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병 – 귀환 5

(당신의 천국 – 예순 두 번 째 이야기)

황제가 내린 회신은 다음과 같았다. “사령관 르훔, 비서 심새는 사마리아를 비롯한 유프라테스 서부지방에 있는 동료 관리들과 함께 평안하기를 빈다.  경들이 보낸 편지 읽는 것을 내가 똑똑히 듣고,   조사를 시켰더니 과연 그 성은 예전부터 반역 음모를 꾸미어 이 황실에 반기를 든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예루살렘에는 일찌기 강한 왕들이 있어 유프라테스 서부지방을 모두 손안에 넣고 조공과 세금과 관세를 거두어 들이곤 하였다.  그러니 내가 다시 지시를 내릴 때까지 성 쌓는 일을 중지시키도록 하여라.  그리고 부디 명심하여 일을 소홀히 다루지 않도록 하여라. 사태가 악화되어 이 황실에 손실을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에스라 4 : 17 – 22 

내가 마음으로 증오하는 민족이 둘 있는데 세째 번 것은 민족이라 할 수도 없다.  사마리아산에 사는 주민들과 불레셋인들, 그리고 세겜에 사는 어리석은 자들이 그들이다. – 집회서 50 : 25 – 26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성과 솔로몬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가 처참한 모습으로 바벨론으로 끌려 가면서 유다왕국이 무너졌었지요. 그리고 약 70년 후 바벨론 포로들이 귀환하였지만 나라를 되찾았다거나 왕을 새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페르시아의 식민지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식민지를 거쳐 희랍의 식민지로 이어져 기원전 166년 하스몬왕조가 들어서기까지  약 500년이 넘는 동안 유다인들에게는 “왕”이 없었습니다. 

유다의 역사와 유다인들의 신앙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점은 우리들이 만나고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만나기 위해서도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전히 페르시아 지배 아래 식민지였던 예루살렘은  페르시아의 총독이 다스리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환 이후 약 백 년 뒤인 느헤미야 시대까지 총독은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유다인들 가운데 선정되어 파송된 듯 합니다.(성서의 기록으로 보아서) 

일제 시대 총독이 일본인이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체제였던 것입니다. 일테면 일본에서 교육받고 일본화된 한국인을 총독으로 세우는 정책을 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 세스바살이라는 사람인데(에스라 1장) 그리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아니고요.(이 사람에 대한 여러 설이 있답니다. 그 가운데는 스룹바벨과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고요. ) 아무튼 그 다음 등장하는 총독인 스룹바벨(즈루빠벨)이라는 인물에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답니다. 

식민지를 관할하는 총독의 임무 가운데 첫째는 본국(지배국)의 이익을 위하고 본국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스룹바벨은 한 때 유다인들이 메시아로 생각했을 만큼 카리스마가 있었던 사람이랍니다. 예언자 스가랴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등장하게 될 인물입니다. 스룹바벨은 분명 페르시아가 지명해 내린 사람이었습니다. 

자! 총독이 한 사람있습니다. 지배지의 정치 및 군사를 주로 담당했겠지요. 

그 다음에 유다인들을 유다인이게 한 야훼 하나님을 위한 제사를 관장하는 사제 그룹이 있었지요. 이들의 중심은 이미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던 사람들에게 있었고, 당연히 귀환 이후에도 그들의 몫이었지요. 

그들 가운데 예수아(여호수아)라는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식민지의 종교를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두사람이 귀환 이후 예루살렘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정치, 군사, 종교의 최고 지도자 두 사람이 야훼 하나님께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 두사람이 의기 투합하여 한 일이 바로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의 재건이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성전의 기초를 놓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곧 새 성전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방해하는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 땅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유다의 동족들과 인근의 이방 민족들이었습니다. 

동족인 사마리아인들과 철천지 원수 사이가 되는  계기인 동시에 유다의 정통과 제사장의 정통이 예수시대까지 이어지게 되는 시대가 바로 이 무렵입니다. 

또한 페르시아의 내부 권력 다툼과 권력을 움켜쥐는 승자가 결정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다리우스

그렇게 정통이 세워지고, 권력을 움켜지는 세력이 공고해지기 까지의 수 십년 동안의 혼돈의 시기였고,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마치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불안함이 사람들을 휘감고 있던 때였던 것입니다. 종말론이 등장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깊어지게 된 것이지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가 일하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솔로몬 성전 재건축의 열망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과 합쳐질 즈음  다리우스라는 페르시아 황제가 등장합니다.

