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종종 신비로운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1.

아침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호주에 계신 홍길복목사님께서 보내주신 설교문이었다. 은퇴후 그가 행한 <죽음 – 제 3의 이민>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설교문 중 하나로 <끝이 좋아야 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양 옆에서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이야기를 주제로 한 설교였다. 설교문의 마지막 문단 중 몇 개의 문장들이다.

<인생의 마무리는 죽음입니다. 잘 죽어야합니다. 우리 모두 다 잘 죽기를 바랍니다. 끝내기를 잘해야 합니다. ……. <유종의 미>를 영어로는 Crowning glory, <면류관을 쓰는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맨 나중에 웃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최고 정점, 최대의 peak time은 죽음입니다. 죽을 때 잘못 죽으면 일생을 망치게 되고, 죽을 때 아름답게 마무리 하면  그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지만 끝이 나쁘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우리는 이제 점점 죽음의 순간을 가까이 대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갑니다.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갑니다> 찬송하면서 이 땅에서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2.

오전엔 아내가 읽어 보라고 권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쓴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손에 들었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며 아내가 건네 주었던 책인데 그 이유 때문에 차일피일 내 독서목록에서 밀려 있던 책이었다. 무슨 수상자나 수상작품이라는 치장이 달린 글들은 내게 썩 다가오지를 않는다.

말이 장편이지 고작 135쪽일 뿐인 중편으로도 짧은 축이었다. 그저 잠시 훑을 요량으로 들었던 책인데 책장을 덮을 때까지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린 마치 단편 같은 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 요한네스가 태어나던 날 몇 시간과 그가 죽던 날 하루에 대한 기록인데 그의 할아버지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오대에 걸친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하여 단편인 동시에 장편이다.

생명의 탄생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로움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죽음의 일상성이랄까 죽음이란 마치 평범한 삶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는 일 가운데 하나의 과정인 듯 이야기한다.

요한네스를 다음세상으로 데려가기 위해 잠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 먼저 죽은 그의 절친 페테르가 전하는 다음세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자네가 사랑하는 것은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3.

오후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뵙다. 나를 보자마자 하시던 말씀.

“아이구, 내가 너를 기다렸어요. 이제 내가 떠날 준비를 해야되요. 내 장례식때 말이야… 니 엄마가 해 준 한복을 입고 가려고 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오줌 눌 때 아주 불편할 거 같애서… 그냥 양복하고 …여름철 거든 겨울철 거든 철은 따질 거 없어요…. 그거 입히고 니 엄마가 해준 반코트 있어… 그거 좀 입혀 줘.”

이즈음 들어 많이 오락가락하시는 아버지의 부탁이었다.

날은 여전히 쌀쌀한데 햇볕은 아주 따스한 날이다. 내 뜰에는 어느새 수선화 튜립  등이 싹을 틔어 오르고 크로커스는 이미 활짝 웃고 있다. 보라색 크로커스의 꽃말이란다. ‘누군가를 후회없이 사랑한다’라던가….

살아가는 날까지 끊임없이 사랑하고 볼 일이다. 그게 가는 날까지 천국에서 사는 일이고, 떠나서 만나는 이들은 어차피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 뿐이기에.

죽음을 논하는 아침에서 삶을 노래하는 저녁까지…

오! 이 신비한 하루에 감사.

홍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는 내일을 위하여….

내 쉬는 날 일상의 하나… 오늘은 달콤한 사과빵을 만들어 아내에게 맛보이다.

연휴(連休)에

“다음 연휴는 언제 일까?”하며 아내가 달력을 넘겼다. 연휴를 마치고 일을 다시 시작한 어제 가게에서 였다. 연휴를 맞아 즐기는 맛보다는 다시 그 시간들을 기다리며 꿈꾸는 멋진 상상들이 어쩌면 더욱 삶에 기운을 북돋는 흥일 수도 있을 터.

노동절 연휴에 애초 내가 세웠던 계획은 울타리 나무들을 심는 것이었는데 이런 저런 까닭으로 미루게 되었다. 하여 온전한 쉼을 즐기는 쪽을 택해 시간을 보냈다.

엊그제 일요일이었다. 교회에 간 아내가 전화를 했다. “신권사님 내외가 오셨네! 예배 마치고 점심 식사하러 가는데 함께 안하시려나? 오랜만이잖아?”.

