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春雪)

우수(雨水), 경칩(驚蟄) 다 지나고 내일이면 Daylight saving time 곧 summer time으로 시간이 바뀌는데 사방이 눈으로 덮였다. 날씨도 제법 춥다. 겨울 옷 벗어 던진 지도 제법 되었는데 다시 찾아 입었다.
내일은 화단 꾸밀 요량으로 벌써부터 맘 설레었는데 일기 가늠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내가 세상 덜 살았나 보다.

‘봄눈, 봄눈, 봄눈이라…’ 그리 홀로 읊조리다 정지용 시인의 <춘설春雪>을 읊어 본다.

<춘설(春雪)>

문 열자 선뚝! 뚝 둣 둣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옹승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 피기전 철 아니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우수 지난 봄눈과 추위를 맞아 시인은 아직 벗지 않았던 핫옷(솜옷)을 벗어 던지고 온몸으로 추위와 봄눈의 뜻을 즐겨 보겠단다. 아마 곧 맞게 될 화사한 봄 맛을 더하게 위함으로.

*** 나 역시 마찬가지다만 이 번 주초에 있었던 한국 대선 결과에 낙담하고 시름하는 벗들에게…. 우리들이 지난 날 누리지 못했던 찬란한 봄 맞이를 위한 통과의례 쯤으로 생각하자는 뜻으로 전해 보는 봄눈(春雪)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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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春分)

춘분(春分)날 눈에 갇히다. 눈이 12인치 이상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맞는가 보다. 예기치 않게 다가온 시간의 여유는 게으름을 낳는다.

내리는 눈발도 그저 정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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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뉴스들은 복잡하고 시끄럽다.

이런 날은 동화(童話)가 적절하다.

“사람들이 너에게 정답이라고 내미는 곳을 그냥 믿어 버려서는 안 돼. 언제나 네 스스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다듬어야 해. 그리고 네 믿음, 네가 옳다고 여기는 것, 네가 취하는 태도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
“하지만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래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그런 게 자유야.”

– 라이너 에를링어의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에서

춘설(春雪)

경칩(驚蟄) 지난 삼월에 오신 춘설(春雪). 가게에서 손님으로 오시는 눈 구경하다 집에 돌아와 쌓인 눈 치우노라니 허리가 휜다. 이럴 때면 살림 차려 나간 아들놈이 그립다. 이웃집 눈사람 쳐다보다 웬지 설운 생각이… 춘설(春雪)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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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春雪)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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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春雪)에 춘정(春情)을…

봄눈이 사방을 덮은 날, 장자를 읽다. 장자(莊子) 외편(外編) – 추수편(秋水篇)에 있는 이른바 호량지변(濠梁之辯) 이야기.

어느 날 장자와 혜시가 호(濠)라는 강의 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물에서 자연스럽게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데, 저것이 피라미의 즐거움이라네” 그러자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자네 또한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지 안단 말인가?” 혜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니까, 물론 자네의 마음을 모르지.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네도 물고기는 아니니까,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확실하지 않은가”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그럼 처음부터 차례대로 알아보세. 자네가 방금 내게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겠는가’라고 물었네. 지금 그 물음에 대답하지. 자네는 내가 이미 알고 있음을 알고서 나에게 물었던 것일세. 그렇다면 물고기가 아닌 내가 물고기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나는 다리 위에서 물고기의 마음을 알았던 것일세”

이 이야기에 대한 자오스린의 해석이다.(자오수린저 허유영번역,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서)

논리상으로 보면 이 변론의 승자는 혜시다. 장자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단 말인가? 라는 혜시의 논리적인 질문을 회피했다. 불교에서는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는 마셔 본 사람만  알 수 있다”고 했다. 감정이란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며 남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감정이란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며 남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물고기는 어떻겠는가?

그러나 미학적으로보면 장자가 이겼다. 장자는 자신이 느끼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투사시켜 물고기가 즐거울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시인 신기질(辛棄疾; 1140년- 1207년, 중국 남송의 시인)은 “내가 청산을 보며 매우 아름답다고 여기니 청산도 나를 보면 똑같이 느끼겠지”라고 했다. 장자는 큰 덕을 가슴에 품고 세상 만물에게  봄처럼 따뜻한 정을 느꼈다. 그에게는 천지간이 모두 따뜻한 우주였다.

봄눈(春雪)에 춘정(春情)을 느끼던 날에.

莊子與惠子遊於濠梁之上(장자여혜자유어호량지상) 莊子曰(장자왈) 儵魚出遊從容(숙어출유종용) 是魚之樂也(시어지락야) 惠子曰(혜자왈) 子非魚(자비어) 安知魚之樂(안지어지락) 莊子曰(장자왈) 子非我(자비아) 安知我不知魚之樂(안지아부지어지락) 惠子曰(혜자왈) 我非子(아비자) 固不知子矣(고부지자의) 子固非魚也(자고비어야) 子之不知魚之樂(자지부지어지락) 全矣(전의) 莊子曰(장자왈) 請循其本(청순기본) 子曰(자왈) 汝安知魚樂(여안지어락) 云者(운자) 旣已知吾知之而問我(기이지오지지이문아) 我知之濠上也(아지지호상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