1960년대 어느 여름 신촌 그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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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 닫고 돌아오는 길, Curtis Mill Park 숲길을 걷다. 새소리 물소리, 길가 강아지풀에 담긴 옛 생각들을 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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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 주어야 할 것이 어찌 잡은 물고기 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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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 치매끼가 더해 가시는 노인들과 이제 막 신혼을 꾸미고 인사차 들린 처조카 내외를 보며  든 생각 하나.

무릇 삶은 놓아 주어야 할 과정의 연속.

가을비

‘난 괜찮아!’, ‘아무렴, 괜찮치!’, ‘진짜 괜찮다니까!’ –  연이은 그의 ‘I’m Okay!’ 소리를 나는 그렇게 받았다. 충혈된 그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내 작은 손으로 그의 큰 손을 잡았다기 보다는 그저 그의 손등에 내 손을 얹었을 뿐이었다. 내 작은 손보다 더욱 안쓰러웠던 것은 그에게 건넬 말 한마디 마땅치 않은 내 짧은 말솜씨였다.

Mr. Early 는 얼추 25년 여 내 가게 단골이다. 성씨 답게 그는 늘 이른 아침에 내 가게에 들른다. 폴란드계인 그들 부부는 자잘한 농담과 일상 이야기로 이른 아침 밝은 웃음을 남기곤 했다. 나보다 몇 살 위인 그는 작은 건축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넌 언제까지 일할꺼니? 난 내년이나 후년에 은퇴할 건데…”라는 그의 말을 들은지 거의 칠 팔 년이 지났건만 그의 같은 농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주말에 그의 손자를 앞세우고 내 가게를 찾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 주말 아침, 카운터를 보던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내게 전한 말이었다. “어떡해? Early씨 가 왔다 갔는데… 아들이 죽었데….이제 서른 하난데…. 차마 할 말이 없어 뭐라 말도 못했네… Early 부인은 그래도 덤덤한데… 남편이 그냥 우는데….”

가을비가 추적이는 오늘 아침, 충혈된 눈에 웃음을 담고 떠나는 그를 바라보다 눈에 들어 온 가게 밖 풍경.

삶은 때론 참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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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오랜만에 John이 가게에 들렸다.  John은 내 오랜 친구이자 선생이다. 지금은 빈 상태로 오래 되었지만 내 가게 옆엔 Radio Shack이 있었다. Malmstrom John은 바로 그  Radio Shack Manager로 오래 일했던 사람이다.

내가 세탁소를 처음 열었던 삼십 여년 전 그 때도  John은  Radio Shack Manager였다. 그는 매우 친절한 사내였다. 당시 막 새 가게를 열어 모든 것이 낯선 내게 그는 아주 자상한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었다. 드라이클리닝 기계와 장비들을 처음 들여오던 날 그가 내게 했던 말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친구야! 새로 마련한 네 장난감으로 돈도 많이 벌고 네 인생을 맘껏 즐길 수 있기를 바래!”

그렇게 오랜 동안  가까운  이웃으로, 친구로 선생으로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그와 어느 날 멀어지게 되었다. 그가 그만 일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떠난 Radio Shack은 활기를 잃더니 어느 날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해마다 7월이면 John은 그의 집에서 가까운 이웃들을 초대해 큰 야외 파티를 연다. 어느 해 부터인가 우리 부부도 그 파티에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러다 최근 몇 해 들어 그 때마다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  함께하지 못했었다.

John은 이 달 말에 있을 그의 잔치에 꼭 참석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내 가게에 들렸던 것이었다. 이즈음 어떻게 지내느냐는 내 인사에 일흔 다섯 살 John이 웃으며 한 대답이다. “벌어 놓은 돈, 약값으로 쓰면서 잘 지내지!”

활짝 웃는 광대 분장과 옷차림을 즐겨했던 John이 웃으며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잠시 되돌아 보았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딱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과 행복감에 잠시 젖었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쓸쓸함과 누군가 서로를 기억해 주는 이웃이 있다는 행복감이었다.

어제는 하늘의 뭉게구름이 참 아름다웠었다.


이 달초 여행길에서 얼핏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사진 속에 남아있다.

