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나는 입이 매우 짧다. 그렇다고 음식을 가리는 쪽은 아니다. 어떤 음식이든지 먹을 만한 것이라면 가리지는 않는다. 이른바 혐오음식으로 알려진 것들도 대개는 거부감없이 먹었다. 물론 싫어하는 음식들도 있다. 일테면 고수(실란초Cilantro)  등과 같은 허브류 등 입에 안 맞는 것들은 거부하는 편이지만 질색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 편은 아니다.

아무튼 나는 입이 짧다. 소식(小食)  곧 먹는 양이 적은 편이다. 대단한 건강 타령으로 그리 하는 것은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생긴 형편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냥 많이 먹지를 못하기 때문이고, 많이 먹어 배가 부르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입이 짧다. 그렇다고 반찬 투정을 부리지는 않는다. 그냥 있는대로 내 배 찰 정도로 잘 먹는 편이다만, 종종 내가 듣곤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나는 입이 짧다.

그런 내가 제일 좋아한다기 보다는 즐겨 찾는 것은 고추장이다. 아이들 다 집 떠나고 난 뒤, 아내와 나는 일주일에 거의 반반씩  음식과 설거지를 나누어 한다. 내 순번이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음식 재료는 단연 고추장이 으뜸이다.

어쩌다 나 혼자 밥을 먹게 될 때엔 뜨듯한 밥 한 공기에 고추장 하나면 족하다. 참기름 몇 방울 더한다면 그 족함에 더할 나위 없다.

이런 내 입성을 캘리포니아 사돈 어른들이 어찌 아셨는지 고추장 한 병을 곱게 싸 보내 주셨다. 그냥 고추장도 아니고 커다란 대추알 박힌 대추 고추장이었다.

그 고추장 풀어 달달하고 얼큰하게 장칼(?)국수(엄밀히 칼국수라 할 수 없는 마켓에서 산 국수임으로)로 아내와 함께 저녁상을 즐겼다. 다음에 아이들 오면  칼국수 만드시던 어머니 흉내 내어 내가 직접 만든 장칼국수 한번 끓여 보아야겠다.

고추장 한 숟갈로 넉넉히 배부르고 좋은 주말 저녁에.20220406_183846

사돈

캘리포니아 사돈댁에서 귀한 선물을 보내 주셨다. 손수 키워 거두시고 잘 말린 먹음직스런 대추를 한아름 보내 주셨다. 예상치 않던 일이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의 크기가 꽤 컸다.

누이들 집에도 나누어 보내고, 마침 찾아 온 내 참 좋은 벗에게 조금 덜어 주었건만  우리 내외에겐 과할 정도로 남은 많은 양이었다.

대추차도 끓여 놓고, 대추 꿀차도 절여 놓았다. 사돈 덕에 올 겨울 감기 걱정은 내려놓아도 좋을 듯하다. 대추 넉넉히 넣은 약밥 만들기는 뒤로 미루어 두었다.

사돈사이 –  꽤 오랜 시간 내겐 어머니와 아버지와 장모와 장인 사이를 일컽는 말이었다.

나는 일남 삼녀 외아들, 아내는 일녀 이남 맏딸. 장인과 장모, 아버지와 어머니, 그렇게 사돈 내외는 이 미국 땅에서 기십년을 한 동네에서 살았었다. 다 지나간 이야기다만.

세월은 어느 사이에 나와 아내를 사돈 사이의 한 축으로 만들었다. 사돈 댁도 마찬가지일 터.

대추 꽃은 그냥 피고 지는 법 없이 열매를 반드시 맺는다고 한다지.

눈내리는 늦은 밤, 대추차 한잔 앞에 놓고 비나리 한마당.

‘그저 우리 아이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한마음일 사돈내외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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