‘신권사’ – 그의 이름을 듣자 그가 서부시대 마차에 보따리 짐 바리바리 싣고 황금을 캐러 서부로 향했던 옛사람처럼, 밴트럭에 가득 짐을 싣고 동네를 떠나던 날이 생각났다. 얼추 스무 해 전 일이었다.

신권사 내외는 남도(南道)의 흥으로 사는 이들이었다. 그의 집 문턱은 매우 낮아서 누구나 무시로 드나들 만큼 넉넉하였다. 십 수년 한 동네에서 살며 또래들이 신앙으로도 차마 채울 수 없는 이민 생활의 헛헛함을 채우는 우물 같은 역할을 하곤 했었다.

그 무렵 그의 집에 자주 모였던 이들 중 이 동네에 남아 있는 이들은… 글쎄… 떠오르질 않는다.

나는 아내의 권유를 물리쳤고, 그 날 저녁 신권사 내외와 이젠 교회와 동네 터주가 된 오랜만에 만난 이장로 내외와 옛 이야기 나누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었다.

이곳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십년, 시카고에서의 십년 – 그가 지낸 시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은 마차를 타고 이 동네에서 달려 온 이장로와 내 이야기를 섞어 나누고 들으며 모처럼 맞은 연휴의 뜻을 새기는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내가 말 많이 한 밤이었다.

제 마음대로 할 일 다 해도 하늘의 뜻에 거스를 일 없는 나이라 하여 공자왈 일흔 나이를 종심(從心)이라 하였다던가?

살며, 쌓인 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이며, 한 점 부끄럼 없는 인생이 또 어디 있을까? 또한 감사함 하나 꼽을 수 없는 삶은 없을 터.

하여 그저 감사함으로. 스무 해 만에 만나 얼싸 안으며 반가운 사람 하나 있어 감사! 하늘의 뜻 거스를 일 없는 나이에 품은 흥 넘치는 남도(南道) 사내 내외의 꿈을 위하여 빌 수 있는 믿음 하나 있어 감사!

연휴의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꽃길 걸으면서 미처 생각치 못했던 소원 하나 비는 밤.

‘이젠 달력이 전해 주는 연휴를 벗어나 연휴를 만들어 가며 사는 여유를 허락해 주시길…. ‘

그 또한 감사하는 맘 위에 살포시 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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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이자 선배, 나아가 신앙의 스승인 이가 스무 해 전 즈음에 보내 온 편지의 한 구절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제가 이제 환갑을 맞습니다. 제가 살아 온 예순 해를 돌아보며 예순 분께 제 삶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제 삶을 당신께 묻습니다.’

나는 그가 물음을 던진 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황홀했었다. 그리고 그의 그 당돌한 물음으로 그에 대한 경의는 그 이전에 내가 품었던 크기의 배가 되었다.

그로부터 십 여년 뒤, 내가 그 나이에 이르렀을 땐 나는 여전히 고단한 삶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을 뿐, 내 삶을 누군가는 커녕 내 스스로에게 조차 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기억도 또한 또렷하다.

그리고 오늘 밤, 가까이 소식 전하며 사는 후배들이 이제 예순 나이를 맞는 그네들의 선배들에게 보내는 헌사를 듣는다.

<당신은 평소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추구하는 길에 함께 하며 험한 길도 힘차고 즐겁게 갈 수 있도록 매년 한솥밥을 마련해 주셨으므로 존경과 감사의 뜻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평소 청년의 꿈과 이상을 간직하고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인간적인 사회를 추구하며 우리 지역사회운동의 중심으로서 끊임없이 헌신해 오셨으므로 존경과 감사의 뜻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헌사를 주고 받는 이들이 그저 좋고 사랑스럽다.

내 삶이 크게 엇나가지 않고 이런 이들과 소식 주고 받으며 나이 들어가는 나는 참 행복하다.

저녁 나절 여름 화단을 보는 즐거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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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에

가을이 떠나기가 아주 서러운 모양이다. 연 이틀 이어진 빗줄기가 그칠 듯 하더니만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가을과 함께 떠날 채비에 바쁜 나무들은 제 옷 벗어 땅들을 노랑과 빨강으로 물들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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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한가하여 이른 시간에 보일러를 끄다가 가게 뒷문 사이로 떠나기 서러운 가을을 보았다.

