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많이 다르다.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그래도 부부인데 그것도 마흔 해 넘은.
닮은 곳들을 찾아보지만 교집합의 크기는 보잘 것 없이 작다.
서로 딱 맞게 닮아 이제껏 부부의 연을 이어 온 큰 까닭 하나 찾자면, 남과 비교하거나 빗대어 놓고 우리들의 삶을 꾸리지 않았다는 것일게다.
아내에게 그런 성정이 깊었다면 애초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터이다. 생전 울 어머니 말씀마따나 아내가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성정이었다면 나는 열 두번이나 홀아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게다.
물론 나 역시 나 밖에 볼 줄 모른다.
우리 부부의 교집합이 이루어지는 만남이다.
더더구나 이 나이에 이르니 ‘누군가가 부러워지는’ 시간은 거의 없다. (과했나?)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참 부러운 사람 하나가 다가왔다. 시인 강남옥이다.
그의 세번 째 시집 <그냥 가라 했다>를 받은 것은 지난 주였다. 시집을 받자 마자 후루룩 넘기다 내 눈에 꽂힌 시는 <쌀과 꽃>이었다.
<쌀과 꽃> 을 관통하는 시어는 ‘값’이었다. 바로 가치, 삶의 가치였다.
오늘 저녁, 찬찬히 그의 시편들을 곱씹다 울컥하니 부러움에 빠지다. 가히 도발적이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그의 시어들이 가 닿은 곳들은 사람들이었고, 그 곳엔 깊은 사랑이 함께 하였다.
남의 가게 일 도우시는 한국 분을/ 필라델피아 시내로 모셔다드린 적 있다/ 그분은 시청에서 자동차로/ 40분쯤 걸리는 곳에 사셨는데/ 필라델피아에서만 15년 사셨다 했고/ 15년 만에 시내는 처음 가 본다 하셨다
20년쯤 전의 일이다
그의 시 <슬펐다>이다.
40, 15, 20이라는 숫자들이 말하는 거리와 시간들은 그에게 그저 거추장스런 치장일 뿐이다. 일상에서 누려야하는 마땅한 일들이 처음인 사람을 마주하는 그의 슬픔은 옛 고향에서 부터 이민, 그 역시 떠나온 고향처럼 빠르게 변하는 이민의 땅에서 수시로 이어진다.
그렇게 그의 시편들은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부고(訃告)와 무고(無故) 사이에 놓인 모든 사람들을 향해.
모를 일이다. <그냥 가라 했다>는 시집 이름이 그의 생각인지는.
단언컨데 그에게 <그냥 가라>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게다. 사랑 한 줌 받지 않고서는.
남도(嶺이건 湖이건)말이 부러운 서울 촌놈의 열등감을 그가 헤아릴지는 모르겠지만.
부러움으로
그의 시집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