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종종 신비로운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1.

아침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호주에 계신 홍길복목사님께서 보내주신 설교문이었다. 은퇴후 그가 행한 <죽음 – 제 3의 이민>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설교문 중 하나로 <끝이 좋아야 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양 옆에서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이야기를 주제로 한 설교였다. 설교문의 마지막 문단 중 몇 개의 문장들이다.

<인생의 마무리는 죽음입니다. 잘 죽어야합니다. 우리 모두 다 잘 죽기를 바랍니다. 끝내기를 잘해야 합니다. ……. <유종의 미>를 영어로는 Crowning glory, <면류관을 쓰는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맨 나중에 웃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최고 정점, 최대의 peak time은 죽음입니다. 죽을 때 잘못 죽으면 일생을 망치게 되고, 죽을 때 아름답게 마무리 하면  그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지만 끝이 나쁘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우리는 이제 점점 죽음의 순간을 가까이 대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갑니다.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갑니다> 찬송하면서 이 땅에서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2.

오전엔 아내가 읽어 보라고 권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쓴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손에 들었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며 아내가 건네 주었던 책인데 그 이유 때문에 차일피일 내 독서목록에서 밀려 있던 책이었다. 무슨 수상자나 수상작품이라는 치장이 달린 글들은 내게 썩 다가오지를 않는다.

말이 장편이지 고작 135쪽일 뿐인 중편으로도 짧은 축이었다. 그저 잠시 훑을 요량으로 들었던 책인데 책장을 덮을 때까지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린 마치 단편 같은 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 요한네스가 태어나던 날 몇 시간과 그가 죽던 날 하루에 대한 기록인데 그의 할아버지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오대에 걸친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하여 단편인 동시에 장편이다.

생명의 탄생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로움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죽음의 일상성이랄까 죽음이란 마치 평범한 삶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는 일 가운데 하나의 과정인 듯 이야기한다.

요한네스를 다음세상으로 데려가기 위해 잠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 먼저 죽은 그의 절친 페테르가 전하는 다음세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자네가 사랑하는 것은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3.

오후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뵙다. 나를 보자마자 하시던 말씀.

“아이구, 내가 너를 기다렸어요. 이제 내가 떠날 준비를 해야되요. 내 장례식때 말이야… 니 엄마가 해 준 한복을 입고 가려고 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오줌 눌 때 아주 불편할 거 같애서… 그냥 양복하고 …여름철 거든 겨울철 거든 철은 따질 거 없어요…. 그거 입히고 니 엄마가 해준 반코트 있어… 그거 좀 입혀 줘.”

이즈음 들어 많이 오락가락하시는 아버지의 부탁이었다.

날은 여전히 쌀쌀한데 햇볕은 아주 따스한 날이다. 내 뜰에는 어느새 수선화 튜립  등이 싹을 틔어 오르고 크로커스는 이미 활짝 웃고 있다. 보라색 크로커스의 꽃말이란다. ‘누군가를 후회없이 사랑한다’라던가….

살아가는 날까지 끊임없이 사랑하고 볼 일이다. 그게 가는 날까지 천국에서 사는 일이고, 떠나서 만나는 이들은 어차피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 뿐이기에.

죽음을 논하는 아침에서 삶을 노래하는 저녁까지…

오! 이 신비한 하루에 감사.

홍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는 내일을 위하여….

내 쉬는 날 일상의 하나… 오늘은 달콤한 사과빵을 만들어 아내에게 맛보이다.

사람 그리고 사랑에

  1. 멀리 캘리포니아 사돈께서 잘 키워 거두신 대추 한 상자를 보내주셨다. 호두알 만큼 큼직한 대추가 마치 설탕처럼 달았다.  누이들에게 크게 한 움큼씩 나누어 주고, 대추를 이용한 음식에 대해 알아본다.

성탄절에 찾아 오겠다는 아들, 사위, 딸, 며느리들을 생각하며 대추       넉넉히 들어간 갈비찜과 약식을 해 보아야겠다. 우리 내외를 위해         대추고를 좀 만들어 놓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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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내 생일을 맞아 아내의 사촌동생이 자신이 부른 노래를 보내왔다.  내가 그를 본지도 족히 사십년은 되었을 터. 그가 부른 ‘겨울아이’와 ‘Holiday’다.  ‘Holiday’는 아내가 어렸을 적 흥얼거렸던 게 기억나 불러 보았단다. 그도 이젠 환갑나이란다.