고개 끄덕이며 혼자 소리로 중얼거려 본 말, ‘그래 삶이다’.

처남 아이들 덕에 성경을 펼쳐 곱씹어 보는 저녁이다. 에고 버리지 못하는 내 못된 말본새라니… 아이들이라니… 쯔쯔… 이젠 모두 환갑 줄인 처남들인 것을.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두 처남 모두 독특한 재능들을 타고났다.  막내 처남이 기타 치며 혼자 4중창으로 부르는 찬송을 큰 처남이 자신의 페북에 올려 놓았다. 함께 영상을 보던 아내가 한 말, ‘하여간 얘들은 재밌고 참 이상해!’. 나는 차마 입으로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셋 다 독특한데…’

그렇게 읽고 또 읽어 본 성서 시편 136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찬양시는 떠나기 서러운 가을에게도 유효할 게다.

무릇 삶이 하늘과 이웃에 닿아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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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들에게 고마움을.

자연에

세상 소식엔 제 잘난 사람들 이야기들이 넘쳐 나지만 하늘은 이미 가을이다.  사람살이 아직은 유한(有限)이 무한(無限)을 품을 수는 없다. 어쩜 신(神)은 그렇게 영원할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서 숱한 사기질과 도적질은 이어질 것이고. 그리고 또 때가 되면 산자들은 계절을 맞는다.

달포 전 허리케인 영향으로 심한 비바람에 나무가 쓰러져 차고 지붕을 덮쳐 놀랐던 앞집 사내는 나무들을 다 잘라 버려야겠다고 했었다. 그는 아직 젊다. 하여 행동도 빨랐다. 그의 말대로 거금을 들여 나무 열댓 그루들을 잘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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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너무 맑아 모처럼 어머니와 장인 장모 쉬시는 곳을 찾다. 반 마일 거리 떨어져 있는 두 곳 모두 맑은 하늘과 환한 빛을 한껏 누리는 장소라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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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지 두어 달 넘어 어머니 묘소 앞 꽃병이 마련되었다. 여기와 저기 사이 그 틈새를 이용해 도적질 하기로는 장례업종도 만만치 않을게다. 알루미늄 캐스트 꽃병 하나에 팔백 불이나 요구하는 녀석에게 난 속으로만 외쳤었다. ‘이런 도적놈들!’ 맑은 가을하늘 아래서 만나는 어머니 앞에서 그 미움 그냥 가셨다.

돌아오는 길, 모처럼 동네 공원 길을 걸었다. 공원도 사람 손길이 닿아 만들어진 곳이긴 하지만 자연에 가까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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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절 뜰을 돌보다 맛 본 세상, 꽃은 그림자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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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손님들이 묻는다. ‘장사 어때?’, ‘견딜만 해?’, ‘가족들은 다 건강하지?’ 나는 마스크 속에서 활짝 웃으며 응답한다.’고마워요. 제가 여기 있잖아요. 당신은요?’ 손님들은 웃으며 떠난다.

손님 뜸한 오후,  가게 밖 하늘에 홀려 빠지다.

흐르는 구름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을 보면 내 삶의 연식도 제법 되었나보다.

살며 이렇게 반년이 흐른 것은 처음이다.

태초 이래 구름은 늘 변화무쌍이었을 터이지만 내겐 늘 처음이다.

그래 삶은 늘 홀릴만한 게다.

하여 구름에게 감사.

6. 3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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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초침은 분침이 되고, 분침은 시침이 된 듯한 한주간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온전히 내 마음에 달렸다.

조금은 더 버틸 듯 하시던 장인 어른이 맥을 완전히 놓아 버린 것은 지난 화요일 밤이었다. 아내와 나는 준비했던 대로 조촐히 그를 떠나 보내는 순서를 진행했다.

생각할수록 죽음은 삶과 닿아 있다.

나는 어제 모처럼 추운 겨울 밤, 함께 했던 이들 앞에서 내 장인 어른을 기렸다.


제가 장인어른에게 받았던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으로 제 장인 어른의 약력 소개와 추억을 대신 하렵니다.

