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에

오늘 손님 하나 가게로 들어서며 연신 내 뱉던 말, “Strange!  Strange! Unbelievable!

난 그의 말을 ‘이런 옘병할!’로 듣고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도 아니고, 사월에 장마도 아닐 터인데… 지난 일요일부터 오늘까지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어제 밤엔 심하게 바람이 불더니만, 내 가게와 멀리 않은 곳으로 회오리가 지나가 곳곳에 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떳다.

손님의 날씨 불평이 어찌 그의 것이기만 하랴.

저녁에 비가 잦아든 창밖을 보니 그 빗속에서 튤립들이 배시시 얼굴들을 내밀었다.

하여 삶은 늘 익숙하고 믿을만한 것들의 연속이다.

축복에

일터로 나서는 아침과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 나무와 새가 한 몸이 되어 전하는 소리 – 봄이 오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늘 이야말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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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도

연 이틀 모질게 매운 바람 불다 그치니 내 집에 봄이 내려 앉았다. 봄 준비 한답시고 뒤뜰로 나선 내게 활짝 핀 크로커스 꽃들이 웃으며 말을 건냈다. “쯔쯔쯔 이 게으른 친구야! 난 벌써 와서 기다렸구만…” 허나 내게도 늘 핑계는 있는 법. “예끼! 비웃지 말어! 겨우내 집안 단장하느냐고 나도 몹시 바뻣다고. 네 놈 웃음을 반갑게 맞는 걸 고맙게 생각해!”

그렇게 봄이 온다.

오늘 아침 집안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작은 상자는 눈에 익지 않은 것이었다. 상자를 여니 돌아가신 장모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그 물건들 중엔 돌돌 말린 신문 쪼가리들이 담긴 백이 하나 있었다. 그 신문 쪼가리들을 펼치며 터져 나온 말 “에고, 우리 장모님”

어느새 스무 해가 빠르게 지나 간 일이다. 그 무렵에 나는 지역 한인사회 신문에 글을 열심히 썼고 한 때는 신문을 만들기도 했었다. 다 ‘지나간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내가 모아두었던 흔적들을 모두 없앴던 일도 벌써 오래 전이다. 하여 이젠 거의 기억에도 없는 일이 되었다.

허나 장모는 그 당시에 내가 썼던 글들을 오려 고이 간직해 두셨던 것이다. 장모 남기신 물건들도 이젠 없다 싶었는데 상자 하나 남아 잠시 옛 생각에 빠져 본 아침이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중계를 보며 썼던 글을 보며 웃었다. 그 때만 하여도 내가 참 젊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중계 카메라가 비추어 주는 곳곳마다 온통 붉은 바다였다. 열 두 번 째 선수라는 응원단 곧 red devils의 상징색이란다. 더하여 그들의 가슴에는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 구호조차 선명하였다. 이 어찜이뇨? 이 넉넉함이 어디서 온 것이더뇨?

일개 축구응원단의 색깔을 비약한다 말하지 말라. 지난 세기, 우리에게 적(赤)은 오직 적(敵)이었으며 뛰어넘지 못할 벽이었다. – 그렇게 반 백년을 살아왔다. – 그럼에도 아직도 툭하면 좌파입네 우파입네 손가락질로 때리고 싸우며 저 함성 뿐인 민중을 속이는 정치꾼, 오직 양시(兩是)나 양비(兩非) 뿐인 사이비 언론들 그 냄새나는 구덩이에서 쏟아 터져 나오는 저 붉은 빛의 함성, 붉은 파도 이 어찌 신(神)의 일하심 아니겠나!>

이 글의 끝을 나는 이리 맺었었다.

<비노니 언론이여! 실축(失蹴)한 젊은이에게 돌 던지지 말지어다. 분단의 세월, 그대들이 내지른 고의적 실축은 천년이 가도 남을지니.>

이즈음 한국 언론들을 보면  ‘양비양시’도 아니고 그저 장사꾼처럼 보인다. 실축도 아니고 고의적 실축 뿐.

지금 내가 사는 곳이나 그저 생각 속에 남은 한국이나 봄이 참 봄 다운 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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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금요일(聖 金曜日) 밤,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님의 생각을 꺼내 곱씹다.