 

3. 어제 필라델피아 아주 낮은 곳에서 목회 하시는 이태후목사님께서 준비하신 지역사회 성탄잔치에 내가 참 좋아라 하는 필라세사모 친구들이 선물상자를 마련해 함께 했단다.

내  아들  며느리가  짝을  맺은 지가 어느새 육 년 전 일이 되었다. 당시 나는 아이들 결혼에 극심하게 반대 했었다. 그런 내게 아이들이 제안을 해 왔다. ‘우리 목사님을 한 번만 만나 주시라.’고. 나는 단칼에 아이들의 제안을 거절 했었다. “이 눔들아! 이건 목사가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야! 이건 내가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야!”라고.

그렇게 시간은 내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 주었고, 이젠 까만 얼굴의 며느리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말해야만 할 지경이다. 그 때 아이들이 나를 만나게 하려고 했던 목사가 바로 이태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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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추상자와 함께 보내 온 캘리포니아 사돈의 카드인사.  “우리 서로 멀리 있어도,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사람 그리고 사랑에.

  • 올겨울엔 불을 많이지 펴야겠다.  두루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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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Happy Thanksgiving!” –  아들녀석의 전화 인사를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 Happy Thanksgiving!”

추수감사절 휴일에 칠면조를 굽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곰곰 생각해 보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올핸 아들내외는 처가집에서, 딸내외는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어 명절음식을 할 까닭이 없었다.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아빠 뭐해?” 내 대답, “할아버지에게 갔다가 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갔다 막 들어와서 이젠 낮잠 자려고 하는데…” 딸아이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빠 엄마 푹 쉬어, 오늘은…”

그렇게 푹 쉬었다. 칠면조 굽지 않은 추수감사절 날에.

어머니와 장인 장모 묘소를 돌아보며 아내가 말했다. “죽어서 엄마 만난다면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내 대답, “아마 당신이 그리고 생각하는 모습대로…”

멀리 눈에 들어 온 어느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든 생각 하나.

‘비록 얼굴 맞대지 않아도 사랑으로 연 이어 있다면 거리의 이곳과 저곳 나아가 삶과 죽음의 간격조차 무의미 한 것 아닐까?’

사랑에!

*** 뒤늦게 딸아이가 보내온 사진 한 장. 멀리 시댁에 가느냐고 맡겨 놓은 애완견 dog sitter에서 보내온 사진이란다. 암만! 어디 사랑이 경계가 있겠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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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의 집

부부가 모두 은퇴한 이후 내 가게 출입이 아주 뜸해진 Gaskin씨가 자기 집에서 여는 성탄 파티에 초대한 것은 몇 주 전 일이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그는 일부러 내 가게를 찾아와 저녁에 있을 파티 참여를 확인했다. 사실 그 몇 주 사이에 같은 시간에 열리는 다른 송년모임이 생겨 망설이고 있던 터였다.

예전에 비해 거의 발길 끊긴 손님이 파티 준비로 여러모로 바쁠 시간에 구태여 찾아와 함께 하자는 말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 우리 부부의 발길은  Gaskin씨네로 향했다.

해마다 이맘 때 벌어지는 Gaskin씨네 파티는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두 부부의 직장 동료 및 동호회 모임 식구들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제법 큰 성탄 잔치이다. 우리 부부는 Gaskin씨 부부가 애용하는 세탁소 주인이로서 이 잔치에 여러 해 동안 함께 했었는데, 지난 해는 건너 뛰었다.

부부 모두 이미 은퇴한 후 시간이 흘렀건만 많은 전 직장 동료들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 까지 족히 백여명이 넘는 이들이 엊저녁에도 함께 했다.DSC09270 DSC09289

부부는 현관에서 일일이 손님들을 맞았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맘껏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운 저녁 시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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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주자이자 싱어인 산타의 추임새에 따라 신나게 두드리는 드럼 주자, 이어지는 색스폰 주자의 소리와 기타를 이빨로 튕기는 신공을 보여준 기타리스트까지 잔치자리 흥의 중심은 단연코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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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멤버들 가운데 가장 분주한 이는 이 밴드의 트럼펫 주자인Gaskin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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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흥겨운 잔치자리에서 내가 찾아낸 파티의 주인공은 산타들이었다.

