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맛

몸이 먼저 시간을 느끼는 나른한 토요일 오후, 손님 한 분이 빨래감을 맡기며 편지 봉투를 내어 민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내 미안한 마음을 담았는데…” 그렇게 봉투 하나 내어 밀고 내 가게를 나서는 그에게 영문 모른 채 그냥 웃음으로 주말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뜯어 본 편지 내용이다.

<아시안계 지역사회에 대한 추악하게 심한 편견과 인종 차별에 대해 당신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맞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다른 국가이며, 미국처럼 단지 몇 백 년이 아닌 수천년에 이르는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각각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러하듯이) 제 고객들과 정치에 대해서는 절대 논의하지 않지만, 개인의 생명과 생계를 위협하는 사건들은 가벼이 무시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쩌면, 피해를 입힌 다수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정보가(피해를 입힌 다수의 잘못된 행위를 널리 알린다면) 평화와 수용의 시대를 맞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간절히 바랄 뿐…>

며칠 전 아틀란타에서 일어난 한인들을 포함한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 만행 사건 소식을 듣고 보며 한국계인 내게 전하는 그의 속마음 인사였다. 그는 나보다 조금 아래 연배의 백인 사내였다.

편견과 인종 차별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그 공감으로 연대하는 이들의 힘으로 세상은 느린 걸음이지만 늘 진보하는 것일게다.(나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까이 가는 역사의 진행이라고 말하곤 한다만…)

우리 부부가 세탁소에서 느껴보는 삶의 맛이다.

내 뜨락에도 하루 사이에 봄 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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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맛 – 두가지

돌아볼수록 질척거리며 살아 온 흔적들이 부끄럽지만 내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 편이다.

딱히 언제쯤 인지는 모르지만 ‘단 한사람에게 만이라도’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다. 뭐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내 생각 하나, 내 행위 하나가 얼굴 맞대고 살거나 그저 소문으로 닿고 사는 그 누군가 한 사람과 서로 공감할 있는 하루를 산다면 그저 족하다는 맘으로 되뇌이곤 하는 말이다.

말과 생각이 그렇다는 뜻이지 솔직히 내 보통의 하루 하루는 내 만족의 척도에 따라 웃고 울거나 펴지고 찡그리곤 한다.

지난 주말, 멀리 남부 지역에서 세탁소를 하시는 오선생께서 전화를 주셨다. 수 년 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는 새로 세탁 기계를 장만하려고 하는데 두 가지 서로 다른 솔벤트를 사용하는 기계들을 놓고 어떤 것으로 바꾸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였다. 부인과 함께 고민 하다가 내게 묻고 그 의견에 따르고자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전화였다. 나는 솔직히 삼십 년 넘게 세탁소를 해왔지만 솔벤트와 기계에 대한 지식은 거의 무지에 가까운 편이다. 살며, 한 십여 년 가까이 미 전역에 있는 세탁인들과 업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산 일이 있긴 하다만,  솔벤트나 기계에 대한 문제는 내가 입 벌려 뭐라 할 만큼 아는 게 전혀 없다.

오선생은 무조건 내가 하라는 대로 기계를 선택해 사겠노라고 했다. 그의 아내도 전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었다.

정말 난감했다. 나는 이틀 말미를 얻어 주말 동안 그가 말한 두가지 솔벤트와 기계 종류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 비교해 도표를 만들어 오늘 아침 그에게 보내 주며 말했다. ‘그저 내가 주어진 시간 안에 살펴 본 자료에 불과한 것이니, 오선생께서 잘 선택하시라. 그리고 돈 잘 버시고 건강하시라.’고

오늘 일을 하며 온 종일 오선생 내외에게 감사한 마음이 그치질 않았다. 벌써 수 년 전에 그만 둔 일이지만, 내가 질척거리며 세탁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지 않을까 하는 내 스스로 얻은 위안 때문이었다.

또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 살아 온 일들에 가능하다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바탕엔 성서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내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에 더해 사람 살이 곧 역사 시대를 백년 단위로 끊어 훑거나, 내가 살아 온 세월들을 십 년 단위로 끊어 곱씹어 보며 얻은 내 나름의 깨달음 그 끝에서 얻은 결론 때문이기도 하다.

나야 그저 연緣의 끝자락 붙들고 별 행위도 없이 살곤 있다만, 새 세상 꿈꾸며 사는 이들이 연대를 이루며 사는 소식을 듣고 살 수 있음 만으로도 나는 이미 사는 맛을 느끼며 사는 터.

새해에는 사는 맛 더욱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단 한사람 만이라도 함께.

사는 맛

가족을 제외하고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가족 이라야 거의 붙어사는 아내와 일주일에 한두차례 찾아 뵙는 노부모님과 장인 어른이 자주 보는 얼굴들이다. 아들 며느리는 많아야 한달에 한번 꼴이나 될까 모르겠는데, 고마운 것은 우리 부부가 원하면 언제든 볼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착하다.

딸아이는 좀 다르다. 일년에 몇차례인지 내가 정확히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볼 수 있는데, 그 회수는 전적으로 딸 아이의 뜻에 달려 있다. 그런 딸아이에 대한 못마땅함으로 내가 궁시렁 거리기라도 할라치면 ‘천상 당신인데 뭔 소리냐’는 아내의 핀잔을 듣곤 한다.

가족 이외에 만나는 한국사람들이라야 일년에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회수로 나가는 한인교회나 이따금 들리곤 하는 한국 식품점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이 전부가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연으로 얽힌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한인 이웃들도 제법 있지만, 그들을 만나는 일엔 딱 내 딸아이를 닮아서 그야말로 내 맘대로이다.

그러다보니 한 달 정도는 가족 이외에 한국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않고 지내는 때가 흔하다.

예외적인 일이 있긴 하다. 지난 수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거의 빠지지 않고 얼굴을 마주하는 한국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라세사모’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이들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만나기 시작한 모임이다. 그러나 이 모임은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이어서 비록 얼굴을 마주한다 하지만 실제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내 지극히 이기적인 성격 탓이겠는데, 나는 이 모임에서 만나는 이들의 개인사에 대해 참 무지하다. 엊저녁 일만 해도 그랬다. 좀 뒤늦게 이 모임에 함께 하긴 하였지만 벌써 셀 수 없을 만큼 마주했던 얼굴인데 어제서야 그가 하는 일에 대해 물었었다. 아마 다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그가 학교에 있다는 소리는 얼핏 들어 알곤 있었지만, 역사 그것도 한국사 그 중에 또 현대사 더더구나 해방 이후 한국 전쟁사에 대해 연구한다는 사실을 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살며 이따금 가슴이 쿵쾅거리는 설렘을 만날 때가 있다. 나이 탓인지 이즈음엔 사람을 통해 그런 경험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책을 통해서는 종종 그 즐거움을 누린다. 그런 책들의 편저자들이 이젠 많은 경우 나보다 어린 이들이다. 나보다 윗대들의 생각에서 배우는 기쁨보다 후대들의 생각을 통해 깨치는 맛은 또 다르다.

그런데 이번엔 책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것도 매주 만날 수 있는 후배이다. 순간적으로 그를 졸랐다. 가르침을 달라고…

찬바람 기운이 돌면 그 모임에 참석하는 우리는 이제 그에게서 해방 이후 한국사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다.

이번 주말엔 아들 며느리 그리고 딸아이를 앞세우고 우리 부부는 계곡을 찾아 하이킹을 즐기려 한다.  그날 아이들과 함께 나눌 밥상을 위해 불고기 거리를 장만하여 돌아오는 길목에서 만난 저녁하늘은 아침이었다.

이 사는 맛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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