점점 더 팍팍해 지기만 하는 삶을 토로하던  내 또래 그 섬의 토박이 관광차 택시운전사 할아버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70대 후반의 할머니였던 lyft택시 운전사, 그녀의 차에는 핸디캡 스티커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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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여객선 안 일꾼들 중엔 영어가 되고 몸값이 싼 필리핀계와 인도네시아계들이 많았다. 그들에게서 영어 안되고 몸 값만 쌌던 내 모습이 잠시 어른대기도 했었다. 일본과 벨기에의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선상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벨기에가 역전승을 거두던 순간 그들과 우리는 까닭없이 한 패가 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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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내 고향 신촌 기차역 앞 서커스 천막을 떠올렸던 공연 속 주인공들과 얼굴색과 나이에 걸맞게 나뉘어 즐기던 사람들 속에서 나와 아내는 그저 구경꾼이었다. 까만 사람들 속에서 까만 가수가 자마이카풍의 노래를 부르던 연회장에 우리 내외가 오래 앉아 즐겼던 까닭은 까만 내 며느리와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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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관광지 번화한 거리에서 “회개와 예수 천국”을 드높이 들고 있던 할머니는 그 거리에서 가장 가난한 차림이어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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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거리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던 부부는 아동복 코너에서 옷을 찾는 나보다도 작은 이들이었다.  끊임없이 속삭이며 해변을 향해 걷던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그 누구도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던 그거리의 사람들에게서 나는 아직은 남아있는 이 땅의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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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일상 속 헛것에 취해 비틀 거리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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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행 길에도 하늘엔 푸근한 구름이, 그리고 내 곁엔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내와 벗들이 함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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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오후

뜰에 봄이 가득한 토요일 오후, 지붕을 범하려는 꽃나무 가지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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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줄 노트.

<그저 바라만 보아라.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 카메라는 그저 파인더 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의 사진 강의 노트(Teaching Photography)에서

 

 

삶이란?

연일 95도를 웃돌고 습기가 높은 날씨에 지친 몸이 만사가 귀찮다고 풀어질 즈음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오늘 내일은 최고 기온이 70도 어간에 머무른단다. 그렇다하여도 지친 몸이 쉽게 탄력을 되찾지 못한다. 나이 탓이려니.

몸 생각만 하다가 맘 생각이 들어 노자(老子)를 펼쳐 든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만은 늘 가난하다. 내 마음은 바보의 마음, 그저 멍청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활발한데, 나만은 흐리멍덩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상세하고 분명한데, 나만은 우물쭈물 결단을 못 내린다. 바다처럼 흔들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정처 없다. 사람들은 다 유능한데, 나만은 우둔하고 촌스럽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20장의 한 부분이다. ‘그랬구나, 노자 어르신도 그 맘 아셨구나’ 그 맘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찌 노자 뿐이랴!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 조차 없다.>
예수는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한 모습을 고백하기도 했거늘.

노자와 함께 생각이 뒹구는데 튕기는 아내의 소프라노 소리.

“와요!”
저녁밥 준비되었다는 소리에 엉덩이 드는 순간, 이어졌던 아내의 웃음소리.
“미안, 미안! 밥솥을 안 눌렀었네….”

하여, 삶이란 무릇 살만한 것이려니.

삶이란!

벗과 멋 그리고 삶과 오늘

두어 주 전 일이다. 동네 벗에게 전화를 받았다. 나이 들어가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나비 넥타이가 썩 잘 어울리는 친구다. 나이에 어울리게 외모나 내면으로 제 멋을 풍기는 친구들을 보면 참 좋다. 나 또한 흉내라도 내는 시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 넥타이야 애초 나와는 무관한 액서사리이어서 온전히 그의 멋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그의 색스폰 연주에 이르면 부러움이 인다. 나이 들어 불기 시작한 모양인데 그 소리가 제법이다. 게으른 나는 차마 흉내조차 내지 못할 그만의 멋이다.

그런 그가 전화를 통해 내게 제안을 하나 했다. 친구와 내가 적을 두고 있는 교회 창립 예배 순서에 자신이 색스폰을 연주하는데 시 한 수 읊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의 제안은 여러모로 가당치 않은 것이어서 애초 나는 저어했다. 하여 그냥 웃고 넘기려 했었다.

그러다, 오늘 그의 섹스폰 연주에 맞추어 소리내어 시 한 수 읊어본다. 연습으로.

피조물, 죄인, 참 사람 이해를 위한 구원, 구원의 확장, 삶과 죽음, 감사 그리고 오늘 등등을 곱씹어 보면서….