남녀노소와 인종을 불문한 수많은 산타들이 어제 잔치 자리에 주인공이 되어 함께 했다.  산타들을 초대한  Mrs. Gaskin에 따르면 그 산타들 역시 하나하나 일일이 초대했다고 한다. 그녀는 알라스카, 플로리다 등지에서  부부가 여행 중에 만난 산타들을 하나하나 모셔 왔다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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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는 가히 산타들의 집’이라고.

그리고 오늘, 이즈음 읽고 있던 책 한 권 마무리하며 덮기 직전에 만난 글에서 Gaskin씨 성탄 잔치의 뜻을 곱씹어 보다.

<성서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죽지 않고 끝없이 연장되는 삶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시간의 끝없는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웃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세우는 삶의 깊이 내지 ‘삶의 질’을 말한다. …. 이 세상의 연약한 피조물에 대한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현재적으로 경험된다.>

Gaskin씨 부부와 그들과 늘 함께 사는 산타들이 머무는 집에서 맛 본 사랑을 생각하며.

2019년 성탄의 계절에.

124

장인의 카드

연말에다가 곧 다가 올 가게 이사 준비 등등, 오늘은 밀린 서류 정리를 해 볼 요량이었다.

이른 아침, 홀로 계시는 장인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은 아주 간단했다. ‘넘어졌어. 못 일어나.’

그렇게 우리 부부는 온종일 장인과 함께 했다. 장인은 몇 번이고 내게 말했다. ‘거기 그 봉투 엊저녁에 김서방 줄려고… 잊지 말고 가져 가!’

뭐라고 딱 표현 할 길 없는 어수선한 하루가 저무는 순간,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꺼내 읽은 글 하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낚시질 할 때마다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나는 낚시에 대해선 솜씨도 있고, 또 많은 동료 낚시꾼들처럼 낚시에 대한 본능적인 직관 같은 것이 있어서 때때로 그 본능적인 직관이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항상 낚시를 하고 나면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명의 첫 햇살처럼 넌즈시 계시처럼 다가온다. 내게는 분명 하등동물과 같은 본능적인 직관이 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더 인간 답거나 현명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낚시꾼에서 멀어져 갔고, 이제는 낚시꾼이 아니다.

I have found repeatedly, of late years, that I cannot fish without falling a little in self-respect. I have tried it again and again. I have skill at it, and, like many of my fellows, a certain instinct for it, which revives from time to time, but always when I have done I feel that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I had not fished. I think that I do not mistake. It is a faint intimation, yet so are the first streaks of morning. There is unquestionably this instinct in me which belongs to the lower orders of creation; yet with every year I am less a fisherman, though without more humanity or even wisdom; at present I am no fisherman at all.

그래, 사람은 모두 한땐 솜씨 좋은 낚시꾼이었던 시절이 있을 터이고, 또 언젠가는 낚시질 자체가 허무해 지는 시절을 맞기 마련이다.

시인 강은교의 <월든> 번역은 진짜 월척이다. 세월은 시인에게도 비껴가지 않았을 듯.

이미 낚시꾼이 아니어도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장인은 아직 괜찮다. 나이 들어 현명해 지지는 못할 지 언정 사람다움으로.

어머니와 스웨터

모진  추위 속 오래 전 어머니가 짜 주신 스웨터를 보며….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또한 연일 이어지는 추위 속에서 작건 크건 일상을 허무는 일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비록 평시와 조금 어긋나더라도 마음은 늘 넉넉한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문득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추웠던 겨울은 언제 였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가장 추운 겨울은 언제 였는지요?

저는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이 생각난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십년이 지나지 않았던 때여서 그저 가난이 평범했던 시절이었답니다. 허름한 집 구조나 난방시설 등을 이즈음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과 비교해 설명드릴 수가 없을 만큼 가난했던 때였답니다.

물론 저희 가정만 그런 가난을 안고 산 것은 아니고, 제 친구들 대부분의 생활은 거의 비슷했답니다.

제겐 그 때의 겨울이 가장 추웠답니다. 일테면 방안에 있는 그릇 속에 물이 얼고, 벽에는 하얀 성에가 낀 방을 상상하실 수 있겠는지요? 그 때의 겨울이 그랬답니다.

그 때 그 매섭게 추운 겨울에 저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것은 어머니가 짜 주셨던 스웨터 였습니다. 어머니께서 털실로 짜 주신 두툼한 바지와 자켓은 그 겨울을 이겨낸 힘이었습니다.

