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

이즈음 틈나는 대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며 산다. 가진 것 별로 없는 삶이건만 둘러보면 온통 버릴 것 투성이다.

십 수년 동안 일기장처럼 사용하던 블로그를 이젠 접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정리하며 보낸 하루다.

지난 일기들을 뒤적이다 보니 내 부모님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적기 시작한 일이 딱 십년이 되었다.

시작은 장모님 이었다. 십년 전 장모님은 담낭암 판정을 받았고, 삼년 동안 그 병과 씨름하시다가 마지막 한 달여 호스피스 돌봄 속에 떠나셨다. 그 다음은 장인 어른이셨다. 장모 떠나시고 난 뒤 장인은 모든 것을 놓으셨었다. 한 일년 혼자 잘 버티시다가 쓰러지신 후 장기 요양시설에서 마지막 일년을 보내셨던 장인은 그 시설에서 조용히 삶을 접으셨다.

그리고 몇 달 후 내 어머님이 가셨다. 치매증상 속 호스피스 돌봄을 받으며 떠나셨다. 그로부터 약 삼 년 세월이 흐른 지금, 내 아버지는 장기 요양시설에서 일 년 넘게 누워 지내신다.

이미 떠나신 세 분과 이제 마지막 시간들과 씨름하시는 아버지, 그렇게 네 분 내 부모님들은 내게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가르침을 주셨고 또 주신다.

며칠 전 이런저런 투정으로 얼굴을 찌푸리시던 아버지가 잠이 드신 얼마 후, 아버지의 얼굴은 세상 편하게 흡족한 웃음을 가득 담은 모습으로 변했다. 하도 신기해서 큰소리로 물었었다. “아버지! 뭔 좋은 일이 그리 생기셨나?”

눈도 뜨지 않으신 채 환한 얼굴로 아버지는 중얼거리셨다. “어… 니 엄마 생각….”

오늘은 우수(雨水). 내 뜰에서 새 봄 소식을 전해주는 생명들과 지난 십 년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

눈 감고 떠올리는 얼굴마다 환한 웃음 짓는 사람살이 살 일이다.

우수에.

DSC05275 DSC05276 DSC05278 DSC05285

소박(素朴)함에

삶의 여정 마지막 길목, 그 초입에 이르신 아버지가 어제 더듬더듬 내게 건네신 말씀. “사람 산다는 게 참 별게 아닌 듯도 싶고….”

오늘 일요일 하루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리라 맘 먹고 아주 오랜만에 늦잠을 즐겼다.

어제 아버지가 던지신 말씀이 지워지지 않아 이런저런 책장을 넘기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살이 본바탕 생각이란 그리 변한 것 없다.

<사람들이 진정 돌아가야 할 곳은 밖으로는 천진함을 드러내고 안으로는 순박함을 간직하는 것이며, 사심(私心)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다. – 노자 도덕경 19장>

<발의 존재를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며, 허리의 존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며, 옳고 그름을 잊을 줄 아는 것은 마음이 자연 그대로에 맞기 때문이며, 마음이 내적으로는 변함이 없고 외적으로는 대상에 끌리지 않는 것은 자기 처지에 안주하여 항상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 자적에서 시작하여 항상 자적(自適)의 경지에서 머무는 것이야말로 ‘자적조차 잊은 자적’의 경지이다. – 장자 외편 제 19장>

그리고 예수가 가르쳐 준 기도, 곧 주기도문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르며 강조한 가르침이자 간절한 기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사람살이- 그 모든 거창하고 거룩하거나 세계적 국가적 민족적 거대한 담론들 다 제(除)하고 그저 일상적이고 분명하고 평범한 것, 바로 신과 그리고 함께 부딪히고 사는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오늘, 지금 나를 위한 기도.

바로 소박(素朴)함을 위하여.

더하여 얻은 깨우침 하나. ‘퀘이커 지혜의 책(A Quaker Book of Wisdom)’에서 로버트 스미스(Robert Lawrence Smith)가 처음과 끝에서 크게 강조하며 깨우쳐 알려 주는 말. –  “당신의 삶으로 말하라!(Let your life speak!)”

자유, 자적 나아가 삶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든든한 밑천일 듯. 참 별게 아닌 듯 싶은 내 사람살이를 위하여.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오후에 아내와 함께 가까운 펜실베니아 Ridley Creek 공원 숲길을 걷다.

DSC02720 DSC02724 DSC02731 DSC02747 DSC02751 DSC02753 DSC02767

길을 걸으려 두어 시간 길을 달렸다. 한때 뻔질나게 달렸던 길이다. 신문을 한답시고 뉴욕, 필라, 볼티모어, 워싱턴을 무던히도 돌아다녔었다. 북쪽 길인 뉴욕, 필라는 지금도 여전히 오가곤 하지만 남쪽인 볼티모어나 워싱턴 쪽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버지니아 쪽 나들이는 거의 십여 년 만이다.

낯익은 표지판 지명들과 함께 떠오르는 많은 얼굴들로 십 수 년 전 세월이 나와 함께 달렸다.

생각할수록 낯 뜨거운 내 치기(稚氣)였다. 이민(移民)과 한반도 그리고 통일과 평화를 운운하며 다녔던 길이었다. 내 치기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다. 다만 그 길을 쉽게 접을 수 밖에 없었던 내 한계에 대한 부끄러움은 여전하기에  분명 치기(稚氣)였다.

옛 생각으로 두어 시간 달려 도착한 곳, 버지니아 Potomac 강변 Great Falls 국립공원이다.

DSC06827 DSC06828 DSC06841 DSC06905

풍광(風光)은 이름처럼 대단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매료시킨 것은 길이었다.

DSC06835 DSC06850 DSC06881 DSC06895 DSC06898 DSC06902 DSC06903

바위 길, 숲길, 오솔길, 자갈길, 모랫길, 돌길 등 걷는 맛이 정말 쏠쏠한 곳이었다. 바위 길을 걷다  문득 휘어잡은 나무가지가 그리 반들거릴 수가 없었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손을 빌려 주었을까?

DSC06838

그리고 마주친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숨쉬는 생명들에게 눈인사 건네며 걷는 길에서 느낀 즐거움이라니!

DSC06852 DSC06855 DSC06856 DSC06863 DSC06867 DSC06897

DSC06858 DSC06869 DSC06873 DSC06889 DSC06893 DSC06894 DSC06906

삶은 계란, 사과 몇 쪽, 포도 몇 알과 빵 한 쪽… 그 달콤함을 만끽한 길 걷기였다.

DSC06871

숲길로 들어서서 땀 닦으며 벗은 모자, 평소 모자를 써 본 적 없는 내가 아침에 집을 나서며 옷장에서 눈에 띄어 집어 든 것인데,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들은 모자의 내력. – 이젠 장성해 서른을 바라보는 처 조카딸 아이가 초등학교 때 잠시 내 집에 머무를 때 쓰던 모자라고…. 무릇 모든 것에 연(緣)이 없는 것은 없을 터이니.

DSC06880

돌아오는 길, 일요일 오후 교통 체증은 두 시간 거리를 세 시간으로 늘여 놓았지만 그 길에서 되짚어 본 생각 하나. 사람 살이는 때론 정말 더디지만 결국 옳은(또는 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뭐 내 믿음 같은 거.

딱히 통일 평화 운운 하지 않더라도 어디서나 그저 그런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

오늘, 되돌아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걷게 해 준 이길영 선생에게 감사를…

***때론 아내가 동행하지 않는 길이 편할 때도 있다. ‘더불어 함께’란 ‘홀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서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