‘때’가 이른 것은 ‘때가 왔습니다’할 때가 아니라, ‘이제’의 ‘이’ 소리가 나오는 때입니다. ‘이’라고 할 때도 실상은 과거가 됩니다만,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이제’입니다.

우리는 이 ‘이제’를 타고 가는 목숨입니다.

이제가 이제, 이제, 이제, 자꾸 계속 되어도 났다 죽었다 하는 이 이제가 영원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뜻으로 보면 우리의 모든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입니다. 새로 나오자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지금, 오늘이 귀하고 아름다움에 감사하다.

나의 ‘이제’ 뿐만 아니라 아내와 부모와 자식과 이웃들… 그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이제’를 누리는 사람들의 지경을 넓혀갈 수만 있다면…

기적처럼 집으로 돌아와 엊그제 생일 케익 앞에 앉으신 어머니와 앞 뜰에 핀 봄이 ‘이제’에 대한 감사를 북돋다.

성 금요일과 부활 아침 사이엔 셀 수 없이 많은 ‘이제’들이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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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모처럼 느긋한 주일 아침이다. 내 맘을 아는지 시간조차 느리게 흐른다.  간만에 넉넉한 마음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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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여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모처럼 아주 느긋하게 여유 있는 일요일 아침을 맞는답니다.

Long term care 시설에 계시는 장인이 병원 응급 환자로 옮기셨다 딱 일주일 만인 엊그제 상태가 좋아져 다시 시설로 돌아 오셨답니다. 어제는 딱 석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가 일주일 간 의 재활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셨답니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가게 이전과 마무리를 하느랴고 한 달여 매우 바빳었답니다.

이제 두 노인들도 제 자리를 찾았고, 가게 이전으로 어수선했던 제 일상도 이젠 거의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맞는 일요일 아침에 누리는 여유에 정말 감사한답니다.

한 열흘 전 아침, 어머니 병실에서 밤을 지내고 가게 문을 열 때, 문득 눈에 들어 온 하늘을 보며 떠오른 생각들이 있답니다. 삶의 아름다움과 일상에 대해 늘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답니다.

누구나 살며 아프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마련입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들과 이웃들 모두 겪는 일입니다. 그 모든 삶의 과정들을 아름답다고 새기고 곱씹어 보는 것은 바로 제 자신이라는 생각을 아침 하늘이 제게 가르쳐 주었답니다.

또 다른 생각 하나는 매일 똑같은 생활, 때론 지겹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그 똑같은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생각해 본 것이랍니다.

그날 아침 하늘 풍경에 감사하답니다.

온 천지가 봄입니다.

좋은 계절, 아름답고 감사가 넘쳐나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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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I was busy and nervous for about a month, today I’m leisurely greeting Sunday morning with ease.

My father-in-law, who had been staying at a long-term care facility, was taken to the emergency center, was recovered in a week and moved back to the facility the other day. Yesterday, my mother, who had been hospitalized for three weeks, moved back home after a week-long rehab treatment.

Furthermore, I was busy completing moving the store, as you might know.

Now, my mother and my father-in-law are recovered and my everyday life, which was disordered, has almost fallen into place. So, I’m really grateful for the relaxed feeling which I’m enjoying in this Sunday morning.

About ten days ago, when I opened the store and looked at the sky after I had spent the previous night in my mother’s hospital room, a couple of thoughts came across my mind. It was that I should always be grateful for the beauty of life and everyday life.

We all get sick in life and have to face death someday. We also must look at our loved ones’ situations of those kinds. What the morning sky taught me was that it would be me who imprints all the courses of life as beautiful and thinks about them over again.

The other thought was that I should realize how grateful I should be for everyday life, though so often I feel that it seems to be a tedious repetition of the same things over and over again every day.

I’m thankful for the sky tha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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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around is shouting that it’s spring.

I wish that you’ll have over-flowing gratitude every day in this pleasant and beautiful season.

From your clea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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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過程)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을 키우며 좋은 학군, 좋은 대학, 좋은 직업 등에 대해 우리 부부는 거의 무지, 무관심, 무대화로 일관했었다. 아이들은 그저 제 힘으로 컸고 우리 부부는 두 아이들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 등록금 한 푼 도와 준 적이 없다. 생각할수록 참 미안하다. 더 큰 미안함은 아이들 덕에 이 땅의 교육정책과 교육기관에 대해 조금은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 땅의 노인의료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 것은 모두 우리 부모님들 덕이다. 나도 이젠 법적 노인이므로 알아 두어야 할 지식인데 구태여 배울 것도 없이 몸소 체험으로 깨닫게 해 준 이들이 바로 부모님과 처부모이다.