장인과 사위 사이로 산지 거의 사십년이 다 되어 갑니다. 서로 알만큼 알만한 시간이 흐른 셈입니다. 장인 어른과 제가 닮은 게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즈음 세상과 달리 아들을 딸보다 귀하게 생각했던 시절에 딸 셋, 아들 하나로 태어나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들 바라기가 심한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이쯤 말씀드리면 장인과 제 성격이 닮은 거 빤하게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고집 세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서로 마주하면  자기 모습이 빤히 보이는데… 뭐 애틋한 정을 쌓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이해들 하실겝니다.

물론 장인 어른이 저하고 다르거나 뛰어나신 것들이 많으셨습니다. 우선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잘 생기셨고, 하나님께 받은 재능들이 참 많으셨던 분이십니다. 특히 예술적인 감각이랄까 이런데 아주 뛰어나신 분이셨습니다. 주색잡기 중에 주색은 모르겠지만 잡기에는 여러모로 뛰어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가 Diana 노래를 부를 땐 영락없이  Paul Anka 였고,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부를 땐  Tom Jones 인 듯 할 정도로 노래도 잘 했답니다.

그러다 어르신 떠나 가신 후 어른의 약력을 정리하다가 제 장인에 대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또한 제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삶의 모형이었습니다. 바로 이타심, 이웃에 대한 배려, 약자에 대한 삶의 자세 그런 것들이었지요.

제 장인은 유머에 매우 능했고 이야기 거리가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머가 때론 너무 과해 이른바 블랙 코미디를 즐겨하셔서 함께 있던 이들이 미처 그 웃음 코드를 이해 못해서 종종 난감해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그 바탕엔 그저 아이같은 순진함이 깔려 있었답니다. 제 아내가 딱 이런 점을 닮아서 제가 잘 이해를 한답니다. 제 아내가 참 순진하고 착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장인이 즐겨 하셨던 이야기거리의 두 중심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18살에 이른바 카투사라는 미군 배속부대 제 1기 로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지낸 6년여 동안의 군생활 이야기가 하나였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공로로 한미 양국에서 무공훈장을 받았으니 그 시절 이야기를 그가 질리도록 하여도 들을만 했답니다.

둘째는 제대 후에 거의 그의 전 생애 황금기를 이룬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소방대장이었습니다. 주한 미군병연내 소방대와 주베트남 미군병영내 소방대장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공항소방대장을 보낸 세월 이야기였습니다. 제 장인 어른의 별칭은 이대장이었답니다. 그 호칭을 자랑스러워 하셨고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제 장인의 이력으로 그의 삶을 다시 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 그가 공부한 사회사업과 전쟁이후 맹아학교 선생님 이력이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삶의 한 단면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은퇴이후 이곳 윌밍톤시에 사시면서 한 이십여년 동안 영어로 언어 소통이 어려운 이웃들의 일상적인 삶에 작은 도움을 베풀며 사신 삶도 다시 새기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장모 먼저 보내고 홀로 사셨던 3년간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제게 다가왔었습니다. 특히나 노인시설에서 그저 누어 지내셨어야만 했던 마지막 1년 동안, 그가 그의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덤덤히 준비하고 맞았던 모습들은 제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 이제 제게 주신 장인의 큰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입니다.

몇 주 전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모처럼 정신이 말짱하셨던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가지고 간 셔츠를 입혀드리려고 하니 싫다며 짜증을 부리셨고, 아내는 굳이 입혀 드리려고 애를 썼답니다. 그 때 장인이 제게 하신 말씀. “김서방! 재랑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어?’

그리고 잠시 후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장인 어른 웃음 가득한 얼굴로 제게 말씀 하셨답니다. “김서방, 정말 고마워.”

장인과 제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나눈 이야기랍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지요.

이제 내 장인 어른 영혼의 얼굴에 웃음 꽃이 끊이지 않을 것임을 믿고 기원하며…

산타의 집

부부가 모두 은퇴한 이후 내 가게 출입이 아주 뜸해진 Gaskin씨가 자기 집에서 여는 성탄 파티에 초대한 것은 몇 주 전 일이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그는 일부러 내 가게를 찾아와 저녁에 있을 파티 참여를 확인했다. 사실 그 몇 주 사이에 같은 시간에 열리는 다른 송년모임이 생겨 망설이고 있던 터였다.