중학교를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다니며 제가 더는 털옷을 입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겨울이면 털옷을 짜 주셨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을 들어가던 그 해 겨울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더 이상 털옷을 짜지 않으셨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짜 주신 털옷을 제가 입었던 기억은 거의 없답니다. 그러나 그 털옷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몹시 추운 겨울날 아침, 오래 전 어머니가 짜 주신 털옷을 보며, 모든 추위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을 생각해 본답니다. 어머니의 사랑 말이지요.

매서운 추위로 시작한 2018년입니다.

올 한 해 내내 비록 어머니 아니어도 누군가의 사랑을 넘쳐나게 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따듯함이 이어지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he bitter cold continues. I wish that, above all, you’ll stay healthy. I also wish that, in spite of the continuing biting cold, you’ll manage to keep everyday life in control and to maintain an easy mind every day, though things may not work out exactly in the same way as usual.

Casually, one question crossed my mind: when was the coldest winter in my life? When was the coldest winter in your memory?

For me, about the time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came to my mind. I could say that the winters in those days were the coldest in my life. As it had not been less than ten years since the end of the Korean War, poverty was normal in Korea at that time. The housing conditions, including the heating systems, in those days were beyond explanation, especially compared with the comfort which we are enjoying now.

For example, the water in a container in the room was frozen and the walls in the room were covered with frost overnight in the bitter cold days of winter. Can you imagine that?

Of course, it was not just my family which lived in such a shabby house, but most of my friends also lived in a similar condition.

What wrapped me up warmly in the cold winter at that time was a sweater which my mother had knitted. Thanks to the thick jacket and pants which my mother had knitted, I could go through the cold winter.

Though I rarely put on those knitted clothes when I was in middle school and high school, my mother still knitted those clothes for me every winter until I entered a university. Since then, she stopped knitting my clothes.

I don’t remember when I wore the last one which my mother knitted, or how many times I had worn it. But I still keep it carefully though it is 45 years old now.

In this morning of a bitter cold day, I’m thinking about the strength to overcome the cold and difficulties, while looking at the sweater which my mother knitted for me a long time ago. I mean mother’s love.

It is the year 2018 which began in the bitter cold.

I wish that throughout this year, you’ll continue to have the warmth enough to win someone’s overflowing love like my mother’s love and also to share this type of mother’s love with someone.

From your cleaners.

사랑에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매서운 소리를 낸다. 부는 바람에 나무가 내어줄 잎새가 더는 없다. 창밖 풍경에 빠져있다가 메신저 울림 소리를 듣는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함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7편 한 구절이 담겨있는 추수감사절 카드를 보낸 이는 허춘중 목사님이다. 태국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인도차이나 선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목사님인데, 젊어 한 때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분이다. 얼굴 본지는 얼추 40여년 저쪽 일이다.

추수감사주일 아침, 허목사의 전자카드가 내 정신을 깨운다.

맑은 정신으로 바울 선생의 소리에 귀를 연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로마서 13 : 8, 개역개정)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읍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읍니다.(공동번역)

Let love be your only debt! If you love others, you have done all that the Law demands.( The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바울 선생은 매섭고 사나운 바람 뿐만 아니라 한점 미풍에도 내어줄 수 있는 잎새를 달고 살았던 나무였던 듯.

사랑의 빚을 세어보는 추수감사 주간을 보내야 할 터.

허목사에게 감사를.

사람 – 그 사랑과 아픔

홍길복의 시드니 인문학 교실 – 17

제 6강 – 1 : 인문학의 주제 – 사람(Saram) (2)

♦ 人文學의 핵심이며 제 1 주제인 ‘사람’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 입니다.

종교나 하느님 문제 까지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결국 사람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 사람이 우리에게 기쁨도 주고 사람이 우리를 슬프게도 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탄핵된 박근혜 보다는 마약으로 교도소에 있는 우리 아들이 나를 더 불행하게 합니다.

소포클레스의 말대로 ‘이 세상에는 이상한 것이 정말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는 50년을 함께 살아온 우리의 배우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식은 우리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니까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 곁에 앉아있는 <인문학의 친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지난 시간엔 주로 서구적 입장에서 보는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오늘은 동양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추천 도서는 신영복선생이 성공회 신학대학 인문학 교실에서 한 강의를 책으로 출판한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돌베개 2015)와 그 분의 다른 책인 ‘강의 – 나의 고전 독법’(돌베개 2004)과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돌베개 1998)입니다.

♦ 들어가는 말 –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는 어떤 ‘인식의 틀’, ‘인식의 도구’(The Frame of Knowledge, The Structure of Understanding, The Tool of Cognition)가 있게 마련 입니다.