어머님이 어제 오후 병원에서 퇴원해 단기 재활원으로 옮기시면서 우리 동네 노인 재활원과 양로 시설에 대해서는 거의 꿰차게 되었다. 어머니가 퇴원을 기다리던 오전 시간, 양로 시설에 계시던 장인이 응급환자로 병원에 실려가며 우리 부부는 동네 병원 구조를 훤히 그릴만큼 확실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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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과정이다. 그저 때 되면 다 터득하는 삶의 과정이다.

며칠 전 어머니 병상을 지키며 날밤을 지새며 읽었던 호주 홍길복 목사님의 인문학 강의록 스물 두 번 째 들어가는 말이다.

1963년, 제가 대학에 들어간 첫 해 교양과목으로 수강한 ‘문화사 개론’ 첫 시간이었습니다. 대형 계단식 교실에 들어선 30대 초반의 젊은 김동길 선생님은 첫 말문을 이렇게 열었습니다.

‘제 과목에 수강신청을 하고 함께 자리한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영원한 자유의 저변 확대사입니다. 이는 철학자 헤겔이 한 말입니다. 역사는 지난 날 오직 한 사람만의 자유에서 출발하여 몇몇 사람들의 자유를 거쳐 마침내는 온 인류의 자유를 향하여 확대 전진되어 왔습니다. 나는 이번 학기 강의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란 자유의 저변 확대사라는 입장에서, 역사를 보고, 역사를 이해하고, 또 역사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반짝이는 눈빛에는 이슬이 서려 있었고 강의는 피를 토해 내는 열변처럼 들렸습니다. 55년 전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들었던 ‘역사는 영원한 자유의 저변 확대사’라는 선생님의 선언은 당시 군부독재가 대학을 비롯하여 온 나라를 얽어 매던 마당에 저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고민하게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자유’라는 단어는 저의 사유의 틀을 형성시켜 온 중심개념 중 하나가 되어왔습니다.

이제는 90이 넘으셔서 선생님도 예전 같지는 않으시지만 사실 ‘젊은 날에는 진취적이고 혁명적이지 않는 지성인이 어디 있겠으며 늙어서는 보수적이고 사려 깊지 아니한 인생이 어디 있으랴!’ 하는 말을 상기하면서 지금도 가끔은 그 때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의 글은 온전히 내 경험이었다. 1972년 봄 문화사(미국사였던 것 같기도 하고?) 개론. 그 강의실 첫 시간 김동길 선생님에게 똑같은 내용의 헤겔을 알게 되었고, 나는 이즈음에도 ‘자유의 저변 확대사’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한다. 다만 나는 그날 지각한 학생 하나를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공개 비난하는 김동길 선생님에 대해 그리 마뜩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김동길 선생님과의 연은 좀 남다른 데도 있다. 민청련사건과 긴급조치 7호 사이 잠시 세월 좋았던 1975년 봄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김선생님댁에서 Henry David Thoreau의 Civil Disobedience의 특강을 받았던 기억과, 1980년 봄 5.18 직전 선생님 차로 학교를 빠져나와 도피했던 기억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제 노추(老醜)의 대명사가 되었거니와 나 또한 그와의 인연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다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그제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그제나 지금이나 그가 이해한 자유의 대상은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저변 확대’의 범위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는 말이다. 그 것에 매어 있는 한 나이 들어 노추(老醜)다.

그에 대해 감사한 것 하나는 Henry David Thoreau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즈음도 틈나면 내 가게 손님들에게 미국의 정신인 Henry David Thoreau를 소개하곤 한다.

홍목사님의 글은 헤겔의 변증법과 철학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긴 설명 끝에 그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자유를 넘어서> – ‘자유’(정치, 사상, 종교, 양심 등)와 ‘평등’(경제, 성, 인종, 문화 등)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일까요?

또 다시 미안하게 나는 건방을 떤다. 십년 선배이자 은퇴 목사이자 내 선생이자 큰 형님이신 홍목사님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아니, 그게 다 과정인 걸 아직도 모르셔요?’