예전에 비해 거의 발길 끊긴 손님이 파티 준비로 여러모로 바쁠 시간에 구태여 찾아와 함께 하자는 말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 우리 부부의 발길은  Gaskin씨네로 향했다.

해마다 이맘 때 벌어지는 Gaskin씨네 파티는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두 부부의 직장 동료 및 동호회 모임 식구들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제법 큰 성탄 잔치이다. 우리 부부는 Gaskin씨 부부가 애용하는 세탁소 주인이로서 이 잔치에 여러 해 동안 함께 했었는데, 지난 해는 건너 뛰었다.

부부 모두 이미 은퇴한 후 시간이 흘렀건만 많은 전 직장 동료들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 까지 족히 백여명이 넘는 이들이 엊저녁에도 함께 했다.DSC09270 DSC09289

부부는 현관에서 일일이 손님들을 맞았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맘껏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운 저녁 시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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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주자이자 싱어인 산타의 추임새에 따라 신나게 두드리는 드럼 주자, 이어지는 색스폰 주자의 소리와 기타를 이빨로 튕기는 신공을 보여준 기타리스트까지 잔치자리 흥의 중심은 단연코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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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멤버들 가운데 가장 분주한 이는 이 밴드의 트럼펫 주자인Gaskin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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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흥겨운 잔치자리에서 내가 찾아낸 파티의 주인공은 산타들이었다.

남녀노소와 인종을 불문한 수많은 산타들이 어제 잔치 자리에 주인공이 되어 함께 했다.  산타들을 초대한  Mrs. Gaskin에 따르면 그 산타들 역시 하나하나 일일이 초대했다고 한다. 그녀는 알라스카, 플로리다 등지에서  부부가 여행 중에 만난 산타들을 하나하나 모셔 왔다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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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는 가히 산타들의 집’이라고.

그리고 오늘, 이즈음 읽고 있던 책 한 권 마무리하며 덮기 직전에 만난 글에서 Gaskin씨 성탄 잔치의 뜻을 곱씹어 보다.

<성서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죽지 않고 끝없이 연장되는 삶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시간의 끝없는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웃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세우는 삶의 깊이 내지 ‘삶의 질’을 말한다. …. 이 세상의 연약한 피조물에 대한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현재적으로 경험된다.>

Gaskin씨 부부와 그들과 늘 함께 사는 산타들이 머무는 집에서 맛 본 사랑을 생각하며.

2019년 성탄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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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에

타고난 내 성격 탓일게다. 매사 극단적 사고나 선택은 피하는 편이거니와, 때론 그런 생각이나 주장에 대해 강하게 거부나 반대의 목청을 높이곤 하는 성정은 나이 들어도 바뀌질 않는다. 믿음도 예외는 아니다.

모처럼 참석한 예배 설교 시간, 그저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믿음 안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미화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웃했던 것이다.

어쩌면 계절 탓인지도 모르겠다.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이즈음,  믿음 안에서 맞는 죽음까지 아름다워야 할 까닭들도 있을게다.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의 죽음이 살아있는 자들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오후에 아내와 함께 성탄 장식으로 화사하게 꾸며진 Longwood Garden 정원을 걸었다. 아내와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DSC09058DSC09072 DSC09085 DSC09095 DSC09111 DSC09119DSC09167 DSC09168 DSC09169 DSC09175 DSC09177 DSC09200 DSC09204 DSC09211

인형같은 어린아이들이 장식에 홀려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내 아이들이 저렇게 인형 같았을 어린 시절에 왜 이런 장식을 함께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떠오른 최근에 읽은 책 속 한 대목.

<자기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세상과 작별하고자 한다고 말하면서, 병에서 치료되어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모순인가! 그러나 비록 신자(信者)라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 아닌가?>

정원을 나서며 사무실에 들려 wheelchair 사용에 대해 묻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이 정원을 함께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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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기쁨

한 해 마무리를 재촉하는 주일 아침에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 한 통 띄우다. 어쩌면 내게 보낸 편지일지도.


어느새 12월 중순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새로운 꿈들을 꾸어 보는 때입니다.

연 이틀 비가 내리던 어제 오후, 가게가 한가해진 시간에 잠시 저의 한 해를 돌아보았답니다. 그렇게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 되여 본 말은 그저 감사랍니다.

