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이라는 세월이 참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 온 집안 식구가 모였던 자리였습니다. 오는 구월이면 유치원(kindergarten)에 들어가는 조카손주아이의 재롱을 즐기고 계신 왕할머니와 왕할아버지(조카손주 아이들이 제 부모님을 부르는 호칭들입니다.)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를 왕할아버지와 왕할머니로 부른답니다.
아이들의 왕할아버지와 왕할머니는 이제 구순을 바라보시고, 백세시대로 접어드는 때에 조카손주들이 백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거의 이백년의 세월이 한 순간에 만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입니다. 그리 생각해보니 백년이라는 세월이 참 별거 아니구나하는 데까지 이르던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사람살이가 이즈음 우리들이 사는 모습으로 얼추 골격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끽해야 삼백년이 채 안된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사람살이의 변화 또는 인류역사의 변화란 어찌보면 짧은 한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가히 망상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살이의 변화를 역사발전이라고 말하던, 신의 섭리라고 말하던 돌이켜보면 인류는 똑같지는 않지만 어떤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살아 온 듯합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그 삶의 맥을 이어왔더라도 말입니다.
일테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문화라는 문화의 발전과정이나 비단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발전 과정을 보노라면 지구상 어떤 민족이나 종족들의 살아온 과정들은 거의 엇비슷한 보폭으로 여기까지 온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살이의 변화를 역사발전 또는 신의 섭리라고 말했을 때 이미 그 말 안에는 그 변화가 나아지는 쪽으로 이른바 진보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런 생각을 사람들이갖게 된 것이 고작 삼백 년이 채 안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잡설이 이렇게 길게 되었답니다.
한 삼백년 이전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은 사람살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로, 아주 먼 옛날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답니다. 기독교 영향 아래에서 생각의 틀이 짜여져 내려온 서구에서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살이가 나아가는 것으로 여겼고, 중국적 생각의 틀을 가쳐 살았던 동양에서는 요순(堯舜)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살이 궁극의 목표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의 틀이 깨어진 것이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18세기와 19세기를 넘어오던 그 때에 일입니다.
자본주의를 일으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영국이 식민지 아메리카를 잃고, 공산주의를 잉태하게 된 때가 그 무렵이고, 신생 미국이 독립한 것 때가 바로 그 때였으며, 서구 유럽을 바닥부터 뒤엎고 새로운 질서의 근간을 세운 프랑스 대혁명이 그즈음에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심심치않게 입에 오르내리곤 하는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하는 말들이 생긴 때이기도 합니다.
서구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이내 동양으로 건너와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나아가는 원인이 되었고, 중국 청나라의 급격한 몰락의 시발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그 무렵 한반도는 조선의 마지막 유교적 제왕이라는 모습과 실패한 개혁적 이미지를 동시에 갖추었던 이산(李祘) 정조(正祖) 임금의 시대를 지나 몰락의 길에 들어서던 시기였습니다.
1800년을 기점으로 전후 약 50년 사이의 백년은 인류사는 물론이거니와 동서양 많은 주요국가들이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되는 신시대로 접어 들던 때였습니다.
“예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했던 르낭이 교수직을 박탈당한 때가 프랑스 2월혁명 후인 1862년의 일이었으니, 오랜 중세적 종교 사고가 바뀌던 때도 바로 그 무렵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시기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냐에 따라 오늘 우리들의 시대를 판가름하는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른바 문창극류의 역사적 사고가 단지 한 개인 것만이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한인들에게 깊히 각인되어 드러나지만 않을 뿐인 생각으로 굳어진 까닭은 바로 이 시대를 옳게 곱씹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한반도에서는 정조 이후로, 세계사로는 프랑스혁명전후로 부터 대충 한번 훑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