이해(理解) – 예언자 9

(당신의 천국 – 서른 여덟 번 째 이야기)

아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사마리아 성읍들에 이주시켜 그들로 하여금 그 곳에서 자리잡고 살게 하였다.  – 중략  – 이렇게 그들은 야훼를 공경하면서도 각 민족이 붙잡혀 오기 전에 가졌던 풍습을 따라 저희의 신도 섬겼다.  – 중략 – 그들은 후손들도 대대로 이날까지 선조들의 풍습을 그대로 지켜 내려 왔다. – 열왕기하 17 : 24 – 41 

그러는 동안 유다와 갈릴레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 들어 선 교회는 안정이 되어 터전을 튼튼히 잡았고 주를 두려워하며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효가 차츰 늘어났다. – 사도행전 9 : 31(이상 공동번역) 

넷째 우리 동방은 오래 전부터 중국풍습을 본받아 문물, 예악, 제도를 다 그대로 준수하여 왔다. 그러나 지역이 다르고 사람의 성품도 같지 않으니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 그리고 거란은 우매한 나라로서 풍속과 언어가 다르니 그들의 의관, 제도를 아예 본받지 말라. – 고려사(高麗史) 권2, 세가(世家)  2. 태조(太祖) 26년, 이른바 고려 첫 임금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남왕국 유대 이야기로 넘어 가기 전에 몇가지 정리해 두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순례 길에  놓여있는  이정표들을 확인하는 일들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첫째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면서(주전 721년) 새롭게 등장하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는 수도 사마리아 성읍 인근의 모든 이스라엘인들을 아시리아의 포로로 잡아 갑니다. 그리고 그 사마리아 인근 성읍에 구다(Cuthah)와 바벨론 인근 지역의 사람들을 이주 정착시킵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확 물갈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성서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준답니다. 야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혼내시느랴고 야훼께서 사자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잡아 먹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시리아왕은 잡아왔던 이스라엘 사제를 사마리아에 돌아가 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sama5(사마리아의_전경)

새롭게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과 아시리아, 바벨론 등지에서 사마리아 땅에 이주한 이방인들 사이에서 새로 태어난 혼혈부족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종교 역시 혼합종교가  되었습니다. 야훼 하나님 신앙과 이방 신이 섞이게 된 것입니다. 문화, 언어, 종교 등의 전통이 다른 새로운 종족이 그 좁은 땅 한 구석에 새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칠백 년이 훨씬 지난 예수 시대에 이르러 예수가 만났던 사마리아인들의 조상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우리들의 머리 속에 기억해 놓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이었다는 사실과 예수 시대에 예수의 말씀 선포를 듣는 사람들은 이런 수백 년, 아니 거슬러 올라가 천 오륙 백년 전의 출애굽사건부터 그 말씀을 듣는 시대까지 모든 역사적 경험들을 공유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한국인들과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했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 행위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어떻게 이해되었으며, 결국은 그 땅에도 그리스도 교회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사도행전의 기사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만의 역사적 경험을 알고 넘어가자는 뜻입니다. 

두번 째는  호세아와 아모스의 심판 예언은 곧 다가올 일에 대한 선포였다는 점을 머리 속에 기억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면(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그들의 예언, 곧 야훼의 선포는 단지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바로 현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훼의 선포에 대한 응답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멀지 않은 시간에 야훼의 날(아모스가 사용한 말입니다)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장 응답을 하라! 그러나 시간을 주겠다. 다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로 정리할 수 있는 예언자들의 선포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가자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우리들이 종말론, 또는 종말 신앙, 묵시 사상 등을 이야기할 때 아주 중요한 이해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 째로는 이제 남쪽 왕국 유대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그들만의 역사적 경험을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처지가 비슷한 경험들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최근 십수년 사이에 각 나라와 서로 간의 정세에 따라 작동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기구가 하나 있지요. 바로 육자회담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과 북조선 인민 공화국, 이렇게 여섯 나라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벌려 온 일련의 회담을 일컫는 것이지요. 

한반도는 남북 양 당사국을 둘러 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강대국 사이에  힘의 역학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비단 21세기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지요. 고조선 이래 오늘까지 북방세력과 바다 건너 일본, 20세기 이후에는 유럽과 미국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 자주(自主)와 사대(事大),  민족의 주체를 찾다 멸망하느냐 비록 굴종이라도 번영의 길을 택하느냐 등등의 단순 이분법적인 싸움이 결코 그치지 않는 역사를 지니고 온 것이지요. 

바로 남왕국 유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런 역사적 경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북에는 아시리아, 북동엔 바벨론, 남쪽에는 이집트라는 강대국들이 에워 싸고 있는 상황에서 약소국 유대가 선택할 수 있는 길 역시 자주와 사대, 주체와 굴종 같은 이분법적 선택아래 놓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우리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고민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판단과 결정 기준이 바로 야훼 신앙을  근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야훼 신앙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자!  이 정도 머리 속에 꼭 기억해 두시고 남왕국 유대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가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