올 한 해 가게 자리를 옮겼고 그 과정에서 여러 걱정들이 있었지만 그 걱정들이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가 첫째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제껏 살아오며 제일 많이 병원을 드나든   였지만저희들을 그렇게 병원을 찾게 했던 노부모님들이 오늘도 살아 계심에 대한 감사가 둘째입니다.

카운터에 놓인 장미 화분을 보며 든 아내와 제 아이들에 대한 감사가 세번 째입니다. 며칠 전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제 딸아이가 보낸 장미 화분이랍니다.

그 감사에 대한 생각 끝에 이어진 것은 아쉬움입니다. 올 한 해 이루지 못한 것들, 계획과 엇나간 일들, 여전히 이어지는 이런 저런 불안과 아픔들입니다.

그리고 어제 늦은 밤, 새로 산 시집 시들을 읽다가 번쩍 눈이 뜨이는 즐거움을 맛보았답니다.

<내비게이터를 꺼버려/ 대충 방향 잡고 돌아 오는 길/ 도로가 한갓지다. / …  / 하늘에는 멎은 듯 흐르는 넓은 구름 강물/ 있다가 없다가 다시 있는 것들의 모습

이왕 길을 벗어난 김에/ 물새들과 알 듯 모를 듯 같이 걷는 해변, 번지는 황혼/ 금빛 우려낸 빛이 사방에 어른댄다./ …  / 하늘에 희한하게 하얀 반달 하나/ 찾으면 있고. 않으면 없고.>

황동규라는 시인이 쓴 ‘내이비게터를 끈 여행’이라는 시의 일부랍니다. 시인의 나이 올해 여든 한 살인데 아직도 왕성히 시를 쓰고 있답니다.

그가 시집을 내며 하는 이야기랍니다.

<시를 좇아가다 보니 바야흐로 삶의 가을이다. 주위에 자신의 때깔로 단풍 들거나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가득 찬 잔만큼 아직 남은 잔이 마음을 황홀케 한다.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

이제 올 해도 겨우 보름 남짓 남았습니다. 뭐 크게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올 한 해 ‘남은 잔이 마음을 황홀케’하는 시간들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Mid-December came so soon. It is a time to wrap up a year and to dream a new dream for a new year.

Yesterday afternoon when the store was quiet and while the rain continued for two consecutive days, I tried to look back over the year. It was just gratitude which I reiterated and listened to myself, while I was looking back on the year 2019.

This year, I moved the store and had many worries in the process of moving. But, it was like I cried before I was hurt. To get to realize it was the first gratitude.

Though my wife and I had to go to the hospital this year more often than any other year because of my father-in-law and my parents, the gratitude for their being alive today was the second.

The third was the gratitude for my wife and children, which came across when I looked at the pot of roses on the cleaners’ counter. It was what my daughter had sent to my wife as a birthday gift the other day.

What followed after the gratitude was a sense of regrets and frustration, because of the thoughts about things to be done but unfinished, things that went awry, and this and that anxiety and suffering.

Then, last night, while I was reading a new book of poetry which I had gotten recently, I enjoyed an eye-opening happiness.

<Turning off the navigator/I took the course roughly, returning/the road was deserted./… /A wide river of clouds which looks to halt but flows in the sky/the look of things which appear, disappear and appear again.

Once straying from the right path/the beach on which I walked with waterfowl as if we both knew or not, spreading twilight/the lights brewing golden light glimmered everywhere./ … /The strangely white half-moon in the sky/was there when I looked for it and was not there when I didn’t>

It is a part of a poem, “A Trip with the Turned-off Navigator,” which Dong-gyu Hwang wrote. Though he is eighty-one years old, he is still very active in writing poetry.

He wrote in the preface of the book:

<As I have followed the poetry, I now stand at the autumn of my life. Those who have turned or are turning into their own colors around me are beautiful. A still-some-left glass makes my mind thrilled as much as a full glass. Please forgive me for this ‘joy of living’ which is small and itchy like a bug bite.>

Now only about half a month is left before the end of this year.

I wish that you will have time in which a still-some-left glass makes your mind thrilled for the remaining days of this year, if not life itself.

From your clea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