자기 멋 맘껏 누리며 나이 들어가는 벗에게 고마움을.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리로 데려다가 살게 하셨다.)

한 처음 하늘 문 열어
사람 하나 세우셨다.
이름 지어 아담 곧 사람
이내 사람을 부르는 소리
–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사람은 떨며 대답했다.
–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날 이후
여호와께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신 일
사람 사랑
가죽옷 입혀 놓은
사람을 향한 사랑

(에케 호모(Ecce homo)
–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가리켜 보이며 “보라! 이 사람이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강퍅하였다.
수천 년 부끄럽고 두려운 세월
여호와, 참다 참다 참다 참 사람 하나 내린다. 이 땅에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모가지 뻣뻣한 사람들이 그를 향해 쏘아 날리는
멸시와 퇴박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던 사람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던 사람
참 사람
예수

온 몸 온 맘
삶으로
죽음으로
마침내 다시 사심으로
여호와를 알게 한 사람
사람 사랑을 고백케 한 참 사람

삶과 앎
바로 사람
그 사람들이 모인 곳

1979년 여름 어느 날
이 사람을 보라!
그 소리에 끌려 모인 사람들
이름하여 델라웨어 한인 감리교회

여호와는 우리에게 이미 보여주셨다.
한 처음을
한 사람을
서른 여덟 해에 담긴 태초와 오늘까지의 세월을

2017년 이 곳은 새 하늘과 새 땅
사람들이 부르기 전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는 세상

세우는 자
세움을 받는 자
마음 문 열어 박수 치는 자
모두 사람이 되어
참 사람이 되어

감사하므로 살아있는 오늘을 느끼는
나 너
우리
마침내
참 사람

지독하게 속이면…

오늘 아침에 눈을 떠 서성이다가 책장 속 평소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던 곳에 꽂혀있는 책 하나 눈에 뜨였다. 오래 전 도서출판 청사(靑史)에서 펴낸 ‘칠십년대 한국일지’라는 책이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 10년 동안 남한(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실록을 엮듯 날자 별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때로부터 대학생활, 군생활, 실업자생활, 사회생활, 다소 엉뚱했던 신학생생활을 이어갔던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남한(대한민국) 실록이다.

후루룩 넘기는 책갈피에 숨겨진 세월의 거짓들을 읽는다.

2017년 이 봄에 내가 까닭없이 슬퍼지는 이유가 짚을 듯 하다.

이어 시집을 꺼내든다.

그것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 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槪觀(개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다/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 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남에게 犧牲(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殺人(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四十(사십)명가량의 醉客(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이 캄캄한 犯行(범행)의 現場(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現場(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 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내 아버지 세대의 사람 시인 김수영의 시편들, 곧 “성(性), 罪(죄)와 罰(벌), 김일성 만세”이다.

아마 2017년을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미친 놈>일 뿐. 김수영의 삶에 대한 솔직함은 끼어들 틈 조차 없이.

허나, 나는 2017년 4월에 김수영이 노래하는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에 꽂힌다.

세상이 온통 제 스스로에게 지독하게 속고 있는 듯한 2017년 서울이 아직도 이루지 못한 1960대 김수영의 솔직함이 통하는 세상으로 바뀌기를 꿈꾸며.

‘ㅋ’와 ‘이 순간’

노부모님과 장인 어른, 누님 내외와 동생 내외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 딸과 예비 사위, 조카들과 함께 한 거한 생일상을 물린 후, 서울에 있는 큰처남에게서 축하 문자를 받았다.

내게 형제가 없어서인지, 처남 매형 사이라기보다는 동생 같은 큰처남은 늘 밝아서 좋다. 이따금 던지는 그의 농담은 유쾌하다. 오늘 그가 보낸 문자 역시 그렇다.

‘다시 한번 생신 축하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세상에 잘 오셨어요. ㅋ’

마지막 ‘ㅋ’가 없었다면 정말 딱딱하고 뜬금없을 수도 있는 문자였다. 마지막 그 ‘ㅋ’ 하나가 재미와 흥을 돋운다.

‘세상에 잘 왔다’는 말은 듣기에 썩 좋기도 한 말이지만, 동시에 듣기에 참 부끄러운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ㅋ’ 하나로 그저 내가 사는 재미를 일깨워준다.

‘ㅋ’를 읽는 내 관점이다.

큰처남이 문자 ‘ㅋ’로 떠올린 피천득의 시 ‘이 순간’이다.


이 순간

  •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