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日常)에

겨울도 없이 봄이 오는 듯한 날씨에 들판 길을 걸었다. 집에서 반 시간 정도 달려 다다른 펜주 West Chester County의 Stroud Preserve 산책길은 일요일 아침 내 일상을 매우 풍요롭게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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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철학자 강영안 선생이 쓴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 ;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를 훑어 읽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日常)은 문자 그대로 따라 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때로는 파안대소할 정도로 즐거운 일이 있는가 하면, 절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픈 일이 있기도 한 삶. 그러나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할 일도 ,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이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영원히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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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고 귀가 있고 받아들일 가슴이 있다면 일상은 단순한 반복도, 단순한 필연도, 단순히 평범하기만 한 현실이 아니라 자유를 경험하고 깊은 의미를 체험하는 삶의 장소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오간 생각들과 강영안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일상으로 이어지는 내 새로운 한해의 꿈을 품다.

초보(初步)

참 이상한 일이다. 올들어 몸이 딱 반쪽으로 줄어드신 장인의 얼굴 크기는 예나 다름없다. 반면 한 두어 주 사이에 몸이 쫄아 드신 어머니는 얼굴도 그만큼 작아지셨다. 덩달아 아버지의 등도 딱 고만큼 더 휘어지셨다.

어깨수술 후 운동부족인 아내와 함께 하루 길 거리에 있는 강가 나들이에 나설 요량이었는데 간밤에 자꾸 노인들 모습이 눈에 밟혀 그만 두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두 주나 교회에 못 갔으니 주일예배 참석이 우선이라며 잘 되었단다.

나는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길을 좀 걷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DSC06665 DSC06683 DSC06697 DSC06700 DSC06726 DSC06733

쉬는 날, 길을 걸으며 만나는 숲과 나무들, 들꽃과 나비와 새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스치는 사람들과 함께 숨쉬며 눈에 담는 순간들은 이즈음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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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독 노란 들꽃들이 눈에 담긴다. 노란색은 돌아가신  장모가 참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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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걸었는데 어느새 해가 몹시 따갑다. 생각해보니 걷다 마주쳤던 이들 거의 모두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쳐간 생각 하나. ‘난 산책 뿐만 아니라 어쩜 아직 모든 일에 초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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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홍건한 땀을 배고 필라 한국식품점으로 달려 올라갔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각종 젓갈 조금씩 담아 내려온 내게 하신 어머니 말씀. ‘그래 내가 며칠 전부터 짭조름한 게 생각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장모는 여전히 노란색 꽃에 취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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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안 나서기 참 잘한 하루였다.

산책

Newark에서 세탁소를 처음 열던 날, 아버지가 내게 던지셨던 말이다. ‘이 곳 이름이 Newark이니 New Ark이구나. 이 곳이 네 삶의 새 방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느새 서른 해 훌쩍 넘긴 저쪽 세월 이야기가 되었다.

이즈음 나는 그 세월 동안 자주 지나치면서도 알지 못했던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찾아 산책을 즐기곤 한다.

평생 운동 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내가 새삼스레 운동으로 하는 산책은 아니다. 깜작할 사이에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서서 지난 시간들을 다시 만나기고 하거니와, 때론 나와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다가 올 시간들과 언젠가 만나게 될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산책을 하며 만나는 시간들은 아름답고 고요한 풍광들로 하여 감사로 휘감길 때가 많다. 하여 산책은 오늘 내 삶을 기름지게 한다.

오늘 아침, Newark 저수지 길을 걸으며 떠오른 오래 전 아버지의 기원 –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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