그런데 서양, 혹은 서양 사람들은 이 인식의 틀과 도구를 주로 ‘문사철文史哲’ –문학과 역사와 철학- 로 여겨왔습니다. 사람들이 남겨놓은 문학작품들, 역사적 흔적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담은 철학을 추적해 보면 그들의 사상과 인식의 틀이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흔히 ‘이성적 인식 방법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양, 혹은 동양인들은 이 인식의 방법을 시서화‘詩書畵’ –시와 글씨와 그림- 이라고 여겼습니다. 시와 글씨와 그림이라고 했습니다만 이는 시와 그림과 소리를 뜻하는 겁니다.

즉 동양인들은 시를 짖고 그림을 그리고 (대부분의 동양화를 보면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에는 시가 깃들입니다) ‘소리’를 하는 곳에 인간의 온갖 흔적들이 묻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감성적 인식 구조’를 여실히 보여 줍니다.

동양에서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를 머리라고 보지않고 가슴이라고 본 것입니다. 동양인들은 말 잘하고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 보다는 마음씨 곱고 인정이 깊고 생각이 바른 사람을 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사철文史哲에서 시서화詩書畵로 가야한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동양인들이 지닌 사고의 틀이요, 인식의 구조입니다.

*** 다음 글은 ‘동양적 사람 이해’ 혹은 ‘동양적 사람 이해의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이따금 슬퍼지는 까닭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며 목청꺽어 노래한 사람은 나훈아요,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떨리는 고음으로 호소한 이는 남궁옥분이었다. 어디 유행가 뿐이겠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래와 무용, 미술과 건축, 문학 나아가 종교까지 ‘사랑’을 뺀다면  아마 인류사는 적막했을 것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은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거나 아무리 사랑이 이것이다고 가르쳐 주어도 모르는 사람이다’ – 기독교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이다. 사랑에 대해 이보다 뛰어난 해석이 있을까? 사랑이란 말이 머리 속 또는 가슴 속에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사랑일 것이므로. 

그 사랑을 주제로 이 땅을 열심히 살다가 서른 셋의 나이로 육()의 삶을 끝낸 이는 바로 예수다. 그는 ‘나’와 ‘당신’ 그리고 ‘나와 당신’을 묶는 ‘우리’에 대응하는 ‘그들’까지 모두 사랑으로 묶고자 서른 세해를 살다 살다 ‘사는 것’으로 아니되자 자기가 죽음으로 그 본 보이고자 하였다. 

어디 죽음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이들이 예수 뿐이겠나? 서로 사랑하다 하다 미칠 것 같이 사랑하다 끝내 죽은 연인들의 이야기는 부지기수요, 조금 넓게는 제가 사는 마을을 사랑하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널려 있고. 제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여 목숨을 버린 이들의 이야기도 숱하다.  

그들과 예수의 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 예수는 스스로 신이었고. 그의 사랑은 신의 사랑임을 확신하고 선포한 것이 다르달까? 그러나 어디 스스로 신()임을 자처한 이가 또 예수뿐이겠나? 오늘 이 순간에도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미치광이들이 널려있거늘. 

예수는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쉬운 말을 썼다. 비록 깊은 비유로 숨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가 사용한 말들은 당시 하루 먹고 살기 바빳던 사람들의 일상적 언어였다. 소위 갈릴리 말, 아람어였다.  일테면 요새말로 어려운 신학적 용어, 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나와 당신들이 폼 잡지 않고 쓰는 말들을 사용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사랑’을 전했다는 이야기다.    

사랑그가 쉬운 말로 전했던 사랑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대한 신의 절대적 사랑과, 서로 사랑하라는 인간 사이의 상대적 사랑을 말했다고 믿는다.  

어려운 말 하지말고 쉽게 쓰자.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상대적이란 말이다. 모든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백 퍼센트 전폭적으로 나는 사랑을 베푼 사람이고 너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오직 신 뿐이란 이야기다. 그것이 예수가 말한 사람 사이의 사랑이야기다. 

행여 “나는 너와 너희를 위해 절대적 사랑을 베풀었건만 너희가 나에게 무엇을 하였는가?”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직업이 어떤 것이든 이미 그는 예수의 사랑과는 동떨어져 있다.  

살며 ‘나는 주기만 했고, 너는 받기만 했다.’며 우기는 얼굴들을 보면 왜 이리 슬퍼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