출애굽과 신명기 고백으로 시작된 일찍 깬 인류의 어른들이 바라 본 세상으로 가는 길은 아주 더딘 걸음의 과정이다. 비단 성서적 가르침만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 어른들의 깨우침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 전체가 이해할 수 있는 날, 바로 하나님의 나라, 자유와 평등이 동시에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은 참으로 더디게 더디게 다가 온다.

우리네 삶이란 그 과정의 아주 작은 계단 하나.

그 것 하나 알고 그 과정에 순응하는 흉내라도 내고 가면 족할 일.  내 건방스럼에 꿀밤 하나  날리실 홍목사님 생각하며, 봄 내린 공원 길을 걷다.DSC04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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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뒷 뜰에 내린 봄은 늦저녁에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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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과정이란….

그저 우린 과정이라는 것을 아는 것?

엄마와 봄

기다리는 모든 것들은 더디 온다. 올 봄도 예외가 아니다. 일력은 3월 24일인데 간밤은 여전히 춥고 길었다.

만 열흘 만에 어머니는 정신이 드셨고 미음 몇 술 넘기셨다. 응급실로 실려 가시고 처음 며칠, 어머니와 헤어질 때가 되었나 싶었다. 의사는 마지막 의료 처방에 대한 가족들의 의견을 구했고, 누나는 그 몫을 내게 맡기려 했다. 나는 그 몫은 아들이 아니라 첫째인 누나 것이라고 양보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머니는 집에 가야만 한다고 우기셨다. 아버지 진지 차려 드려야 한다며… 오늘은 집에 못 가신다는 내게 어머니는 신신 당부하셨다. ‘아버지 절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해라! 넘어지시면 큰 일 나신다!’ 아버지가 혼자 바깥 출입을 하신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갑자기 겨우내 밀린 피로들이 몰려 왔다. 간밤을 병실에서 보낸 탓만이 아니었다. 덕지덕지 마른 피멍들로 무거워진 입술을 달싹이며  아버지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겨주는 피로였다.

30년 생업을 이어 온 자리, 마지막 정리는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가게 자리를 옮기면서 마지막 빗자루질은 내가 하겠다고 맘 먹었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빌렸다.

때때로 삶은 내 뜻과 다른 곳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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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내 일상의 출퇴근 길 72번 도로는 한가했다. 절로 감기는 눈을 치켜 뜨며 아버지에게 향하다가 생각없이 공원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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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더디게 오는 봄을 만나다.

어쩜 모든 기다림은 이미 내 발끝에 닿아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참 이상한 일 하나.

이미 홀로 되신 장인이나 어머니 누워 계신 며칠 동안 홀로서기가 낯 선 내 아버지가 왠지 뒷전이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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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버진데….

무릇 봄은 땅에서 기다림은 맘에서 비롯되나 보다.

아무렴 어머니다.

다시 봄이다.

안식(安息)에

봄비 오락가락하는 흐린 일요일. 뜰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출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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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간 아내가 돌아오기엔 아직 이른 시간, 친구 농장에서 온 두릅과 돌나물을 씻어 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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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무친 오이와 더덕도 넣어 국수 한 그릇 뚝딱. 막걸리가 딱인데, 아쉬운대로 와인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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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게으른 낮잠을.

신이 주시는 안식의 축복이라니!

세월

봄이라고 벌써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가게를 드나드는 젊은이들도 있다만 어느새 노년 할인을 받게 된 나는 아직도 겨울 점퍼를 걸치고 있다.

해는 이미 길어져 일 끝내고 돌아와도 한낮이다.

“얘야, 아직도 추운가 보다. 바람 소리가 맵구나!” 전화 속 목소리만은 아직도 정정하신 아흔 둘 내 어머니가 들으신 그 매운 바람에 뒷뜰 개나리, 이웃집 자목련 꽃잎들이 떨어져 날린다.

앞뜰 나이 오래 된 나무가 내민 꽃망울이 내게 말을 건넨다. “이 사람아, 봄은 이제 시작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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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한반도 종전(終戰) 운운하는 소식을 전하는데… 그것도 종잡을 수 없는 바람같은 Trump가 “They do have my blessing to discuss the end of the war”라고…

고목에 피는 꽃은 봄기운 때문이 아니라, 세월을 이겨낸 나무 스스로의 오랜 염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