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 – 10

유타 – 신앙의 힘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기차는 몰몬교인들의 땅 유타로 들어섰다. 나는 몰몬교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바 없지만 잘 아는 몰몬교인은 있다. 매우 근검화순 (勤儉和順)하고 독실한 사람이다. 이민온지 거의 40여년이 된 그는 아직도 첫번 째 기도제목을 “모국통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사람 사랑”이 바로 신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때 나는 퀘이커 모임에 들락거렸던 적이 있었다. 집에서 오분 거리도 안되는 곳에 그들의 모임장소가 있다. 그들의 예배의식은 나를 매료시켰었다. 친교방식도 부담이 없어 좋았다. 그들과 함께한 주일아침 명상기도를 통해, 한동안 나는 1시간을 5분 정도의 시간으로 느낄만큼 명상을 즐기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였다. 결국 핑계이지만, 아내와 아이들 생각때문에 퀘이커교도가 되지는 아니하였다.

아무튼 몰몬이나 퀘이커나 장로교나 감리교나 침례교나 다 한묶음이요, 불교도나 유교도나 이슬람교도나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이나 무종교인이나 다원주의 신봉자나 모두 함께 살 수 있다는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나라가 미국이라는 모범을 보여준 땅이 유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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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몬교도들이 유타주에 정착한 과정을 보면 히브리인들이 겪었던 40년 광야 이야기나 2만 5천리 길을 걸어서 피신했던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이다.

Mormon Trail (entire route)

<지도자 브링햄 영(Bringham Young)은 박해받는 신도들을 사막지대로 인도했다. 당시 1만 5천명의 몰몬교도가 3천대의 포장마차를 타고 길을 떠났다. 온갖 고난 끝에 브링햄 영은 눈 쌓인 봉우리로 이뤄진 산맥에 둘려싸여 햇빛에 반짝이는 새하얀 호수, 즉 소금호수를 발견했다. 그곳이야말로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할 땅이라고 믿은 그는 그 사해로 들어오는 강을 요르단 강이라고 명명하고 Salt Lake시를 건설했다. – 앙드레 모로아의 미국사에서>

이 몰몬교도들은  고난의 장정과 정착과정을 통해 인디언들과 미리 정착해 있던 이민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어두운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흑역사는 비단 몰몬교도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디언(원주민이라는 말이 맞겠지만)들과 멕시코인들의 땅을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점령해 나갔던 대륙의 개척자들 모두에게 드려진 흑역사일 뿐이다.

몰몬교도의 유타주 정착은 대륙의 동과 서를 잇는 전환점이었다고 한다. 어떤 신앙이든 신앙공동체는 때때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 공동체 안 구성원들이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어떤 절박함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터지는 힘으로.

어두움 속을 달려 유타주를 건너며 저절로 입밖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미국, 정말 크다!” 약 200만명이 산다는 유타주의 넓이는 거의 한반도 크기와 맘먹는단다.

새벽녘에 눈을 떠 차창밖을 보니 무수한 별들이 떠있었다. 기차는 네바다 사막을 달리고 있었고 열차안에서 시간은 두번째로 바뀌어졌다. Central Time Zone에서 Mountain Time Zone으로, 그리고 다시 Pacific Time Zone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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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희미한 어둠속에서 첫번 째 만난 네바다주 아주 작은 마을에서 본 첫번 째 간판은 Casino였다. 먼동이 트자 이어지는 것은 광야였다. 네바다는 사막이라기 보다는 척박한 광야였다.